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3화
#76 아름다운 꿈 (6)
저우린이 은월회 소속이 된 뒤 저우샤오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두 사람은 도장을 정리하고 은월회의 근거지가 있는 도시로 옮겼다.
도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시골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도시에는 기회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막연했던 꿈을 섬세하게 조각할 수 있을 정도로.
시골 학교에 있을 때에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저우샤오첸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월반에 월반을 거듭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저우린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두 사람은 평상시처럼 저녁을 먹기 위해 집 식탁에 둘러앉았다. 젓가락을 들어 올린 저우린이 저우샤오첸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우리 천재는 앞으로 뭘 하고 싶은데?”
저우린의 말에 저우샤오첸은 한껏 고민하는 얼굴로 입술을 모았다.
“글쎄, 내 재능을 좋은 일에 쓰고 싶어.”
“어머, 엄마가 범죄 조직 소속인 건 알고 말하는 거지?”
저우린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저우샤오첸을 놀렸다. 저우샤오첸은 저우린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쩍 벌렸다.
“참나.”
그 반응에 저우린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네 재능을 좋은 일에 어떻게 쓸 생각인데?”
“음, 모르겠어.”
대답을 회피하며 저우샤오첸은 저우린의 눈치를 봤다. 평상시와 달리 쉽게 입을 열지 않는 딸의 모습에 무언가를 느낀 저우린이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건넸다.
“왜 그래?”
“응, 아니. 사실 생각해 둔 게 있긴 한데 엄마가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아서…….”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래?”
저우린의 재촉에도 저우샤오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계속된 회피에 저우린의 얼굴에 걱정이 내려앉았다.
“응? 우리 딸, 왜 이럴까. 무슨 말이든 좋으니 해 봐.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인걸.”
젓가락으로 앞접시를 쿡쿡 찌른 저우샤오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단은 나도 회에 들어갈까?”
“뭐?”
“엄마도 알잖아. 내 능력, 일단은 불법이고……, 능력을 제대로 쓰려면 나도, 어, 회에 들어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 아닐까?”
저우샤오첸의 설명에도 저우린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건 안 돼.”
“왜!”
저우샤오첸은 그녀에게 소리를 쳤다.
“위험하니까? 안 위험한 일 할 거야! 회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위험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엄, 엄마도! 아무랑도 안 싸워도 되잖아.”
처음 저우린이 은월회, 그러니까 범죄 조직 소속이 된다는 말에 깜짝 놀랐던 저우샤오첸이었지만, 생각보다 은월회에서의 생활은 괜찮았다.
가끔 폭력 사태가 일어나고는 했지만, 전투조가 아닌 이상 직접 전투에 참여해야 할 일은 없었다. 후방에 있는 이상, 그들은 안전했다. 언제나.
“회가 뒤로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알고 있잖아. 회는 우리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 주고 있는 거야.”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거야, 엄마. 그러니까 그림자가 있으면 또 빛이 있는 거지. 은월회에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첸첸.”
“왜 엄마는 되고, 나는 안 돼?”
저우샤오첸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저우린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야…….”
“나는 약하니까?”
무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저우린과 달리 저우샤오첸의 재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기본적인 근력도, 체력도 바닥인 데다가 몸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움직임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저우린과는 달리 그 어떤 무술도 익히지 못했다.
여태까지는 그 설움을 꾹꾹 눌러 담았던 저우샤오첸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래서야? 약하니까? 엄마도 내가 형편없다고 생각해?”
그 말에 저우린의 입이 닫혔다. 저우린의 아버지이자 저우샤오첸의 할아버지는, 늘 샤오첸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우린을 다시 돌아오게 해 준 것은 고맙지만, 그의 손녀에게는 그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재능의 싹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므로.
저우샤오첸은 할아버지의 생각을 알면서도 티를 내지 않았다.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히 무술을 배우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서러움은 잠시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배울 수 없었던 무술이, 자신과 엄마 사이를 갈라놓는 벽이 되는 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언니를 만날 수 없는 거야?”
