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6화
#77 꿈에서 깨야 할 때 (3)
나는 에드워드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 사방을 살펴보았다. 안타깝게도 첫 시도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이 지닝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만 깨달을 수 있을 뿐이었다.
[……세상이 멸망한 것 같아.]
에드워드의 중얼거림에 내가 말했다.
[글쎄, 내가 아는 멸망이라는 놈은 이보다 훨씬 소란스러웠는데.]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옥상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마침내 마력이 뭉쳐져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다. 그 건물을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엉망이 된 4차선 도로를 넘어, 불타고 있는 건물 사이를 지나가야 했으니까.
내게 물을 다룰 수 있는 재능이 있긴 하지만, 화재를 진압하는 건 무리다. 내가 소방차도 아니고 작은 불이라면 몰라도 저렇게 건물 하나를 잡아먹을 정도로 큰불을 어떻게 끄냐고.
저 안에 있을 사람들이 걱정되긴 하지만, 일단은 무시할 수밖에. 바닥으로 내려온 나는 옆에서 비틀거리는 에드워드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괜찮아?]
벌써 이 안으로 진입한 지 3시간이 넘어간다. 에드워드의 얼굴이 창백했다. 이론상으로는 무한히 힘을 가진 셈이지만, 마력을 이토록 혹사하는 게 괜찮을 리 없었다.
‘저하고 훈련했을 때도 3시간이면 지쳤죠.’
지구력이 부족하다니까. 나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내가 자신을 한심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에드워드가 괜히 눈에 힘을 주고 외쳤다.
[아직 멀쩡해!]
━내가 봐도 좀 흐물흐물해진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중간에 기절하면 곤란해지는데. 하지만 이미 너무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다음이다. 최대한 버텨 주길 바랄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한시라도 빨리 저 건물 안으로 진입해야 했다.
[조심해.]
나는 에드워드와 함께 부서진 자동차를 넘었다. 멀쩡하던 도로는 거의 다 무너진 다음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치솟은 불길로 인해서 주변은 후덥지근할 정도로 더웠다. 나는 겉옷을 벗어 허리에 맸다. 얼굴에서 흐른 땀은 습도를 높여 가면 안을 완전히 찜통으로 만들었다.
‘젠장, 다음에는 이 안에 에어컨이라도 달아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맥가이버 칼 같은 걸 달아 놓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네.
그나마 내 사정은 나았다. 구식 버전의 가면을 쓴 에드워드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턱 끝에 맺힌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으니까.
[허, 억, 허억.]
와중에 장애물들을 피해 몸을 거칠게 움직이기까지 하니, 숨이 턱까지 닿을 지경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 나가떨어질 거다.
[어차피 목격자도 없는데, 가면 벗을래?]
[그, 그래도 돼?]
[그래, 사람들이 깨어나면 바로 쓸 수 있도록 손이 닿는 가까이에 두라고.]
에드워드는 내 말에 반색하며 바로 가면을 벗었다. 온통 땀범벅이었다. 가뜩이나 머리카락도 빨간색인데, 얼굴까지 시뻘게서는, 홍익인간 그 자체로군.
━그냥 새빨간 사람을 홍익인간이라고 부르는 건가?
사자성어를 잘 모르는 레이는 헛소리를 해 댔다. 에휴, 저 타 차원 꼰대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온몸이 익어 가는 고통을 삼켜 내고 있는 우리에 대해서 뭘 알겠나.
━뭔가 불쾌한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정말이지, 머릿속을 혼자 썼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제는 생각 하나하나도 조심해서 해야 하다니.
━어이, 내 말 안 들리나?
레이의 말 사이로 에드워드의 말이 끼어들었다.
[보스는 안 벗어?]
[나는 아직 버틸 만해서.]
━버틸 만하기는.
레이의 말대로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가면을 벗지 않을 방법이 있거든. 나는 에드워드 몰래 가면 안쪽으로 바람을 불어넣었다. 으음, 시원하다.
━치사한 놈!
‘이렇게라도 버텨야죠.’
치사하다니. 내 능력을 나를 위해서 쓴다는 게 뭐가 나빠? 그렇게 투덜거리며 에드워드와 함께 장애물을 피해 몸을 움직일 때였다.
내 우측에 있던 인도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이 시작되었다. 나는 실드를 둘렀다. 폭발한 보도블록, 그 보도블록에 설치되어 있던 화단 따위가 온몸에 날아들었다.
“크윽!”
나는 폭발의 충격으로 몇 바퀴를 굴러 바닥에 처박혔다.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인도가 폭발하며 날아든 보도블록이 가슴팍을 때리고 지나갔기 때문인가. 다른 곳도 쑤셔 왔지만, 갈비뼈가 모두 부서지기라도 한 것인지 숨을 쉴 때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색색 숨을 몰아쉬며 나는 에드워드를 애타게 불렀다.
[에, 에드워드, 괜찮아?]
내 목을 통해 나온 목소리는,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처럼 작았다. 젠장, 폐가 찌그러지기라도 한 것인지, 뭔지. 나는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드워드!]
