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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314화 (314/352)

제314화

#83 흑야성성(黑夜星星) (2)

바닥에 펼쳐진 별천지에 감탄하는 사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났다. 엘리베이터처럼 사람이 탈 수 있는 칸이 있었고 우리 일행은 모두 그곳에 올랐다.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별처럼 멀게만 보였던 장면들이 점차 눈앞에 닿기 시작했다.

우리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밑으로 한참이나 내려갔다. 이렇게 거대한 공동(空洞)이라니. 우리 기지와는 달리, 이 정도의 공간은 자연적으로는 결코 존재할 수가 없는 형태다. 이 거대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데에 얼마나 많은 각성자가 동원되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과연 중국의 스케일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닿는 데에는 무려 10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문이 열리고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서둘러 내렸다.

“으아, 이제야 살겠다.”

“정말이지,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다고요.”

“으음, 확실히.”

좁은 공간에 갇혀서 하염없이 밑으로 내려오는 걸 기다리는 것도 보통 지겨운 일이 아니었다.

멀리에서는 은하수처럼 아름답게 빛났던 흑야성성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름다웠던 모습은 환상처럼 사라졌다.

‘이거야, 원. 웬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네.’

한국의 암시장에도 꽤나 사람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여기는 정말이지 눈이 닿는 곳마다 모두 사람이 꽉꽉 차 있다는 느낌이었다. 저마다 물건을 움켜쥐고 목소리를 높이는 통에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시끄럽기까지 했다.

“다, 다들 괜찮은 거야? 들키면 사형이라며…….”

이래저래 목소리를 높이며 떠들어 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봐도 비밀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어 보이긴 했다.

“뭐, 다들 도망갈 자신이 있으니, 당당하게 장사를 하는 거 아닐까?”

내 말에 차송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실은 애초에 단속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다들 태연한 거겠지만. 단속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작아야 가능한 일이지, 규모가 이 정도로 커지면 그저 두고 보는 수밖에는 없다.

이건 한국과 비슷했다. 암시장을 유지하는 득이, 실보다 크기 때문에 중국 정부도 암묵적으로 이곳을 봐주고 있다는 거겠지.

그러다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무슨 손해를 보든 뒤집어엎을 거라는 게 한국과 다른 점이려나.

“그럼 한 번 안으로 들어가 볼까.”

그렇게 말하며 사람들의 틈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차송진의 목소리가 멈춰 세웠다.

“자, 잠깐만 기다려 주라.”

그렇게 말한 차송진의 얼굴은 척 보기에도 창백했다. 가느다란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왜 그래?”

“어, 나, 고소 공포증이 있나 봐?”

새삼스러운 차송진의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여태까지 서현이가 부른 새는 잘도 타고 다녔으면서?”

“그러, 그러게. 그래서 이젠 고소공포증이 사라졌나 했는데…….”

따지고 보자면 한서현이 부른 새에 타는 걸 백만 배는 더 무서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으음, 혹시! 차송진은!

지그시 차송진을 바라본 한서현이 툭 말을 던졌다.

“중국산이라고 다 의심하면 안 돼요.”

“아,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둘의 대화에 나는 벙쪘다. 어떻게 이 대화가 중국산 짝퉁을 호도하는 쪽으로 흐를 수 있는 건지.

━너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데?

‘그냥, 뭐. 그만큼 서현이를 믿는 거 아니겠냐, 뭐 그런 감동적인 멘트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서로에 대한 신뢰를 다질 기회보다는 중국산 짝퉁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기회를 잡는 게 먼저지, 으음, 그래. 나는 두 사람의 투덜거리는 대화를 뒤로 하고 아까부터 이상스럽게 조용한 김재호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이제 와 보니 김재호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다가올 때마다 김재호는 으르렁거리며 이를 드러냈다.

이런, 내 실수다. 암시장에 좋지 못한 추억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데리고 오다니. 나는 김재호에게 툭 말을 건넸다.

“재호야, 그림자 안에 들어가 있을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재호가 내 그림자 속으로 쏘옥 들어왔다. 이렇게까지 싫었다면 진작 말을 하지. 하여간, 재호도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서 문제다.

그렇게 김재호까지 그림자 안에 잘 수납한 나는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려면 옮기려 했다.

“윽!”

내 발끝에 김재호의 머리가 걸렸다. 하마터면 김재호의 머리를 걷어찰 뻔했다. 그래도 구경은 하고 싶은 모양인지 그림자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김재호 때문이었다.

“이런!”

김재호는 가만히 위를 올려다보며 시선으로 항의했다.

“아니, 거기에서 그렇게 나오면 어떡하냐고.”

“나도 구경하고 싶어!”

“으음.”

나는 김재호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가만히 안에 처박혀 있으라는 것도 좀.

“알겠어.”

김재호의 머리를 걷어차지 않기 위해서 나는 최대한 다리를 양쪽으로 벌렸다. 보기에 좀 그래도, 이렇게 걸으면 김재호를 걷어차지는 않겠지. 한껏 벌린 O 다리를 자랑 중인 내가 창피하기라도 한 건지 어느샌가 차송진과 한서현은 내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어이.”

내가 두 사람을 불렀지만, 두 사람은 뒤를 돌아보는 체도 하지 않았다.

“누구신지?”

“응? 저 아시는?”

아까까지만 해도 니가 옳네, 내가 옳네 하고 투닥거리고 있더니. 이럴 때는 또 마음이 찰떡같이 맞는단 말이지.

너무하다, 너무해!

다행히 첸륜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웬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꼭 그렇게 걸어야 하는 건가?]

