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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96화 (296/352)

제296화

#79 해성회 (3)

스태프를 쥔 한서현의 동공이 검게 불타올랐다. A급 잠재력에다가, 네크로맨서라는 특이 재능을 타고난 한서현의 마력량은 본래도 말도 안 되게 많은 편이지만, 저 스태프를 손에 쥐고 있을 때는 그야말로 대마도사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대단해진다.

길게 자라 눈을 찌르던 한서현의 앞머리가 엄청난 마력의 발산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쪽에서 저를 막아도 소용없어요.”

한서현의 마력이 사방으로 뻗었다. 그리고 그 마력은 죽어 있던 것들을 찾아 몸을 틀었다.

아아, 나는 그제야 한서현이 말한 계획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이 도시 하나에 죽어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 것 같은가. 지금 이 순간 인간의 인지가 닿지 않는 곳에서도 무언가가 태어나고 죽고 있다. 본래라면 자연의 섭리 아래에서 썩어 흩어졌을 시체들은 한서현의 마력을 받아 부활했다.

그래, 그쪽에서 막아도 소용없다. 한서현은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를 그쪽으로 보낼 테니까.

문제는…….

“으으, 저거 꽤 징그럽…….”

차송진이 파이프를 타고 오르는 바퀴벌레의 떼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음, 웬만하면 나도 한서현 편을 들어 주고 싶은데 확실히 보기 거북한 건 사실이군.

한서현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귀여운데.”

“으응, 그래.”

과연 네크로맨서가 되려면 저 정도로 비위가 강해야 하는 건가.

어쨌거나 우리가 할 건 이제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한서현은 눈을 감은 채로 숨을 내쉬었다. 지금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한서현과 그 물 능력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거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이 싸움터가 도시인 이상, 두 사람의 전투는 한서현에게 너무나도 유리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한서현이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비죽, 한서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 또한 순간 흠칫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그럼 그쪽으로 바로 갈까나.”

내 말에 한서현이 고개를 저었다.

“주변에 민간인이 많아요.”

“얼마나?”

“몇백 명은 될걸요.”

흐음, 그 말에 나는 머뭇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그 녀석들을 치고 싶다만, 혹시나 그쪽에서 민간인을 인질로 잡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괜히 거기에서 알짱댔다간,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다.

“으음.”

어쩐다. 조심스레 결투장을 보내서 정정당당히 공터에서 뜨자는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겠지.

“그 사람들을 빼낼 방법은?”

“……바퀴벌레라도 잔뜩 보내 볼까요?”

“어, 소름이 돋긴 하겠는데 그럼 오히려 건물에 틀어박히려고 하지 않을까?”

“그 건물 안으로 바퀴벌레를 잔뜩 보내면…….”

“으아아.”

상상만 했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바퀴벌레 작전을 말린 건, 치앤츠리앤이었다.

“그 정도로는 모두를 피신시킬 수 없을 겁니다. 생각보다 음, 이쪽에는 벌레에 강한 사람들이 꽤 많아서. 그냥 약을 치고 말지, 벌레 때문에 집 밖으로 튀어나오진 않을걸요.”

“하긴, 보통은 어떻게든 그 벌레를 죽이려 들겠지.”

게다가 벌레를 그렇게 움직이는 건 한서현에게도 부담이 큰 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벌레 작전을 폐기하기로 했다.

한서현의 말이 이어졌다.

“아, 그리고 그쪽 기지에 어린애들이 많아요.”

한서현의 말에 내가 눈을 찌푸렸다.

“어린애들? 민간인이야?”

“확실하지 않아요. 조직이랑 엮인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전부 각성자처럼 보였거든요.”

어린, 각성자들이라. 그 키워드에 김재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재빨리 물었다.

“얼마나 어린애들인데?”

“가장 어린애들이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 평균적으로는 겨우 중학생은 됐을까 싶었고요. 게다가 중국인들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던데요. 영어를 쓰는 애도 있었고, 독일어를 쓰는 애에…….”

평균적으로 재능을 각성하는 나이가 중학생 1학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그곳에 있는 어린애들은 막 재능을 각성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갓 재능을 각성한 애들을 왜 기지에 모아 둔 거지? 그것도 여러 국적을 가진 애들로 보인다라.

한서현의 말이 이어질수록 나 또한 표정 관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야, 그런 키워드에 딱 맞는 조직이 하나 있었거든.

확실히 그쪽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겠지만, 의심할 만한 정황은 확실하다.

‘그러고 보니 지닝시에서 만났던 그 각성자들도 어린애들이었죠.’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어렸다. 기껏해야 십대 후반인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어린애들을 이용하는 곳이라.

‘왠지 짚이는 데가 있는데요.’

━어딘데?

‘예전에 테이카 쿠퍼 얘기를 하면서 잠깐 말했던 곳인데, 기억이 납니까? 국제 용병 모집회, IMS라고 불리는 납치 조직이요.’

━해성회가 그놈들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요, 하지만 관계는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

해성회가 급격하게 성장한 배경 뒤에 어린 각성자들이 있었던 건가.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자고로 어린애들을 착취하는 놈들은, 살 가치가 없다.

‘알면 알수록 별로인데요.’

내 마음에 들었어도 가차 없이 부숴 줬을 테지만, 정말이지 이제는 같은 하늘을 두고 살고 싶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나는 가면을 톡톡 두들겨 마스크의 모양을 바꾸었다. 검은 마스크에 떠오른 웃는 얼굴을 바라본 차송진이 입을 벌렸다.

“자, 잠깐 그 얼굴은…….”

“한바탕 신나게 날뛰어 줄 수밖에.”

