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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315화 (315/352)

제315화

#83 흑야성성(黑夜星星) (3)

메이라는 이름의 장인은 상당히 활발한 성격이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만 봐도 딱 알겠지만, 주변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첸륜은 메이에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조용한 곳에서 얘기할 수 있을까?]

첸륜의 말에 메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은 메이가 다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

[특별 커스텀은 비싸다는 거 알지?]

그 말에 첸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냐, 특별 커스텀이라니? 대놓고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뜻 아닌가? 하지만 이런 시장 바닥에서 우리의 의뢰를 말할 수도 없는 터라 나는 첸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말에 메이는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우리를 데리고 안쪽에 있는 방으로 갔다. 주변에서 무어라 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직원들에게 맡긴 다음이었다. 그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사람을 대하는 데에 도가 텄다는 거다.

안쪽에 있는 방은 바깥쪽에 있는 좌판대와는 분위기가 얼핏 달랐다. 바깥쪽에는 부담감 없이 아무렇게나 골라잡아 갈 수 있는 제품들을 늘어놓았다면, 이곳에는 척 보기에도 값이 제법 나가 보이는 속된 말로 말하는 고오급 아티팩트들이 진열되어 있었으니까.

바깥과 이어지는 문을 닫으니 떠들썩하게 주변을 메웠던 소음이 바로 사라졌다. 메이는 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뭘 원해?]

[손님은 이쪽.]

첸륜은 이쯤에서 나에게 메이를 토스해 주었다. 큼, 큼. 내가 나설 차례인가.

그 전에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여기에 있는 제품은 모두 그쪽이 만든 건가?]

내 질문에 메이의 눈초리가 올라갔다.

[왜? 그쪽도 내가 여자에, 어려 보여서 실력을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

퍽 공격적인 대답이었지만, 그리 밉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동안 이런 일은 지긋지긋하게 겪었다는 환멸이 스쳐서일까.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보다는 확실하게 해 두고 싶어서. 만들어진 아티팩트를 사는 게 아니라, 직접 커스텀 주문을 할 생각이라. 정말로 실력이 있는지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을 뿐이야.]

방금 그녀의 입에서 나왔던 말을 그대로 읊어 주자 메이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흐음! 좋아, 어떤 걸 원하는데?]

[정신계 재능을 방비할 수 있는 아티팩트가 필요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메이가 재차 물었다.

[어떤 수준을 원하는데?]

[음, S급…….]

자신의 말에 바로 구겨지는 메이의 표정을 본 나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을 막을 정도까지 되는 아티팩트를 구할 순 없으니, 뭐, 대충 A급…….]

[어쭈?]

메이는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갑자기 우리 가게에 쳐들어오더니, 그 귀한 정신계 아티팩트를 턱 내놓으라는 것도 모자라서…….]

[그래서 커스텀 주문이라고 했잖아.]

[쓰읍.]

메이는 눈을 깜빡였다. 나는 그런 메이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웃기라도 해야지.

[머리에 뒤집어쓰고 다닐 헬멧 같은 걸 원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정신계 아티팩트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헬멧’이다. 당연히 정신을 파고드는 재능을 방어하려면 머리를 전부 싸매는 것보다 좋은 형태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헬멧을 늘 쓰고 다니는 건, 보통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고급 정신계 방어 아티팩트는 크라운이나 티아라, 서클릿 같은 머리 장신구로 발전했고 최고급 아티팩트는 귀걸이나, 피어싱 같은 형태로 발전했다.

[그래서 있어?]

[당장 만들어 둔 건 없어. 그런 건 만들자마자 팔린다고.]

하긴, 정신계 재능에 대한 두려움은 오히려 비각성자들에게 더 크니까 말이지. 몬스터를 때려잡을 때 쓰는 아티팩트라면야, 게이트를 공략하는 헌터들에게나 잘 팔리겠지만 이쪽은 수요가 비각성자들에게도 폭발하는 제품이다. 당연히 재고가 없을 법했다.

[새로 만든다면?]

