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화
#83 흑야성성(黑夜星星) (1)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데요?’
━겨울도 끝나가는데 무슨 몸이 떨린다고.
‘음, 한 살 더 먹었다고 이러는 건가.’
━네 신체 나이가 얼마나 된다고. 으슬으슬 떨리는 건 네놈의 나약해 빠진 정신력 때문이겠지.
레이의 말이 아프게 박혔다. 타차원 노땅 주제에, 정신적인 나이로 상대방을 공격하다니. 너무하다, 너무해!
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긴 하다. 확실히 한창때의 애들과 비비고 있으려니 지치는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음, 그래선가. 해성회 꼬맹이들한테 양기를 너무 뺏겨서 기운이 달리는 거지.
━그런 것치고는 벨츠머츠 구성원의 평균 나이도 퍽 낮은 편이다만.
하긴 김재호와 한서현이 10대긴 하니까. 음, 그래도 저 에너자이저들하고 비교할 순 없다.
해성회의 꼬맹이들은 꼭 우리가 봄날 보육원에서 구조했던 꼬맹이들 같았다.
처음에는 멀찍이서 우리를 관찰하며 낯을 가렸던 녀석들이 이제는 종종 먹을 걸 들고 와서 나눠 주는 것도 그렇고, 김재호에게 매달려서 노는 것도 그렇고.
녀석들의 에너지는 ‘그’ 김재호마저 지치게 만들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전심전력으로 녀석들과 놀아 주던 김재호가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 넋이 나간 얼굴을 했을 때의 충격이란.
차송진마저 그런 김재호를 보며 ‘지, 지친 척하지 말고 일어나!’라고 외쳤을 정도니까.
참고로 차송진은 애들을 피해 일찍이 도망간 지 오래였지만, 애들은 차송진을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도대체 왜!’
차송진은 제게 달려드는 애들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태도가 어린애들을 더 끌어들인다는 걸, 저 녀석은 꿈에도 모르겠지.
애들은 그냥 애들이었다. 순수하고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어린애들.
그래서 마음이 쓰였다.
나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유마에게 다가갔다.
[저 애들을 전부 그쪽이 구조했다고?]
[저 애들은 그저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길 간절히 바랐어. 나처럼.]
첸륜의 아버지 밑에서 유마는 아주 끔찍한 꼴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 일이 어땠는지 캐물을 생각은 없지만, 그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는 걸 보니 정말로 끔찍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도와줬을 뿐이야. 나는, 아니까. 알고 있으니까, 외면할 수가 없었어.]
[뭐어…….]
유마는 이 세상에 모든 물과 교감하는 게 가능한 사람이다.
물을 단순히 다루는 게 아니라 모든 감각을 공유하는 ‘교감’인 만큼, 전투로는 전혀 써먹을 수 없는 능력이었지만 엄청나게 사기적인 재능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저 애들을 전부 다 케어하는 건 벅찬 일일 거다.
[저 애들을 정말 다 데리고 갈 생각이야?]
[그래.]
[감당할 수 없다면,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나을지도 몰라.]
내 충고에 유마는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감당할 수 없다고?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저 애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그야, 상식적으로 두 사람의 어른한테 저만큼의 아이들은 너무 많으니까?]
거의 스물에 가까운 아이들을 두 사람이 맡는다는 건, 굳이 머리를 굴려 생각하지 않아도 무리였다.
하지만 내 말에 유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애들은 갓난쟁이들이 아니잖아. 자기 할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그야, 10대 초반쯤 되면 기본적인 집안일은 가능하겠지만……. 그걸 올바른 양육이라고 할 순 없지 않나? 내 시선에 유마가 입을 열었다.
[평범한 사람의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하지 마. 우리는 평범하지 않잖아.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없어. 평범하게 살겠다는 건 욕심이야.]
그렇게 말한 유마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안 그래?]
그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 또한 유마의 말이 어느 정도 맞는다는 건 알고 있다. 유마도, 나도 평범한 삶을 살지는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모두 포기하면, 삶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
욕심을 다른 단어로 말하자면 그건 꿈이 될 거다.
[누구나 꿈꿀 자격은 있잖아. 그걸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닿을 수 없는 불꽃에 뛰어들어 몸을 태우느니, 불을 멀리하는 삶을 살겠어.]
그 말도 옳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하지 마. 잘은 몰라도, 열심히는 키울 테니까. 그리고 내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하면 다들 내보내 줄 거야. 내 도움이 필요할 때까지는, 절대 버려두지 않겠어.]
나는 애들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어린 애들이라서 그런지 언어를 배우는 것도 빨랐고. 적응도 빨랐다. 아이들이 ‘나쁜 일’을 겪기 전에 유마가 재빨리 그들을 구한 것도 꼬맹이들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아이들은 미숙했지만, 상처받고 어딘가가 일그러져 있지는 않았다.
어린애들은 벌써부터 자신들이 할 일을 정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꼬맹이는 모두의 의견을 듣고 전해 주고 있었고 가장 나이가 많은 녀석은 바쁜 유마와 첸륜을 대신해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우리는 괜찮을 거야.]
유마의 말에 내가 말했다.
[괜찮길 바랄게.]
당장은 그런 희망 섞인 말밖엔 할 수 없었다.
유마와의 대화를 끝낸 나는, 치앤츠리앤 쪽의 연락을 확인했다. 내가 했던 말을 보스에게 전하고 곧 답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마약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그쪽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단순히 생각하면 마약을 대신할 수입원을 찾으면 그만일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상황이 간단하지는 않다. 은월회는 오래된 조직이었고 엮여 있는 사람도 많으니. 게다가 은월회의 사업은 전 흑표파, 현 검은 그림자와도 긴밀하게 엮여있었다.