[……그야, 내 부하를 걷어찰 수는 없으니까.]

내 손짓에 내 다리 사이를 바라본 첸륜이 짧게 혀를 찼다.

[그래, 뭐.]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나는 첸륜과 함께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그나저나. 규모가 너무 크니 어디서부터 둘러봐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뒤엉켜 있어 뭘 팔고 있는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따로 찾는 물건이라도?]

첸륜의 질문에 나는 눈을 굴렸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에서 뭔가 좋은 물건이 있나 뒤져 볼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엄청난 인파에 기가 쪽 빨렸다. 나는 고개를 재빨리 저었다.

[그 장인이나 빨리 만나 봤으면 좋겠는데.]

[그래, 그럼 바로 그쪽으로 가지.]

길을 아는 길잡이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케도 길을 찾네.]

[위를 보면 알 수 있다.]

첸륜의 말에 나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와.]

절로 감탄이 돋았다. 넓은 천장 위에는 별자리를 떠올리게 하는 별로 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 지도가 바로 이 암시장의 약도나 다름없었다.

다들 어떻게 길을 찾나 했더니. 이런 비밀이 숨어 있었군.

점선으로 이어진 별의 지도는, 크게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따로 글자가 쓰여 있거나 하진 않았기에 그 구역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감으로 추측할 순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가공품을 파는 곳 같네요.’

포션을 하나 집어 들고 마신 남자가 불을 뿜는 걸 본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 주변으로 사람들의 환호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저거 하나 살까요?”

“저걸?”

한서현의 말에 내가 기겁하며 답했다. 한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송진이 형한테도 비장의 무기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잖아요.”

“저, 저건 사양할래.”

“왜? 상대방이 방심하고 있을 때 저걸 삼키고 불을 내뿜으면 좋을 것 같은데.”

“사, 사양한다고!”

“사양할 처지가 아니지 않아요?”

두 사람은 금세 또 투덕거리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확실히 차송진은 약했다. 그동안의 훈련으로 체력은 조금 괜찮아졌다만, 각성자는 무슨 일반인이 상대여도 처참하게 질 거다.

“확실히 아티팩트가 필요하긴 해.”

“저, 저건 싫어!”

“저건 안 사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좋아 보이는데…….”

한서현은 여전히 미련을 보였지만, 나는 그 가판대를 빠르게 지나쳤다. 나는 첸륜에게 재빨리 물었다.

[그 장인은 어디에 있어?]

[거의 다 왔어.]

[그 말만 30분째인 건 알고 있어?]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역시 소국의 사람이라 그런지, 마음도 좁군.]

[뭐어?]

첸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거든? 나니까 넘어가 주는 거야. 나니까!]

[응, 마음이 크군.]

왠지 소국이라는 말을 한 다음에 마음에 ‘크다’는 말을 한 것도 수상쩍은데. 어쨌거나 첸륜의 말대로 다행히 우리는 곧 그토록 찾던 ‘장인’에게로 도착할 수 있었다.

일회용 가공품을 위주로 팔던 아까 공간과는 달리 장인들이 몰려 있는 이곳은 조금 더 차분한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가격대가 훅 뛰기 때문이겠지. 아무렇게나 널어놓은 좌판대에 가깝던 초반부와 달리 이곳에는 제대로 된 점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제법 정돈된 가게들이 서 있었다.

이 또한 한국의 암시장과 비슷한 점이었다. 다른 건 규모와 분위기였다.

[이제부터 조심하는 게 좋아. 이곳 사람들은 까다롭거든.]

첸륜의 경고처럼, 아무렇게나 물건을 시연하고 사람들을 붙잡아 자신들의 물건을 홍보했던 좌판대의 사람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그런 식으로 손님을 붙잡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모두가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관찰하듯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첸륜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달랐다. 가게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 가게에서 느껴지는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다른 가게들과는 달리 이곳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사람들의 가운데에 있는 건, 비녀 머리에 야구 점퍼를 걸치고 있는 여자였다. 기껏해야 10대 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 얼굴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엄청난 동안이거나, 아니면 실제로 어린 거거나.

여자는 한 고객에게 험악한 얼굴로 외쳤다.

[내가 정성껏 만든 검을 또 깨 먹었다고? 정말이지, 죽고 싶은 거야?]

[미안해, 메이.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그놈이 내 검을 딱 물고 안 놔주는 걸 어떡하냔 말이지.]

[정말이지. 그래도 한 달을 못 버텨? 이럴 때마다 장인의 프라이드가 깨지는 기분이라고!]

단골들과 친근하게 말을 나누던 그녀는, 입구로 들어서는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첸륜을 발견한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게 누구야.]

[메이.]

첸륜과 그녀는 이미 친근한 사이 같았다.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우리 쪽으로 다가온 그녀, 메이가 우리를 훑으며 말했다.

[새로운 손님을 소개해 주러 온 거야? 당신답지 않은 일인데.]

[꽤 큰 손님이라서 말이지.]

그 말에 메이는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런 식으로 노골적인 평가는 오랜만인데.

[그래, 뭐. 륜의 소개라면! 게다가 새로운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거든!]

메이의 말에 주변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새로운 돈줄이 왔다 이거지?]

[바빠서 내 일은 맡아 줄 시간이 없다며?]

하지만 그 야유에는 모두 애정이 섞여 있었다. 깔깔, 웃음을 터트린 메이가 그들에게 그만하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미안한데, 륜은 좀 다르거든.]

첸륜에게 친근하게 붙어 선 그녀가 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뭐가 필요해서 여기에 온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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