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1화
#72 죽어야 산다 (4)
정호산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도채희는 넋이 나간 상태로 각범부 2팀에 소속된 김용원에게 바로 전화를 날렸다. 하지만 정신이 없는 건지, 뭔지. 전화는 쉽사리 연결되지 않았다.
도채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왜 갑자기 멀쩡하던 사람이 죽는단 말인가.
그것도 육체 강화계의 각성자가 갑자기 사망하다니. 자꾸만 앞이 흐려 왔다. 도채희는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러 닦으며 뉴스를 찾아보았다. 정확한 지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간략한 뉴스로 대충 상황을 알 수는 있었다.
‘폐쇄된 건물, 화염계 능력자…….’
뉴스에서는 건물 안에 있었던 마약의 분진 때문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 폭발로 건물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뒤늦게 염동계 각성자까지 투입되어 현장을 정리했지만, 그곳에서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살점 하나 제대로 남기지 않고 타 버린 시체들이었다고 한다.
마력에 오염된 시체에서는 제대로 된 DNA를 추출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그 시체가 정호산과 현장에 있었던 범인들이라고 추정할 뿐이었다.
김용원과 연락이 닿은 것은 그런 뉴스 수십 개를 읽은 다음이었다.
[겨, 경위님.]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울먹거리는 그녀에게 김용원은 씁쓸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도 정확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같이 출동한 건 제가 아니라서요. 그, 그래도 그 친구가 그렇게 된 건 맞는 거 같고…….]
우물쭈물 말을 이은 김용원이 도채희에게 말했다.
[어, 일단 여기 오시겠습니까? 그, 그 친구 장례식장인데요.]
김용원의 말을 듣고 나서도 여전히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장례라니, 그 사람이 정말로 죽었고, 장례까지 치르고 있다고? 김용원이 보낸 주소를 보고도 정신이 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곳으로 향하면서도 여전히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같이 이 나라를 좀먹는 나쁜 놈들을 잡자고, 그렇게 말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같이 캔을 부딪치면서 앞으로 잘해 보자고 말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도채희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오늘만 벌써 몇 번이나 닦아 낸 눈가는 누가 봐도 엉망이라고 말할 정도로 붉게 물들었다. 옷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지른 도채희가 이를 악물었다.
정호산의 장례는 이례적으로 빨리 치러졌다. 각범부 2팀을 맡은 송천길은 적극적으로 이번 죽음을 이용했다. 정호산의 행보를 영웅적인 희생으로 포장하고 그로 인해 모인 관심을 집요하게 탐할 생각이었다.
도채희가 탄 버스에 달린 자그마한 모니터에서는 이번 사건을 다룬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기자 회견장에 나가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오늘 영웅이 죽었다’고 말하는 송천길을 본 순간 도채희는 주먹을 쥐었다. 송천길 팀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팀원의 죽음을 저렇게 이용하는 걸 보니 역겹기만 했다.
「그 친구는 제게 마치 형제와도 같았고…….」
화면에 흘러나오는 거짓말에 도채희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송천길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 도채희 또한 송천길처럼, 언론을 십분 이용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의지로 저 스포트라이트를 만든 송천길과는 달리 박철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게 다를 뿐.
진실을 알아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옳다고만 믿으며,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따라 미친 듯이 뛰기만 했다.
무작정 달리는 자동차의 뒤를 쫓기만 하는 강아지처럼, 눈의 양옆을 가린 채 자신에게 주어진 트랙만 달리는 경주마처럼.
그녀의 질주는 눈이 멀어 있었다.
자신의 앞에 달리는 트럭을, 자신의 등 위에서 채찍질하는 기수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흔들리는 걸음으로 밤길을 걸은 지 얼마간. 도채희는 마침내 장례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장례식장 입구에 걸린 정호산, 그 이름 세글자를 보는 순간 또 한 번 울컥 눈물이 치솟아 올랐다.
밤을 넘어 새벽에 가까워진 시간,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떠난 장례식장은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화려한 부조 화환에 적힌 높으신 이들의 이름을 훑으며 도채희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들 중 몇이나 정호산을 알았을까. 몇이나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할까.
박철완 부장, 송천길 팀장, 그리고 미리내당 설록진 의원……. 그 이름들을 지나 도채희는 신발을 벗고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정호산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유일하게 가족처럼 생각하던 친구인 강이신은 범죄자가 되어 이곳에 올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불이 꺼진 장례식장은 쓸쓸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남은 사람이 있었다.
붉은 머리의 남자는 제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로 텅 비어 있는 장례식장 한복판에 앉아 있었다.
“저기…….”
그 남자는 도채희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며칠 밤을 지새운 듯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도채희는 깜짝 놀랐다.
“어, 괜찮으세요?”
남자는 말 없이 도채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지, 이 사람은. 도채희는 그의 옆쪽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저, 그, 그러니까 그쪽은…….”
침을 꿀꺽 삼킨 도채희가 말했다.
“누구세요?”
“그러는 그쪽은 누구신데요.”
까칠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그러니까…….”
정호산을 어떻게 안다고 말해야 할까. 그와의 관계는 뭘까. 동료? 각범부에서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으니 동료라는 말이 알맞지 않을까.
