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320화 (320/352)

제320화

#83 흑야성성(黑夜星星) (8)

그날 이후 두 자매의 사이는 삐걱거렸다.

언제나 먼저 다가가 웃는 얼굴로 준에게 말을 걸었던 메이지만, 그날 이후로는 달랐다. 메이는 자그마한 방에 틀어박힌 채로 준을 바라만 보았다. 가만히 자신의 무릎을 모으고 앉은 메이는 준을 관찰했다.

메이에게 준은 그저 태어날 때부터 함께한 자신의 동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는 준을 잘 알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준은 조용한 아이였고, 늘 구석에 있길 좋아했으니까.

늘 사람들의 관심을 찾아 돌아다니던 메이에게 준은, 어쩌다 가끔씩 눈길이 닿는 그런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칙칙한 공간에서 메이가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준, 딱 한 명뿐이었다. 메이는 준의 행동을 전부 관찰했다.

준은 부지런했다. 항상 메이가 눈을 뜨기 전에 일어나 부산하게 움직였다. 바깥에 나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뜨겁게 데운 물을 떠 와 메이의 앞에 내려놓았다.

뒤늦게 일어난 메이는 그 물에 얼굴을 씻고 코도 풀었다. 세수가 끝나 더러워진 물을 준은 불만 하나 내뱉지 않고 바깥에 내다 버렸다. 그런 뒤에는 깨끗한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왔다.

아침을 차리는 것도 준의 몫이었다. 여태까지 ‘갑자기 생겨났다’고 생각한 모든 건 준의 손길이 닿은 물건들이었다. 메이가 넋을 놓은 상황에서도 준은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었다.

“준.”

메이가 준을 불렀다. 일주일만이었다. 준은 언제나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메이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왜냐니?”

준은 메이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하는 거야.”

언제나처럼 여전히 메이의 속마음은 전혀 읽지 못하는 대답이었다.

메이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끌어안고 이 슬픔과 아픔을 나눠 줄 수 있는 피붙이였지만, 안타깝게도 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한참이나 준을 관찰하고 나서야 메이는 준을 알 수 있었다.

그저 로봇처럼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 다른 이의 마음을 살필 생각도, 능력도 없는 아이.

메이는 문득 준이 불쌍해졌다.

준의 반응에 소름이 끼친 것도, 순간적이나마 두려움까지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메이는 필사적으로 준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애를 쓰다 보니 준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준의 말대로 어쩔 수 없지. 이대로 죽을 순 없잖아.’

여전히 준을 볼 때마다 누군가 가슴을 꾹 누르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져 오고, 여전히 온몸을 파고드는 외로움에 눈물이 비어져 나왔지만 메이는 참았다. 어둑어둑한 방안에서 자신의 몸을 감싸 안은 메이가 속으로 속삭였다.

‘준은 똑똑한 거야. 그래, 나처럼 질질 짜 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사실은 준도 마음이 아플 거야, 마음이 아픈데 아파도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참아 내기로 한 거지.

그래, 맞아. 싫다고 말해 보았자 바뀌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중얼거린 메이는 다시 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번에 내가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

그 손을 맞잡으며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는 딱딱한 얼굴이었지만, 메이는 이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가끔씩 준을 볼 때마다 소리치고 싶긴 했다.

정말 이대로 괜찮냐고. 정말로 너는 모든 게 괜찮다고 생각하냐고. 아무렇지도 않냐고. 조금도, 정말로 조금도 부모님이 그립지는 않냐고.

하지만 그 외침을, 메이는 묵묵히 목 안으로 삼켰다.

죽을 만큼 싫었지만, 쑤샹원에게 반항하는 짓도 멈추었다. 기가 꺾인 그녀를 보며 쑤샹원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한테 반항해 봐야 네 사정만 나빠질 뿐이야.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마는, 나는 너희를 막 학대하고 그럴 생각이 없다니까?”

쑤샹원은 ‘좋은 주인’이 되어 주겠다 약속했다. 혹여 메이가 각성하지 않더라도 준을 생각해서 메이를 다른 곳에 팔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메이는 그의 말에 감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속으로는 역겨운 돼지 새끼의 목을 당장에라도 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우리 준이 조금 더 크고 나면 공방을 아주 크게 열 거다. 으응? 물론 네 몫도 챙겨 줘야지. 이 세상에서 귀하다는 재료는 모두 우리 공방으로 쏟아질 거다.”

쑤샹원은 준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둘이 공방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준의 재능은 아주 뛰어나다고 했다.

덕분일까. 준의 쌍둥이인 메이를 향한 대우 또한 좋아졌다.

메이가 순순히 말을 듣자 쑤샹원은 메이에게 자유를 허락했다.

조그마한 방에서 나와 주변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 메이에게 쑤샹원은 집안일을 맡겼다.

“아무리 준의 동생이라고 해도 그냥 놀고먹으면 버릇이 나빠지니까 말이지. 이해하지?”

쑤썅원의 말에 메이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일은 고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된 일을 하니 복잡하던 마음이 차츰 가라앉았다.

솥에 물을 데우고, 아침을 짓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그렇게 집안일을 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금세 갔다.

여전히 집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지만, 복도 창문을 열고 해와 바람을 느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무거웠던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메이는 그제야 준의 말을 이해했다.

반항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만 할 뿐이었다.

쑤샹원의 전화 통화를 엿듣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메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 어떻게 걜 얻었냐고?”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메이는 재빨리 몸을 웅크렸다. 본능적으로 대화에 등장하는 사람이, 자신의 쌍둥이 동생인 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메이는 귀를 쫑긋 세웠다.

