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화
#79 해성회 (1)
해성회를 찾아가는 일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로는 그놈들의 정보가 거의 퍼지지 않았다는 거.
해성회는 은월회의 간부인 치앤츠리앤조차 이 사건 전에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알려진 게 별로 없는 조직이었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해성회가 ‘지금의’ 해성회가 되기 전까지는, 은월회에서도 해성회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단다.
말했듯 기존의 해성회는 러시아 쪽과 친하게 지내고 내륙의 일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하지만 새로운 보스가 머리를 차지하며 기존의 방침을 전부 갈아엎고 모든 일에 손을 뻗기 시작했단 말이지.
그러면서도 해성회에 대한 정보는 퍼지지 않았다. 기가 막힐 정도의 정보 관리 능력이다.
두 번째로는 한서현의 중국어 능력 부재, 세 번째로는…….
“좀 먹어요.”
나는 치앤츠리앤에게 컵라면을 건넸다. 치앤츠리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입맛이 없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치앤츠리앤은 벌써 이틀이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치앤츠리앤은 각성자이고, 심지어 몸을 극한까지 단련시킨 사람이니 이틀 정도 굶는 건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 각성자라서 오히려 문제다. 특히 온몸의 근육이 특수하게 강화된 육체 강화계 쪽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비각성자에 비해 엄청난 칼로리를 소비한단 말이지.
제때 몸을 유지하는 칼로리가 들어오지 않으면 몸의 근육을 분해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단 말이지. 즉,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서서히 몸이 곪아 가고 있다는 거다.
━……그냥 근손실이 온다는 말 아니냐?
‘육체 강화계의 근손실은 그냥 근손실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야말로 피눈물이 나올 만큼 막대한 손해라고요.’
어쨌거나 이 꼴을 그저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가뜩이나 칙칙한 우리 그룹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을래.”
치앤츠리앤이 거절한 컵라면을 노리는 김재호의 눈치 없음에 내가 조용히 경악하고 있을 때쯤, 레이가 말했다.
━그 악영향이라는 게 김재호의 식탐이라면 맞는 소리긴 하구나.
“네 거 먹어.”
“다 먹었어.”
“……그래도 이틀을 굶고 있는 사람 거를 뺏어야겠어?”
“쟤는 안 먹는다잖아. 보스는 아까 밥 먹었으니까 배부르고, 어, 근데 컵라면에 이미 물 부었잖아. 면발 불으면 맛없어.”
젠장! 논리 정연하군. 내가 살아생전 김재호에게 논리로 밀리는 날이 올 줄이야. 결국 나는 컵라면을 김재호에게 건넸다.
그리고 다시 주머니에서 김재호 몰래 꿍쳐 두었던 초콜릿 바를 꺼내며 치앤츠리앤에게 말했다.
“이거라도 먹을래요?”
━어쩐지 치앤츠리앤이 너를 한심하게 보고 있는 것 같은데.
‘한심하게 보다뇨, 자신을 챙겨 주는 사람을 어째서?’
아쉽게도 치앤츠리앤은 내가 건넨 초콜릿 바 또한 거절했다. 이쯤 되니 더는 우길 수가 없겠다. 주섬주섬 초콜릿 바를 다시 안쪽 주머니에 넣는 내게 치앤츠리앤이 물었다.
“그쪽은 왜 해성회를 치러 가는 겁니까?”
“어, 전에 말하지 않았나요?”
“예.”
그러고 보니, 해성회가 애초에 우리 목표였다는 걸 말한 적이 없군. 우연찮게 저우샤오첸의 납치 사건이랑 엮여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였지.
“뭐, 그쪽이 저희가 탐내는 걸 가지고 있는 것 같거든요.”
난 딱히 해성회에 유감이 있진 않다. 다만, 그 녀석들이 사방에 뿌리는 똥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거기에 내가 탐내는 장인까지 데리고 있다니. 겸사겸사 그쪽을 칠 이유가 충분하다.
나는 치앤츠리앤에게 말을 덧붙였다.
