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9화
#81 한 명만을 위한 쇼 (6)
여전히 도시는 한서현의 검은 모래로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빛이 들어오는 곳은 오로지 나와 에드워드가 싸우고 있는 옥상뿐이었다. 모두가 지켜볼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
어떻게 하면 에드워드를 가장 빛나게 할 수 있을까.
그 답은 간단했다.
진짜로 ‘빛나게’ 만드는 거다.
어두운 모래 사이, 나는 번개를 흩뿌렸고 에드워드는 그 번개를 그대로 흡수해 사방으로 퍼트렸다.
에드워드의 발밑에 생긴 그림자에서 김재호가 튀어나와 에드워드를 위로 밀어 주었다. 공중에 뜬 에드워드는 내가, 그리고 모두가 보내 준 마력으로 거대한 검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온 힘을 다해 에드워드가 쥔 거대한 검에 마력을 실어 넣었다.
하늘을 가르는, 붉게 빛나는 검. 에드워드의 붉은색 동공처럼 붉게 타오르는 그 검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멋지네.]
그 붉은 검은 그대로 하늘에서부터 나에게로 내리꽂혔다. 나는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공중에 떠돌고 있던 검은 모래가 일제히 내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도시를 검게 물들였던 검은 모래가 일제히 걷히고, 밝았던 옥상 쪽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검은 모래가 둘러싸인 지금이,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다.
나는 내 눈앞으로 내려온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에디!]
[어…….]
내 부름에 에드워드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하긴, ‘에디’라고 부른 건 처음인가. 다른 녀석들은 종종 에드워드를 에디라고 줄여 부르기도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정이 들어 버릴 것 같았거든.
처음에는 악연으로 엮였던 우리다. 김재호의 실수로 에드워드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죄인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만 했고, 평생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꿈이라는 게 열등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해도, 에드워드에게는 소중한 꿈이었는데.
망쳐 버렸다.
우리가.
그러니 어떻게든 수습해 줘야지. 아쉽게도 거짓말쟁이인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것뿐이었다. 거짓말로 만든 왕관을 씌워 주고 박수를 신이 나게 쳐 주는 것.
어쩌랴. 이게 내 최선이다.
검은 모래 폭풍 속에서 나는 에드워드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미안했다. 우리 때문에 고생 잔뜩하게 해서, 미안해.]
한참이나 늦은 사과였지만, 이제야 나는 에드워드에게 사과를 전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사과에 바짝 굳어 버린 에드워드를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서현이도 너한테 미안하대.]
[그 녀석이?]
[그래, 그리고 또 한 마디. 앞으로 잘하란다. 우리, 벨츠머츠를 이긴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주제에 어디 가서 지고 다니면 진짜 가만히 안 둘 거래.]
그 말에 에드워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나 또한 깨달았다. 이거 정말로 ‘작별 인사’ 같다고. 같은 게 아니라, 그냥 그거지만. 이상했다. 새삼 녀석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그래도 어쩌겠냐.
우리는 같이 갈 수 없는 것을.
[잘살아.]
진심으로 나는 에드워드의 미래를 응원했다.
[우리 같은 나쁜 놈들이랑은 엮이지 말고, 좋은 사람들만 곁에 둬.]
하고 싶은 말은 수도 없이 많았다. 앞으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거. 한국어 공부도 이왕 시작했으니 꾸준히 해 보라는 것. 돌아가서는 철새라는 별명처럼 떠돌아다니지 말고 좋은 팀을 만나 정착도 해 보라는 것.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점차 걷히기 시작하는 모래를 보며 내가 재빨리 덧붙였다.
[힘든 일 생기면 연락하고.]
음, 앞으로 에드워드의 인생에 ‘힘든 일’이 생길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말이지.
[어, 헤어지는 마당에 이런 말을 하려니까 조금 이상하지만, 우리는 언제든 네 편이다. 알지?]
그 말을 끝으로 한서현의 모래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퍼엉.
검에 베인 모래가 사라지고, 하늘이 깨끗해졌다.
