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4화
#77 꿈에서 깨야 할 때 (1)
사고가 터진 건, 우리가 해성회가 지나간 곳을 되짚으며 천천히 그들을 추적하고 있을 때였다.
한서현이 굳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신호가 끊겼어요.”
“신호가 끊겼다니?”
“말 그대로예요. 제가 보냈던 애들과 신호가 끊어졌어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정찰용 언데드와 신호가 끊어지는 일은 많았다.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인다거나, 아니면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하지만 한서현이 이렇게 말한다는 건, 평상시와는 달리 무언가 특이한 점이 있다는 거지.
내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 한서현이 말했다.
“일단은 거기로 가 봐야겠어요.”
한서현의 말과 함께 우리를 태우고 있던 독수리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우와악!”
갑작스러운 가속에 차송진은 놀란 목소리를 내며 독수리에 바짝 엎드렸다.
신체 능력이 워낙 좋은 김재호의 경우는 눈을 잠시 찌푸리는 게 전부였으나, 에드워드나 차송진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나는 마력으로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던 보호막을 강화했다. 그제야 두 사람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나는 한서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인데, 그곳이?”
“지닝시(市)요.”
“지닝시 어디?”
“어디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어요. 대충, 그 도시의 오분의 일 정도?”
“그렇게나 넓어?”
기껏해야 건물 하나 정도를 생각했는데, 신호가 끊긴 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지닝시는 대략 만천 제곱킬로미터 정도의 면적을 가진 거대한 도시였다. 그곳의 오분의 일이라니. 엄청난 넓이다. 그곳에 보낸 언데드들과 모두 신호가 끊어졌다니.
한서현이 이렇게 패닉할 만도 했다.
“그 주변으로 다시 보내고는 있는데, 계속 신호가 끊어져요. 아무런, 아무런 전조도 없었는데. 공격을 받지도 않았다고요, 그런데 왜…….”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겁을 집어먹을 필요는 없는데. 한서현의 어깨에 손을 얹은 내가 말했다.
“일단 진정해.”
“하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괜찮아, 몰라도.”
우리 조직이 한서현의 정찰 능력에 많이 기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닝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으로 충분했다. 이렇게까지 한서현이 겁을 집어먹을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일단 거기에 가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있겠지.”
우리가 날아가는 사이, 다른 이들 또한 지닝시의 이상을 눈치챘다.
차송진은 굳은 얼굴로 휴대폰에 뜬 뉴스를 확인했다.
“지닝시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이 두절됐다는 말이 많아. 그리고 그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고, 어, 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꼭 죽은 것처럼 조용하대.”
말만 들으면 무슨 도시 괴담 같았다. 갑작스럽게 한 도시 안에서 연락의 공백이 생긴다라…….
“그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지닝시는 인구 800만 명이 넘게 사는 대도시다. 그런 대도시에서 갑자기 일부 지역과 모두 연락이 끊겼다?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게이트 브레이크였다.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게이트가 브레이크 될 때까지 발견이 되지 않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었지만, 지하에, 아무도 모르게 방치되어 있었다면 말이 되니까.
게이트가 폭발하며 주변을 모두 붕괴시켰고 그로 인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여 순간적인 연락의 공백이 생겼다는 건, 충분히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 추측에는 몇 가지 빈틈이 존재했다.
일단 첫 번째, 차송진이 말한 ‘겉으로는 멀쩡한데’라는 부분.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이 일어났다면 겉으로 보기에 멀쩡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다고는 해도 이렇게 모두와 연락이 끊기는 일은 좀체 없지.
오히려 연락이 폭주해야 말이 되지.
고로 이건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과는 관련이 없단 뜻이다.
‘이러나저러나, 일단은 현장에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무슨 일이 일어났든, 그리 좋은 소식일 것 같진 않은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지금 이 사건을 벌인 것이, 저우샤오첸을 납치한 일당이든 아니면 그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제삼자든. 무엇이든 우리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우리는 한참을 날았다.
문제의 그 지역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나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젠장.”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을 느낀 것은, 한서현과 에드워드도 마찬가지였다. 김재호 또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왜, 왜들 그래?”
조금 둔한 차송진만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지닝시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마력장을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설 정도였다.
“저게 뭐죠?”
한서현은 두 눈을 찡그리며 검은 독수리를 재빨리 뒤로 물렸다.
“나도 모르겠어.”
확인해 봐야 할 게 있다.
나는 한서현에게 부탁해 독수리를 지상으로 내렸다. 인적이 뜸한 곳에 검은독수리가 내려앉자마자 나는 치앤츠리앤에게 연락했다. 그녀가 무어라 말을 내뱉기도 전, 내가 먼저 그녀에게 물었다.
“저우샤오첸의 등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정확히 측정한 적은 없지만, 상당히 높을 거예요.]
애초에 물리적으로 재능을 추출할 수 있었던 것만 봐도 저우샤오첸의 능력이 뛰어났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건 왜 묻는 겁니까?]
“지금 지닝시에 마력 폭주가 일어나고 있어요.”
[그게 무슨…….]
나는 당황함에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 치앤츠리앤을 향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다행히 완전한 폭주는 아닙니다. 그랬다면 지닝시가 통째로 날아갔겠죠.”
지금 지닝시에서 보이는 이상 현상은 각성자의 마력 폭주 현상과 매우 닮아 있었다. 각성자의 몸에 깃들어 있던 마력이 각성자의 몸에서 흘러나와 주변을 잠식하는 현상.
보통 그 폭주는 주변 모두를 날려 버리는 식으로 발현하기 마련이었지만, 지닝시에서 보인 마력의 패턴은 달랐다.