“동료, 같은 거였죠. 그러는 그쪽은…….”
“아무것도 아닌 사이요.”
도채희의 질문에 남자는 그렇게 답했고 도채희는 더더욱 혼란에 빠졌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인 사람이 죽었다고 저런 표정을 지어? 게다가 모두가 떠난 장례식장을 지킨다고?
“어…….”
도채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군요.”
뭐라고 더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도채희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 침묵을 깬 건, 붉은 머리의 남자였다.
“친했어요? 저 사람이랑?”
그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던 도채희는 두 눈만 깜빡였다.
친했을까, 우리가.
“친해지고 싶었죠.”
도채희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젠 그럴 기회가 없어졌지만.”
사실 아직도 실감은 나지 않았다. 정말로 이제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이.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날 것을 그랬다.
그냥, 이제 다시는 그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도채희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그녀의 앞에 앉았던 남자가 울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나 때문이에요.”
“예?”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그래서……. 내가 그때 말렸다면, 아니, 같이 들어갔더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제야 도채희는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정호산과 현장에 같이 출동했던 각범부의 팀원.
남자를 이곳에 붙들어 놓은 것은 바로 정호산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도채희는 그의 울음을 듣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왜 당신 잘못이에요.”
“현장에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못 했다니까!”
“거기에서 마약을 팔던 개자식들이 잘못한 거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는! 내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으면 정호산 씨는 어? 각범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고!”
거기까지 말을 던진 도채희도 와앙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남자와 함께 도채희는 한참을 그렇게 이게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며 우겨 댔다.
“내 잘못이라고요.”
“현장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그러니까, 내 팀으로 넣지 않은 것도 내 잘못…….”
어느새 두 사람은 바닥에 누워 잔뜩 지친 얼굴로 그렇게 떠들어 댔다. 이제는 더 울 힘도 없었다. 바닥에 누워 도채희가 말했다.
“그래서 그쪽, 이름이 뭐예요.”
“빨리도 묻네.”
“그러는 그쪽은 왜 빨리 대답 안 해요?”
도채희의 말에 꾹 입을 닫았던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효…… 창립이요. 그러는 그쪽은?”
“도채희요.”
그 이름에 효창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효창립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채희는 각범부의 유명 인사였다. 효창립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건, 그녀가 언론에 얼굴을 비쳤을 때와는 달리 추레한 행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지을 정도로 내 꼴이 엉망이에요?”
“예에…….”
사실 행색보다는 표정이 문제였다. TV에 나오는 도채희는 언제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이렇게 세상이 다 무너진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쪽이 정호산 씨를 끌어들였다고요…….”
두 사람의 연결 고리란 뭘까. 효창립은 눈을 찌푸렸다.
“더 알 필요 없어요. 이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거 빼고.”
“내 잘못이라니까.”
“아니라고요.”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다 다시 바닥에 누웠다.
“더 싸울 힘도 없어요, 이제는. 그러니까 그냥…….”
“내 잘못으로 하고 끝내요.”
효창립의 말에 도채희가 눈을 부릅떴다.
“그냥 진짜 나쁜 놈을 잡는 걸로 해요. 내가 아는 정호산 씨라면 우리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것도 싫다고 할 테니까.”
응, 정호산이라면 분명 그렇게 말할 거다. 도채희의 말에 효창립이 말했다.
“난 몰라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알아요.”
“아까는 친한 사이도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알아요.”
도채희가 말했다.
“그래서 슬픈 거예요. 이렇게 잃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이라.”
* * *
도채희는 아침이 밝고 나서야 장례식장을 나섰다. 효창립도 함께였다. 두 사람은 전쟁터에서 막 기어 나온 모양새로 장례식장을 기어 나왔다. 둘 사이에는 동료를 잃은 사람들 특유의 묘한 전우애가 싹 터 있었다.
“출근해요?”
“……쉬어요. 휴가거든요.”
“같이 국밥이나 하러 갈래요?”
도채희의 말에 효창립은 고개를 저었다. 도채희는 한숨을 쉬며 효창립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뭐, 뭐예요.”
“여기, 내 명함이에요. 힘든 일 있으면 전화해요. 이미 끈이 다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울게요.”
정호산이 생각나서일까. 왠지 이 남자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나쁜 선택을 할 것처럼 우울해 보이는 눈동자를 보니 더더욱 그랬다.
효창립은 말없이 도채희의 명함을 받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도채희는 아래쪽으로, 효창립은 위쪽으로 갈라졌다.
집으로 가는 길, 도채희는 피곤에 젖은 눈을 끔뻑거렸다. 장례식장에서 눈을 붙이긴 했지만, 여전히 피곤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눈앞에 허상이 보이는 건.
‘내가 지금 헛걸 보고 있나.’
그래, 헛거다.
그녀가 자주 들리던 편의점 앞에 눈에 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죽었다고 그랬는데. 하지만 저렇게 넓은 어깨가 어디 흔한가.
도채희는 떨리는 숨을 참고 플라스틱 의자를 드르륵 끌었다.
의자에 앉아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도채희는 그대로 눈물을 터트렸다.
“죄송해요. 사정상 한 번 죽어야 했거든요.”
정호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