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99화 (299/352)

제299화

#79 해성회 (6)

나는 어깨를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차송진이 나를 보며 외쳤다.

“괜찮아?”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면, 괜찮다고 말해야 했지만,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당장은 신음을 참는 게 한계다. 정말이지……. 엄청난 고통에 생각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크, 윽, 어떻, 어떻게 못 합니까?’

━고통을 느끼는 건 생물체로서의 기본 방어기제다. 그걸 무시했다간…….

나도 안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게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쯤. 하지만 더럽게 아파서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니까.

━어쩔 수 없군.

레이는 아파서 끙끙거리는 나를 위해, 감각 몇 개를 차단해 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경 줄을 태우던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고통뿐만 아니라, 촉각과 후각 같은 감각도 같이 사라졌지만 이게 어딘가 싶었다.

━오래는 유지 못 한다. 감각을 끊는다는 건 엄청나게 위험 부담이 큰일이고…….

레이의 잔소리를 뒤로 넘기며 나는 눈앞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늘에 떠 있던 남자는 어느새 내 앞에 서 있었다.

동공 색과 똑 닮은 검푸른 장발을 길게 앞으로 늘어트린 남자는 탄탄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셔츠를 입고 그 위에 화려한 무늬가 돋보이는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한 갱단의 보스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생김새 또한 제법 뛰어난 편이었다. 서늘한 얼굴에 담긴 감정은 분노. 남자는 유마라고 불린 여자의 곁에 서서 그녀를 부축했다.

[죄, 죄송해요, 저, 저는…….]

[쉬어.]

다정스러운 손길로 피가 묻은 그녀의 입가를 쓸어 준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저 녀석의 능력은 뭘까. 남자는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났다. 남자가 하늘에 나타나기 전까지, 주변에는 그 어떤 기척도 없었다.

나를 노리고 내리꽂힌 창도 그렇다. 창은 저 멀리 하늘에서부터 나에게 날아들었다. 땅에 박혀 있는 창은 불에 달군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찰열로 창이 저렇게 달아오를 정도로 높은 곳에서 창을 낙하시킨 거다. 하늘에서 직접 던진 건지, 아니면 창을 띄워 올려서 조종한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놈은 창으로 손을 뻗었다. 창은 마치 자석이라도 달린 것처럼 그 녀석의 손아귀로 날아들었다.

[그쪽이 해성회의 보스인가?]

[그러는 너는 은월회의 꼬붕인가?]

은월회의 꼬붕이라니. 내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 치앤츠리앤 쪽으로 시선을 돌린 남자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쪽은 확실히 은월회의 사람이겠고.]

그 말에 치앤츠리앤이 서늘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놈이냐, 샤오첸을 납치해 오라고 시킨 것.]

[그렇다면?]

치앤츠리앤이 검을 뽑았다.

[복수해야겠지.]

그 말을 들은 남자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아, 나도 같은 말을 할 참이었어.]

제 뒤에 선 여자를 힐끗 바라본 남자가 창을 움켜쥐었다.

[내 소중한 사람을 해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지.]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치앤츠리앤이 검을 뽑고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어찌나 발도가 빨랐는지, 마치 그녀의 손에서 검이 솟아난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치앤츠리앤은 땅을 박찼다. 마치 순간 이동처럼, 치앤츠리앤의 몸이 사라졌다가, 남자의 앞에 나타났다.

창과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치앤츠리앤의 검을 받아친 남자의 몸이 흐릿해졌다.

다음, 남자의 몸은 치앤츠리앤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못해도 10m 이상 떠오른 남자는 그대로 창을 쥐고 창을 발사했다.

공중에서 사라진 창은 그대로 치앤츠리앤을 향해 내리꽂혔다. 치앤츠리앤은 재빨리 발을 굴러 그 창을 피해 냈다. 그리고 땅을 박찬 치앤츠리앤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그녀의 검이 횡으로 그어지는 순간, 남자는 다시 땅으로 돌아와 제가 날렸던 창을 손아귀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시 창은 공중에 뜬 치앤츠리앤을 향해 날아갔다.

움직임이 자유로운 땅과는 달리 하늘에서는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치앤츠리앤이 검을 휘둘렀다.

빠르게 휘둘러진 검은 그대로 창을 튕겨 냈다. 그 반동으로 땅에 무사히 안착한 치앤츠리앤은 곧바로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숨 한 번을 내쉬고 마실 짧은 시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치앤츠리앤의 움직임도 대단했지만, 치앤츠리앤이 자신을 공격하려고 할 때마다 순간 이동으로 거리를 벌리는 놈의 움직임도 대단했다.

순간 이동은 써먹기 무척이나 어려운 재능이었다. 당장 비슷한 능력을 가진 차송진만 하더라도 한참을 끙끙거리고 나서야 순간 이동을 할 수 있지 않던가.

하지만 남자는, 빛과 같은 속도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잠깐 눈을 깜빡이는 사이, 남자는 몇 번이나 자리를 옮겼다.

엄청난 속도전이다.

한참 둘의 싸움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갑자기 엄청난 고통이 찾아들었다.

“큭!”

이게, 무슨…….

━말했잖냐, 오래 감각을 차단하고 있을 순 없다고.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풀면 어떡합니까? 경고도 없이…….’

━어차피 치고받고 싸우는 건 저쪽 아니냐. 너는 썩 빠져 있어라. 어차피 이건 네놈의 싸움도 아니고…….

‘제 싸움이 아니라니요. 저도 해성회에 볼일이 많단 말입니다!’

━저 여자보다 더?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군. 나는 한숨을 쉬며 어깨를 움켜잡았다. 초회복이 열심히 일하고 있긴 하지만 가루가 나도록 부서진 뼈가 완전히 생성되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뒤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차송진이 재빨리 내게 다가와 내 몸을 부축했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그보다는 저쪽이 걱정인데…….”

