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5화
#81 한 명만을 위한 쇼 (2)
그동안 정이 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처음에야 악연으로 엮인 우리였지만, 그동안 나름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고 말이지. 음,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왜 생각을 하다 말고 끙끙거리기만 하는 거냐.
‘그게 말이죠. 조금 더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걸 그랬습니다. 예를 들면 놀이공원에라도 같이 가고요. 막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맛집에도 가고요…….’
━공개 수배된 범죄자 주제에 꿈도 크구나.
아쉽게도 딱 잘라 좋은 추억이라고 말할 만한 건 없지만, 그래도 그동안 보냈던 시간이 다 헛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한서현은 여전히 둘 사이에 선을 그어 놓고 있는 것 같았지만, 김재호는 툭하면 에드워드를 질질 끌고 가서 재밌게 노는 것 같았고, 차송진과도 종종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사이’가 되었다고 미래를 함께한다는 건 다른 의미지.
내 질문에 에드워드는 쉬이 대답을 내뱉지 못했다.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거리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마침내 에드워드가 내뱉은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고 싶어.]
에드워드는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꿈을 꾸었던, 태어나고 자랐던 그곳으로.
* * *
에드워드가 돌아가게 되었다는 말에 차송진은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돌아간다니, 어디로?”
“당연히 미국으로지.”
“그게 가능해?”
차송진의 의문도 이해가 된다. 에드워드가 제일 먼저 물었던 것도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거니까.
“다 방법이 있어.”
나는 내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전혀 믿음이 안 가는데.”
“어째서?”
“으응, 아니야.”
요즘 타율이 영 별로여서 그렇지 나도 초반에는 꽤 괜찮았다고. 어엉? 막 멋지게 옥션도 털고! 국회의원도 하나 담그고! 그 이후로 미끄러진 계획이 너무 많아서 그렇지…….
하지만 이 작전만큼은 정말로 자신이 있었다.
응, 그렇고말고.
“아직 배울 게 많은데.”
그렇게 말하는 차송진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다. 음, 확실히 임시 영어 교사인 에드워드에게 제일 제대로 영어를 배운 건 차송진뿐이었지. 한서현은 에드워드와 괜한 자존심 싸움을 해 대는 터라 제대로 영어를 배우지 못했고 김재호는……. 음, 재호는 한글을 배우는 쪽이 더 급했으니까.
말이 나와서 말인데, 김재호는 내 이야기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에드워드의 곁에 붙어 옷자락을 꼭 잡고 있는 걸로 봐서 이번 소식이 꽤나 충격인 모양이었다.
[찌, 찢어져!]
에드워드의 티셔츠가 비명을 질러 대는 데에도 여전히 티셔츠를 잡은 손에 힘을 꼭 쥐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어르고 달래도 마찬가지였다.
허약한 에드워드는 김재호의 손을 스스로 벗어나지 못했다.
‘으음, 저랑 헤어지고 나서도 훈련을 게을리해선 안 될 텐데 말이죠. 저런 허약한 꼴을 해서, 이 험한 세상을 잘 살아갈 수나 있을지.’
━상대가 저 녀석이라면 누구든 저 꼴이 되지 않겠냐.
음, 확실히.
나는 에드워드에게 매달린 김재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재호야, 손 놔야지.”
“싫어.”
“왜?”
“가지 마.”
솔직하게 내뱉어진 그 말에 나는 놀랐다. 한서현도 마찬가지였다. 그 덤덤한 김재호가 이렇게 제 속마음을 말할 줄 몰랐으니까.
“왜 가?”
“그야, 에드워드는 미국에서 할 일이 있고…….”
“친구잖아.”
그 말에 심장이 조여들었다. 김재호가 말하는 ‘친구’가 얼마나 각별한지 나는 알고 있었으므로.
“친구면 같이 있어야 돼.”
김재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친구여도 늘 같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봐, 재호야. 지금 에드워드가 미국으로 간다고 해도 너랑 에드워드는 계속 친구일 거야. 내가 너랑 떨어져도…….”
“나 버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김재호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개념인가. 그때 차송진이 나섰다.
“친구니까 응원해 줘야지.”
“응?”
“에드워드한테는 꿈이 있다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멋진 사람이 되는 꿈. 그거 응원 안 해 줄 거야? 친구인데?”
그 말에 김재호의 눈동자가 떨렸다.
“응, 응원해…….”
“그럼 보내 줘야지.”
“보내기 싫은데.”
“알아, 같이 있고 싶은 거. 그래도 친구라면, 친구라면 싫어도 꾹 참고 보내 줘야 하는 거야. 응원해 줘야지.”
“……그런 게 친구면, 친구 안 해.”
김재호의 말에 차송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 친구 아니야? 그럼 보내 줘도 되겠네?”
“아니! 친구야.”
“친군데 응원 안 해?”
차송진의 말에 김재호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손을 떨었다.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뭐라고 대답해도 벗어날 수 없는 늪이었다. 차송진의 말에 손만 부들부들 떨던 김재호는 결국 에드워드의 티셔츠를 그대로 놓아 주었다. 이미 늘어날 대로 다 늘어난 셔츠는 회생 불가능이었지만, 나체가 되는 꼴은 면했다.
[재호…….]
한국어에 서툰 에드워드였지만, 김재호의 행동에서 재호가 무얼 말하려는지는 충분히 읽어 냈다.
━그야 티셔츠가 다 찢어질 지경인데, 모르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만.
‘음, 하긴 행동만 봐도 뻔하죠.’
김재호는 에드워드를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생각은, 결심은 이미 확고해진 다음이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에드워드가 김재호의 어깨를 꼭 잡으며 말했다.
