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화
#83 흑야성성(黑夜星星) (6)
“그래서 일단은 지켜보자고?”
차송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메이와 메이를 닮은 그 장인에 대해서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 장인에 대해서 알리고 싶지 않거든.”
장인을 빼돌리고 싶다, 라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의도가 구린 만큼 외부의 인원은 최대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괜히 여기저기 들쑤셔서 경쟁자를 늘리고 싶지 않달까.”
내 솔직한 말에 차송진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정말 속이 좁고 납득이 가는 변명이네.”
환멸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장인을 구하러 왔는데 대뜸 다른 사람을 끌어들인단 말인가? 혹여나 그 사람이 장인에게 욕심이라도 내면? 그건 곤란하지, 곤란해.
“그러니까 확실히 지켜보자고. 정말 송진이 형 말대로 다른 사정이 있는 건지, 아니면 내 말대로 그곳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는 건지.”
이미 껌껌한 구덩이에 사람을 가둬 놨다는 데에서 내 기준 ‘착취’긴 하지만, 차송진의 말대로 어쩌면 두 사람 사이에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그쪽에 녹음기를 들여놓을 순 없는 건가.”
차송진의 말에 내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 전 한서현이 입을 열었다.
“그러기엔 그쪽의 마나 농도가 너무 높아서요.”
아예 마력의 침입을 막는 장벽을 쌓은 패닉룸 같지는 않지만, 동굴 안은 마력이 상당히 많이 쌓여 있다고 했다. 아티팩트가 만들어지는 곳이라 그런가. 어쨌거나 마나 농도가 높은 만큼 일반적인 녹음기는 아마 금세 고장 날 거다.
“아티팩트로 된 녹음기는…….”
“그것도 사 놓을 걸 그랬네.”
나는 머릿속에 있는 사야 할 물건 리스트에 그것 또한 적어 두었다. 여태까지는 영 필요가 없어서 아예 살 생각을 못 했단 말이지.
“이게 다 내가 중국어를 못해서…….”
갑작스러운 한서현의 한탄에 차송진이 땀을 뻘뻘 흘리며 한서현을 위로했다.
나는 태연하게 자리를 잡고 등을 기댔다.
“어차피 내일 메이를 만나기로 했잖아. 그때 사든가 하자.”
“어, 내일 만나기로 했죠?”
정신계 아티팩트를 만드는 데 걸리는 기간을 알려 주겠다고 한 것도 있고, 우리 스태프의 견적을 알려 주겠다고 한 것도 있고.
“그래, 그러니까 일단은 푹 쉬자고.”
내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김재호는 우리의 말에 어깨만 으쓱였다.
* * *
준은 검은 마정석을 바라보며 눈을 찌푸렸다.
마정석과 등급이 맞지 않는 스태프에서 마정석을 떼어 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 마정석과 어울리는 형태가 머릿속에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검게 물든 마정석 안에는 거대한 마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정석 안에 마력이 회오리치는 모습이야 여태까지 많이 봐 왔지만, 이 검은 마력은 그녀가 여태까지 봐 왔던 마력과는 달랐다.
이 검은 마력은 준의 의지로는 도통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루기 까다로운 마정석은 있었으나, 뛰어난 장인으로서 ‘모든’ 재료를 다룰 수 있는 준의 손길에는 곧 순응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마정석은 달랐다.
준은 그 마정석을 어르고 달랬으나 마정석은 어떤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너는 내가 바라는 주인이 아니라는 듯이.
“넌 도대체 뭐야?”
답답함에 준은 그 마정석에게 말을 걸었다.
당연하지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없었다.
밤을 새우며 고민했지만 준은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한숨도 자지 못한 준을 자리에서 일으킨 건, 어제처럼 열린 금속판 때문이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밝은 빛에 준은 눈을 찌푸렸다. 철창 위에 자리를 잡은 메이가 물었다.
“그 스태프, 다 끝났지?”
“아니.”
