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6화
#81 한 명만을 위한 쇼 (3)
두 사람은 목의 핏대까지 세워 가며 싸워 댔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더니. 내가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이 마침내 이 끝없는 싸움을 끝내기 위해 ‘심판’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보스는 누가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래, 네가 말해 봐.”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끼어드는 걸 조금도 용납하지 않던 두 사람이 내 의견을 구하다니.
그야, 무시받는 것보다는 낫지만…… 아무래도 이런 중요한 데에 의견을 묻는 건, 곤란해!
━명색이 보스라는 놈이.
레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보스이기 때문에 어려운 거다. 차송진과 한서현 두 사람 다 소중한 벨츠머츠 멤버니까. 누구 편을 들어서 다른 한 사람을 상처 주고 싶진 않거든. 게다가…….
“어, 이 문제는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지 않나?”
내 대답에 차송진이 입을 쩍 벌렸다.
“쟤가 한 말, 들었잖아. 우리 팀이 아닌 사람은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는데…….”
그야, 평범한 사람은 한서현의 말에 기겁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다.
“음, 그럴 수도 있지.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신경 쓰지 않을 수도.”
내 말에 차송진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처음에는 경악이었지만, 지금은 실망에 가깝다.
“아니, 잘 생각해 봐. 서현이는 ‘다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죽는 걸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에 가깝지. 그리고 그건, 그리 나쁜 게 아니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른 사람을 신경 써야 한다? 왜? 왜 그래야 하는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애를 쓰지 않는다고, 나쁜 놈이라고 말할 순 없잖아.”
한서현은 누군가를 해치는 걸 좋아하는 ‘나쁜 놈’이 아니다. 단지, 자신과 관련도 없는 사람들까지 걱정할 만큼 마음이 넓지 않은 것뿐이지.
누군가는 이걸 이기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그럴까.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건 대단한 일이지. 대단한 일이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거잖아.”
나는 그런 ‘영웅’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을 알고 있다.
정호산이라면, 에드워드가 그랬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불구덩이로 뛰어들 거다. 사람들을 구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놈이니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다칠지 생각도 하지 않겠지. 그냥, 그 녀석은 그런 놈이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놈.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런 대단한 영웅을 보면 칭찬해 주면 그만이야. 왜 너는 그런 영웅이 되지 못하냐고 누군가를 탓할 필요는 없어.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 내가, 혹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거니까.”
내 말에 차송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구할 능력이 있는 데에도, 그 사람들을 외면하는 일이 옳다고?”
“능력이 있다고 무조건 써야만 하는 건 아니지.”
나는 말을 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능력은 무한한 게 아니야. 사람의 체력과 시간은 유한한 자원이잖아. 그 유한한 자원을, 늘 남을 위해 퍼 줄 수는 없지. 게다가 사람을 구하는 일에는 언제나 위험이 동반돼.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잖아.”
실제로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는 심심찮게 발생한다. 각성자든, 비각성자든. 능력이 있든, 없든. 죽음은 공평하게 다가온다. 각성자라고 불멸은 아니니까.
그러니 결국 타인을 구한다는 건 무척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서현이는 이기적인 게 아니야. 걱정이 많은 거지.”
기본적으로 한서현은 다른 이의 죽음에 둔감하다.
네크로맨서라는 재능 때문인지, 아니면 태어났을 때부터 마음속의 어딘가가 비틀렸기 때문인지도 몰라도 확실히 타인의 생명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반대로 친한 이의 죽음에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한서현이 이렇게 된 것은, 한조희의 죽음 때문이다.
한서현은 한조희의 죽음에 잘 대처하지 못했다.
한조희를 해친 사람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형을 죽음에서 끄집어낸 것만 봐도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성숙한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
보통은 형의 ‘죽음’이라는 이벤트로 상실을 깨닫고,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한서현은 보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네크로맨서이기 때문에, 한서현에게 ‘죽음’은 이별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서현은 상실을 배우고 어른이 되는 대신, 형을 죽음에서 끄집어내 자신의 곁에 두는 선택을 했다.
지금도 종종 한서현은 한조희의 스켈레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형과 어떻게든 닿겠다는 그 마음이 잘못되었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히 한조희의 죽음은 한서현을 조금도 성장시키지 못했다.
한서현은 상실을, 그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
늘 말로는 내가 죽으면 스켈레톤으로 만들어서 곁에 두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한서현이지만, 뒤집어 말하자면 그 뜻은 이렇다.
‘절대로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것.’
한서현은 누군가를 잃는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의 안전에 예민할 수밖에.
“서현이는 그저 우리를 걱정할 뿐이야. 우리를 잃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 우리에는 송진이 형도 포함이야. 그러니까 너무 서현이한테 뭐라고 하지 마.”
