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9화
#76 아름다운 꿈 (2)
치앤츠리앤이 처음에 약을 빼돌린 이유는 간단했다.
비밀 유지.
“지금 이 상황에 다른 쪽에 정보가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곤란해졌을 테니까요.”
혼란한 상황에 혹여나 저우샤오첸이 만들던 약이 시장에 풀리기라도 하면 더더욱 난리가 날 테니 말이다.
저우샤오첸의 연구는 무척이나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연구를 홀로 진행했고 가끔 테스트가 필요할 때는 은월회의 믿음직한 조직원들만을 선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믿음직한 조직원이 배신을 때렸지만 말이지.
치앤츠리앤의 말도 일리가 있다. 정보가 샌다면 저우샤오첸을 무사히 구출한 다음에도 이런저런 문제에 휩쓸려야 했을 테니 웬만해서는 저우샤오첸의 정보를 풀고 싶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게 나에게까지 사실을 숨긴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
내 시선에서 내 생각을 읽은 듯 치앤츠리앤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은폐가 거짓이 될 것임을 알고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은 건 제 잘못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은인을 일부러 속이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일부러 속일 생각이 없었다?”
“저 또한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으니까요.”
치앤츠리앤의 말이 이어졌다.
“샤오첸의 연구는 처음에는 완벽했습니다.”
내가 거짓말이라는 재능을 시각화하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환상을 물리적으로 추출해 낼 수 있었다.
저우샤오첸은 자신의 재능으로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완벽한 환상을 모두에게 선물하겠다는 꿈에 젖어 있었다. 아무런 고통도 없고 아무런 고난도 없는 아름다운 세상. 샤오첸이 꿈꾸던 그 꿈을 인체가 섭취할 수 있게 만든 것이 ‘메이멍’이다.
이름대로 메이멍은 모두에게 아름다운 꿈을 선물해 주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전 그녀의 연구가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믿었습니다.”
“정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단 말입니까?”
정말로? 내 의심 섞인 시선에 치앤츠리앤이 말했다.
“그녀의 성공을 너무 간절히 믿다 못해 눈이 멀었던 거지요. 게다가 샤오첸의 환상에는 그러한 소망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
부작용이 없는 것까지가 그녀의 환상이었다는 뜻이다.
“꼭 좋은 책을 보고 좋은 음악을 들은 것처럼 끝나고 난 뒤의 아쉬움에 몸을 떤 적은 있었지만, 그 꿈이 그리워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꿈, 그 이름에 걸맞은 약이었어요.”
약을 한 이후에도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상함을 눈치채지도 못했다고 했다.
나는 묶여 있는 여자를 슬쩍 눈짓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된 겁니까?”
누가 봐도 폐인에 가까운 여자의 모습은 ‘마약중독자’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피폐했다. 내 질문에 치앤츠리앤이 입을 열었다.
“……메이멍을 섭취하고 일주일이 지나면, 메이멍이 주었던 환상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아무리 좋은 꿈을 꾸어도 시간이 지나면 그 꿈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처럼요.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 그 꿈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나마 약을 접한 횟수가 적었던 이들은 괜찮았지만, 주기적으로 실험에 참여한 이에게는 그 갈망이 한꺼번에 찾아왔다고 했다.
게다가 부작용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샤오첸이 만들어 낸 환상은 결국 그 사람의 꿈을 갉아 먹어요. 미래의 자신이 꿀 꿈마저 모두 빼앗아 오는 거죠.”
우리가 샤오첸의 뒤를 쫓는 지난 이틀간, 치앤츠리앤은 저우샤오첸이 그동안 은폐해 왔던 사실을 모두 찾아냈다.
우리가 연구실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건 당연했다. 치앤츠리앤은 그 연구 자료 또한 빼돌렸다.
중요한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은 다이어리나, 봐도 그 내용 파악이 힘든 문서들은 그대로 남겨 두었지만 저우샤오첸의 연구 일지라든가, 중요한 자료들은 우리가 오기도 전 이미 깨끗하게 치워 두었단다.
치앤츠리앤은 지난 이틀간 그 자료를 살펴보았고 끔찍한 결론에 다다랐다.
“그 자료로 보아하니, 저우샤오첸 또한 중간부터 그 부작용을 눈치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샤오첸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자신이 만든 약을 먹었죠.”
그리고 저우샤오첸은 자신의 환상에 갇혀 버렸다.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은 완벽하며, 모두를 행복하게 할 거라는 거짓된 망상이었다.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환상을 만들어 낸 거다.
“어쩐지.”
저우샤오첸의 다이어리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중간부터 자신의 성공을 너무나도 기뻐했던 것도 그렇고.
━자신이 만든 환상에 갇혀 버린 게로군.
그 순간 어떤 깨달음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적들이 저우샤오첸을 납치한 건, 마약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저우샤오첸의 능력은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만약 그녀가 아름다운 꿈이 아니라 끔찍한 꿈을 만들어 낸다면요? 죽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꿈이요.”
그것으로 사람을 독살하거나, 조종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환상을 무기로 다루는 이는 많았다. 당장 우리가 마주쳤던 탑의 빌런인 트릭스터 또한 자신의 환상으로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했지 않은가.
하지만 이 경우는 트릭스터보다도 위험하다.
