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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85화 (285/352)

제285화

#77 꿈에서 깨야 할 때 (2)

한서현은 직접 여기까지 올 수 없었지만, 우리를 위해 검은 모래로 독수리를 만들었다. 독수리에 탄 우리는 무사히 지닝시(市) 상공에 진입할 수 있었다.

지닝시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근처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저들은 누구지?]

에드워드의 질문에 내가 짧게 답했다.

[지닝시의 이상을 눈치챈 게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거지.]

나는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래가 아래로 움직이는 걸 바라보았다. 이곳까지 함께하지 못한 한서현이었지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한서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그쪽에 몰려 있는 건 중국 길드에서 파견을 나온 각성자들이에요.]

“중국 길드에서 파견을 나왔다고?”

이런저런 이권에 얽혀 일이 터져도 쉽사리 길드원을 파견하지 못하는 한국의 길드들과는 달리 중국의 길드는 정부의 요청에 곧바로 인원을 보내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 요청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따지자면 2군 정도의 각성자를 보내오긴 했다만 개중에는 제법 능력치가 괜찮은 각성자도 있단다.

[그래 봤자 지금 이 일을 해결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아 보이지만요.]

“그래?”

[예, 벌써 두 개 조를 안으로 투입했는데 연락이 모두 끊겼다는 모양이거든요. 지금 당장은 각성자를 투입하기보다는 드론으로 안의 상황을 살피자는 말이 나왔어요.]

드론이라. 그게 저 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정밀한 기계는 고농도의 마나를 길게 버텨 내지 못한다. 아티팩트가 아닌 이상, 한계가 있다는 거다.

덕분에 그들이 건질 수 있는 장면은 도시의 초입을 촬영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장면만으로도 안의 상황이 얼마나 기이한지를 판단하기에는 충분했다고 한다.

[모두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대요. 투입된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고요.]

“죽은 거야?”

[아니요, 그보다는 잠든 것에 가까운 것 같대요. 실제로 안쪽으로 침투한 각성자들이 보내오는 바이털 사인은 안정적이래요. 문제는…….]

퍼어엉, 멀리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폭발은 멀리에서도 관측이 가능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 어떤 준비도 없이 갑자기 잠들었잖아요, 저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깨달았다.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잠이 쏟아진다면? 의자에 앉아 있던 상황에는 그 잠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 잠이 쏟아질 때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면, 요리하던 도중이라면?

그 답이 바로 지닝시에 펼쳐져 있었다.

폭발은 연이어 일어났다. 짙은 회색의 연기가 자욱하게 도시를 뒤엎고 있었다.

[잠이 사람들을 죽이지 않더라도, 저 불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거에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연기를 바라보며 눈을 찌푸렸다.

“젠장.”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는 심각해졌다.

최악은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인원을 따로 안으로 보낼 수도 없다는 거다. 결국, 저 마력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두가 다시 잠들어 버릴 테니까.

중국 정부는 이쪽으로 로봇 부대를 보내기로 했다는 모양이지만, 그때는 너무 늦겠지.

[보스.]

한서현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보스 혼자만으로는 무리예요.]

“알아, 나 혼자 무리라는 거. 그래도 이 마력장을 만들어 낸 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겠냐.”

어떻게든 도시를 뒤덮은 마력장만 해제할 수 있다면, 지금 저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만 있는 인원들이 도시 안으로 투입이 될 거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해 낼 수 있겠지.

[아무도 안 알아주잖아요.]

“누가 알아주는 게 중요하냐.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중요하지.”

따지고 보자면, 결국 이 또한 내가 저지른 일의 나비 효과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한 번 해결해 보려는 노력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거지.

━내가 보고 있잖느냐. 네가 하는 일들. 솔직히 말해서 이번 일을 모르는 척 넘어갔다면, 나는 네게 크게 실망했을 거다.

‘딱히 당신한테 칭찬받으려고 온 건 아니거든요?’

레이의 말에 나는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확실히 레이가 삐친다면 앞으로가 고단해지긴 할 터다.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투덜거렸을 테니까.

[안으로 모래를 들여보내 봤는데, 확실히 안쪽으로는 진입이 버거워요.]

“언데드들은 바로 연결이 끊겼다면서?”

모래 또한 그럴 줄 알았는데? 내 질문에 한서현이 답했다.

[예, 하지만 모래는 엄밀히 말해 제 소유가 아니라서 그런지 유지가 가능해요. 저쪽에서 지배력 싸움을 집요하게 걸어오지만요.]

하긴, 원래 저 모래는 예브리카의 것이었지. 한서현이 지배력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거고. 이 마력장 또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흐음, 여러모로 까다롭군.

소유권을 가진 언데드들은 ‘재워’ 버리고, 모래는 소유권을 ‘뺏어’ 버린다라.

정말 저우샤오첸이 이토록 강력한 마력장을 만들 수 있는 각성자였을까.

━폭주라 그럴 수도 있지. 생명력을 불태우는 셈이니까 말이다.

‘예.’

