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화
#78 악몽이 지나간 뒤 (3)
김명철은 정호산을 놓아주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품기에는 너무 그릇이 큰 녀석이었던 거지, 안 그래? 애써 아쉬움을 그렇게 털어 내며 웃었다.
헌터로서 받을 수 있는 좋은 대우도 다 버리고 이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녀석을, 제 욕심으로 잡을 수가 없어서. 마지막에 ‘만약 다시 헌터로 생활할 생각이 생긴다면 무조건 우리 길드로 돌아와야 한다’는 식의 미련을 부리긴 했지만, 그래도 김명철은 진심으로 정호산의 새 출발을 응원했다.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뒤에도 김명철은 정호산의 소식에 귀를 열어 두고 있었다. 그가 각범부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도, 그곳에서 신입으로 열심히 구르고 있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에야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이 기간이 지나면 제대로 자리를 잡고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믿었다.
오늘 황 비서가 말도 안 되는 말을 전해 주기 전까지는.
“어쩌다 그렇게 됐는데.”
황 비서는 김명철의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 바로 정호산의 ‘그날’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달받은 정호산의 최후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만큼이나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어떤 지원도 없이 혼자 안으로 들어갔다고?”
김명철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정호산이 어떤 놈인가. A급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던 놈이다. 그러면서도 매일 자신을 갈고닦는 것을 멈추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기도 했다. 그런 녀석을, 아무런 보호도 없이 안으로 들여보내서 결국 폭사하게 만들다니.
“시체도 온전히 남지 않아서 잿가루로 장례를 치렀대요.”
“그래도 장례식은 치러 줬네.”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정호산이 받았던 대우는 처참했다. 임금은 게이트에 출입하는 짐꾼만도 못하고 휴일 같은 것도 없었다. 매일 연장 근무에,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놈들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거야, 그 애를. 그 아까운 애를.”
정호산은 겨우 이런 곳에서 죽을 정도로 약한 놈이 아니었다.
다만, 모든 상황이 정호산을 몰아간 거다. A급 육체 강화계 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호산 또한 인간이었다. 쉴 틈도 없이 그 녀석을 몰아세웠으니, 언제고 이런 사고가 터졌을 거다.
“장례식장을 지킬 사람도 없었을 텐데.”
정호산에게는 별다른 가족이 없었다.
유일하게 그 녀석을 챙겨 줄 수 있는 친구는, 행방불명이 된 지 오래였다.
“현장에 있었던 동료가 자리를 계속 지켰대요. 휴가까지 내 가면서요.”
황 비서의 말에 김명철은 눈을 깜빡였다.
“저희도 뒤늦게 상황을 알고 부조 화환을 보내긴 했지만…….”
“그 녀석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
그리하여 S급 게이트를 공략하고 나온 김명철의 첫 비공식 일정은, 정호산이 잠들어 있는 납골당을 찾는 일이었다.
현장에서 범죄자를 쫓다 순직한 만큼, 정호산은 정부에서 만든 추모관에 잠들어 있었다.
추모관에 발을 들이자마자 김명철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생각보다 이곳의 규모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추모관에 발을 들이자마자 보이는 추모비에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정호산의 이름은 그 수많은 이름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곳에 적힌 모두가 각성자의 범죄를 막으려다 순직한 이들이었다.
“이렇게나 많았단 말인가.”
여태까지 김명철은 각성자 범죄가 그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각범부의 누군가가 순직했다는 뉴스를 봐도 ‘아아, 안타까운 일이네.’ 하는 식의 감상을 남긴 게 전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그만의 일로 바빴기 때문이었다.
당장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는 것, 게이트 공략 준비, 길드를 운영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그에게 자신에게 닿지도 않을 범죄와 그로 인한 피해는 딴 세상의 이야기였다.
한 마디로 김명철은 무관심했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진짜 그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을 피했다.
그리고 그 무관심 속에서 이 세계를 위했던 영웅들은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스러졌다.
나는 이미 내 몫의 일을 잘 해내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 세상 정도는 알아서 잘 돌아가야 하잖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황 비서는 말했다.
지금의 각범부는 단순히 무능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이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고.
“여태까지 정치든, 뭐든. 세상이 돌아가는 데에 참견하는 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는 이 모든 일의 방관자였다.
“이제야 호산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겠어.”
친구를 잃고 나서, 어째서 그 녀석이 길드를 버리고 각범부로 가게 되었는지.
“확실히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겠어.”
정호산의 죽음은 방관자였던 누군가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 * *
에드워드와 만날 수 있었던 건, 그날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에드워드는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졌다는 단어가 딱 맞는 모양새로 우리에게 귀환했다.
[다녀와씁니다아.]
━제대로 말을 끝맺지도 못할 만큼 지쳤구나.
‘아무리 주변에서 마력을 끌어다 쓴다고 하더라도 체력은 그대로 소모되었을 테니까요.’
사실 해가 거의 져 가는 지금까지 버틴 게 신기할 정도다. 발음이 줄줄 새는 인사를 한 에드워드의 몸이 앞으로 엎어졌다. 그대로 기절한 거다.
“죽었나?”
김재호는 손가락으로 콕콕 에드워드의 등짝을 찔렀다. 에드워드는 일어나지 않았다.
