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1화
#70 바라 마지않는 복수 (1)
설록진은 뉴스를 보며 툭툭 책상을 두드렸다. 이번 작전이 실패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유선제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었고, 팀원과 화합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한지무는 유선제를 핀치로 몰아넣을 완벽한 아티팩트를 손에 넣었고, 혈마의 협조로 받아 놓은 물약도 있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한지무의 몸에 시한폭탄까지 심어 놓았고.
그런데 실패했단 말이지.
세레나의 빙궁 때도, 지금도.
유선제는 그 게이트 안에서 죽어야만 했다.
이 계획이 왜 틀어졌는지, 이번에는 알아내야 했다.
“이건 그대로 넘길 수 없겠네요.”
서늘한 설록진의 말을 들은 청 과장의 몸이 덜덜 떨렸다. 설록진이 이런 말을 할 때는 늘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으므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겠어요.”
이 일을 전부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은 유선제, 그리고 소이연뿐이었다.
설록진이 유선제에게 접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설록진은 유선제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생각이 아직은 없었다.
“소이연, 그 친구를 직접 보고 싶은데.”
그 말에 청 과장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한조희를 병원에서 납치했을 때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시리우스 산하 병원에서 안전하게 치료받고 있을 그녀를 어떤 수를 써서 빼돌릴 수 있을까.
게다가 설록진이 지금 이 말을 꺼낸 순간, 이미 째깍째깍 시간은 가고 있었다. 여유도 많지 않다는 뜻이었다.
“유선제, 그 친구보다는 나을 거 아닙니까?”
마치 선심이라도 써 준다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감히 설록진에게 싫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알, 알겠습니다.”
청 과장은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쉬고 바깥으로 나왔다.
머릿속에는 오직 소이연을 어떻게 빼돌릴지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일단 소이연에 대해 알아보는 게 먼저겠지. 가족 관계를 조사하고, 어떤 약점이 있는지를 알아봐서.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 데리고 와야 했다.
청 과장은 휴대폰을 들어 자신이 아는 놈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응, 그래. 올해 막 바벨 아카데미를 졸업한 녀석이야. 아카데미에서 친했던 애들이랑, 가족 관계 좀 알아봐 줘.”
소이연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으면서도 청 과장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었으므로.
“젠장, 왜 하필 이런 어려운 애를. 저번처럼 쉬운 일도 아닌데.”
골목길에서 담배를 태우며 청 과장은 욕설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빼돌리지, 어떻게…….”
초조함에 다리가 덜덜 떨렸다. 휴대폰이 울렸다.
“알아봤어?”
휴대폰 너머로 넘어오는 정보는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형편없었다.
“알겠어. 아니, 일단은 대기하고 있어. 내일 그쪽으로 갈 테니까.”
전화를 끊고 나니, 새삼 설록진을 향한 반감이 차올랐다. 골목길에 돌아다니는 돌을 발로 걷어찬 청 과장이 욕을 내뱉었다.
“씨이X. 어떻게 하라고 나더러!”
청 과장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일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할 판이었다.
삐비빅,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입력한 청 과장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목을 죄고 있던 넥타이부터 벗어 던지려고 할 때였다.
“이제 퇴근해?”
거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청 과장은 화들짝 놀랐다.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초록색 불빛이 청 과장을 향해 말했다.
“기다리다가 깜빡 졸 뻔했잖아.”
* * *
나를 본 청 과장은 재빨리 문밖으로 도망가려 했지만, 이미 현관문은 누군가에게 막힌 뒤였다.
“안녕.”
“으아악!”
김재호의 가슴팍에 고개를 박았던 청 과장은 뒤로 넘어졌다. 뒤로 넘어진 청 과장을 보며 나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고개를 숙여 발랑 배를 까뒤집고 있는 청 과장과 눈을 맞댔다.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대답은 안 하고, 도망가려고 하다니. 너무하네.”