서러움이 터졌다.
이곳으로 온 다음부터, 저우샤오첸은 치앤츠리앤을 만날 수 없었다. 은월회에 소속돼 있는 저우린과는 달리 저우샤오첸은 일반인이었으므로, 정식으로 은월회 간부가 된 그녀와는 만날 수 없는 몸이 돼 버렸다.
저우린 또한 치앤츠리앤의 소식을 전해 주지 않았다.
그저 잘 지낸다는 말뿐.
하지만 저우샤오첸은 알고 있었다.
가끔 치앤츠리앤이 자신의 집에 들른다는 걸. 저우린이 설거지를 깜빡 잊고 놔둔 찻잔에서, 방에 맴도는 향수 냄새에서 저우샤오첸은 어렵지 않게 그녀와 몇 년을 동고동락했던 이의 흔적을 읽어 냈다.
“나는 그냥 예전처럼 우리 셋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회에 들어온다는 건…….”
“내 재능을 좋은 곳에 쓰고 싶다고 말했잖아. 회에 들어가지 않으면, 나는, 내 재능을 평생 숨기면서 살아야 해.”
저우린은 자신의 딸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의 딸을 은월회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결국,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었으므로.
* * *
은월회 소속이 되기로 하였지만, 여전히 저우샤오첸은 사회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가 배울 것이 아직은 많았기 때문이다.
전과 달라진 점은 하나였다. 그동안 아무리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도 볼 수 없었던 치앤츠리앤이 저우샤오첸을 만나러 직접 왔다.
“언니!”
치앤츠리앤의 싸늘한 표정에도 저우샤오첸은 굴하지 않고 그녀의 곁에 딱 붙어서서 말을 건넸다.
“너무 보고 싶었어, 언니는 나 안 보고 싶었어?”
“하아.”
“잔소리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알겠는데, 우리 진짜 몇 달 만에, 아니! 몇 년 만에 보는 거잖아. 언니는 나 진짜 조금도 안 보고 싶었냐고!”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저우샤오첸을 맞이한 치앤츠리앤이었지만, 곧 저우샤오첸의 넉살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에게 화를 내는 것을 포기한 치앤츠리앤은 저우샤오첸을 꽉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켜 줄게.”
“참나, 내가 다칠 일이 뭐가 있겠어! 언니는 언니 걱정이나 해!”
서로를 끌어안은 채로 두 사람은 웃음을 터트렸다.
* * *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저우린이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을 저우샤오첸에게 전했다.
“네 아빠를 만났어.”
“아빠를?”
“그래.”
충격적인 소식에도 저우린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애가 달은 것은 저우샤오첸 쪽이다.
“어땠는데?”
“뭐, 그냥 그랬지.”
“그냥 그런 게 아닌데! 뭐, 뭔데! 무슨 일이 있었는데.”
“듣고 싶어?”
저우샤오첸은 들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우샤오첸을 제 옆에 앉혀 놓고, 저우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연히 일하다 그를 보게 되었다고. 사업가가 되겠다고 한국으로 떠났던 그 남자는, 한국 갱단의 소속이 되어 일하고 있었다고. 이십 년이 지났지만, 한눈에 알아볼 만큼 그는 그리 변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말을 끝낸 저우린이 저우샤오첸에게 물었다.
“만나고 싶어?”
그 질문에 저우샤오첸은 눈을 깜빡거렸다. 여태까지 저우샤오첸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늘 비어 있는 칸과 같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울 수 없는 그런 칸.
그 칸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그녀의 답은 하나였다.
“응! 만나 볼래.”
그렇게 만난 아버지라는 남자는 무척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외모도, 성격도, 전부.
반짝반짝 빛이 나는 저우린과는 달리, 그는 잘 봐줘야 먼지가 잔뜩 묻어 있는 구슬 같았다. 예전에는 반짝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닌. 하지만 그는 착했다.
