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5화
#71 마주하다 (1)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리며 설록진은 조수석에 앉은 유채린에게 가볍게 말을 던졌다.
“원래는 청 과장의 아파트부터 찾아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아까 형사님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죠. 시리우스 사건이 일어난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도 알고 싶어졌거든요.”
설록진의 말에 유채린은 아무런 반응도 내보이지 않았다. 세뇌에 당한 그녀에게는 그 어떤 자유 의지도 없었으므로. 설록진은 그녀의 반응 부족에 개의치 않고 운전대를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고 나니,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여태까지 내 계획을 방해하던 게 모두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러고 보면 참으로 이상했다. 이토록 자주 자신의 계획이 흐트러졌던 때가 있었던가. 목적지로 차를 몰며 설록진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해요. 내 능력이 통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거든.”
작년, 영종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설록진은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유일하게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게다가 마치 자신이 백도산을 노리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을 기습하기도 했지.
“그때 그 사람도 가면을 썼었죠, 누구처럼.”
벨츠머츠는 이번 청 과장 살인사건의 주요 용의자였다. 시체를 전시한 방식도, 범행 특징도 모두 벨츠머츠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이 가설에는 한 가지가 부족했다.
바로 동기다.
벨츠머츠가 김성득 의원을 해친 것까지는 이해가 간다. 김성득 의원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던 사람이었고, 그에 대한 징치를 하겠답시고 벨츠머츠가 어울리지도 않게 자경단 짓을 한 거였으니.
하지만 청 과장을 벨츠머츠가 건드린 이유는 무엇인가.
경찰들은 그 동기를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설록진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청 과장은 한조희를 죽였지.’
물론, 그 사실을 벨츠머츠가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청 과장은 나름대로 제 일 처리를 잘하는 인간이었다. 한조희를 처리할 때 흔적을 남겨 뒀을 리 없다. 그 정도로 멍청했다면, 애초에 설록진은 그 인간을 제 밑에 두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도 들켰다.
어떻게?
한서현은 네크로맨서다. 죽은 자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어쩌면 죽은 자와 소통할 수 있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형에게 청 과장에 대해 전해 들었을 수도, 그러니 청 과장을 쫓았을 수도 있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청 과장의 시체를 전시한 방식이다. 굳이 청 과장의 시체를 미리내당 앞에 전시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설록진을 공격하는 메시지를 인터넷에 뿌렸다는 것.
그건, 청 과장의 뒤에 설록진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설록진은 유채린을 향해 물었다.
“채린 씨는 물건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과거를 읽어 낼 수 있다고 했죠?”
설록진의 말에 동공이 노랗게 물든 유채린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 볼 수 있어요?”
“제가 보는 건 일부뿐이에요. 전체적인 그림은 볼 수 없어요. 그랬다간 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될 테니까요.”
유채린의 말에 설록진이 물었다.
“아, 질문을 바꿔야겠네요. 당신이 망가지는 걸 감수하고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린다면, 어디까지 볼 수 있어요?”
그 말에 유채린은 담담하게 답했다.
“거의 전부요.”
그 말에 설록진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설록진이 몰던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으슥한 곳에 차를 세운 설록진은 차에서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설록진의 에스코트를 따라 유채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번과 달리 게이트 앞은 한산했다. 시체를 수습하기 위해 온 사람들과 증거 수집을 위해 온 몇몇 사람들뿐이었다.
설록진의 시선에 닿은 이들은 설록진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설록진은 일렁이는 게이트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이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들어가죠.”
유채린의 손을 잡은 설록진은 그녀와 함께 게이트에 발을 디뎠다.
* * *
복수를 끝낸 뒤 한서현의 기분은 가라앉았다. 한서현의 의지인지, 그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얀색의 스켈레톤(한조희)은 계속해서 튀어나와 한서현의 옆을 지켰다.
마치 한서현을 위로하듯이.
“난 괜찮아, 형.”
한서현은 한조희에게 말했다.
“형은 괜찮아?”
한서현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한조희는 한서현의 어깨를 톡톡 두들기고 그를 끌어안아 주었다. 차가운 스켈레톤의 뼈에서는 그 어떤 따스함도 느껴지지 않을 텐데도, 한서현은 두 눈을 꼭 감고 조심스레 스켈레톤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한서현은 이 복수로 구원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을 해냈다는 후련함은 남았다.
나는 설록진의 동태를 살폈다.
우리의 선전포고에 설록진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으므로. 그리고 그 반응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이었다.
설록진이 유채린을 납치했다는 말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유채린이라고?”
“네.”
유채린은 대한민국 유일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였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건에는 모두 차출되어 능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저번 김성득 의원 사건 때도 차출되어 내 흔적을 읽었다지. 그때처럼, 유채린이 이번 사건에 투입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유채린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녀를 경계하지 않은 것은 유채린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유채린의 능력은 사이코메트리라는 말로 간단하게 정의되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단순히 과거를 읽어 내는 것뿐만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때 있었던 일을 모두 재현할 수 있으니까.
유채린은 사건 현장에서 있었던 모든 이의 시점으로 사건을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재현이 본인의 머릿속으로만 일어나고, 순식간에 압축되기에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읽어 낼 수 있는 사이코메트리라고 칭해질 뿐, 엄밀히 말하자면 그저 기억만 읽어 내는 사이코메트리보다 상위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유채린 본인이 그때 읽어 내는 감정과 감각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거지.
그래서 유채린이 살인 사건을 조사하길 꺼리는 거다.