[으음, 당장 재료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어서 말이지.]

톡톡 손가락으로 제 턱을 두드린 메이가 말했다.

[내일쯤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 얼마나 걸리는지 말해 줄 수 있다고?]

[아예 안 될 수도 있어. 말했지만, 아티팩트를 만드는 재료가 간단하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재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을 거창하게도 하는군. 내 눈빛에 지레 찔렸는지, 메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 큰 대장간을 운영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그나마 나니까 이런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기라도 하는 거야.]

흐음, 나는 일단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가 나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쪽 의뢰는 이게 전부?]

아니, 이제 시작이다. 나는 한서현에게 눈짓했다. 한서현은 내 눈짓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어?]

메이가 당황한 듯 입을 벌렸지만, 한서현이 공간에서 스태프를 꺼내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공중에 떠오른 스태프를 본 메이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저걸 손보고 싶은데.]

사실 손보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가장 임팩트가 큰 건 바로 저거일 테니까.

[으음, 과연. 왜 따로 나를 여기로 불렀는지 알겠네. 확실히 저건 바깥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없는 거니까.]

고개를 끄덕인 메이가 나를 향해 물었다.

[만져 봐도?]

[물론.]

메이는 조심스럽게 스태프에 손을 올렸다. 나는 잠자코 메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으흐음, 흠.]

잠시 그렇게 괴상한 소리를 내며 스태프를 만지작거리던 메이가 나에게 말했다.

[이건 작업실로 갖고 가서 자세히 봐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니까 이쪽에서 그 어떤 견적도, 자세한 내용도 말해 줄 수 없다는 뜻이다. 거기에 더해 이 스태프를 가지고 가겠다고?

[미안한데, 그쪽을 어떻게 믿고?]

[어머, 나를 믿지 않으면 여기에는 왜 왔대?]

내 말에 메이가 곧바로 스태프를 다시 한서현에게 던졌다.

[싫으면 됐어! 나도 나 믿을 수 없다는 사람한테 의뢰받을 생각 없어!]

저쪽이 저렇게 나오면 아쉬운 건 이쪽이다. 어쩔 수 없지. 나는 한서현에게 스태프를 받아 다시 메이에게 건네주었다.

[잘 부탁해.]

[그래!]

한서현은 오가는 대화에서 대충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나를 향해 물었다.

“저쪽에 제 스태프를 맡겨도 괜찮은 거예요?”

평상시처럼 굴려고 하지만,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긴 저 손때 묻은 스태프를 오늘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맡긴다니, 불안할 법하지. 게다가……, 음, 아니다. 지금 당장 말할 건 아니군.

짧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한서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음,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긴 한데.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

내가 맡긴 건 한서현의 스태프뿐이었다. 김재호의 단검이며, 내 물건이며. 맡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일단은 한서현의 스태프만 맡겨 보기로 했다.

━개중 가장 값이 나가는 게 한서현의 스태프 아니냐? 저 장인을 시험하는 용도라면, 다른 걸 먼저 맡기는 게 나을 것 같다만?

레이의 충고도 있었으나, 나는 그 충고를 듣지 못한 척 무시했다. 몇 번 더 내게 같은 말을 했던 레이는 곧 내가 제 말을 귓등으로 넘긴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성을 내며 입을 닫았다.

메이의 가게에서 나가는 길에는 차송진이 쓸 아티팩트를 샀다.

일단 안에 받쳐 입을 방어구 두어 개와 유사시에 몸을 보호할 실드 주문이 내장된 팔찌 두 개, 흙벽을 부를 수 있는 반지 하나를 주문했다. 조금 더 공격적인 아티팩트를 사 줄까 싶긴 했는데, 당장은 아티팩트에 먼저 익숙해지게 한 뒤에 고급 아티팩트를 사 줄 생각이었다.

게다가 눈이 높아져서인지 영 마음에 차는 게 없어서…….

━네놈이 만든 것에 비하면 다들 예술 작품이었는데?

