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80 실수에서 배운다는 것 (1)
놈의 말에 치앤츠리앤은 가만히 입을 닫았다. 뭐냐, 이거 정신 공격? 저우샤오첸을 죽게 만든 주제에 입을 턴다 싶었지만, 일단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이건 내가 낄 판이 아니니까.
[확실히 그쪽 말도 맞아. 나는 샤오첸을 원망했어.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스승님을 죽게 했으니까.]
의도가 어떻든, 결과는 최악이긴 했지.
나쁜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죄가 없는 건 아니다.
그녀의 실수는, 누군가를 죽게 했다.
하지만 저우샤오첸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해자인 저우린이 그녀의 잘못을 모두 감싸길 택했기 때문이다. 제 죽음이 딸을 잡아먹지 않길 바란 거겠지. 문제는 그로 인해서 다른 이들조차 저우샤오첸의 잘못을 꼬집을 수 없었다는 거다.
[나는 말이지, 그게 정말로 싫었어.]
그렇게 말하는 치앤츠리앤의 얼굴은 정말이지, 엉망이었다. 우는 듯, 웃는 듯. 깊게 담아 왔던 감정을 털어놓으며 치앤츠리앤은 얼굴을 구겼다. 검을 쥔 그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저 친구가 그러더라. 실수에서 배우는 게 없으면, 그거야말로 진짜 나쁜 거라고 말이야. 실수를 저지르고 나면, 무언가 배워야 한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샤오첸에게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았어.]
배울 기회라.
확실히, 저우샤오첸은 그 사고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도망치기만 했으니까.
[당신들 말이 맞아. 언젠가 터질 일이었지.]
저우샤오첸의 문제는 한둘이 아니었다. 유마라는 여자의 말대로 언젠가 저우샤오첸의 문제는 크게 터졌을 거다. 그녀의 재능이 스스로를 잡아먹었든, 아니면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을 잡아먹었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말이야. 그걸 감당하는 건 내 몫이 되어야 했어. 이런 식으로 터져서는 안 됐다고.]
치앤츠리앤은 유마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니 나에게서 샤오첸을 구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마.]
유마는 치앤츠리앤의 사나운 말에 놀라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의 살기에 순간적으로 옆에 선 나마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모두의 시선이 치앤츠리앤이 손에 든 검으로 향했다.
그래서 치앤츠리앤의 선택은 무엇일까.
[하지만 그쪽 말대로 난 복수할 명분도 자격도 없지.]
치앤츠리앤은 검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행동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나보다는 오히려 저쪽이 더 놀랐다. 얼핏 치앤츠리앤의 말을 들으며 그녀가 복수를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나와는 달리 저쪽은 그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까.
[나에게 복수를 하지 않겠다고?]
[그래, 우리 모두 이번 일에서는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그 결과일 뿐이잖아, 이건.]
결국 ‘복수’는 포기인가. 치앤츠리앤의 복수에 이래저래 묻어가서 저놈들을 탈탈 털어먹으려고 했던 나에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지금 상황에 그런 생각이나 하는 거냐!
‘새삼 제가 복수가 정답은 아닙니다, 같은 말을 할 만한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말을 하기는커녕, 전이었더라면 ‘여기까지 와서 복수를 포기하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복수하고 속이나 편해지자’ 같은 소리를 했을 거다.
내가 잘못을 했든, 아니든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남을 괴롭히는 편이 훨씬 속이 편하다는 걸, 훨씬 살기가 편해진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치앤츠리앤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걸 그만두었다. 이 복수로 자신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에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이걸로 끝인가?]
그 말에 치앤츠리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 나에게는 당신들에게 복수할 명분이 없는지도 몰라. 그래,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일을 그냥 넘길 수는 없잖아.]
아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차송진이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하지만 차송진과 했던 이야기를 모르는 남자는 치앤츠리앤과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얼굴을 구긴 남자가 말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아아, 이제부터는 내가 나서야겠는데.]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음, 이런 선생님 같은 포지션은 내 역할이 아니긴 하지만 치앤츠리앤이 복수를 포기한 상황에서 나설 만한 사람은 나뿐이다.
[네놈은 뭔데.]
마침 잘 됐다. 치앤츠리앤이 복수를 포기하든, 말든. 나에게는 별개로 저놈들에게 볼일이 있었으니까.
[억울한 척은 하지 말자고. 그쪽도 이번 일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건 아니잖아. 저우샤오첸이 자신의 실수를 모르는 체했다고 비난하기엔 그쪽도 장난이 아니잖아?]
당장, 저놈들 때문에 지닝시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유마라는 여자는 내 말에 무어라 말하고 싶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허, 변명 타임 아니야. 그러니까 조용히 있어.]
내 말에 유마는 억울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내 건방진 말에도 눈앞의 남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잖아.]
지닝시에서 일어난 일은 참사라는 말이 걸맞을 정도로 처참했다. 한 도시가 반파되었고, 그 사고로 아무런 죄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해성회는 분명 그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
[그게 실수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너희는 ‘나쁜 놈’이지.]
