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2화
#70 바라 마지않는 복수 (2)
한서현의 복수를 앞두고 나는 몇 가지 고민을 했다.
첫 번째 고민. 나는 이 복수에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가.
나는 한서현의 복수를 온 힘을 다해 도울 거다. 중요한 건 내 이 도움이 어디까지냐, 하는 거다.
나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우고 내가 공개수배 되는 데에 일조하긴 했지만, 나는 청 과장에게 별 유감이 없었다. 설록진이라는 거대 악에 휘둘렸을 뿐이라는 걸 이해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한서현은 다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청 과장은 한조희의 죽음에 연관이 된 사람이니까.
그러니 이 복수는 오로지 한서현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돕는다는 허울 좋은 변명을 대면서, 이 복수를 내가 대신해 주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두 번째 고민. 그렇다면 이 복수는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가.
한서현은 아직 어리다. 나는 그 이유로 한서현이 선을 넘는 것을 막아 왔다.
하지만 이 복수에도, 한서현이 바라 마지않았던 이 복수에도 선을 그어야 하는가.
한서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그 말로는 한서현을 설득할 수 없을 거다.
겨우 열일곱, 한서현은 하나뿐인 형을 끔찍하게 잃었고 그 복수를 위해 형을 안온한 영면에서 끌어올렸다.
내게 왔을 때, 한서현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복수에 대한 갈증뿐이었다. 그 갈증을 알면서, 여태까지 한서현이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는지 알면서 감히 이 녀석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번에 한서현을 말리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격려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보라고.’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복수니, 아주 제대로 해 보라고. 네가 원했던 대로, 후회가 남지 않도록.
그 결과가 이거다.
나는 한서현의 뒤에 가만히 섰다. 의자에 묶인 청 과장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조희의 대답을 들은 뒤, 다시 그를 돌려보낸 한서현은 본격적인 복수에 나섰다.
“으으윽!”
한서현의 손짓에, 청 과장의 오른쪽 엄지가 우두둑하며 꺾여 나갔다. 검은 모래에 휩싸인 청 과장의 손가락은 보기만 해도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이상한 각도로 모두 꺾여 있었다.
한서현은 사디스트는 아니었다.
지금 한서현이 청 과장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데에는, 한 점의 기쁨도 없었다. 한서현은 단지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식의 담담한 태도로 청 과장의 손가락을 꺾었다.
청 과장은 그런 한서현을 향해 애원했다.
“제발, 제바알…….”
그 애원에 대한 한서현의 반응은 싸늘했다.
“왜 그래, 아직 손톱은 뽑지도 않았는걸.”
오른손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한서현은 멈추지 않았다. 피를 줄줄 흘렸다. 한서현은 청 과장의 손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조희의 몸에 남은 상처와 청 과장의 오른팔을 비교하던 한서현은 이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끄덕임에 청 과장의 눈이 흐려졌다.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와 함께, 곧이어 엄청난 절망이 찾아들었겠지. 한서현이 끝낸 부위는 고작해야 오른팔뿐. 아직 청 과장에게는 남은 부위가 많았으니까.
한서현은 손가락을 튕겨 검은 스켈레톤을 불러냈다. 검은 스켈레톤의 등장에 청 과장의 눈동자가 떨렸다. 한때 도살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스켈레톤은 단숨에 등에 메고 있던 검으로 청 과장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끄아아악!”
자신의 팔이 잘려 나가는 고통에 청 과장은 몸을 뒤틀었다. 그와 동시에 검은 모래가 청 과장의 어깻죽지를 틀어막아 피를 지혈했다. 과다출혈로 죽는 꼴은 두고 보지 않겠다는 듯.
“허, 억, 허억…….”