그 대답에 메이는 눈을 찌푸렸다. 어려운 작업도 보통은 하루 만에 끝내는 준에게 ‘아니’라는 대답을 듣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얼마나 더 필요한데? 오늘 그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해.”
메이의 말에 준이 말했다.
“얼마나 걸릴지 몰라.”
이 대답은 처음이었다. 메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준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걸 쓰는 사람을 만나야 해. 그래야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있어.”
그 말에 메이는 눈을 찌푸렸다.
“뭐? 누굴 만나?”
“이건 특별해. 이미 정해진 주인이 있다고. 그러니까 만나야 해, 이걸 쓰는 사람을.”
“말도 안 돼. 거짓말하지 마. 여기에서 나가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거지? 그 사람을 만나서 여기에서 꺼내 달라고 말할 셈이야?”
메이의 격한 반응에 준이 잔뜩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네게 거짓말을 한 적 있어?”
“많지!”
“아니, 거짓말을 하는 건 너잖아! 언제나 넌 거짓말을 하지!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하겠지. 자, 이것 보세요! 제가 만든 아티팩트랍니다. 정말 멋지죠?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애정을 구걸하고…….”
“닥쳐!”
메이가 이를 악물었다.
“나는 사람들의 애정을 구걸하지 않아. 당연히 주는 거야, 왜냐? 나는 사랑스러우니까. 너랑은 다르니까! 너같이 재투성이로 망치질밖에 못 하는 사람보다는 내가 훨씬 사랑스러운걸.”
“그럼 날 놔줘.”
준의 말에 메이가 말했다.
“놔주면? 넌 또 불행해진다니까!”
“개소리!”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녀들은 서로에게 계속해서 욕설을 날렸다. 한참 동안이나 서로에게 악에 받친 소리를 쏟아 내던 소녀들은 똑같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한참이나 씩씩거리던 메이가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좋아, 알겠어! 네 능력 밖의 일을 받았나 보네. 내가 줬던 스태프 다시 돌려줘.”
메이의 말에 준은 고개를 저었다.
“뭔데.”
메이는 철창에 바짝 붙어 준이 서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건넸던 스태프가 두 동강이 난 것을 확인한 메이가 소리쳤다.
“뭐야, 벌써 다 뜯, 뜯어 놓은 거야?”
그 말에 준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끔찍했어. 걸레짝도 그것보다는 나았다고.”
“만들어 주지도 않을 거면서 다 뜯어 놓으면 어떡해! 원래대로 돌려놔.”
메이의 말에 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 꼴로 이 녀석을 돌려놓을 순 없어.”
“그럼 마정석이라도 내놔. 주인이 있는 물건이라고.”
“안 돼. 이 녀석에게는 멋진 집이 필요해. 그리고 그 집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그렇게 말한 준이 마정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상태로 돌려보낼 수 없어.”
“미치겠네!”
준에게는 장인 정신이 있었다.
준은 진심으로 자신이 만든 물건을 사랑했다. 메이는 여태까지 그 장인 정신을 잘만 이용했다.
‘준, 이 물건을 좀 봐. 네 손길이 닿으면 멋있어질 것 같지 않아?’, ‘준, 정말로 이 꼴로 둘 생각이야?’, ‘네가 원하던 재료야! 어서 멋진 걸 만들어 보고 싶지 않아?’
준은 언제나 메이를 증오하면서도 언제나 메이가 원하는 대로 멋진 물건을 만들어 놨다.
하지만 오늘은 그놈의 장인 정신이 발목을 잡았다.
“미치겠네! 그걸 돌려줘야 한다고!”
무려 해성회의 새로운 보스인 첸륜이 데리고 온 손님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리비리 약해 보이기만 할 뿐이었지만, 그 마정석이 박힌 스태프를 잡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대단한 아티팩트라고.
그런 걸 맡긴 사람이, 자신이 맡긴 아티팩트를 이쪽에서 꿀꺽했다고 생각한다면? 멸망이다, 멸망.