후에 ‘검은 낮’이라고 불리게 되는 사건이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
* * *
에드워드, 에디는 숨을 내쉬었다. 검은 모래와 그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텅 빈 옥상을 보며 에드워드는 숨을 내뱉었다. 조금 전까지 온몸을 고양시키던 마력은 전부 사라졌다. 해가 쨍쨍하게 비치는 옥상을 바라보며 에드워드가 작게 입을 열었다.
“진짜 간 거야?”
그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정말로 가 버렸다.
물론 가 버릴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사라져 버리다니. 에드워드는 넋이 나간 얼굴로 옥상 위를 훑었다. 조금 전까지 저 옥상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꼬맹이들도 자신의 앞에서 마력을 날려 대던 강이신도 모두 사라진 뒤였다.
심지어…….
에드워드는 발을 굴렀다.
에드워드의 발밑에 숨어 있었던 김재호 또한 사라졌다.
이 옥상 위에 남은 사람은 오직 에드워드 한 명뿐이었다.
혼자였다.
혼자.
“어…….”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이 계획에 고개를 끄덕였던 에드워드였지만, 막상 혼자가 되고 나니 기분이 참으로 이상했다.
사실 자신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걸까. 그들과 이별해 혼자서 잘해 나갈 그런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웃기는 일이었다.
철새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그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기를 즐겼던 자신이, 혼자가 되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이렇게 손을 벌벌 떨게 되다니 말이다.
에드워드는 바지춤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나…….”
이 바지 주머니 안쪽에는 그들과 이어지는 무전기가 있었다. 그들과 이어지는 연락처가 담긴 휴대폰도 있었다.
그쪽에 다시 연락을 남기면, 그들은 자신을 데리러 올 거다. 막 에드워드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와아아아!”
옥상 아래에서, 그리고 옆 건물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이 모든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에드워드를 향해 환호성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에드워드는 주머니로 갔던 손을 위로 올렸다.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이들에게 손인사를 건네며 에드워드는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았다.
친구들이 바랐던 대로, 멋진 영웅이 되어 주겠노라고.
* * *
에드워드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걸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우리의 쇼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그날 저녁 내내 나는 중국 SNS, 방송, 인터넷 사이트 등을 확인하며 중국의 여론을 체크했다.
내 예상대로 에드워드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지닝시에서 그에게 구원을 받았던 사람들도 모두 인터뷰에 나섰다.
놀라운 건 에드워드가 구한 사람 중에 한국인도 있다는 거였다. 인터뷰에 임한 그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에드워드를 신처럼 묘사했다.
한국 언론까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한국 빌런 벨츠머츠의 깽판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구해 낸 외국인 히어로’라는 이름으로 에드워드의 얼굴을 퍼 갈 정도였으니.
에드워드는 그야말로 중국의 영웅이 되었다. 처음 에드워드는 겸손한 태도로 인터뷰를 모두 거절했지만(이것 또한 우리의 계획 중 일부였다), 나중에는 수줍은 태도로 ‘마지못해’ 언론과의 인터뷰를 이어 나갔다.
카메라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에드워드의 모습을 보며 한서현은 소름이 돋는다는 듯이 벅벅 자신의 팔을 긁어 댔다.
“정말 소름 돋아요…….”
“내가 가르치긴 했지만, 으음, 어, 저건 좀…….”
생각보다 에드워드는 연기에 훨씬 재능이 있었다. 이렇게 우리의 계획은 차근차근 잘 진행이 되고 있었다.
문제는…….
“음, 다들 지닝시 사건도 우리가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일의 악당으로 벨츠머츠가 지목되는 거야, 이미 예상했던 일, 아니, 내가 의도했던 일이라지만 갑자기 지닝시의 사건까지 우리가 저지른 일이 되다니!
처음에는 의혹에 불과했던 그 썰들은 어느새 시간이 지나며 점차 정설로 여겨지게 됐다. 심지어 공중파 뉴스에서조차 우리의 이름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다들 아주 확신하고 있잖아!”
내 말을 듣고 있던 치앤츠리앤이 덧붙였다.
“아무래도 정부에서는 그 사건의 범인을 누구라고 특정하는 쪽이 좋으니까요.”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하고도 비슷하다.
‘일단 수상쩍은 놈들이 등장했어? 일단 그놈들 잘못인 걸로 해 두자고. 진짜 그놈들이 이번 일을 저지른 걸지도 모르잖아. 아니라고? 알 게 뭐야, 어차피 범죄자들인데. 그러게 누가 이런 혼란한 때에 문제를 일으키래?’