음, 만약 정말로 은월회가 마약 사업을 접게 된다면 백도산도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가뜩이나 자기 친구를 빼 갔다고 나를 미워하고 있는데, 이제는 사업까지 망쳤다며 날 죽이려 드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나도 범죄를 저지르면서 남의 업장에 훼방을 놓는 게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잘살자고 하는 짓인데 남의 인생을 망치는 마약을 용납하는 건 좀.
━정말 은월회가 마약을 포기할까?
‘솔직히 가능성이 낮긴 하죠.’
마약이 나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돈이 된다, 그 하나만으로도 그 나쁜 것을 팔아 버릴 이유는 충분하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지만, 이 세상은 자본주의의 이념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돈, 그건 누군가의 생명보다도 인생보다도 중요하다. 적어도 몇몇에게는, 아니, 아마도 사람들 대부분에게.
그 생각을 역겹다고 말할 생각까지는 없다.
다만, 나와 함께할 생각이라면 조금이나마 그 선택을 고려해 보라는 거다.
‘그래도 이번 일로 깨닫는 게 많았을 테니까요.’
치앤츠리앤을 한 번 믿어 볼 수밖에.
* * *
[암시장에 가고 싶다고 했지?]
첸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직까지 이곳에 비비고 있는 이유, 그건 바로 중국 최대의 암시장에 가 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암시장도 꽤나 규모가 있는 편이었지만, 중국의 암시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
게다가 이곳의 암시장에는 내가 미국에서 보고 침을 줄줄 흘렸던 아티팩트를 만들어 낸 장인이 있다고 하니까.
‘저희 팀의 전력을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죠.’
템빨, 그거 무시 못 하거든.
━아티팩트를 만드는 네 실력이 무시무시하긴 했지.
‘그래서 장인을 구하려고 했던 거잖습니까.’
좋은 재료로 똥을 쑨다는 시스템의 놀림도 이제는 지겹다. 내게 손재주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장인을 납치해서 데리고 온다는 내 계획은 수정해야 했지만, 그래도 외주라도 맡겨 좋은 아티팩트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오케이다.
마침 이쪽은 앞으로 게이트를 돌면서 고급 재료를 수급할 생각이니, 좋은 장인과 안면을 터놓는 게 좋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암시장 방문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차송진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아, 암시장이라니, 그것도 저 사람이랑?”
“말했잖아, 이제는 같은 편이라고.”
“그래도 너무 외진 데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차송진의 말대로 우리를 태운 차가 점차 으슥한 곳으로 가고 있긴 했다. 음, 밤에 열린다는 말에 한밤중에 차를 타고 왔더니, 너무 분위기가 으스스하긴 했다.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건 온통 검은 나뭇잎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도심지의 지하에 있었던 한국의 암시장과는 달리, 중국의 암시장은 사람들이 없는 곳에 지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의 정부의 단속 때문이다.
“암시장에 들른 게 발각되면 사형이래.”
“으어억! 정, 정말?”
차송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나는 그 얼굴에 킥킥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실제로 암시장을 단속하는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라고 하니까.”
“자, 자주 있지 않으면! 어, 언젠가는 한다는 거 아니야? 그 언제가 오늘이면 어떡하지?”
“이제 내가 왜 형을 데리고 왔는지 알겠지?”
내 말에 차송진은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다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내 옷자락을 잡는 게, 정말이지 웃겼다.
[무슨 말을 했길래 저 사람이 저러는 거냐?]
[별거 아니야, 암시장에 출입한 죄가 사형이라고 하니까 저러는군.]
[마지막 단속이 15년 전이라는 건 말해 준 거냐?]
[아니.]
[너도 좋은 보스는 아니로군.]
첸륜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우리를 태운 차는 야산의 중턱에 도착했다.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인적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 중국 최대의 암시장이 있다니.
[도착했다.]
첸륜의 말에 자동차에서 내린 우리지만, 여전히 의문이 들었다. 그야, 이곳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사방을 둘러본 한서현이 툭 말을 던졌다.
“여기에 우리를 묻어 버리려고 온 거 아니에요?”
평소 같았으면 하하, 하고 웃어넘겼을 농담이지만 지금은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쏴르르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마저 스산하게 들렸다.
“히이이익.”
그때, 첸륜이 한 나무 밑에서 퉁퉁 나무 기둥을 두드렸다. 첸륜은 우리 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 손짓을 따라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앞으로 내디뎠다.
그래, 나는 보스다. 보스니까 먼저…….
“소, 송진이 형! 내 옷, 내 옷 잡고 있지?”
━쫄기는.
그야! 나도 여기에는 처음 오니까 그렇지! 나는 아직 죽기 싫어! 하고 싶은 일이 엄청나게 많단 말이다!
“자, 잡고 있어!”
우리의 꼴값에 첸륜은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와라.]
[알, 알겠다.]
나는 로봇처럼 딱딱해진 몸으로 첸륜이 서 있는 곳까지 걸음을 옮겼다. 내 뒤에서 내 옷자락을 잡은 차송진을 그대로 단 채로, 나는 나무 밑에 섰다. 통통, 첸륜은 조금 전 두드렸던 나무 밑동을 다시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딛고 서 있던 바닥이 점차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발밑에 빛나는 별의 무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투명하게 빛나는 바닥에 수없이 빛나는 별, 아니, 조명들. 그 조명들을 바라보며 첸륜이 말했다.
[이곳을 우리는 흑야성성(黑夜星星)이라고 부르지.]
흑야성성.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