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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319화 (319/352)

제319화

#83 흑야성성(黑夜星星) (7)

“신호가 다 끊겼어요.”

메이가 벽에 있는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한서현이 그곳에 보냈던 언데드들과 모두 연락이 끊겼다. 덕분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당장에라도 그곳으로 쳐들어가고 싶었지만, 차송진이 나를 말렸다.

“일단은 상황을 보자. 설마하니 이런 일로 자기 쌍둥이를 죽이진 않았을 거 아니야.”

“얼굴만 흉내 냈을 가능성도 있다니까.”

“그 경우에도. 제게 돈을 벌어다 주는 장인을 제 손으로 죽일 리 없잖아.”

“고작해야 ‘이런 일’로 말이지?”

내 말에 차송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차송진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지금 끼어들기보다는, 안정적으로 메이를 확보하고 저 안으로 진입하는 게 훨씬 나을 거다.

그래서 나는 참았다. 지금까지.

[그 사람한테,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내 말에 창백하게 질린 메이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무슨 말,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

[준.]

내가 말한 이름에 메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술을 깨문 메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동공에 분홍색 빛이 돌기 시작했다.

역시 능력부터 쓰려고 하는군.

[네 능력은 나한테 안 통해, 네 거짓말도. 그러니까 순순히 사실을 말하는 게 좋을걸.]

메이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메이가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당신도 준을 빼앗으러 온 거야?]

[빼앗다니. 구해 준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구해? 구한다니?]

메이는 세상에서 제일 웃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내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그 애를 해치기라도 하고 있다는 거야?]

[아니야?]

[아니야.]

[그런 구덩이에 사람을 가둬 두고 착취했으면서?]

[그 녀석이, 한 번이라도 미안하다고 했다면…….]

미안? 사과를 받아야 했다고? 메이의 말에 나는 둘 사이에 심상치 않은 사연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 확실히.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할까? 그보다 중요한 건, 준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거다.

[그래서 그 애는 어떻게 됐지?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말에 메이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그냥 재워 뒀을 뿐이라고.]

[그냥 재워?]

겨우 그것뿐? 내 시선에 메이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럼, 뭐! 내 동생을 내가 죽이기라도 할 것 같아?]

* * *

메이가 태어난 것은 5월 31일의 마지막 날 저녁, 준은 메이가 태어나고도 다섯 시간의 진통이 더 지난 뒤 6월의 첫 번째 날에 태어났다. 난산 중에서도 난산이었다. 이 일로 인해서 그 둘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도 한참이나 요양해야만 했다.

그렇게 고된 출산이었지만, 그 둘의 부모는 진심으로 그들을 아끼고 사랑했다. 메이와 준의 부모님은 그녀들이 태어난 날의 달을 따서 이름을 지어 주었다.

메이와 준.

쌍둥이였지만, 다른 달에 태어난 것처럼 그 둘은 어렸을 때부터 상당히 달랐다. 메이는 준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툭하면 울음을 터트리고 사람들의 손길을 갈구했다. 그에 비해 준은 아주 조용한 아이였다. 잘 울지도 않았고 잠투정도 하지 않았다. 자연히 부모의 시선은 메이에게로 향했다.

메이는 울음도 많은 아이였지만, 그만큼 웃음도 많았다.

무슨 일에도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준에 비해 늘 방긋방긋 웃으며 사람들의 손길을 갈구하는 메이는 확실히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조금 더 손이 가는 아이였던 메이는 자연스레 부모의 사랑을 독식하는 아이로 자랐다.

무엇을 하든, 부모는 메이를 먼저 챙겼다.

장난감을 살 때도, 옷을 살 때도, 메뉴를 정하는 것도 모두 메이의 마음대로였다.

다른 아이 같았으면 제 쌍둥이를 질투했을 만한 상황에서도 준은 메이를 질투하지 않았다. 배려심이 넘치는 쪽은 아니었다. 애초에 준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의 틈에서 사랑받길 좋아하는 메이와 달리 준은 언제나 외따로 떨어져 바닥에 떨어진 나무나 돌 따위를 주워 놀았다.

때문일까.

누구보다 비슷해야 할 쌍둥이는 누가 봐도 ‘다르다’고 말할 정도로 달랐다. 성격도, 취향도, 취미도. 모든 것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메이는 준이 싫지 않았다. 자신에게 부모의 사랑을 모두 양보하고도 불만이 없는 동생을 미워할 수 있을 리가.

자신과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 동생이었다.

똑같은 얼굴을 한 하나뿐인 동생.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준이었지만, 메이에게는 달랐다.

메이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준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러고는 준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뭘 보고 있는 거야?”

“돌.”

준의 말에 메이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보았다. 겨우 돌? 그렇게 되묻고 싶었지만, 대신 메이는 준에게 물었다.

“돌은 왜 보는데?”

“돌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

준의 말은 이상했다. 확실히 준이 아니라 다른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면, 메이는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말했을 거다.

하지만 준은 착한 아이니까. 부모님의 사랑을 모두 나에게 양보하는 좋은 아이니까. 이상한 게 아니라, 좋은 아이니까.

그리고 하나뿐인 내 쌍둥이 동생이니까.

그래서 이상하다고 말하는 대신, 메이는 이렇게 물었다.

“응? 어떤 목소리?”

메이의 말에 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돌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어떤지를.

그날이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메이는 자신의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정말로 진심으로.