높으신 분들의 생각은 대충 이렇지 않을까. 어쨌거나 덕분에 벨츠머츠는 단순 흉악범을 넘어서서 그야말로 천하에 죽일 놈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된 한서현은…….
“내가, 이래서, 조심, 하자고, 했, 잖…….”
말을 하다가 뒤로 넘어가는 한서현을 보며 김재호가 외쳤다.
“인공! 인공, 인공!”
“인공호흡?”
“어, 그거! 그거!”
김재호의 얼굴이 제게 다가오는 걸 본 한서현은 죽음에서 돌아왔다. 김재호의 얼굴을 밀친 한서현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내가 그래서 조심하쟀잖아요!”
“하하, 지닝시의 일까지 내가 뒤집어쓰게 될 줄은 몰랐지.”
“맨날 몰랐대, 아는 게 뭐야!”
“으윽!”
나는 가슴을 짚으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체했다.
“아프다, 아파. 내 죄가 있다면 최선을 다한 것뿐…….”
“엄살 그만 떨고 일어나요.”
“넵.”
한서현의 말에 나는 재빨리 일어났다.
“어떻게 할 거냐고 이 일을요!”
“뭐, 언제는 우리가 누명을 썼다고 그걸 해명했었냐. 그냥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겸허히 받아들이긴, 이대로 14억 중국인의 원수가 되겠다고요?”
“하하, 벨츠머츠의 스케일도 대단해졌다, 안 그래?”
“와!”
악법도 법이고 위선도 선이면, 정신 승리도 승리다.
“미쳤나 봐. 송진이 형, 저 사람 좀 어떻게 해 봐요.”
“걱, 걱정하지 마! 위기 상황엔 어떻게든 도망을 가면…….”
“세상에.”
내가 이 일을 정신 승리로 넘겼다면, 저쪽은 도피다, 현실도피. 차송진도 자신의 편이 아님을 깨달은 한서현이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앞으로 어쩌게요?”
“일단 에드워드의 일이 어떻게 풀리는지 끝까지 보고 움직여야지.”
언론에 ‘붉은 영웅’으로 소개가 됐다지만, 에드워드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자격을 얻기에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에드워드는 여전히 미국에서 수배가 된 몸이니까 말이지.
중국에서 살 거라면 모르되,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언론전이 필요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언론전에게 능한 사람이 한 명 있었고, 그쪽에 이미 이 일에 대한 SOS를 쳐 놓은 상태였다.
그 쪽이 일을 해결하는 동안 우리는 뭘 하냐고? 간단하다.
“시간이 난 김에 암시장이나 가 볼까 하고.”
“이 상황에 암시장 구경이나 가겠다고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문제가 생겼다고 바로 내빼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하책 중에 하책이야.”
“진심으로 하는 소리예요?”
“응.”
한서현은 당장에라도 여기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적들은 우리를 못 찾아. 찾더라도, 그전에 도망가면 그만이고.”
한서현에 이어, 유마라는 막강한 정보원이 있는 이상 괜히 쫄 필요가 없다. 지금보다 더 안전할 수가 없을 정도라니까.
나도 웬만하면 다음을 기약하고 싶었지만, 언제 또 여유가 되어 장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당장 정신계 방어 아티팩트도 구해야 하고, 우리의 전력에 맞는 아티팩트를 구하는 게 꼭 필요했다. 당장 김재호만 하더라도 내가 만든 망할 놈의 검 때문에 다른 아티팩트는 착용할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게다가 차송진의 경우에도 제대로 몸을 지킬 수 있는 아티팩트를 찾아 줘야 했고.
비록 ‘제대로 된 페이도 받지 못하고 가혹하게 굴려져서 구원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장인’을 구출한다는 내 계획은 이미 글러 먹게 되었지만, 그래도 뛰어난 장인이 만든 아티팩트를 살 수만 있다면야.
“그러니까 가야지, 암시장으로.”
쇼핑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눈을 본 한서현이 한숨을 쉬었다. 그 옆에서 재호가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오! 쇼핑 간다, 쇼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