직접 본체가 움직여야 하는 트릭스터와는 달리 저우샤오첸의 경우에는 자신의 능력을 추출하기만 하면 됐으니, 그 능력을 악용한다면……. 조금의 과장을 보태 온 세계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특히나 그녀의 능력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그제야 치앤츠리앤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설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죠. 솔직히 저라면, 그 사람에게 마약 생산을 맡기기보다는 암살 쪽을 맡길 겁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새에 완벽하게 일을 끝낼 수 있잖습니까?”
사실 은월회 쪽이 이걸 진작 떠올리지 못했다는 게 의아할 뿐이다.
“샤오첸은 마음이 약한 아이예요. 어렸을 때부터 조직에서 자라 여러 것들을 보긴 했지만, 남을 해칠 생각은 조금도 못 하는 애라고요.”
“해성회에서는 그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겠죠.”
치앤츠리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로 침묵했다. 그녀의 표정은 처참히 구겨져 있었다.
“저우샤오첸과는 무슨 사이입니까?”
단순히 유능한 연구원과 조직원 사이의 관계로는 치앤츠리앤의 방어적인 태도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지금 한 말도 그렇고.
내 말에 치앤츠리앤이 말했다.
“저우샤오첸의 어머니에 대해서 아십니까?”
“잘은 모릅니다.”
내가 그녀에 대해서 들은 것은 백도산의 소개로 만난 최 사장이 내게 해 주었던 이야기뿐이다.
젊은 시절 유학 중이던 그와 만났고 뜨거운 사랑을 나눴노라고. 나중에 은월회에서 다시 재회하게 되었노라고.
그 짧은 말로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은월회 간부라고 전해 듣기는 했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자신의 딸이 실종되었는데도 어머니라는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면 오지 않는 게 당연하지만, 은월회의 간부인 이상 이 자리에 올 법도 했는데.
내 말에 치앤츠리앤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제 스승님이었습니다. 유언으로 제게 샤오첸을 맡기셨죠.”
유언이라니.
“죽었단 말입니까?”
“예.”
치앤츠리앤은 짧게 말을 끊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더 말을 얹고 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최 사장에게서 별말을 듣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죽은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 같았다.
“저는 샤오첸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약속했어요.”
그 행복을 지켜 주기 위해서는 일단 저우샤오첸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야 했다.
“일단, 그녀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죠.”
내 말에 정신을 차린 치앤츠리앤이 배신자에게서 알아낸 정보를 내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그 정보만으로는 부족했다.
“전에 말했던 대로 심문은 제가 맡도록 하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정보를 빼내는 데에는 누구보다 익숙하거든요. 자리만 좀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내 말에 치앤츠리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들의 부하를 데리고 잠시 자리를 떴다. 나는 남은 네 사람에게도 자리를 비켜 줄 것을 부탁했다.
“뭐, 뭘 하려고?”
차송진이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별거 안 해.”
“저 사람을 고문할 생각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반쯤 약에 취해 정신을 놓은 여자에게 고문은 잘 통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고통만으로는 양질의 정보를 빼낼 수 없다.
“그냥, 분위기 조정이 필요해서 그래.”
“알겠어.”
차송진은 걱정이 된다는 얼굴로 나와 여자를 곁눈질하며 일행을 챙겨 나갔다.
━뭘 할 생각이냐?
‘그냥, 적당한 거짓말이요.’
나는 여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좋은 꿈을 꾸고 있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내가 꼭 알아야 할 게 있어서요.]
내 말에 여자의 눈동자가 천천히 내게로 향했다.
내 눈앞에 복잡하게 생긴 자물쇠가 떠올랐다. 여자의 마음을 열고 그녀의 머릿속에 숨겨진 정보를 알아내야 할 때였다.
* * *
예상한 대로 해성회는 이미 이곳을 뜬 뒤였다.
그녀를 납치하는 동시에 이곳에서 빠져나가 자신들의 근거지로 갔다는 뜻이다.
배신자는 그들이 먼저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배신자가 알린 것은 연구실의 위치와 연구실로 들어가는 방법. 그들이 어떻게 저우샤오첸에 대해서 알았는지는 배신자 또한 알지 못했다.
배신자가 털어놓은 정보 중에는 몇 가지 특이한 것이 있었다.
첫 번째로는 그들의 연락 방법.
“물을 사용해서 서로에게 연락한다고?”
내 설명에 차송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이상하지?”
요즘 같은 시대에 휴대폰이 아니라 물을 통해서 서로 메시지를 전한다니 말이다. 그들은 물그릇을 떠 놓고, 그 물그릇을 빤히 바라보는 것으로 서로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특이했던 건 그들의 이동 방식이다. 그들은 늘 어떤 동물을 타고 이동했다고 했다. 하늘을 나는 무언가. 하늘에서 보인 거뭇한 그림자가 무슨 동물이었는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하늘을 날 수 있는 거대한 동물이라는 건 확실했다.
“테이머가 있다는 뜻인가.”
“아마도?”
물을 이용해서 서로 소통했다는 것도 그렇고. 확실히 범상치 않았다.
그들을 추적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지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며칠 만에 한서현의 눈에는 빛이 들어왔다.
여태까지 아무런 단서도 없이 그들을 추적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꽤 단서가 많아진 참이긴 했다.
“그나저나 물을 통해 서로 소통하면서 하늘을 나는 무언가를 타고 다니는 집단이라니. 말만 들으면 무슨 신선 같지 않아?”
“신선은 무슨, 그래 봤자 범죄 집단이지.”
내 말에 차송진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그, 그래도…….”
“일단은 배신자하고 그쪽이 마지막으로 접선했다는 곳부터 가 보자고.”
차근차근, 그놈들의 뒤를 밟아 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