저우샤오첸을 만나자마자 눈물을 쏟아 낸 그 남자는 저우샤오첸에게 하염없이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미안할 필요 없어! 우리 엄마가 말을 안 한 것뿐인걸.”
“그래도, 네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는걸.”
그렇게 말하며 또 눈물을 쏟아 내는 남자를 보며 저우샤오첸은 한숨을 푹 쉬었다.
“모르는 걸 왜 미안해하는지 모르겠네. 우리가 미안해야지. 우리 둘만 그동안 행복하게 지냈는데.”
저우샤오첸의 말에 남자는 웃으며 울었다. 그래도 자신이 없어도 행복했냐며, 그렇다면 다행이라며. 그렇게 말한 남자는 저우샤오첸을 보며 말했다.
“내게 기회를 줘서 고맙구나.”
이십일 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보낸 하루는 이상했다. 그래, 이상하다는 말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어땠어?”
저우린의 말에 저우샤오첸이 말했다.
“이상했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어.”
확실히 나쁘지는 않았다. 다음에 또 만날 약속을 잡았을 정도로.
“근데 엄마 취향 좀 그렇더라. 엄마가 좋아하기엔 그 사람, 너무 평범하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의 딸을 보며, 저우린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저우샤오첸의 세상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애써 아름다운 꿈을 꾸려 노력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 * *
저우샤오첸은 저우린의 무릎을 베고 꽃밭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다.
햇볕은 따스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으며 저우샤오첸은 눈을 감았다. 부드러운 저우린의 손길이 머리칼을 파고들었다.
“첸첸.”
낮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그리 속삭이는 저우린의 목소리에 저우샤오첸이 눈을 감은 채로 입을 열었다.
“왜, 엄마?”
“언제까지 여기에서 이렇게 자고만 있을 생각이야?”
“해가 질 때까지?”
해가 지고 추워지면 집에 들어가자, 저우샤오첸의 중얼거림에 저우린이 답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해가 지지 않잖니.”
그 말에 저우샤오첸은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저우린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말을 했냐는 듯이 저우샤오첸의 눈에는 저우린을 향한 원망이 가득했다.
“그런 말 하지 마.”
“이곳에서는 해가 지지 않지만, 저쪽에서는 해가 질 거야. 그리고 쓸쓸해지겠지. 어둡고 추워질 거야. 그러니까 깨서 들어가야지, 안전한 집으로.”
“아직 해는 떠 있잖아.”
“눈을 속인다고 달라질 건 없어.”
저우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온 세상이 검게 물들어 갔다. 중천에 떠 있던 해는 어느새 지평선에 걸려 있었고 살살 그녀의 뺨을 간질이던 바람은 차게 식어 있었다.
대답이 없는 저우샤오첸에게서 시선을 뗀 저우린이 어둠에 물든 꽃밭을 손끝으로 훑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세상이어도, 이곳은 꿈이야.”
“꿈을 꾸는 동안에는 현실이지.”
“영원히 꿈을 꿀 수는 없어.”
저우린은 저우샤오첸의 손에 꽃을 꺾어 쥐여 주었다. 꽃잎은 저우샤오첸의 손안에서 바스러졌다. 마치 이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려 주는 것처럼. 저우린은 그 꽃잎을 보며 저우샤오첸에게 속삭였다.
“이만 깨렴.”
그 말에 저우샤오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저우린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아니, 깨지 않을 거야.”
“하지만…….”
“쉿.”
저우린의 입을 막아 버린 저우샤오첸이 말했다.
“나는 깨고 싶지 않아.”
저물었던 해는 다시 떠오르고, 멈췄던 바람은 다시 불기 시작했다. 향기로운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저우린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꿈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저우샤오첸은 이 꿈에서 깰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몸이 죽어 가든, 말든. 그녀의 마력은 이 완벽한 꿈을 유지했다.
저우샤오첸이 만들어 낸 세상은 끝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만, 저우샤오첸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녀는 관심이 없었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