지닝시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해성회의 악행은 또 있었다.
[미국에 마약을 수출하고, 개조한 아티팩트를 보내서 평범한 사람들까지 전부 도박 중독으로 끌어들였잖아.]
내 말에 남자의 표정이 변했다. ‘네가 그런 것까지 알고 있었을지 몰랐다’는 얼굴이다.
[다이애나를 공격한 게…….]
[그래, 나야.]
[여기에 온 게 우연은 아니군.]
[그쪽을 쫓고 있었거든. 저우샤오첸의 일은, 음, 얻어걸린 거지.]
그래, 문자 그대로 얻어걸린 것뿐이다. 애초에 나는 저우샤오첸이라는 사람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으니까. 이 일로 뭔가 배운 느낌이긴 한데, 음, 어쨌거나 그게 내 목표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미국에서 너희가 저지른 일은 아주 끔찍했어. 한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했다고.]
그곳에서 발견된 마약의 양만 해도 엄청났지. 마약에 도박까지. 평범한 가정 하나를 초고속으로 박살 낼 수 있는 스페셜 패키지다.
내 머릿속에 멍을 달고 있던 꼬맹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그 아이는 운이 좋았지. 지금은 존과 함께 행복할 테니까.
운이 나쁜 아이들은 어떻게 됐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너희는 IMS에게서 어린애들을 구해 냈다고 했잖아, 그런데 말이지. 너희가 보낸 마약과 슬롯머신 때문에 가정이 수도 없이 파괴되고 있단 말이다. 죄도 없는 꼬맹이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 줄 아냐?]
그러니까 ‘아이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하지 말라는 거다. 그 위선에 역겨워서 토가 나올 정도니까.
[각성자만 소중하고, 비각성자는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너희가 저지르고 있는 일이 나쁘다는 걸 인정은 하라고!]
내 말에 유마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래, 너희가 저지른 일은 이미 충분히 나빠.]
[그러니 우리를 징벌하겠다?]
[누군가는 너희한테 그런 짓을 계속하면 안 된다고 말해 줘야 하지 않겠어? 나한테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힘은 있으니까.]
나도 저 녀석들도 완전히 깨끗하지 않다는 건 안다. 하지만 말이지. 나는 적어도 내가 하는 짓이 나쁘다는 건 알고 있거든. 그리고 말이다, 이제 정말이지 나쁜 일은 더는 하지 않겠다고 나름대로 맹세도 한 몸이란 말이지.
[우리가 여기서 네놈들을 봐주면은 말이야. 앞으로도 그런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날 거 아니야?]
해성회는 범죄 조직이다.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겠지. 그리고 그 ‘무슨 짓’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빨아먹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너희 말대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용을 쓰는 건 나쁜 짓이 아니야. 하지만 말이야, 나쁜 짓을 잔뜩 저질러 놓고 변명으로 ‘살기 위해서 그랬어요’라고 말하는 건 조금 역겹잖아?]
적어도 나는 내가 저지르는 일이 얼마나 나쁜지 알고 있다. 어린 애들을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정도로 성숙하지 못한 애들을, 자연스럽게 내 일로 끌어들이는 게 정말이지 끔찍하게 싫어서.
[그러니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겠는데.]
내 말에 남자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잠깐만, 그렇다고 싸우자는 뜻이 아니라고.]
내 말에 남자가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어쩌자는 거지?]
남자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킨 내가 말했다.
[해성회 말이야, 해체하면 안 될까나?]
내 말에 남자가 미련 없이 창을 집어던졌다. 나는 그 창을 피하면서 소리를 빼액 질렀다.
[아니! 내 말을 들어 보라고!]
[들을 필요도 없다!]
[잘 들어 보면 생각이 바뀔 거라니까!]
[잘도!]
나는 성치 않은 몸을 움직여 창을 피했다. 검은 모래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우리 둘을 말렸다. 내게 공격 의사가 없다는 걸 몇 번이나 확인한 남자는 그제서야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나는 천천히 내가 생각한 계획을 말해 주었다.
내 말을 모두 들은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용병대를 만들라고?]
[응!]
[……진심이냐?]
진심인데.
더 상처가 되는 것은, 치앤츠리앤 또한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거였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입니까?]
[……다들 왜 그런 반응인데?]
━그야, 범죄 조직원한테 손을 씻으라고 말하면 보통은 저 반응 아니겠냐. 심지어 네가 그런 말을 한 사람은 그냥 조직원도 아니고 보스니까.
요즘 세상에 직업에 귀천이 어디에 있다고. 다들 너무 까다롭네.
‘자수하고 광명 찾자는 말보다는 백배는 낫잖아요?’
게다가 나도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말을 한 건 아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헌터가 한 명 있는데 말이야, 진짜 잘 나가거든? 그놈이 그러는데…….]
미안하다, 테이카야. 딱 한 번만 팔아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