“제발 부탁할게! 돌려줘!”
메이의 말에도 준은 여전히 입을 닫았다.
“정말이지, 내가 그 수까지 쓰게 할 거야?”
그 말에도 준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준, 나는 정말이지 네가 싫어.”
“오, 간만에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네? 나도 네가 싫어.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똑같은 얼굴을 했지만, 메이는 정말이지 저 녀석이 싫었다. 메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너 때문이야. 모두 네가 잘못한 거야. 그러니까 이건 내 탓이 아니야.”
그렇게 중얼거린 메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벽 쪽으로 다가갔다. 벽에 달린 스위치를 본 메이가 준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말할게. 마정석을 돌려줘.”
메이가 무얼 할지 뻔히 알면서도, 준은 같은 답을 내놓았다.
“죽어도 싫어.”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메이는 벽에 달린 스위치를 꾹 눌렀다.
* * *
[미안, 어떻게 고쳐 볼지 고민하다가 이걸 그냥 부러트려 버렸네?]
내 싸늘한 시선에 메이는 혀를 빼꼼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맡긴 스태프는 마정석으로 돌아왔다.
나는 마정석을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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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운의 마정석 / A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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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ㆍ마정석
초고열에서 가열되어 불순물이 제거된 마정석
예브리카의 마력을 품고 있었으나 사용자의 마력에 감화되어 흑마력을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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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던 그 마정석의 모습 그대로였다. 내 싸늘한 시선에 지레 찔린 듯, 메이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미안해! 그 정신계 아티팩트도 못 만든다! 이것도 부숴 버렸다! 진짜 나도 처음 오는 손님한테 이렇게 미안할 일이 많은 건 처음이야. 그러니까 대신 서비스로 이런 거 저런 거 얹어 줄게!]
메이는 내게 애교 섞인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는 귀여운 말투에 귀여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내 스태프를 고쳐 보려다가 이렇게 망가트렸단 말이지? 그리고 이 마정석으로 다른 스태프를 영 만들 수가 없었고?]
[응? 그렇다니까?]
[왜?]
나는 메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으응? 왜냐니?]
[왜 이 마정석으로 새로운 스태프를 만들 수가 없는데?]
[그야, 내 실력이 부족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쪽 실력은 완벽해. 무려 S급의 아티팩트를 열화판으로나마 복제할 수 있을 정도였잖아.]
내 말에 메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당황한 것도 잠시, 메이의 눈동자가 다시 휘었다.
[아, 첸륜 씨 소개로 왔으니까 그거 당연히 알겠구나. 응, 응. 그럴 수 있어. 근데 내 전문은 이쪽이 아니라서…….]
[이쪽은 그쪽 전문이 아니라니?]
나는 메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르잖아, 이 마정석이 어떤 속성을 띠고 있는지도.]
[그야, 그 흑, 흑마력이겠지? 새까마니까.]
뭐, 사실 뻔한가. 나는 검게 물든 마정석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답이야.]
[거봐! 모르긴!]
[하지만 이건 그저 그런 흑마력을 담고 있는 마정석이 아니야. 원래는 다른 속성을 띠다가, 주인의 마력을 받아들여서 흑마력을 띠게 된 거지. 그러니까 여러모로 특별한 마정석이란 말이지.]
내 말에 메이의 얼굴이 떨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어쩐지! 이, 이상하더라. 그런 특이점이 있었으면 말해 줬어야지!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어, 안 되는 것도 있고…….]
나는 손을 들어 메이의 말을 막았다.
[나한테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마.]
내 말에 메이의 입이 닫혔다.
[거짓말에 있어서라면, 너보다는 내가 훨씬 전문가거든.]
아까까지만 해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던 소녀는, 내 압박에 드디어 입을 닫았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에 내가 물었다.
[그러니까 말해. 이걸 어떻게 빼앗은 거지?]
[난, 나는…….]
[그 사람한테,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