내 말에 한서현의 얼굴이 벌게졌다. 차송진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한서현을 바라보았다. 한서현은 그 눈빛을 피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 다른 사람들이잖아. 살아온 것도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다르지. 그리고 그건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조금씩만 서로를 이해해 주자. 어, 우리는 같은 편이잖아?”
같은 편. 그 말에 한서현과 차송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래, 우리는 다르지만 결국은 같다.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 주며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거다.
그 목표라는 놈이 이 세상을 망치고 있는 나쁜 놈을 잡아 죽이자는 거라 그렇지.
“그러니까 서로 좀 봐주자. 응? 서로 달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어도.”
내 말에 차송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한서현은 고개를 뚜욱 바닥으로 떨군 채였다.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는 뜻이다. 나는 가만히 한서현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서현이 얼굴을 구긴 채로 말을 내뱉었다.
“나는 보스를 믿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에요.”
아, 나를 믿지 않아서 에드워드에게 날을 세운 게 아니냐는 차송진의 말이 꽤나 아팠던 모양이다.
“나도 보스 믿어요. 그래도, 그래도 있잖아요. 혼자 보스를 보낸 게 마음에 안 든 거예요. 무시를 한 게 아니라, 그냥, 그냥 같이 있었으면 한 거라고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한서현의 말에 차송진이 슬쩍 한서현을 바라보았다. 새삼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후회하는 듯이,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래, 서로 말이 심하긴 했지.
난 한서현에게 말했다.
“나도 알아, 네가 나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걱정해서 그런 말을 했다는 거. 그래도 말이야, 말이 너무 심하긴 했어.”
에드워드를 완전히 철부지 취급했으니까. 내 말에 한서현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지. 하지만 신경을 쓰는 사람들도 있어.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거야. 너처럼, 그 사람도 잘못되지 않았으니까.”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위험을 자초하는 데도, 잘못되지 않았다고요?”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간 거야. 그리고 혹여 위험해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이니까 간 거고.”
“결국 내가 두 사람을 믿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믿음의 문제가 아니지. 넌 그저 이해하지 않은 거야. 에드워드를.”
“이해…….”
한서현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마주한 꼬맹이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너도 에드워드의 마음을,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도 이해해 주지 않았잖아.”
결국 한서현과 차송진이 싸운 건, 서로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서현은 동료를 두고 다른 이들을 구하려고 한 에드워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차송진은 다른 사람들의 목숨에 신경 쓰지 않는 한서현의 마음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문제에서는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야. 너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다면, 너도 이해해 줘. 내가 말했던 것처럼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니까요.”
“그래.”
아끼는 동료가 위험에 처하는 꼴을 도저히 보지 못하겠다는 한서현의 의견도, 조금의 위험을 감수하고 다른 이들을 구하겠다는 에드워드와 차송진의 마음도 틀린 게 아니다. 다른 것뿐이지.
애초에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거다. 서로를 조금만 이해해 주면.
내 장황한 말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날이 섰던 분위기는 어느새 부드러워져 있었다.
어깨를 으쓱인 내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손잡고 화해할래?”
“싫어!”
“그건, 좀…….”
음, 아직 완전히 화해하는 건 이른 모양이었다.
* * *
두 사람을 중재한 나는 본격적으로 에드워드를 위한 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준비를 위해 나는 해성회 보스, 첸륜을 찾았다.
[애들을 좀 빌려도 될까?]
내 말에 첸륜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의미?]
[그냥, 화려한 연출이 필요해서 말이야.]
우리만으로도 무대를 꾸미는 건 가능했지만,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쇼다. 이왕이면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최선엔 꼬맹이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냥 간단히 효과를 더해 주면 돼.]
나는 내가 짜 온 계획을 첸륜에게 간단히 말해 주었다. 내 계획을 전부 들은 첸륜은 고개를 앞으로 기울이며 내게 말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그쪽 이미지는 완전히 바닥을 칠 텐데.]
[뭐, 그렇겠지.]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첸륜의 말에 내가 답했다.
[에드워드라는 그 녀석, 우리 때문에 괜한 누명을 썼어. 평생 자신이 지내던 곳에서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은 물론이고 여태까지 쌓아 왔던 명성도 죄다 무너져 버렸지. 그러니까 그걸 보상해야만 돼.]
[보상이라…….]
사실, 이걸로 충분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어깨를 으쓱인 첸륜이 나를 향해 말했다.
[좋아, 한 가지만 약속해.]
[뭘?]
[엄청 멋진 쇼를 만들어 봐.]
첸륜의 말에 나는 씩 미소를 지었다.
[응, 약속할게. 멋진 쇼가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