‘거참! 내가 만드는 솜씨가 형편없어서 그렇지, 그래도 나름 보는 눈은 있다고요. 거기에 있는 거 딱 봐도 양산형이었잖습니까.’

물론 잘 만들었다. 하지만 그 수준은 내가 말한 대로 ‘양산형’이다. 그래도 명색이 벨츠머츠의 멤버인데, 저런 양산형 아티팩트나 사 줄 수는 없지.

물론 이 아티팩트로도 차송진은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지만 말이다.

“고, 고마워.”

“더 좋은 거 사 줄 테니까 벌써부터 그렇게 감동 먹지는 말라고.”

한서현이 뒤에서 혀를 쯧쯧 차며 내게 말했다.

“있던 감동도 다 털리는 멘트네요, 그거.”

“어째서? 앞으로 더 좋은 걸 사 주겠다는, 미래지향적인 멘트였는데?”

나는 퍽 억울했지만, 한서현은 내 말을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쩝,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니까.

그렇게 우리는 메이의 가게를 나왔다. 그때, 한서현이 내게 물었다.

“아까 말했던 마음에 걸린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응?”

“아까 내 스태프를 맡기면서 그랬잖아요.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고.”

한서현의 말에 내가 가볍게 답했다.

“아, 왠지 그 여자 사기꾼 같아서.”

“아, 그렇구나…… 가 아니라! 사기꾼이요?”

한서현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주변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전부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릴 정도였다.

“서현아, 목소리가 너무 크다.”

“지, 지금 그게 문제예요? 사기꾼, 사기꾼 같다면서요!”

한서현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하긴 자신의 소중한 스태프를 맡기고 나온 참인데, 내가 대뜸 그 사람이 사기꾼 같다고 말했으니까.

“침착해, 그 가게 전부가 사기라는 뜻은 아니니까.”

“어, 어떻게 침착할 수가 있어요? 지금 저기에 제 스태프가 있거든요?”

한서현은 마치 래퍼처럼 말을 쏟아 냈다. ‘어쩐지 보스 물건은 맡기지 않더라니!’라는 등의 원망을 내뱉는 입을 나는 겨우 손을 들어 막았다. 물리적으로 입이 막히고 나서야 한서현은 잠잠해졌다. 아니, 정정한다. 눈으로 욕을 쏟아 내고 있었다.

한서현의 강렬한 눈빛을 받으며 내가 입을 열었다.

“그 가게 자체가 사기라는 말이 아니야. 그랬다면 그 정도로 많은 사람이 그곳의 단골이 되진 않았겠지. 첸륜 또한 우리를 그곳에 소개해 주지 않았을 거고.”

내 말에 한서현이 말했다.

“어어흐흡읍!”

그래, 말을 하려는 건 좋지만! 굳이 내 손이 입을 틀어막고 있을 때 해야겠냐!

“으억!”

나는 한서현의 입에서 재빨리 손을 뗐다. 침, 침이 튄 것 같아! 재빨리 물을 불러 손을 씻는 나를 보며 한서현이 물었다.

“그럼 그 여자가 사기꾼 같다는 건 무슨 뜻인데요?”

“그야, 아무리 봐도 그 여자 장인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말이지.”

내 말에 차송진이 물었다.

“너무 어려서? 너무 가냘파서?”

“그건 편견 아니에요?”

한서현 또한 이렇게 답할 정도였다. 뭐, 확실히 장인이라고 몽땅 짜리몽땅하고 근육질인 데다가 우락부락해야 한다는 건, 옛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편견임에 분명하다. 특히 각성자가 판이 치는 지금은 더더욱.

하지만 말이지.

“괜히 스테레오 타입이 생기는 게 아니잖아. 그 여자, 장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호감상에 귀엽다고 장인이 아니라는 생각은 너무한 거 아니야?”

“맞아, 쑤어하오주, 그 여자는 그렇게 생겨서는 주먹질 한 방에 건물 하나를 날려 버렸잖아요!”

이상할 정도로 그 여자를 두둔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내가 말했다.

“그래, 이런 점이 이상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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