* * *

준이 각성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동공을 발견한 부모님은 깜짝 놀라 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캐물었고 준에게 ‘시스템 창’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겨우 열둘. 이른 각성이었다.

준의 각성은 작고 평화로웠던 가족을 뒤흔들어 놓았다.

“각성이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비밀로 해 둬도…….”

“하지만 불법으로 각성 사실을 숨기다가 걸리면 난리가 나잖아요?”

부모님은 고민 끝에 준을 정식으로 등록하기로 했다. 소심하던 그들의 부모님은 감히 법을 어긴다는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때 어렸던 메이는 부모님의 결정이 앞으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준의 각성을 축하하는 부모님을 보며, 그리고 담담한 얼굴로 그 축하를 받아들이는 준을 보면서.

부모님은 사람들을 너무나도 믿었다. 자신들이 아끼는 막내딸이 각성했을 때, 그 고민을 주변에 나눴을 정도로.

부모님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준의 능력이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탐이 날 수도 있다는 것과 ‘불법’으로 각성자를 사고파는 개자식들이 있다는 거다.

정식으로 각성자 등록을 하러 가기 바로 전날, 메이와 준의 집에는 낯선 이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님을 죽이고 메이와 준을 납치했다.

메이는 각성자가 아니었지만, 각성자의 ‘쌍둥이’로서 각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준과 함께 납치되었다.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부모님이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준과 함께 납치를 당했을 때 메이는 절망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준이 살아 있고 제 곁에 있다는 것이 메이를 숨 쉬게 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린 메이는 제 옆에 있는 준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

늘 겉도는 준을 걱정하던 부모님은 메이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준은 서툰 아이니까, 메이가 잘 챙겨 줘야만 해.’

그래, 내가 언니니까. 조금이지만, 언니니까. 준을 잘 챙겨 줘야 해.

겨우 힘을 낸 메이는 재빨리 준을 챙겼다.

“준, 준! 괜찮아?”

“응.”

울먹거리는 메이와 달리 준은 담담해 보였다. 너무나도.

처음에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준의 이름을 불렀던 메이였지만, 그 울음은 준의 평온한 반응에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괜찮은 거야?”

“난 괜찮아. 다친 곳도 없고.”

어딘가 초점이 빗나간 그 말에 메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첫 번째 균열.

이상했다. 어떻게 저렇게 준은 멀쩡할 수가 있는 거지?

조금 전, 부모님이 죽었는데.

“우리를 납치한 사람은 우리를 어떻게 할 작정일까?”

준의 말에 메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 그런 소리나 하는 거야? 엄마, 아빠가…….”

“그래, 알아. 죽었잖아.”

준의 말에 메이는 입을 틀어막았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엄, 엄마잖아? 아빠잖아?”

“죽은 걸 죽었다고 말하지, 뭐라고 말해?”

준의 말에 메이가 외쳤다.

“그래도!”

그때, 메이의 머릿속에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나 부모님과 멀찍이 떨어져서 다른 곳에만 시선을 두었던 준의 모습이. 준은 단 한 번도 부모님에게 먼저 안아 달라고 손을 뻗지 않았다. 무언가를 먼저 요구하지도 않았고, 먼저 웃어 주지도 않았다.

“준은, 너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죽, 죽었어도 상관이 없는 거야?”

메이의 말에 준은 아무런 대답 없이 메이를 바라보았다. 빛 하나 들지 않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메이는 준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저 눈동자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메이의 말에 준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 그들을 가둬 두었던 컨테이너의 문이 열렸다.

두 사람에게는 웬 목걸이가 채워졌고,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 두 사람은 공방을 운영하는 웬 개자식에게 팔렸다. 사실상 메이는 ‘덤’이었다. 메이는 그때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겁에 질려 아무런 말도 못 하는 메이와 달리 준은 그들에게 똑똑히 무언가를 요구했다는 것.

정신을 차렸을 때 메이는 준과 함께 웬 작은 방에 갇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메이의 질문에 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쑤샹원 씨한테 팔렸어.”

“……그래서?”

“나는 하루에 열 시간씩 일을 해야 해. 너는 여기에 있을 거야.”

“……순순히 일을 해 주겠다고?”

“그러지 않으면 안 되니까.”

준의 말에는 그 어떤 따스함도 없었다. 메이가 기대하는 말은 없었다.

부모님이 죽고 하루아침에 이곳에 갇히게 되었지만, 준은 울지도 이 상황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너는 저 사람들이 밉지도 않아?”

우리 부모님을 죽이고 우리를 이곳에서 팔아 치운 놈들이, 그리고 우리를 산 놈이 밉진 않냐고.

메이의 질문에 준이 답했다.

“미워.”

“거짓말! 진짜 미운 거면, 이러면 안 되지! 순순히 그 인간이 시키는 대로 하면 안 돼!”

“그럼 우리는 죽어.”

준의 말에 메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죽을 거야. 시키는 대로 하느니 죽을 거야!”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원수가 원하는 대로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그렇게 외친 메이에게 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죽기 싫어. 나는 살 거야.”

메이는 그렇게 말하는 준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울면서, 메이에게 매달리며 저렇게 말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준의 눈에는 그 어떤 눈물의 흔적도 없었고 그 어떤 슬픔도 비치지 않았다.

준은 감정 따위는 모르는 괴물 같았다.

두 번째 균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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