“딱히 그쪽에 원한이 있어서 해성회를 노리는 건 아닙니다. 그냥 그쪽을 부숴야 할 이유가 있을 뿐. 자신들의 것이 아닌 걸 탐내다가 이 사달을 냈으니, 그쪽도 억울하진 않겠죠.”
내 말에 치앤츠리앤은 가만히 입술을 달싹였다.
“지난 이틀간,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음, 생각이 늘 나쁜 건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충분히 나쁘다. 차라리 머리를 비우고 행동하는 편이 그녀에게는 좋았을 거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어요. 적어도 저 두 사람 앞에서는, 조직에 있으면서도 나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두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죠.”
은월회에 속한 이상, 저우린과 저우샤오첸 두 사람 모두 범죄자나 다름없다. 내가 벨츠머츠에 아무나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리 가벼워 보여도, 우리 조직에 한번 발을 들이면 더는 돌이킬 수 없어지니까.
저우샤오첸이 스스로를 기만했던 것처럼, 치앤츠리앤도 스스로를 기만했다.
“제가 애초에 스승님에게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샤오첸 또한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겠죠.”
환상을 실체화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니, 어쩌면 대단한 헌터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애초에 그녀가 ‘약’이라는 수단에 집착하게 된 것도, 은월회에서 오고 가며 본 마약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테니.
“저우샤오첸이 이렇게 된 데에는 결국 제 영향이 제일 크지 않습니까?”
복수로 삶의 목표를 지펴 줬다고 생각했지만, 치앤츠리앤의 눈동자가 빛났던 건 잠시뿐이었다.
“죽진 않을 겁니다. 당신 말도 맞아요. 저는 해성회에 복수할 생각입니다. 그들은 샤오첸을 납치한 벌을 받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복수 이후에 치앤츠리앤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네놈이 잘하는 거 있지 않냐, 뭐라고 입이라도 털어라!
레이의 말에도 내 입은 여전히 꾹 닫혀 있었다.
내가, 그리고 쑤어하오주가 복수를 목표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 복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 내가 설록진을 죽이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쑤어하오주에게 죽어 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한 적이 있다.
이대로 설록진을 죽이고 나면, 그러면 죽어 버리자.
나 같은 놈은 더 살 자격이 없으니, 그냥 죽어 버리자.
결국 나를 살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설록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놈이 내게 순순히 죽어 주지 않은 덕분에 나 또한 이를 악물고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
복수가 끝나면, 그렇다면…….
“실수를 했다고 살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건, 도망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와 치앤츠리앤은 고개를 돌렸다.
차송진이 우리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사람은 실수에서 배운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실수에서 배워서,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게 정상이죠. 실수했다고 죽어 버리면, 그건 자기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인정하는 꼴이잖아요.”
그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어라,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건가.
“정말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오히려 이를 악물고 살아야죠. 이번에 치앤츠리앤 씨가 죽어 버리면, 그 샤오첸이라는 친구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돼 버리잖아요. 복수까지는 좋다 이거예요. 그래도 복수가 끝났으니, 나는 이제 필요가 없네? 그러니까 맘 편하게 죽어 버리겠다, 이러는 건 그냥 도망치는 게 아닌지…….”
그렇게 말을 쏟아 낸 차송진이 뒤늦게 정신을 차린 건지, 볼을 붉게 물들이며 덧붙였다.
“늘 도망치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어, 그래도 나도 이제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차송진의 말에 나는 눈을 빛냈다.
그래, 사람은 원래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지. 그 실수에 제대로 책임을 질 수 있냐, 없냐의 문제지.
나는 치앤츠리앤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요, 저 말?”
그녀와 눈을 맞대는 순간 알았다.
차송진의 진심은, 다만 내 가슴만을 두드린 게 아니라고.
그런데 말이다. 이 감동적인 상황에…….
━네가 먹던 컵, 컵라면 그릇에!
‘왜요, 재호가 내가 먹다 남긴 컵라면을 먹고 있습니까? 내버려 둬요, 그거 먹는다고 안 죽…….’
━바보 같은 놈아, 정신을 제대로 집중해 봐라.
