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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82화 (282/352)

제282화

#76 아름다운 꿈 (5)

“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네가 내 꿈이지.”

“그게 뭐야.”

저우샤오첸은 저우린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저우린은 그녀의 삐죽 나온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맞댔다. 그 갑작스러운 뽀뽀에 저우샤오첸은 깜짝 놀라 외쳤다.

“아, 뭐야!”

“어머, 너무 예쁘게 입술을 내밀고 있길래 뽀뽀해 달라는 줄 알았지.”

저우린의 말에 뾰로통하게 입을 내밀었던 저우샤오첸 또한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본 어머니는 언제나 아름답고 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없음에도 그녀는 꿋꿋하게 저우샤오첸을 길러 냈다.

젊은 나이에 모든 걸 포기하고 홀로 딸을 키워 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그녀는 그런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정말로 저우린은 이곳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그래도 날 낳기 전에 이곳을 떠나 학교에 갔다고 했잖아.”

삼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예전 이야기를 하며 저우샤오첸이 복덩이라고 말했다. 도장을 버리고, 가업을 저버린 그녀가 돌아와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비록 생각지도 못했던 너를 데리고 와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아예 날아가 버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우샤오첸은 자신이 자유로이 날던 엄마를 날지 못하게 만든 족쇄라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내가 아니었더라면 엄마는 이 도장에 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자유로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첸첸, 이 바보야. 그 미래보다 엄마는 너와 함께하는 이 삶이 훨씬 행복해.”

“하지만 나 때문에 포기한 거잖아. 엄마가 살고 싶었던 삶을, 포기한 거잖아!”

저우샤오첸의 말에 저우린은 깔깔 웃었다.

“첸첸, 네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엄마는 다시 이 도장으로 돌아왔을 거야.”

“어째서?”

“음, 엄마가 무척이나 천재적이라서?”

할아버지는 엄마가 늘 세계에서 제일가는 무술가가 될 자질을 지녔다고 말했다. 저우샤오첸의 눈에도 엄마의 몸놀림은 다른 이와 달랐다. 초능력을 지닌 초인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도 그녀의 재능은 여전히 빛이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엄마가 하기 싫은 일을 할 필요는 없어.”

저우샤오첸의 말에 저우린의 눈동자가 커졌다. 곧 웃음을 터트린 저우린은 샤오첸의 얼굴에 무지막지한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엄마! 나는 진지하다고!”

“그래, 나도 진지해.”

저우샤오첸을 꼭 끌어안은 저우린이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다른 길을 걷고 싶었던 것도, 이 도장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것도. 하지만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삶이 불행한 건 아니야. 내가 버렸던 꿈, 글쎄. 나는 그저 이곳에서 벗어나기만을 꿈꿨던 철없는 소녀였어.”

저우샤오첸에게 저우린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말해 주었다.

“그때의 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게 아니야. 그냥, 답답한 이곳이 싫어 도망을 쳤던 거지.”

“도망도 꿈이 될 수 있잖아.”

“으응, 아니야. 그런 건 꿈이 될 수 없어, 첸첸. 네가 진짜 바라는 게 생기면, 너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게 생기면. 그게 바로 꿈이야. 그래서 엄마가 말했잖아. 너는 내 꿈이라고.”

저우린의 말에 저우샤오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어린 그녀는, 저우린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괜찮아?”

저우린은 지금도 행복하다는 걸.

“그래.”

“날 낳은 걸 후회하지 않아?”

그 질문은 조금 힘들었다. 떨리는 저우샤오첸의 목소리에 저우린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붙이며, 저우린이 속삭였다.

“그래. 단 한 번도.”

“아빠가 날 버리고 갔는데도?”

샤오첸의 말에 저우린은 깔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우릴 버린 게 아니야. 내가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은 거지.”

정말로 그 사람을 원했더라면, 어떻게든 그 사람을 찾아냈을 거라고. 그래서 내 옆에 눌러 앉혔을 거라고 저우린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와 단둘이 지내던 삶에 다른 이가 끼어들게 된 건, 저우샤오첸이 막 열두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예쁜 언니다.

샤오첸은 그리 생각하며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긴 머리를 뒤통수에 올려 묶은 여자는 꼭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가졌다.

샤오첸보다 서너 살은 많을까 싶은 그 여자의 이름은 치앤츠리앤이었다. 그녀는 저우린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제발 자신을 가르쳐 달라고.

그 말에 저우린은 볼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이 깡촌까지 겨우 무술을 배우러 왔다고?”

“당신이 최고라고 들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치앤츠리앤의 얼굴은 반짝이고 있었다.

“하하, 과한 칭찬인데. 괴물들이 즐비한 이 세계에서 듣기에는 더더욱.”

“당신은 그 어떤 사람보다 대단해요.”

“도대체 나는 어떻게 안 건데?”

“다, 당신이 어렸을 때 전국 대회에 출전한 영상을 봤어요. 며, 몇백 번이나.”

볼을 붉히며 그렇게 말하는 치앤츠리앤의 얼굴에는 진심만이 가득했다. 그 고백에 저우린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좋아, 알겠어. 열정이 대단하네.”

그렇게 말한 저우린은 슬쩍 뒤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첸첸, 언제까지 숨어서 그러고만 있을 거야?”

“헉!”

자신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저우샤오첸은 그제야 바깥으로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안, 안녕하세요.”

소심하게 그렇게 말을 내뱉는 그녀를 보며 저우린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예쁜 언니는 처음 보지?”

“어, 엄마!”