확실히 이 정도로 마력을 뿜어냈다면, 저우샤오첸은 정상일 수가 없다. 목숨만은 건졌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검은 독수리는 인적이 뜸한 곳에 내려앉았다.

[계속 지켜보고 있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하고…….]

“알겠어.”

나는 조심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독수리에서 내려선 나는 에드워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력장은 우리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는 에드워드를 향해 영어로 말을 건넸다.

[정말로 자신 있어?]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에드워드는 조심스레 마력장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의 주변으로 마나가 사납게 움직였다. 주변을 감싼 마나를 흡수해야 한다. 내 조언을 떠올리며 에드워드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으로 침투하려는 마나를 흡수했다.

그렇게 얼마가 흘렀을까.

[괘, 괜찮은 것 같아.]

에드워드는 두 눈을 깜빡이며 나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참나.]

그 모습을 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심은 금물이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한 번 공격을 흘리면 그만인 때와 달리, 마력장은 공기처럼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펼칠 만큼 자신의 능력에 익숙해지지 않은 때이니, 확실히 주의해야 했다.

저러다가 주의력이 흩어진다면, 갑자기 정신을 놓을 수도 있으니까.

[나도 알고 있어.]

나는 잔뜩 긴장한 기색의 에드워드와 함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도시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이 안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도로에 뒤엉켜 있는 자동차를 보며 에드워드가 앓는 소리를 냈다.

[오, 맙소사.]

엉망으로 구겨진 자동차 안에서는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화물차와 맞부딪친 승용차는 가망이 없었다. 그 주변으로도 자동차들이 줄줄이 부딪쳐 있었다. 4차선 도로는 이리저리 엉킨 자동차들로 엉망이었다.

눈에 보이는 차량만 수백 대.

[저기 살아 있는 사람이 보여!]

당장에라도 그곳으로 뛰어들려는 에드워드를 향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마력장을 만든 사람을 찾는 게 우선이야. 그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어차피 다 죽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저 사람들을 밖으로 옮기면, 몇 명은 살릴 수 있겠지. 그래, 몇 명. 하지만 그 사이에 수만 명이 죽어갈 거야.]

[그러니까 그냥 두고 가겠다고?]

[원한다면 넌 여기에 남아도 좋아.]

내 말에 에드워드는 갈등하는 표정을 짓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좋아, 앞으로 가자고.]

나는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에드워드를 계속해서 살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잘 버티는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주변에 퍼진 마력은 에드워드의 근처에서 맴돌다 그의 몸에 흡수되었다. 흡수된 마력은, 에드워드를 통해 다시 방출되었고 말이다.

에드워드의 몸을 통해 빠져나온 마력은 이 주변을 덮고 있는 마력과 달리 산뜻했다.

‘음, 움직이는 공기청정기, 아니, 마력 청정기 같은 느낌이네요.’

확실히 에드워드 주변에서는 숨쉬기가 편해졌다.

정신적인 재능에 방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온몸을 짓누르는 마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압박이 심했는데, 에드워드의 주변은 그렇지가 않았다.

여러모로 이 안은 에드워드의 능력을 수련하기에는 최고의 장소였다. 걸어가기만 해도 온몸을 압박하는 마력장 안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했으니까.

불타고 있는 건물들,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발들을 피해 우리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걸어가다가는 끝이 없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날아갈 수는, 어…….]

나는 바람을 일으켰다. 확실히 마력장 때문인지, 몸이 많이 무거워진 것 같지만, 사람 하나를 띄우기에는 충분했다.

에드워드는 당황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나, 나를 버리고 가겠다는 거야?]

[너도 하려면 할 수 있을 거야.]

자신의 몸에 흐르는 마나를 움직일 수 없는 대신, 다른 이의 마나를 훔쳐 쓰는 데에 특화된 에드워드에게 이렇게 마력장이 펼쳐져 있는 상황은 마치 무한 리필 뷔페와도 같았다.

━언제나처럼 저렴한 비유로구나.

‘어쨌거나 저렇게 겁을 집어먹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원한다면 몸을 띄우는 것뿐만 아니라 많은 걸 할 수 있을걸요.’

아직은 겨우겨우 자신의 몸에 침투하려는 마나를 걸러내는 게 한계인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몇 시간 구르다 보면 많은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내가 그동안 에드워드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도 무의식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데, 그걸 배우기에는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어 보이니 말이다.

[잠시 위로 가서 상황만 살피고 올게.]

[……알겠어.]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에드워드를 뒤로한 채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크으, 확실히 몸이 무거운데요.’

마치 누군가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주변의 건물을 하나하나 잡고 올라갔다. 스파이X맨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네. 겨우 옥상에 올라선 나는 사방을 내려다보며 상황을 살폈다.

‘흐음.’

지닝시의 상황은 확실히 좋지 않았다. 이 마력장을 걷어 낸다고 해도 이 피해를 복구하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얼마나 살펴보았을까.

‘여기에는 없네요.’

이 근처에는 없다.

또 한참을 걸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나, 나 좀 도와줘!]

밑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가 깜짝 놀랐다.

벽에 달라붙은 에드워드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주, 중간에 힘이 빠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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