“하하, 운이 좋았지. 정말로 운이 좋다고밖에 말할 수 없어. 우연히 술자리에 갔다가 엿들었거든. 응, 옆자리 인간들이 어떻게 하냐며, 떠들어 댔다니까.”

낄낄, 낮게 웃는 소리와 함께 쑤샹원의 말이 이어졌다.

“응, 말은 걱정이지만, 질투였어. 그야, 그런 집안에 그런 각성자가 생기면 떼부자가 되는 건 시간 문제니까. 질투가 분명했다니까. 아니면 내가 옆에서 슬쩍 그 집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줄줄 불었을 리가 없지. 아, 그쪽이 다 말했어. 젊은 부부에, 쌍둥이 딸이 있다는 말까지.”

쑤샹원의 말에 메이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다음부터는 쉬웠지. 아? 사람 몇 명을 쓰지도 않았어. 뒤끝 없게 깨끗이 정리했지. 그쪽은 내가 이 일을 사주했다는 걸 몰라. 아주 둘 다 나를 잘 따른다니까. 부모의 원수에게서 자신을 구해 준 고마운 사람, 이라고 생각할지도?”

그 말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벽 뒤에서 몸을 웅크린 채 메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모든 게 남자의 계략이었다니.

결국, 부모님을 죽인 것도 그들을 납치하고, ‘구원자’인 척을 한 것도. 모두 그의 생각이었다니.

한순간이나마 이런 삶도 괜찮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에게 구역질이 다 났다. 그 날밤, 메이는 준을 붙잡고 낮에 들었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듣고서도 준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명백한 반응 부족에, 메이가 소리쳤다.

“내 말을 들은 거야? 그 개자식이 이 모든 일을 사주했다고! 그 녀석이 우리 부모님을 죽인 원수라니까?”

“응, 들었어.”

“응, 들었어가 아니잖아! 그 녀석이…….”

“하지만 달라질 게 있을까?”

“뭐?”

“우리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잖아.”

그 말에 메이는 입을 벙긋거렸다. 준은 메이에게 말했다.

“잊어.”

“어떻게 그런 걸 잊어?”

“그렇다면, 복수라도 할 거야?”

“그래! 난 그 개자식을 죽일 거야!”

“죽이고 나면?”

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살인자가 되어서 쫓기게 될 거야. 아니, 애초부터 우리가 그 사람을 어떻게 죽여?”

두 사람은 이제 겨우 열넷이었다. 납치당했을 때보다는 자랐지만, 여전히 약했다. 쑤샹원은 거의 2m에 달하는 거구였고 두 사람쯤은 우습지도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거다.

기습도 먹히지 않을 거다. 쑤샹원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아티팩트를 상시로 착용하고 있었으니.

“그 사람은 강해.”

“음식에 독을 타면 돼.”

“그 사람이 착용한 아티팩트 중에는 독을 해독하는 것도 있어.”

“어떻게 알아?”

“내가 만들었으니까.”

“미쳤어? 그런 걸 만들어 줬어?”

메이의 말에 준이 말했다.

“내가 만든 건 맞지만, 준 건 아니야. 그 사람이 가지고 간 거지.”

“어쨌든! 그리고 네가 만들었으면, 네가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그걸 어떻게든 망가트려서…….”

“난 그런 짓 안 해.”

준의 말에 메이의 눈이 흔들렸다.

“뭐라고?”

“난 내가 만든 걸 망치는 짓, 안 할 거라고 말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아티팩트잖아! 지금 네가 만든 걸 망치지 않는 게 부모님의 원수를 갚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거야?”

“부모님은 이미 죽었고…….”

“그래서 중요하지 않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왜 네가 그 죽음을 아직까지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어. 이미 2년이나 지난 일이잖아.”

준의 말에 메이는 깨달았다.

그동안 스스로에게 속삭였던 준을 위한 변명은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고.

그리고 자신은 도저히 눈앞에 있는 인간을 제 동생이라고 인정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조금만 더 자신을 이해해 줬다면, 나도 그 자식이 죽도록 밉다고 말해 주었다면. 제 복수를 돕지 않았다고 해도, 메이는 준을 미워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준은, 준은…….

그로부터 며칠 뒤, 메이는 능력을 각성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메이는, 꿈에 그리던 복수를 할 수 있었다.

* * *

아무도 없는 작업실에서 눈을 뜬 준은 제 텅 빈 손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또 멋대로 빼앗아 갔다.

자신을 다시 만들어 달라고 애타게 부탁하던 아이였는데. 준은 제 손을 쥐었다가 폈다. 아쉬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아쉬워하는 건 그게 끝이었다. 준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다시 망치를 잡고 준은 용광로 앞에 섰다.

그리고 막 풀무에 발을 올린 순간.

콰아앙!

벽이 부서지며 벽돌과 먼지가 준을 덮쳤다.

준은 황급히 몸을 웅크렸다. 먼지와 벽돌 사이로 누군가 준을 향해 걸어왔다. 준은 먼지 틈에서 걸어오는 그 그림자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웬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를.

[여길 나가고 싶어?]

준은 뻥 뚫린 벽과 엉망이 된 제 작업실을 보며 말했다.

[여길 이 꼴로 만들어 놓고 그렇게 묻는 거야?]

그 말에 가면을 쓴 남자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어, 미안?]

참으로 이상한 놈이 들어왔다, 고 준은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