레이의 말에 나는 눈을 찌푸리고 내가 놔둔 컵라면에 정신을 집중했다.
‘컵라면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물병 쪽인데요.’
확실히, 레이가 난리를 피울 만했다.
나는 재빨리 마력탄을 만들어 컵라면과 그 뒤에 있는 물병을 터트렸다.
“주제넘는 말을 해서 죄, 죄송합니다!”
그 갑작스러운 폭발에 깜짝 놀란 차송진이 재빨리 몸을 엎드렸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어.”
그놈들이 들고 다니던, 물이나 물그릇 쪽이 특별한 게 아니었다.
웬만큼 마력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약한 마력이었지만, 나는 눈치챘다.
━눈치챈 건 나다! 딴 일에 정신이 빠져 있는 네 녀석이 아니었다고!
어차피 머릿속을 같이 쓰는 사이에, 괜한 걸 따져대기는. 같은 배를 탄 사이라는 말도 쓰는데, 우리는 같은 몸을 탄 사이 아닌가?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니요?”
치앤츠리앤의 말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말 그대롭니다. 저 물병에서 낯선 마력이 느껴졌어요.”
그렇게 말한 나는 물병 쪽으로 다가갔다. 폭발로 날려 버려선지, 더는 그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을 매개체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가요?”
치앤츠리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에 치앤츠리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우리는 사람인 이상 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세상은 온통 물로 가득 차 있다. 고로, 물을 매개체로 한다는 건 이 사회에서 엄청난 강점이다.
어딜 가나 그들의 감시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그때, 김재호가 기가 막힌 해결책을 내놨다.
“그럼, 물을 다 먹자!”
문제는 기만 막힌 게 아니라 말문도 같이 막혀 버렸다는 거지.
“다, 다 먹어요?”
치앤츠리앤 또한 그 말에 당황해 순식간에 이성을 찾을 정도였으니.
“안타깝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을 다 먹어서 없앨 수는 없어.”
“노력하면 될 것 같은데.”
“음, 이건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딱 잘라 김재호의 말을 자른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능력이 대단한데요. 물을 매개체로 쓰는 거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 정도의 지배력이라니.”
당장 한서현의 모래도 10km를 벗어나면 더는 효력을 낼 수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먼 곳의 정찰은 조금 더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언데드들을 이용하는 거고.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말이 안 될 정도로 대단한 거다. 보통은 몇 km는커녕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지배력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런데 자신이 소환한 것도 아닌, 자연에 존재하는 물을 매개체로 쓰는 데 몇십 km, 아니, 몇백 km를 뛰어넘었다는 말이지.
적어도 A급, 어쩌면 S급.
“엄청난 물 능력자네요.”
“예.”
이런 녀석을 자기 휘하에 두고 있단 말이지, 그 해성회의 보스라는 놈.
도대체 어떤 놈일까.
지금 내가 해성회의 보스에 대해 아는 건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죽이고, 보스의 자리에 오른 패륜아라는 것밖엔 없다.
하지만 단순한 패륜아라고 보기에는 그 녀석, 사람 복이 너무 많다.
“그때, 저우샤오첸의 주변에는 세 명의 각성자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내가 능력을 감지할 수 있었던 건 한 명뿐이었지만, 나머지 두 사람 또한 각성자일 확률이 높다. 거기에 오늘 본 물 능력자까지.
범죄 조직에서 각성자를 거느리고 있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 정도로 등급이 높은 각성자가 줄줄이 나오는 건 확실히 드문 일이다.
게다가 해성회는 단순히 각성자만 확보해 둔 게 아니다. 다른 쪽에서는 장인을 동원해 아티팩트를 찍어 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에 비해, 그 전력은 상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지.”
그렇게 중얼거린 내가 치앤츠리앤에게 물었다.
“그 남자, 능력에 대한 건 모릅니까?”
“예. 이상할 만큼 소문이 나지 않았어요. 아마도, 입이 가벼운 자들을 살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이쪽도 어디 가서 꿀리는 전력은 아니지만, 어쩐지 쉬운 싸움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