청 과장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아직 진짜 끔찍한 건 시작하지도 않았다. 한서현의 눈동자가 검게 불타올랐다. 한서현의 몸에서 흘러나간 흑마력이 청 과장의 팔을 감쌌다. 자신의 앞에 떠오른 오른팔을 바라보며 청 과장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한서현의 마력은 청 과장의 살점을 그대로 해체해 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몸에 붙어 있었던 자신의 팔이, 눈앞에서 해체되어 뼈다귀가 되는 광경에 청 과장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한서현의 마력은 천천히 청 과장의 팔이었던 것에 스며들었다. 하얀 뼈는 곧 검게 물들었고 그 뼈는 한서현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제 몸을 타고 오르는 뼈다귀에 청 과장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거, 이거 떼 줘! 당장, 당장 떼 내라고!”
“왜? 당신 팔이잖아.”
미소를 지은 한서현은 그 팔로 톡톡 청 과장의 볼을 두드렸다. 그 순간, 청 과장의 바지춤이 축축하게 물들었다. 지나친 공포로 정신을 놔 버린 거다.
한서현은 그 모습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청 과장의 오른팔이었던 뼈는 청 과장의 볼을 세게 갈겼다. 겨우 정신을 차린 청 과장의 얼굴을 보며 한서현이 미소를 지었다.
“정신 차려야지, 아직 많이 남았는데.”
그다음부터 청 과장을 고문한 건, 검은 모래가 아니라 청 과장의 오른팔이었다. 데칼코마니처럼, 왼팔 또한 오른팔과 똑같은 모습이 되었다. 손가락이 뒤틀리고, 손톱이 뽑히고. 힘줄이 모두 잘린 다음에는…….
검은 스켈레톤이 제게 다가오자 청 과장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그의 감정을 느낄 리 없는 검은 스켈레톤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뚝, 하고 청 과장의 왼팔이 떨어졌다.
━끔찍하구나.
레이의 앓는 소리가 머리를 채웠다.
━정말 저대로 둬도 되는 거냐?
‘처음 한서현을 만났을 때, 제가 약속할 수 있었던 건, 그럴싸한 복수뿐이었습니다.’
형의 복수를 위해 찾아온 이 어린 녀석에게 내가 약속할 수 있었던 건 빛나는 미래가 아니다.
네 형을 그렇게 만든 놈을 찾아내, 어떻게든 네가 복수할 수 있게 돕겠다.
그게 내가 약속한 것이고, 이건 그 약속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저는 서현이의 복수를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지 않을 겁니다.’
보기에 끔찍하긴 하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몸에 붙어 있던 내 몸의 일부가 나를 해친다니 말이다.
하지만 복수에 정말 ‘과한 게’ 있는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이건 복수자를 위한 말이 아니었다. 복수를 당하는 사람을 위한 규칙이었지.
누구 좋으라고 똑같이만 돌려주냔 말이다.
‘이런다고 한조희는 돌아오지 않아요. 뭐, 어떻게든 돌아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완전한 한조희가 아니니까요.’
따듯한 살점 하나 없이, 뛰는 심장 없이, 그저 안타깝다는 눈으로 제 동생을 바라보기만 하는 그 녀석을, 완전한 한조희라고 할 순 없다.
한서현은 형을 잃었고,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건 정당한 복수 같은 게 아니거든요. 그냥 나 후련하자고 이런 짓을 하는 건데, 그런 걸 신경 쓰겠습니까?’
당사자인 한조희는 바라지 않는 복수라고 해도, 한서현에게는 이 복수가 필요했다.
‘저는 형편없는 리더라서 말이죠, 사람들이 어떻게 떠들어 대든 그냥 우리 애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거든요.’
사지가 잘려 꿈틀거리는 청 과장의 꼴을 보면서도 한서현이 끔찍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그 때문일 거다.
저놈을 조각조각 내는 걸로 한서현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나 또한 그걸로 좋았으니까.
━그래서 쟤를 저렇게 둘 생각이냐?