이제야, 조금 사람이 말하는 것 같군.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답은 없었다. 크게 다친 건 아닐까? 걱정이 된 나는 마력을 일으켜 흙먼지를 날려 보냈다. 그제야 상황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인도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도로 밑에 묻혀 있던 가스관이 폭발을 일으켰는지 폭발은 길을 따라 진행이 되었고 길가는 물론이고 그 주변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까지 모두 폭발에 휩쓸렸다. 일차적인 폭발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주차돼 있던 차량이 엎어지며 연료통이 깨져 사방으로 휘발유가 퍼졌다는 거다.
사방에 진동하는 기름 냄새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젠장, 이거 좋지 않은데요.’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조심해라! 갈비뼈가 부러졌으니까.
어쩐지, 가슴팍이 뒈지게 아프더라니. 나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부서진 자동차에 몸을 기댔다. 내 몸에 깃든 마나가 움직이며 부러진 뼈를 치유했다.
나는 난장판이 된 곳 한가운데에 서 있는 에드워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에드워드는 멀쩡해 보였다. 에드워드는 아까 우리가 지나가던 그곳, 그 인도에 그대로 서 있었다. 자신을 덮친 폭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모두 흡수해 흩어 내는 데 성공한 거다.
“크…….”
내가 바라던 게 저런 모습이긴 하지만, 먼지투성이에 엉망진창이 된 나와는 달리 멀쩡한 꼴을 보니 얄미운데.
[에드워드!]
내 부름에도 에드워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고막이 나가기라도 한 건지, 뭔지.
나는 비틀거리며 에드워드에게 다가갔다. 에드워드의 근처에 선 나는, 아무런 말도 없는 에드워드를 대신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오, 보스 괜찮아요? 그럼! 물론이지. 걱정해 줘서 고마워!]
내 원맨쇼에도 여전히 에드워드는 내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크, 큰일 났어.]
창백해진 표정의 에드워드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내 갈비뼈가 부러진 것 말고도?]
나는 끙끙거리며 내 갈비뼈에 손을 얹었다. 막 뼈가 붙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통증이 대단했다.
[저길 봐.]
에드워드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유모차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못해도 그 수가 열은 될 것 같았다. 그 뒤로는 넓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상황을 이해한 나는 곧바로 욕을 내뱉었다.
“젠장.”
시원하게 트인 카페 유리창 안쪽으로 잠든 아이들을 꼭 끌어안은 젊은 부부들. 부부 동반 모임이라도 나온 건지, 뭔지.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주변에서 시작된 불은 차에서 흐른 휘발유를 타고 카페 앞까지 번지고 있었다.
벌써 매캐한 연기가 카페 안으로 스며들고 있는 상황,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연기에 질식해서 죽을 거다. 아니면, 숯덩이가 되든가.
두 블록만 더 가면,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장본인을 만날 수 있다. 그 사람을 끌어내리지 않는 한, 이 도시의 문제는 끝나지 않을 거다.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거야, 어렵지 않다. 하지만 1층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면, 2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은 버리나?
여태까지 우리가 버려 온 사람들은?
감성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하지만…….
애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 에드워드가 말했다.
[나도 알아, 아는데! 저기에 있는 건 아기들이잖아! 부, 불만 끄면…….]
[저 불길을 잡을 수는 없어.]
이미 불길은 주변 전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불길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거기에 또 언제 추가적인 폭발이 있을지 모른다.
이곳까지 달려오며 나는 에드워드와 함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수없이 지나쳤다. 여태까지 에드워드는 내 말을 잘 따라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에드워드를 보며 말했다.
[저 사람들을 구해.]
[어?]
[뭐해, 빨리 저 사람들을 구하러 가라니까?]
내 말에서 무언가를 느낀 에드워드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같이 안 가?]
나는 고개를 까닥하며 말했다.
[나는 저기로 가야지.]
[혼자서 가겠다고?]
[그래.]
나도 저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구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저 사람들이 걱정되어 자리를 쉽게 뜨지 못하겠지. 이 주변은 모두 불구덩이니, 안전한 곳까지 저들을 옮기는 데에도 한참이 걸릴 거다.
그러면 결국 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마력장을 해결하는 시간이 더 걸릴 뿐이다.
한 번 발목을 잡힌 순간, 모든 게 늦어진다.
나는 희생을 안다. 대를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다르다.
[가.]
나는 에드워드의 등을 밀어 주었다.
[가고 싶잖아, 구하고 싶잖아.]
에드워드를 말릴 생각은 없었다.
하고 싶은 걸 해야지.
[고마워!]
그렇게 내게 말한 에드워드는 거침없이 불길 속으로 들어섰다. 불길은 에드워드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 뿐이었다. 지친 모습도 없이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선 그를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나한테 고마울 필요가 뭐가 있어?”
결국, 사람들을 구하기로 한 건 네 선택인데.
안타깝게도 에드워드의 귀에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자신을 불사를 것 같은 불길 안에서도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 불꽃을 막아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짧은 숨을 내쉬었다.
역시 저 녀석은…….
짧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에 발을 붙잡힐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저 망할 놈의 마력장을 해결해야 했으니까.
━서둘러라, 왠지 저 안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력의 흐름에 누구보다 예민한 레이의 말이다.
나 또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느끼지 않았는가.
‘점차 마력이, 무거워지고 있어요.’
그 말은, 이 마력장의 폭주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