“여기는 내 딸 샤오첸. 여기는 내 제자가 될 치앤츠리앤.”

그렇게 치앤츠리앤은 저우린의 제자가 되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뛰어났다. 저우린의 딸로 태어났으나 끔찍할 만큼 몸을 움직이는 재주가 없는 저우샤오첸과는 정반대로, 그녀는 저우린의 움직임을 그대로 흡수했다.

“재능이 있네.”

그래서 그녀는 저우린의 둘도 없는 수제자가 되었고, 저우린의 도장에서 먹고 자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동안 저우샤오첸은 치앤츠리앤을 자신의 언니처럼 따르기 시작했다.

저우린을 제외하고는 피붙이가 없는 샤오첸에게 그녀는 정말이지 큰 언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

저우샤오첸이 이 도장에 막 처음 발을 들였던 치앤츠리앤의 나이가 되는 날. 치앤츠리앤이 저우린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슬슬 돌아가 봐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우샤오첸은 저도 모르게 기둥에 몸을 숨겼다. 자신이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 같았으니까.

돌아가? 어디로? 저우샤오첸의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다. 언제나 치앤츠리앤은 자신의 곁에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이렇게 셋이서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간다고? 어디로?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저우린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태연히 이렇게 말했다.

“그곳으로? 하긴, 돌아갈 때가 되었지.”

그곳이 어디인지, 저우샤오첸은 감도 오지 않았지만 저우린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저와 함께 가시는 건 어때요?”

“으응? 여기에서 떠나라는 거야? 아버지가 물려주신 도장을 버리고?”

“좋아하지 않으시잖아요, 이곳을요.”

저우린은 도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을 좋아했다면 이곳에서 떠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치앤츠리앤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었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냥 훌쩍 떠날 수는 없어. 게다가 그곳에 가게 되면 내가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할 테고…….”

“아니요! 똑같을 거예요, 이곳에서 하던 일과.”

치앤츠리앤의 말에 저우린이 되물었다.

“나에게 그곳 사람들을 가르치라는 말이니?”

“이미 저를 가르치셨잖아요.”

“너와 다른 사람들은 다르지. 우리 가문에서 내려오던 무술을 나는, 그쪽 사람들이 쓰길 원하지 않아.”

“그렇다면 저 또한 이 무술을 버려야 할까요?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걸, 전부요?”

“너는…….”

저우린의 말끝이 흐려졌다. 기둥 뒤에 숨은 샤오첸은 숨을 삼켰다. ‘그곳’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엄마의 저 반응을 보건대 그리 좋은 사람들은 아닐 것 같단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무어라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저우린에게 치앤츠리앤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샤오첸의 미래도 생각하셔야죠.”

“그 아이의 미래?”

“샤오첸이 재능을 각성했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그 말에 샤오첸은 입을 틀어막았다. 치앤츠리앤에게는 흘러가듯 그 사실을 털어놓은 그녀였지만, 막상 그 말을 전해야 할 저우린에게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니만 알고 있으라고 말한 건데…….’

배신감에 가슴이 아려 왔다. 하지만 배신감보다 그녀의 가슴을 더 뛰게 만드는 건 이 소식을 들은 저우린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래, 알고 있었어.”

그 말에 저우샤오첸은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있었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태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걸까.

“아시잖아요. 재능을 각성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그러니, 아예 조직원이 되어라? 난 내 딸의 미래를 그렇게 결정하고 싶지 않아.”

그 말에 심장이 뛰었다. 조직. 조직원. 저우샤오첸은 그 말에 두 눈을 깜빡였다. 저우린의 말이 이어졌다.

“만약 내 딸을 누군가 건드릴 생각이라면, 나를 꺾어야 할 거야. 다행히 나는, 음, 좀 강하지?”

저우린은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하지만 그 농담에도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가 알게 되면 끝인 걸 아시잖아요. 스승님만의 힘으로는 샤오첸을 보호하기 힘들어요.”

“그렇다고 조직에 들어가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거예요. 원하지 않는 일은 시키지 않을 거고…….”

“하하, 참 거창한 약속이로구나.”

“진심이에요! 저는 스승님도, 샤오첸도 아끼니까…….”

치앤츠리앤은 간절했다.

“아시잖아요. 저희 아버지는 저를 무척이나 아끼세요. 그리고 보스도, 저를 아끼고. 두 사람은 제가 지킬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겠지.”

저우린은 그렇게 말하며 치앤츠리앤의 덜덜 떨리는 손을 잡아 주었다.

“하지만 말이야. 그건 네게 짐이 될 거야. 우리가 짐이 된다는 소리야.”

“스승님은 절대로 제 짐이 되지 않아요. 그냥, 저랑 같이 가요. 예?”

“미안하다.”

저우샤오첸이 뛰쳐나간 건 그때였다.

도저히 두 사람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문을 벌컥 열어젖힌 저우샤오첸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나를 빼고 이렇게 얘기를 나누는 건 불공평해요!”

“첸첸?”

“나, 나도 발언권이 있는 거잖아요. 나와 엄마의 미래인데.”

“전부 들은 거니?”

저우린은 곤란하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요 근래 자신의 재능을 각성하고 주변을 속이는 방법을 알아낸 자신의 딸은 참으로 곤란했다.

저우샤오첸은 저우린에게 말했다.

“가요, 언니랑 같이.”

그 말에 치앤츠리앤은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가, 가겠다고?”

“응, 나도 이 깡촌이 질린 참이거든!”

그렇게 저우샤오첸은 은월회 소속이 되었다.

그녀의 나이, 만 열일곱 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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