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화
#77 꿈에서 깨야 할 때 (6)
“저우샤오첸의 잘못이라니요?”
치앤츠리앤의 말을 들은 차송진은 그녀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치앤츠리앤은 가라앉은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사고였습니다. 샤오첸은 무지했으니까요.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일반인에게는 해가 될지, 몰랐으니까요.”
그동안 저우샤오첸의 능력은 일반인들에게 해가 되지 않았다. 혹여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몸이 조금 처지는 정도였다. 마나 중독 현상도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뒤, 샤오첸은 종종 린에게 환상을 보여 주었죠.”
그건 치앤츠리앤이 그들과 만나기 전부터, 샤오첸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저우린은 딸이 보여 주는 환상이 아주 멋지다며 그녀를 칭찬했다. 저우샤오첸은 그 칭찬에 언제나 활짝 웃었다. 그 옛날을 추억하며 치앤츠리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샤오첸이 만드는 환상은 위험하지 않았어요, 언제나 행복한 장면만을 보여 주었으니까요.”
나이가 들어 가며 저우샤오첸은 자신의 재능을 약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의도는 좋았다. 사람들이 마약에 중독되는 것보다, 자신의 환상을 기분 좋게 즐겼던 것처럼 그렇게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으니까.
“노력 끝에 저우샤오첸은 자신의 환상을 물리적으로 추출하는 데에 성공했어요.”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일이다.
몰랐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였다.
“처음 그녀가 만들어 낸 약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죠. 환상이 강한 만큼 그 약에 깃들어 있던 마나의 농도도 높았던 거예요.”
“마나 중독…….”
한서현이 괴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나 중독 현상을 겪었던 한조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만큼 한서현은 그 병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알고 있었다. 각성자인 저우샤오첸과 달리 그녀의 어머니인 저우린은 일반인이었다.
“설마…….”
“샤오첸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약을 저우린에게 건넸어요. 자신의 능력이 자신의 어머니를 해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거죠.”
저우샤오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우린을 자신이 만들어 낸 독에 중독시켰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모든 게 너무 늦어 있었죠.”
처음 저우린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깨달은 사람은 치앤츠리앤이었다. 오랜만에 그녀와 함께 검을 맞댄 그녀는 저우린의 몸에 생긴 이상을 바로 알아차렸다.
저우린은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이라며 웃었지만, 치앤츠리앤은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를 끌고 병원에 가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날 저우린이 치앤츠리앤에게 꺼낸 말은 이랬다.
“비밀로 하자.”
저우린의 말에 치앤츠리앤은 고개를 저었다.
“기만이 될 거예요. 샤오첸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야죠.”
“일부러 이런 것도 아니잖아.”
저우린은 치앤츠리앤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첸첸이 이 사실을 알면 자기 자신을 원망할 거야. 자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치앤츠리앤은 저우린의 간절한 부탁에도 여전히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샤오첸이 만든 약은 위험해요. 많은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고요.”
“지금부터 조심하라고 하면 돼.”
“어떻게요?”
“우리 첸첸은 똑똑하니까,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내가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걸 알면 모든 걸 포기하겠지.”
저우린은 자신의 딸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일이면 몰라도 저우린을 해친 일을, 저우샤오첸은 용서하지 못할 거다.
“우리 첸첸만큼은, 자신의 꿈을 이뤘으면 좋겠어. 나하고는 달리.”
결국 그 말에 치앤츠리앤은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우린의 소원대로 치앤츠리앤은 저우린의 병을 저우샤오첸에게 숨겼다. 저우린은 그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요양을 하는 것으로 되었다.
“저는 약속을 지켰어요. 하지만…….”
문제는 저우샤오첸이, 저우린의 말대로 무척이나 똑똑하다는 거였다.
실험을 이어 나가던 저우샤오첸은 자신의 약의 문제를 눈치챘고, 저우린이 병든 이유가 자신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결국 저우린의 뜻과는 달리 저우샤오첸은 모든 비밀을 찾아냈고,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저우린과 저우샤오첸은 연을 끊었어요. 저우린의 상태가 정말로 심각해지기 전까지 두 모녀는 1년간 연락도 제대로 하지 않았죠.”
하지만 저우린의 마지막 순간, 결국 저우샤오첸은 고집을 꺾고 그녀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 자신이 잘못했으니, 제발 죽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마나 중독 현상은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었다. 저우린은 병색이 완연해진 얼굴로 저우샤오첸에게 속삭였다.
이 모든 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 너 스스로를 용서하라고.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던 차송진이 치앤츠리앤에게 물었다.
“자신이 만들던 약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계속해서 약을 개발했다고요?”
“린의 유언은, 샤오첸이 하던 일을 계속해서 하는 거였어요. 포기하지 말아 달라, 내게 말한 대로 네 꿈을 이뤄 달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걸 위해서, 샤오첸은 자기 자신을 속이기 시작했어요. 도저히 어머니를 죽인 자신을, 자신이 만든 약을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대신, 모든 사실을 잊기로 한 거죠.”
“그, 그러니까 부작용을 잊었던 것처럼요?”
차송진의 말에 치앤츠리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우샤오첸의 환상에서 저우린은 자신이 만든 약 때문에 죽은 게 아니었다. 교통사고, 불운한 교통사고 때문에 어머니를 잃게 된 거다. 치앤츠리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우린의 ‘사고’를 언급하는 저우샤오첸을 바라보며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에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저우린 또한 저우샤오첸이 자신을 원망하며 속에서부터 곪아 가는 것보다 지금을 좋아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때 제가 무언가를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요?”