가해자가 되어 누군가를 죽이는 희열을 느끼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걸 겪고 싶지도 않으니까.
유채린의 정신력은, 그런 일을 견뎌 낼 만큼 견고하지 못했다.
그래서 유채린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읽어 내는 것을 거부했다. 유채린은 중요한 장면을 모두 자르고 자신이 겪기에 고통스럽지 않은 부분만 겨우 빼내 읊었다.
유채린이 살인 사건에서 유독 유용한 정보를 빼내지 못하는 것도 이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를 설록진이 데리고 갔다니.
설록진은 유채린의 정신이 망가지든 말든 개의치 않고 그녀의 능력을 끌어다 쓸 거다.
마치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버려 버리겠지.
“생각이 짧았어. 진작 빼돌려야 했는데.”
“진작 빼돌리기는요. 보스도 몰랐잖아요, 설록진이 그 사람을 노릴 줄.”
“그래도 예상했어야…….”
“그런 말은 지금 도움이 하나도 안 돼, 앞으로 어쩔 건지를 생각해야지.”
차송진의 말에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래, 이미 일어난 일을 후회하는 건 하수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야지.
“설록진, 어디로 가고 있어?”
“어디로 가고 있는데?”
“저번에 우리가 유선제를 구했던 게이트로요.”
“어째서?”
나는 당연히 설록진이 유채린을 데리고 청 과장이 살해되었던 곳으로 갈 줄 알았다.
하지만 설록진은 청 과장의 아파트 대신, C급 게이트로 향했다.
어째서?
내 질문에 한서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설록진이 그곳으로 향했다는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게이트 안에서 일어났던 일이 누군가에게 알려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 게이트란 공략이 되면 사라지는 공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시체 수습을 위해 게이트 유지 장치를 설치해 둔 덕분에 게이트는 공략 이후에도 남아 있었다.
유채린을 그곳에 데리고 간다면, 설록진은 그 안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알아낼 수 있을 거다.
다른 정보가 새는 것도 위험하지만, 유선제와 나의 대화가 설록진의 귀에 들어가는 건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야 했다.
혹여 설록진이 내 정체를 알게 된다면, 가장 위험해지는 건 정호산, 그 녀석이니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쩌려고요.”
“가야지.”
단지 유채린 때문만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라도 나는 그곳에 가야만 했다.
“설록진을 만나러 가겠다고요?”
“그래.”
내 말에 한서현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벨츠머츠는 설록진을 상대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당장 정신계 아티팩트도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설록진을 만나러 간다는 건 자살 행위니까. 그러니까…….
“혼자요?”
“그래.”
내 말에 한서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쳤어요?”
“미친 게 아니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설록진의 능력은 세뇌라고. 지금 우리가 우르르 몰려가 봤자, 설록진이 너를 세뇌하면 끝이야.”
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저번에 느낀 건데, 너랑 싸우는 건 진짜 힘든 일이거든. 응, 진짜. 단번에 발릴 거라니까.”
응, 정말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나는 가볍게 말을 던졌지만, 한서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혼자 가서 뭘 어쩌게요?”
“그쪽도 유채린과 단 둘뿐이라며?”
정말 설록진 곁에 유채린뿐이라면, 이번이 오히려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내가 알기로 설록진의 능력은 세뇌 딱 하나뿐이니까.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온 걸 수도 있어.”
내가 알기로 설록진은 별다른 전투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값비싼 아티팩트로 본인의 몸을 보호하고는 있지만, 그뿐이다.
제대로 그놈을 공격할 수 없었던 전과 달리 이제는 내게도 제법 그럴싸한 능력이 생기지 않았나.
“그러니까 괜찮아.”
“그래도…….”
“근처까지는 와도 돼.”
나도 그냥 걸어갈 수는 없으니까.
내 말을 들은 차송진이 말했다.
“정말로 혼자 그 녀석을 마주하겠다고?”
“말했잖아, 같이 갈 수는…….”
“알아, 우리도 너와 같이 갈 수 없다는 건. 하지만 애초에 말이야, 거기에 꼭 가야 하는 거야?”
“설록진이 우리에 대해서 전부 알아내면 곤란해진다니까?”
내 말에 차송진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어차피 우리의 정체를 알리기 위해서 이번 선전포고를 준비한 거잖아. 우리에 대해서 더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괜찮지 않냐는 말이었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가 위험해질 거야.”
내 다급한 말에 차송진은 눈을 깜빡였다. 한서현은 뒤에서 이를 갈며 말했다.
“정호산, 그 사람이요? 그래, 이상하다 했어. 그 사람 때문에 설록진, 그놈을 혼자 마주하러 가겠다는 거죠, 지금?”
“단순히 걔 때문만은 아니야.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이번이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을 이었지만, 내가 들어도 어딘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말이었다.
━네가 이렇게 파르르 떠는 이유는 바로 정호산, 그놈 때문이니까 말이지. 한서현도 그걸 알고 있고.
그래, 그러니까 저렇게 나를 노려보는 거겠지만. 그래도 어쩌나. 나 때문에 그 녀석이 죽는 꼴을 두 번은 못 보겠는걸.
나와 한서현의 사이를 눈짓하던 차송진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그럼 일단은, 한, 한 번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그 유채린이라는 사람도 구해야 하잖아?”
그 말에 한서현은 못마땅하다는 듯 눈을 흘기며 말했다.
“……진짜, 무슨 일이 생기면 진짜 가만히 안 둘 거예요.”
허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