“누, 누구야!”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묻는 거야? 잘 봐, 당신도 이미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텐데.”
내 말에 청 과장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경악한 눈 아래, 깨달음이 스쳤다.
“베, 벨츠머츠!”
“그래, 모르면 안 되지.”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가면을 뒤집어써 내 표정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웠다. 내 표정을 봤다면 조금 더 벌벌 떨었을 텐데 말이다.
다행이랄까. 이미 청 과장은 추가로 겁을 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는 청 과장을 내려다보며 김재호에게 고갯짓했다. 내 명령에 김재호는 엎어져 있던 청 과장의 멱살을 잡아 그를 일으켰다. 키가 작은 청 과장은 김재호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크윽!”
청 과장을 위해 준비해 둔 의자가 있었다.
김재호는 그곳에 청 과장을 패대기치듯 내려놨다. 청 과장이 그 의자에 앉자마자 모래가 날아들어 청 과장의 몸을 의자에 단단히 고정했다.
천천히 한서현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불도 켜지지 않은 거실에, 모래로 단단히 묶이게 되다니.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집 좋네. 야경도 끝내주고.”
서울에서 가장 안전한 땅인 강남에, 거기에 고층 아파트. 이 추악한 남자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창밖에 보이는 야경은 아름다웠다. 그 야경을 발아래에 두기 위해 이 남자는 그동안 무슨 일을 해 왔을까.
나도 안다. 설록진이 내려 주는 과실이 얼마나 달콤한지.
“여기에 오기까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기억해?”
아니, 질문을 바꿔 볼까.
“이곳에 남기 위해, 오늘 무슨 짓을 저지르려 했는지 물어야 할까?”
내 질문에 청 과장의 몸이 움찔 떨렸다.
“소이연을 어쩔 생각이었어?”
“그걸 왜, 너희가…….”
청 과장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벨츠머츠와 소이연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는 게 좋을 텐데.”
내 말에 청 과장은 눈을 굴렸다. 당장에라도 우리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싶다는 듯이 달싹거렸던 입술은, 이윽고 다른 말을 토해 냈다.
“나,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거야.”
하긴, 아직까지는 우리보다 설록진이 훨씬 두렵겠지. 여기에서 우리에게 살아남는다고 한들, 설록진에게 어차피 죽임을 당할 거라는 생각이다.
남의 머릿속을 훤히 볼 수 있는 설록진에게는 어쭙잖은 거짓말도 통하지 않을 테니, 설록진을 배신하느니, 그냥 죽겠다는 선택이다.
하지만 말이지…….
“뭐, 사실 네 놈이 말하지 않아도 대충은 짐작이 가. 이번 일에 그 사람, 단단히 열이 받았지?”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로 자신의 작전이 실패한 꼴이 됐으니 정말로 열이 받았을 거다.
게다가 바쁜 시간을 쪼개 직접 현장에 행차까지 하셨는데 실패했다니. 얼마나 화가 날까. 설록진의 화난 얼굴을 생각하니 웃음이 다 나왔다.
“그러니 소이연을 찾아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고 싶었을 거야. 유선제에게 접촉하는 것보다는 그게 쉬울 테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청 과장을 이용하려고 했던 거겠지.
“내 말이 틀려?”
내 말에 청 과장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X발, 그걸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야?”
“아니, 소이연에 대한 건 보너스지. 진짜는 따로 있고. 아직까지 모르겠어?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내 말에 청 과장은 눈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실망이다. 나였으면 우리가 ‘벨츠머츠’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당장 머릿속에 이것부터 떠올렸을 텐데…….
나는 한서현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한서현은 해골 무늬가 그려져 있는 가면을 벗었다.
“잘 아는 얼굴일 거야.”
처음, 청 과장은 그림자가 드리운 한서현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세상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순간, 희게 물든 달빛이 한서현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달빛에 드러난 이목구비를 샅샅이 살펴본 청 과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 너는…….”
“우리 형 기억나?”