그때부터 저우샤오첸은 자기 자신을 속이기 시작했던 거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약을 먹으며, 아름다운 환상으로 자신을 속였다.
모든 건 완벽하다고.
“지금쯤, 그 약의 효과가 모두 떨어졌다고 했잖아요. 그, 그러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을 모두 깨달았겠죠.”
치앤츠리앤의 얼굴이 구겨졌다. 저 안에서 마력 폭주가 일어났다는 말에, 치앤츠리앤은 곧바로 저우샤오첸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묻어 두었던 기억을 모두 꺼냈다면, 그녀가 정상일 리가 없었으니까.
“제발, 샤오첸을 구해 주세요.”
그 말에 한서현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내가 왜 그 거짓말쟁이를 구해 줘야 하는데?”
“서현아!”
“맞잖아, 거짓말쟁이. 자기 부주의로 가족을 죽게 만들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도망친 겁쟁이. 그래 놓고는 달라진 것도 없이 똑같이 잘못을 저질러서, 지금은 모두를 위험에 빠트렸지. 그런 사람을 왜 구해 줘야 하는데?”
치앤츠리앤은 그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있잖아, 자기 잘못에서 도망치는 자식들이 제일 싫어.”
“제 잘못입니다. 제가, 제가 제대로 대처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도 말이야, 그런 말을 해 봤자 지금 전혀 도움이 되는 게 없다고.”
차송진은 짜증을 내는 한서현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진정해. 네 말대로 지금 짜증을 내도 도움이 안 되잖아.”
“……알겠어.”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사방을 짓누르고 있던 마력장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둔감한 차송진까지 알아챌 정도로.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김재호가 그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서현도 마찬가지였다.
“들어가야겠어.”
“저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저, 저 안으로 들어가면 다 잠들어 버린다고 하지 않았어?”
차송진의 말에 한서현은 대꾸도 없이 사냥개를 불렀다. 공중에서 튀어나온 검은 사냥개는 거침없이 마력장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아, 이제는.”
보스가 안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더는 저 안으로 들어가도 잠이 들지 않는다.
여태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한서현이었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바뀐다.
“가자, 재호 형.”
검은 독수리가 공중에 나타났다.
“어, 보스가 우리더러 여기에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
“우리가 저 안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들어갈 수 있잖아?”
“어, 그거야, 그렇긴 한데.”
“갈 거야, 말 거야.”
한서현의 말에 차송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에 혼자 남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그때 뒤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같이 갈 수 있을까요?”
치앤츠리앤의 말에 한서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제발요, 부탁드립니다.”
“가서 뭘 할 건데.”
“뭐든요.”
잠시 고민하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던 한서현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검은 독수리 위에 치앤츠리앤까지 태운 뒤, 한서현은 독수리를 위로 띄워 올렸다.
목적지는 가장 강한 마력이 뭉쳐져 있는 중심지.
* * *
“끄윽!”
나는 내 다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마력을 가까스로 피해 냈다. 조금만 늦었다면 키가 10cm는 작아질 뻔했다. 음, 지금도 그리 인기가 많진 않지만 그랬다간 정말로 인기 꽝이 될 뻔했다고.
━농담할 때냐!
‘나름 진지한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어디가!
나는 마력으로 실드를 만들었다. 내 등을 노리고 날아들던 마력을 겨우 막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충격으로 내 몸이 앞으로 쏠리는 건 막지 못했다.
“큭!”
풀숲에 처박히기 무섭게 풀숲이 날카롭게 변해 피부를 찔러 댔다.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지만, 뺨과 입고 입던 코트가 너덜너덜해지는 건 막지 못했다.
나는 뚫린 뺨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피가 철철 흐르는군. 나는 입속에 고인 피를 퉤, 하고 내뱉었다.
━원래 저 여자애의 능력은 환상이라고 하지 않았었냐! 이렇게 무식하게 강하다는 말은 없었던 것 같은데.
‘저우샤오첸의 환상을 현실로 구현한 겁니다. 적어도 이 풀밭은 저 사람의 영역이라는 거죠.’
트릭스터보다도 최악이다. 적어도 그쪽은 정신만 뒤흔들었다고! 그놈의 환상은 이런 식으로 현상계에 관여할 수 없었단 말이다.
━언제까지 공격을 이렇게 피할 수만은 없다.
레이의 말대로 이미 지친 몸으로 이곳에 들어온 터라, 전투를 길게 이어 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공격하려고 해도…….’
나는 공중에 마력으로 얼음 창을 만들었다. 하지만 저우샤오첸의 눈빛이 닿자마자, 얼음 창은 나비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그러니까 이게 문제다.
잠들어 있을 때도 한서현의 지배력을 뺏어 올 정도로 강한 힘을 지녔던 그녀다. 자신의 공간을 만든 상황에서 내가 만든 마력은, 쉽사리 그녀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내 몸 근처 10m까지는 괜찮지만, 조금이라도 거리가 멀어지면 바로 주도권을 뺏겨 버린다. 그러니 원거리 공격은 꽝. 그렇다고 접근하기에는, 그녀의 근처로 다가가는 과정 자체가 험난했다. 지금도 조금 더 가까이 가려다가 호된 공격을 받았으니까.
적어도 이 풀밭 안에서 그녀는 절대적인 창조자였다. 그렇다고 이 환상 안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크윽.”
풀밭의 경계선은 마치 단단한 벽이 세워진 것처럼 마력의 틀로 막혀 있었으니까.
“하아.”
나는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휴전하지 않을래?]
그 말에 다시 한 번 내 몸을 노린 마력이 날아들었다.
[좋아, 싫다는 뜻으로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