“서현아, 그걸로 만들어 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직 안 죽었다고!”
나는 위험한 소리를 하는 김재호를 끌어내고 에드워드를 바로 눕혔다.
김재호가 죽었냐고 물어본 것도 당연하긴 하다.
━몸에 마력이 거의 남지 않았는데?
‘완전히 탈진한 거죠.’
에드워드는 그 등급에 비해 가뜩이나 몸에 잔존 마력이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 잔존 마력조차 완전히 말라 버렸다.
음, 적어도 며칠 정도는 쉬게 둬야겠군.
━어째 곧바로 이 녀석을 부려 먹고 싶었다는 말로 들리는데.
‘실전의 감각이 살아 있을 때만큼 훈련하기 좋은 때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상태에서 훈련을 시켰다가는, 미련 없이 저세상으로 가 버릴 것 같으니 아쉽지만 그 생각은 취소해야겠다.
━그래도 마나 회로의 상태가 좋은데.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에는 확실히 전보다 마력 운용이 늘었을 거다.
‘여전히 바깥에서 마력을 받아 오긴 해야겠지만요.’
흠……. 뭔가 배터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각성자와 페어를 이루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우리 쪽에도 배터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가 둘이나 있긴 하지만 아쉽게도 하나는 너무 비협조적이고, 한쪽은 협력의 단어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성격이 더럽다는 말과 머리가 나쁘다는 말을 돌려 돌려 하는구나.
‘쩝. 보스가 돼서 애들 흉을 보는 건, 모양이 빠지잖습니까.’
나는 기절한 에드워드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쨌거나 에드워드도 확보했겠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우리의 목표를 찾아 이동할 때다.
“해성회 본부, 어디에 있으려나.”
내 중얼거림에 한서현이 말했다.
“지금부터 찾아볼게요.”
“어머, 들렸어?”
“그야, 안 들릴 수가 없게 사방에 쩌렁쩌렁하게 소리쳤잖아요.”
━맞아, 그렇게 소리를 질러 놓고 ‘중얼거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되지.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이렇게 말해야지.
나는 멋쩍음에 헛기침을 내뱉었다.
어쨌거나, 이제 본격적으로 해성회 그놈들의 뒤를 쫓아 볼 때다.
* * *
“죽었어, 전부…….”
주황색 머리를 길게 땋아 뒤로 묶은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녀의 말을 들은 남자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한쪽으로 길게 내려온 앞머리를 젖히며 남자가 말했다.
“전부 죽었다고, 전부…….”
“그 여자애를 데리고 오는 데에 세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말했잖아!”
“충분했어. 네가 준 정보가 맞았다면 말이야.”
남자, 첸륜의 말에 여자, 유마는 움찔 몸을 떨었다. 유마는 불안한 듯 눈을 굴렸다.
“그 여자의, 능력은, 절대로…….”
“내게 정확한 정보를 물어다 주는 게 네 일이야. 그것도 제대로 못 해 놓고 나를 탓해서는 곤란해. 그 세 사람의 죽음은 모두 네 탓이라고.”
“으흑!”
첸륜의 가차 없는 말에 유마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당장에라도 눈물이 흐를 것처럼 그렁그렁해진 그녀의 눈을 보며 첸륜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손가락이 유마의 눈가를 훔쳤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울면 안 되지.”
“끄흑!”
유마의 볼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부드럽게 그녀의 뺨을 쓰다듬은 첸륜이 말했다.
“우리를 향해 오는 놈들이 있다고 했지?”
그 질문에 유마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영웅도, 그놈들 중에 하나라고?”
붉은 영웅. 그 웃기지도 않은 이름이 오늘 내내 뉴스를 차지했다. 지닝시에서 일어난 일은 대대적으로 전파를 탔다. 각성자의 폭주로 사고가 생기는 일은 심심찮게 있었으나 대도시의 절반이 파괴될 정도로 폭주가 크게 번진 상황은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지닝시의 참사는 중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참사 사이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바로, 붉은 영웅이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붉은 적발을 한, 외국인. 그는 거침없이 불타는 건물로 들어가 생존자들을 구출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인지, 그는 그 어떤 부상도 없이 수없이 많은 이를 구출했다. 남자의 활약은 CCTV에, 생존자들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다.
홀연히 나타나 사람들을 구한 그 남자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은인을 잊지 않았고 어떻게든 보상을 하겠다며 그에 대한 제보를 방송사에 이어 나갔다.
지닝시의 참사에 나타난 이 영웅을, 정부에서도 띄워 주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인임에도 이 참사를 덮을 가장 좋은 스토리는 바로 끝내주는 영웅을 내세우는 것이었으니.
그렇게 떠들어 대는 이들은 모를 거다.
그 붉은 영웅이라는 놈이, 범죄 조직과 엮인 더러운 놈이라는 걸.
“그놈들의 얼굴을 보여 줘.”
첸륜의 말에 유마는 물로 다섯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 냈다.
“이들이야, 우릴 쫓아오고 있는 사람들.”
다섯 사람의 생생한 얼굴을 보며 첸륜은 눈을 빛냈다.
“얼마든지 오라고 해. 이번 일로 열이 받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