끼어들 수가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템포는 빨랐다. 솔직히 눈에 마력을 쏟지 않으면 제대로 그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니.

괜히 참전했다가는 아군을 잘못 공격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

“서현아.”

“괜찮아요?”

“응, 나는 괜찮아.”

“재호 형이 언제 끼어들어야 하냐는데요.”

하긴, 김재호라면 저 난장판에 끼어들 수 있겠지. 육체 강화계 재능을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웬만한 강화계 능력자를 씹어 먹을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가진 놈이니까.

아주 미세하지만, 치앤츠리앤의 숨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동생의 복수를 직접 하고 싶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이동 자체를 ‘스킵’해 버리는 쪽과 달리 치앤츠리앤은 놈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위해 마력과 체력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먼저 지치는 게 이쪽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까 도와야지.

여럿이서 한 명을 공격하는 건 치사하다고? 그건 든든한 동료가 없는 놈들의 변명일 뿐이다.

동료애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몰라, 죽어라.

━방금 그 대사 엄청 악당 같았는데 말이다.

‘뭐라는 겁니까, 저는 악당이라고요.’

나는 악당다운 미소를 지으며 한서현에게 말했다.

“지금, 지금 가라고 해.”

“저는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구석에서 여전히 벌벌 떨고 있는 여자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

“글쎄, 저 여자를 확실하게 확보해 둘까.”

내 공격을 받은 뒤로는 완전히 나가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서현이 모래를 일으켰다.

한서현에게 메시지를 전달받은 김재호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리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를 바라본 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나는 김재호를 숨겨 왔다.

순간 이동이라고 해도 무적은 아니다. 이동한 순간 나타나는 작은 틈. 그 틈을 뚫고 놈의 그림자에서 김재호가 솟아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틈에서 날아든, 생각지도 못한 공격.

상대가 누구든, 김재호의 이 공격은 통할 수밖에 없다.

김재호의 단검이 바로 놈의 옆구리에 날아들었다.

[큭!]

놀랍게도 녀석은 김재호가 그림자에 튀어나온 순간 반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단검을 피해 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단검은 놈의 겉옷을 뚫고 길게 상처를 남겼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제대로 들어간 유효타다. 놈은 제 옆구리를 움켜 잡았다. 뚝뚝, 손가락을 타고 피가 흘렀다.

[네놈!]

김재호는 놈의 불호성에도 놀라지 않고 차분히 단검을 휘둘렀다. 아쉽게도 두 번째 공격은 들어가지 않았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놈이 재빨리 몸을 다른 쪽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자에 따라붙을 수 있는 김재호의 능력상, 해가 떠 있는 지금, 그가 거리를 옮겨도 완전히 김재호를 떼어 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그가 신경 써야 할 사람은 김재호뿐만이 아니었다.

[너 때문에, 샤오첸이…….]

치앤츠리앤의 검이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놈은 창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았지만, 그와 동시에 날아드는 김재호의 단검은 막아내지 못했다.

치앤츠리앤과는 박빙으로 다투었던 놈이었지만, 김재호의 참전으로 승기는 급격히 우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여자가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어째서…….]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 흘러들어 오기 시작하는 검은 모래를 바라보며 정신을 완전히 놓은 듯이 몸을 떨었다.

[도대체 왜 우리한테 그러는 거야!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여자의 목소리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 갑작스러운 폭발에 싸움도 중지되었다. 치앤츠리앤이 멈춰 서자 김재호 또한 멈춰 섰다. 나는 여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뭘 잘못했냐고?]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사라졌다.

[잘 있던 사람을 그쪽이 납치했잖아.]

미국에서 겪었던 일을 말할 필요도 없다. 은월회와 해성회가 원수가 된 것은, 해성회가 일방적으로 은월회의 조직원을 납치했기 때문이니까.

그 사건 때문에 지닝시에서 수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마나 중독으로 인해 평생 후유증에 시달릴 사람도 많을 거고.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서, 저런 말을 하다니.

[그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어!]

여자가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유마.]

옆구리를 틀어막은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여자, 유마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 그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자신의 약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모두를 속이고! 그래, 그게 더 잘못이잖아! 그 여자를 가만히 내버려 뒀다면, 이 세상을 망쳤을 거라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그런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것뿐이야!]

[뭐?]

[그, 그 여자가 만든 약이 이 세상에 유통되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미쳐 버렸을 거야.]

유마의 말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확실히 저우샤오첸의 약은 위험했다. 당장 그녀의 약을 실험하는 데에 자원했던 여자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실제로 보지 않았던가.

그걸 막기 위해 그녀를 납치하려고 했던 거라고?

그녀의 능력을 이용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럼 그 꼬맹이들은?]

내 말에 여자가 말했다.

[우리 애들을 해친 건 네놈이잖아!]

[해치지 않았어.]

내 말에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한서현에게 아이들을 풀어 주라고 말했다.

“진심이에요?”

“어서.”

아이들을 가둬 두었던 고치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 있던 아이들은 기진맥진했지만,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아이들을 확인한 유마가 눈물을 흘렸다.

[괜찮아?]

[우, 우리는 괜찮아요.]

[저 애들을 이곳으로 보낸 건 너잖아.]

나는 유마에게 캐물었다.

[아이들을 납치하고 싸움터로 보냈으면서…….]

내 말에 아이들이 말했다.

[유마가 우리를 구했어!]

[납치가 아니야!]

[우리가 돕겠다고 나온 거야, 그러니까 유마를 해치지 마!]

그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쁜 놈이, 나쁜 놈이 아니었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