‘잘했다고 어깨 좀 두드려 주고 고생했다고 꽉 안아 준 다음에 뜨끈한 국밥 먹인 다음에 집에 잘 데리고 갈 건데요.’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복수를 끝냈으니, 잘했다고 해야지. 내 말에 레이는 한숨을 푸욱 쉬었다.
‘내 양심 역할에서 은퇴한 거 아니었습니까?’
━이건, 정말로…….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한서현을 재단하고 싶지 않다. 레이가 말하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청 과장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는 한서현의 곁에 머물렀고 모든 일이 끝난 뒤 나는 피투성이의 그 녀석을 꽉 끌어안아 주었다.
“흐, 흐흑.”
한서현은 눈물을 터트렸다. 어깨가 젖어 들어가는 걸 느끼며 내가 말했다.
“끝내주게 잘해 놓고 울기야?”
“나, 잘했어요?”
“응, 대리로 복수해 주는 사업하면 대박 날만큼.”
내 말에 한서현은 쿵 내 어깨에 이마를 박았다.
“그런 사업하지 마요.”
“망하려나?”
“……망하진 않을 것 같긴 한데.”
한서현의 중얼거림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솔깃해?”
“아뇨, 이거 세 번은 못 하겠어요.”
“두 번은 할 수 있단 말?”
“아직 남았잖아요, 한 사람이.”
쓱쓱 눈가를 문질러 닦은 한서현이 나를 보며 말했다.
“설록진, 그 개자식이 남았잖아요.”
한서현의 얼굴은 다시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래, 우리에게는 아직 진정으로 복수해야 할 사람이 하나 남아 있지. 나는 한서현의 어깨 너머로 엉망이 된 청 과장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입술이 달라붙은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녀석에게 복수하고 싶다며. 네가 그 녀석에게 바라는 것도 화끈한 복수 아니었냐.
‘글쎄요, 왠지 저 꼴이 된 설록진은 상상이 안 가서 말입니다.’
도저히 저렇게 무너진 모습이 상상이 안 간달까. 죽여도 죽지 않을 인간 같아서 그런가. 아니면…….
상상 속에서도 나는 완벽한 복수를 이루지 못했다. 그저 목숨을 빼앗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설록진을 고문한다고 내 마음이 풀릴까 싶었다.
아니, 애초에 설록진에게 완벽한 복수를 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설록진은 제게 했던 일을 모두 잊었을 테니까요.’
내가 복수하고 싶었던 그 대상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지금의 설록진은 내가 아는 그 녀석이 아니니까. 하지만 다행히, 이 세계에서도 설록진은 충분히 나쁜 놈이었다. 죽어 없어지는 게 나은, 그런 나쁜 놈.
그래, 언젠가 설록진에게도 끝내주는 복수를 할 수 있겠지.
나는 한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다. 약속대로 여기서부터는 내가 처리할게.”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너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섬세하게 마력을 조종하는 건, 제아무리 한서현이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고 실제로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으니. 조금만 더 무리했다가는 누구처럼 피를 토하고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내가 할 일이다.
나는 김재호에게 눈짓했다. 소파에 앉아 이 복수의 끝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김재호는 내 손짓에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한서현이 잘랐던 사지는, 뼈다귀인 채로 다시 청 과장의 몸에 꽂혀 있었다. 몸통과 얼굴은 깔끔하게 남았지만, 사지는 뼈다귀만 남은 기이한 시체.
나는 청 과장의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대로 내놔도 다들 깜짝 놀라겠는데.”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조희에게 남긴 메시지가 하나 빠져 있었거든.
나는 단검을 들어 메시지를 새겼다. 그 메시지를 보며 나는 웃음을 흘렸다.
내가 새기기에는 퍽, 아이러니한 메시지였으므로.
* * *
다음 날, 세상은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현 여당인 미리내 당의 중앙당사 앞에 끔찍한 꼴의 시체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체의 몸통에는 이러한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잘못된 주인을 모신 죄」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인터넷에는 청 과장이라는 인물과 함께, 설록진 의원에 대한 비방 뉴스가 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