[역시 나랑 같이 갈래?]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라 외쳤다.
[어이, 이놈아. 지금 누굴 빼돌리려는 거야!]
[하하, 농담.]
에드워드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미소는 곧 흐려졌다.
[나도 널 그렇게 생각해.]
잠시 숨을 골랐던 에드워드가 김재호를 향해 말했다.
“친.구.”
그 말에 김재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알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넌 여전히 내 친구일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지. 넌 내 첫 번째 친구야. 음, 영광으로 생각해도 좋아. 물론 처음에는 네가 무척이나 싫었지만 말이야.]
에드워드가 김재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알아, 네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널 용서해. 물론, 다음에는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에드워드의 말에 김재호가 그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뭐라고 말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하하!”
그야, 그렇지! 김재호는 영어를 조금도 하지 못했으니까.
감동적인 상황이었지만, 일방소통이었다. 에드워드는 김재호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알아, 너, 영어. 몰라. 그래도 너, 나, 친구.”
에드워드의 말에 김재호는 멍하니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야기를 정리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친구가 됐잖아.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두 사람은 친구일 거야. 그렇지?”
여전히 김재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김재호가 이해한 건 하나뿐이다. 에드워드가 떠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보내 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걸, 김재호는 아주 어렵게 받아들였다.
“놀아, 나랑.”
김재호는 에드워드를 질질 끌고 놀이방으로 향했다.
[자, 잠깐!]
“더 놀아.”
[……알았어.]
질질 김재호의 손에 끌려가는 에드워드를 보며 나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뭐, 인사야 나중에 차근차근하면 되겠지. 차송진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받아들인 것 같지?”
“응, 뭐.”
한서현한테 나쁜 물이 들어서 ‘가? 가긴 어딜 가. 죽어서 나와 함께해.’ 이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그런 건 아니라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힘겹게 에드워드와의 이별을 받아들인 김재호와 달리 한서현은 이 모든 소란에 끼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한서현은 기다리던 게 왔다는 듯 산뜻한 얼굴이었다.
“잘됐네요.”
“으응?”
“애초에 우리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잖아요.”
“뭐어…….”
확실히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서현이 저렇게 딱 잘라 말할 줄은 몰랐지만.
“그럼, 이제 어, 대충 준비하러 가 볼까나…….”
어물쩍 내가 한서현의 말을 넘길 때였다.
“그렇게 말하지 마!”
차송진이 벌게진 얼굴로 외쳤다.
“그래도 그동안 우리랑 잘 지냈던 사람이 떠난다는데, 그 반응은 다 뭐야. 조금이라도 아쉬워할 수는 없는 거야?”
차송진의 말에 한서현은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형?”
“그냥 말이라도 좋게 해 줄 수 있는 거잖아. 어쩌면 마지막, 그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데!”
갑작스러운 차송진의 폭발에 놀란 건 한서현뿐만이 아니었다. 나 또한 놀랐다. 평상시에 유난히 부드럽고 소심한 태도를 보였던 차송진이었기 때문일까.
설마하니 이렇게 터질 줄이야.
“너는 도대체 동료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 녀석은 우리 동료 같은 게 아니었잖아요.”
“우리의 동료였어! 우리랑 함께 하는 동안에는 그랬잖아.”
“그렇지만 저번에도 보스를 버리고…….”
“보스가! 원했던 거잖아! 그리고 언제까지 보스 말이면 다 따를 건데! 그러는 너도 시도 때도 없이 보스 말 무시하잖아!”
“그야, 보스를 위해서…….”
“뭐가 보스를 위해서고, 뭐가 우리를 위해서야. 너는 그저 에드워드가 아니꼬웠을 뿐이잖아.”
“하지만!”
“저기 두 사람…….”
“하지만은 무슨!”
“지금 왜 싸우는…….”
“그러는 형은 왜 그놈 편을 드는데? 형은 우리 편이잖아!”
“애초에 여기에 편이 왜 있냐고! 편이 뭐가 그리 중요해. 사람 간의 기본적인 예의와 신뢰 문제잖아.”
나는 필사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 보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마치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의 기에 눌려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러냐니까…….”
겨우 그렇게 말을 꺼내 보았지만, 이 말 또한 두 사람의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에드워드가 우리 정식 조직원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우리 동료는 맞잖아. 같이 움직이는 동안에는 분명 그랬다고.”
“아니요, 그냥 같이 다니는 사람이었지, 동료는 아니었다고요. 동료였다면, 그 상황에서 보스를 버리고 갔을 리 없다고 했잖아요.”
“버린 게 아니야. 믿은 거지! 너야말로 보스를 너무 믿지 않는 거 아니냐. 동료라는 건 서로를 믿어 줘야 하는 거잖아.”
“내가 보스를 믿지 않았다고요?”
차송진의 말에 한서현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코웃음을 쳤으나, 차송진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애초에 그곳에 에드워드를 보낸 건 보스의 선택이었잖아. 네가 하는 말은 꼭 그 선택을 의심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아니죠, 그곳에서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조른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거예요. 애초에 우리 팀도 아닌 사람들을…….”
“우리 팀이 아닌 사람은 죽게 내버려 둬도 된다는 거야?”
“무슨 상관인데요!”
한서현의 말에 차송진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한서현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
“네. 그 사람들이 죽든 말든.”
그 말은 서로의 속을 완전히 긁어 버렸다. 차송진도 한서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둘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분위기는 가히 최악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나는 소심하게 손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저기, 나 아직 여기에 있는데…….”
“뭐요.”
“사람이 말하는데 함부로 끼어들지 마.”
“으응…….”
지금은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았는데…….
나 그래도 너희 보스인데…….
너희 분명 내 얘기하지 않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