한서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 전처럼 말했을까? 한조희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지금 어떤 병원에 있는지, 가족 관계는 어떤지…….”
한서현의 질문에 청 과장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이제야 비로소 공포라는 감정이 진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쩌면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겠지만, 지금 그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우리 형 말이야. 납치하기 쉬웠겠지?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로 쉬운 일이었을 거야.”
시리우스의 촉망받는 헌터인 소이연과 달리 한조희는 너무나도 손쉬운 타깃이었을 거다.
“오늘처럼 욕을 하지도 않았지? 왜냐, 당신한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을 테니까. 입원하고 있는 병원을 알아내고, 겨우 열일곱짜리 동생 하나랑만 같이 사는 걸 알아내고, 그 누구도 형을 도울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낸 다음에 어떤 생각을 했어?”
한서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화를 내지도, 울먹거리지도 않았다. 한서현은 정말로 담담하게 사실을 이야기하듯 청 과장에게 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 당신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듯, 검게 물든 눈동자는 살벌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검게 불타고 있는 한서현의 눈동자에 담긴 분노에 청 과장은 하얗게 질렸다. 그의 몸을 붙잡고 있는 모래가 점차 그의 몸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흐, 흐억!”
가슴을 꽉 죄인 모래에 청 과장의 숨이 가빠졌다. 나는 한서현의 어깨를 두들겼다.
“저러다 죽겠어.”
“흐, 사, 살려…….”
청 과장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내 말에도 한서현은 곧바로 힘을 풀어내지 않았다. 청 과장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야, 모래에 담긴 힘이 흩어졌다.
“허어, 허억, 헉!”
청 과장은 몸을 부르르 떨며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뚝뚝, 그의 입을 타고 더러운 타액이 떨어졌다. 제 앞에서 부들부들 떠는 청 과장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한서현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죽을 뻔했어…….”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한서현의 말에 청 과장의 몸이 마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췄다. 천천히 청 과장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우리 형 말이야. 그 상황에서도 살아 있었어. 온몸의 장기가 다 녹아내리고 있었는데도, 어떻게든 살아 있었어. 가죽이 다 찢기고, 온몸에 칼자국이 났어도, 살아 있었다고.”
실제로 한조희는 병원에 있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숨이 붙어 있었다. 그 지독한 고문을 모두 살아서 견뎌 냈다는 뜻이다.
“난 결심했어. 형에게 그런 고통을 준 사람이 누구든, 똑같이, 아니 몇 배는 더 가혹하게 갚아 주겠다고. 형이 바라지 않는 복수라고 해도 나는 해낼 거라고. 문제는 그거지. 우리 형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굴까.”
그렇게 말한 한서현이 청 과장을 바라보았다. 청 과장은 다급하게 말했다.
“나, 나는 아니야!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잘, 잘못 알고 오신 겁니다. 진짜 저는 아니, 아니고, 다른, 다른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틀릴까 걱정할 필요 없어.”
딱, 한서현이 손가락을 맞부딪치자 공중에서 새하얀 스켈레톤이 나타났다. 스켈레톤의 등장에 청 과장의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고맙게도 나한테는 정답을 가르쳐 줄 사람이 있거든.”
새하얀 스켈레톤, 한조희는 가만히 서서 청 과장을 바라보았다. 텅 빈 두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한조희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인사해, 우리 형한테.”
“저, 저게…….”
“응, 우리 형이야.”
한서현은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도 못 했지? 당신이 죽여 버린 사람이 이런 식으로 당신을 찾아오게 되는 거 말이야.”
그렇게 말한 한서현이 한조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맞아, 아니야? 그것만 말해 줘, 형. 알지, 형? 형이 대답해 주지 않아도 나는 할 거라는 거. 그러니까 말해 줘, 제발.”
한서현의 간절한 질문에 한조희는 답을 내어 주었다.
조심스럽게 끄덕여지는 고개에 한서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