도시를 부술 것 같은 악당이 나타나면, 그쪽에서도 도망칠 수밖에 없겠지.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기 위해서 악당을 자처하겠다고?”

“자처하는 게 아니라, 악당이 맞으니까? 대충 꽹과리를 미리 쳐 주는 거지. 어이, 여기는 이제부터 벨츠머츠가 접수했다, 살고 싶으면 썩 꺼져!”

민간인의 피해를 줄일 방법은 이것뿐이다. 내 말에 차송진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맞나?”

“맞든, 아니든. 당장은 이 방법이 최선이잖아.”

그렇게 말한 나는 모두에게 말했다.

“다들 가면을 써.”

내 말에 김재호와 한서현도 가면을 썼다. 검은 마스크가 차례대로 나타나는 걸 본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금박사가 보면 엄청나게 좋아하겠는데요.’

마지막으로 차송진마저 마스크를 쓴 걸 확인한 나는 에드워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막 주변을 따라 마스크를 쓰고 있던 에드워드가 내 손짓에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왜, 왜?]

[너는 빠져.]

[어째서?]

[기껏해서 중국의 영웅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지금 우리랑 같이 엮이고 싶어?]

[하지만…….]

[게다가 아직 마력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잖아.]

워낙 무리를 한 탓에 며칠은 더 안정해야 마나 회로가 안정화될 거다.

[과한 에너지를 받아들여서 마나 회로가 피로해진 상황이잖아. 괜히 무리했다간, 평생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어.]

에드워드를 위한 변명은 내가 대신 마쳤다. 기껏 여기까지 우리를 따라왔는데 돕지 않았다든가, 하는 식의 원망은 할 생각이 없다. 에드워드는 애초에 벨츠머츠가 아니기도 했고, 본인이 할 일은 모두 한 뒤였으니.

한서현은 에드워드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에드워드가 이 일에 끼어들지 않길 바랐다.

내 말에 에드워드가 소심하게 대꾸했다.

[가면은 왜 뺏어 가는데……?]

에드워드의 말에 나는 치앤츠리앤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야, 저쪽이 써야 하니까? 떠나면 그만인 우리랑 달리 저 사람은 계속 여기에서 살아가야 하잖아.]

그 말에 마지못해 에드워드는 가면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 가면을 받아 치앤츠리앤에게 고대로 건넸다.

“써요.”

“필요 없어요.”

하지만 내 제안에도 불구하고 치앤츠리앤은 고개를 저었다.

더러울까 봐 그러는 건가.

“그 나름대로 안에 소독도 하고 항균 작용을 하는 천도 대어져 있어서, 그 생각보다 쾌적할 겁니다. 크흠, 뭐, 에드워드가 잘 씻지 않을 것처럼 생기긴 했는데 그래도 보기보다 깔끔한 녀석이기도 하고…….”

내 말을 들은 치앤츠리앤이 조금 더 차가워진 얼굴로 말했다.

“아니요. 저는 저쪽이 확실하게 알았으면 좋겠거든요. 제가 누구인지 말입니다.”

“아하.”

그쪽이셨구나.

하긴 나름대로 복수를 위해 저쪽에 가는 건데, 얼굴을 가려서야 복수의 의미가 없긴 하지. 그래도 말이다.

“우리는 저 도시 안에서 깽판을 칠 생각입니다. 벨츠머츠라는 이름을, 어쩌면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한국에서는 제법 유명한 우리지만, 중국에서는 아직 제대로 깽판을 친 적이 없다. 자연히 벨츠머츠라는 이름을 아는 이도 소수다. 하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완전히 그 생각은 바뀔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한다면…….

“그쪽도 벨츠머츠와 엮여서 이미지가 나락으로 갈 수도 있단 뜻입니다.”

어차피 은월회의 간부니, 평생 정부와는 척을 진 사이긴 하겠다만 그렇다고 언론에 얼굴이 팔려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범죄자이기에 얼굴을 더 숨기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치앤츠리앤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숨지 않을 겁니다.”

“뭐어, 정 그렇다면야…….”

나는 에드워드에게 다시 가면을 돌려줬다.

[으응? 안 쓴답니까?]

[응.]

[왜? 내, 내가 더러워서?]

역시 이쪽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군. 나는 가면을 쓴 채로 고개를 저었다.

어쨌거나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나는 한서현에게 눈짓했다. 스태프를 잡은 한서현의 마력이 거칠게 요동쳤다. 스태프에서부터 검게 뿜어져 나간 마력은 곧 실체를 이루었다.

검은 모래는 그대로 도시를 덮쳤다. 한순간에 푸르른 하늘은 검은 모래에 뒤덮였고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시작된 이 이상 현상에 깜짝 놀랐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황사, 아니, 흑사라니!

[이런!]

마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민간인이라도 한순간에 세상이 어두워졌으니, 이상을 눈치챘겠지.

나는 내 마력을 뭉쳤다. 검게 물든 하늘 한가운데에 번개가 꽈르릉 내리쳤다.

[게이트, 게이트인가?]

[일단 피해! 다들 도망쳐!]

지닝시에서 일어난 참사 때문인지, 이상을 눈치채자마자 자리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고 집 안에 틀어박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야 곤란하지.

나는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공중을 떠돌던 모래가 내 몸을 받쳐 주었다.

허공에서 뭉치는 의자에 앉은 채로 나는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자비를 베풀 때 다들 이곳에서 나가는 게 좋을 거야.]

해성회의 조직원이 있다는 빌딩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아니면, 모두 죽여 버린다?]

이 정도라면 모두를 쫓아내기에 충분하겠지?

내 말에 레이가 말했다.

━……대체 그 구린 대사는 어디서 배운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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