마치 트릭스터의 환상처럼, 안과 밖을 분리해놓은 그 마력장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몇 가지 퍼즐이 착착 맞춰졌다.
저우샤오첸은 정신계 재능을 지닌 각성자였다. 그녀의 재능은 환상. 만약 그녀의 마력이 폭주했다면, 그 형태는 딱 저렇지 않을까.
납치된 상태에서 억압을 받은 지 오래되었다면, 저런 식으로 폭주를 한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제게 샤오첸의 능력을 물은 이유가 뭡니까?]
내가 하려는 말을 짐작했다는 듯이, 치앤츠리앤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지닝시에서 일어난 마력 폭주는 정신계 재능을 지닌 각성자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아직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저우샤오첸이 납치된 일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거죠.”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나는 나에게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한서현을 막았다. 치앤츠리앤과의 통화가 먼저다.
“물론 이 모든 게 제 추측이고, 저 안에 있는 사람이 저우샤오첸이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마력 폭주를 일으킨 게 맞다면…….”
마력 폭주를 한 각성자의 결말은 그리 좋지 못하다. 저번 게이트에서 만난 녀석처럼 온몸이 찢겨 죽거나, 아니면 내부에서 모든 힘을 소모하고 미라가 되거나.
그들이 맞이하는 결과는 딱 하나다.
죽는 것.
“그녀를 살릴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
내 말에 치앤츠리앤은 절망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위로가 아니라 확실한 사실 전달뿐이다.
“혹시 모르니 알고 계시라고요.”
[거기가 어디라고 했죠?]
“……늦을 겁니다.”
검은독수리를 타고서도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날아 도착한 곳이다. 지금쯤 저우커우시에 있을 그녀가 이곳까지 오는 데에는 한참이 걸릴 거다.
치앤츠리앤이 도착할 때쯤, 일은 모두 끝나 있겠지.
[제발, 제게 시간을…….]
“이러다가 정말로 폭주해 버리면, 지닝시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죽을 겁니다.”
그러니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제발 폭주를 일으킨 사람이 저우샤오첸이 아니길 빌자고요.”
그 말과 함께 나는 전화 통화를 종료했다.
모두의 눈길이 나에게 닿았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아까부터 말을 꺼내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한서현이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겠다고요?”
“지닝시에 있는 사람 전부를 죽일 순 없잖아?”
“폭주라면서요.”
“그래, 폭주니까.”
지금 들어가 폭주를 일으킨 각성자를 제대로 제압할 수 있다면, 모든 일은 해프닝으로 끝날 거다. 하지만 계속 폭주하게 둔다면, 각성자에 홀린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목숨을 잃겠지.
애초에 이렇게 강한 마력장에 오랜 시간 노출이 되는 것도 일반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다.
당장 한조희가 마나 중독 증상으로 그 개고생을 하지 않았는가.
저 안에 있는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식당한 부분만 해도 수십만 명은 될 거다.
그러니까…….
“들어가 봐야지.”
“들어갔다가 그 마나가 모두 폭발하기라도 한다면요?”
“그럴 가능성은 낮아. 폭주한다고는 해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의 뇌를 튀겨 버리거나 하는 식이겠지.”
“저,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 말인데, 그거…….”
차송진의 말에 나는 내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다행히 나에게는 정신계 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저 마력장 안에서도 안전할 거야.”
“……그래서 혼자서 가겠다고요, 저기를요.”
한서현은 이를 갈았다.
“정신계 재능이라니까.”
이 중에서 정신계 재능이 통하지 않는 건 나뿐이다. 한서현도 이 상황에서는 나를 도울 수 없단 뜻이다.
“언데드들하고도 모두 연락이 끊겼다며.”
내 말에 한서현이 말했다.
“그러니까요! 저 안에 들어가면 난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고요! 볼 수도 없어요, 보스가 위험해져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도, 나는, 나는…….”
또다시 패닉이다. 나는 한서현에게 말했다.
“알아, 그래도 한 번만 믿어 주라.”
내가 영 부실한 보스긴 해도, 어, 그래도 나름대로 이 중에서는 꽤 괜찮은 능력자이지 않은가.
한서현의 도움이 없어도 일 인분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다. 으음, 아마도.
“그래도 혼자 가는 건…….”
이 모든 상황을 가만히 듣고 있던 에드워드가 말했다.
[나는 괜찮지 않을까?]
[너도?]
[저것도 일종의 마력이니까, 내가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에드워드의 말에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일리는 있는데……. 여태까지 내가 에드워드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도 이런 거긴 했다. 물리적으로 에드워드를 공격하고 있는 마력뿐만 아니라, 다른 식의 마력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일단 앞까지 같이 간 다음에, 기절하면 빠지는 걸로 해.]
[좋아.]
한서현은 에드워드를 째려봤다. 영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지만, 곧 고개를 가로저은 한서현이 에드워드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꼭 같이 가. 너라도 가라고.”
“오케!”
두 사람을 지나친 나는 김재호에게 말했다.
“이 주변을 지켜보고 있다가 저 마력장이 가까워지면 모두와 함께 도망쳐.”
“보스는?”
김재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보스 혼자 가면 우리 속상해.”
“안 다칠게.”
내 말에 김재호는 코웃음을 쳤다. 나름 진심인데, 이렇게 남의 진심을 짓밟아도 되는 거냐.
“다치면 혼낼 거야.”
“……다쳤는데 혼나기까지 해야 돼?”
내 말에 김재호가 말했다.
“응, 보스는 그래야 해.”
어깨를 으쓱인 나는 에드워드와 함께 지닝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