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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60화 (260/352)

제260화

#69 리더의 자격 (4)

시리우스의 1군을 뽑겠다고 진행했던 게이트 공략은 한지무의 테러로 끔찍한 결과를 맞게 되었다.

겨우 C급 게이트를 공략하러 들어간 거지만, 생존자는 단 둘뿐이었다. 소이연과 유선제.

그들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던 시리우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기삿감을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그들을 흥분시키는 것도 없었다.

C급 게이트 공략에 시리우스의 루키들이 모두 죽어 나갔다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기자들이 진짜 놀란 건 따로 있었다.

「이번 일에 대한 잘못은 모두 저에게 있습니다.」

무려 그 유선제가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저렇게 말했다.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 깔끔한 사과였다. 놀랄 만한 일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게이트 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물을 때마다 언제나 냉한 얼굴로 기자들을 지나쳤던 유선제지만, 그날만큼은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까지 했다고 한다. 놀랄 일은 또 있었다. 유선제는 직접 유가족들을 찾아가 모두 사과를 구했다고 했다. 게다가 막대한 금액의 위로금도 따로 지급했다고.

이 모든 일에 대한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며 말이다. 제대로 그들을 이끌지 못한 자신을 탓해 달라는 그의 말에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를 다독여 주었단다.

몇몇 유가족들은 유선제에게 욕을 쏟아 내며 그를 원망한 모양이지만, 그 원망마저도 유선제는 전부 받아들였다고…….

혹시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가짜 기사인가 해서 한서현에게 추가 조사를 부탁했는데, 놀랍게도 모두 사실이었다.

거기에 이번 사건의 생존자인 소이연은 자신의 팀에 받아들이고 앞으로 소이연과 만들어 갈 자신의 팀을 기대해 달라는 말까지.

연달아 이어지는 소식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네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나 본데.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병에라도 걸린 게 아닐까요?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바뀌면 곧 죽는다던데.’

━네 놈이 지나가는 벌레보다는 저 녀석에게 의미가 있었던 거겠지.

‘흠…….’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한 번에 바뀐다고? 왠지 뒤가 구린데.

‘설록진에게 세뇌라도 당한 걸까요?’

━그냥 바뀐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 거냐?

‘전혀요.’

정말 정수리에 벼락이라도 맞았나 싶을 정도로 한순간에 바뀌어 버렸다.

물론 여전히 개인적으로는 싸가지가 영 없고, 별로라는 소리가 있지만……. 오히려 그 소식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냥 자기 이미지를 챙기려고 며칠간 쇼를 하는 거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요.’

━그 녀석이 바뀌길 바란 건 바로 너 아니냐?

‘그렇다고 갑자기 이렇게 바뀌는 걸 바란 건 아니라고요.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유선제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어쨌거나 싸가지가 없는 영웅보다는, 호감상인 영웅이 더 좋으니까 말이다.

상황이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유선제의 변화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정말 유선제가 조금이라도 변한 거라면…….’

시리우스의 미래가 조금 더 밝아진 건 사실이었으니까.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길 바라야죠.’

유선제는 분명 뛰어난 헌터다. 뛰어난 리더가 될 자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준다면 시리우스의 미래는 밝을 거다.

제대로 팀을 꾸린다면 설록진이 더 노리기 까다로워지기도 할 거고…….

유선제가 일을 수습하는 동안 우리는 에드워드가 회복하는 걸 기다렸다. 한지무의 폭발을 막겠다고 꽤나 중한 내상을 입어 버렸으니 말이지.

그날 깨어난 에드워드는 배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으으, 죽을 것 같아. 속이 막 더부룩하고…….]

원래대로라면 마력을 흡수한 동시에 마력을 사용해 몸에 마력이 고이지 않게 했겠지마는, 에드워드가 정신을 잃은 사이 몸에 애매하게 마력이 고여 버렸던 게 문제였다.

[속이 안 좋아, 우욱, 욱!]

에드워드가 이렇게 말하면서 때때로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향하는 통에 우리의 대화는 몇 번이고 끊겼다.

그나저나 이거, 어디에서 많이 봤는데…….

내가 머릿속으로 떠올린 생각을 차송진은 기어코 입으로 꺼내 놓았다.

“꼭 그거 같지 않냐, 임신…….”

“형은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해요!”

“끔찍한 소리라니. 드라마에서 임신한 여자 주인공이 딱 저런 모습…….”

“쉿!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돼요!”

한서현은 황급히 차송진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에디, 임신했어?”

희한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해하는 재주를 가진 김재호의 머릿속에 이미 잘못된 정보 값이 입력된 다음이었으니까. 뒤늦게 잘못 들은 거라고 말했지만, 잔뜩 들뜬 김재호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임신! 아기가 생긴다! 작은 사람! 귀여워!”

음, 행복해하는 김재호를 실망시킬 사람은 누구냐. 우리는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것처럼 서로에게 눈짓만 날려댔다.

“애초에 착각할 만한 말을 한 건 송진이 형이잖아요. 그러니까 형이 처리해요.”

“재, 재호랑 가장 친한 건 서현이 너잖아. 나는 재호랑 어, 아직은 어색한 사이고? 응? 충격적인 건 역시 친한 사람이 전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일은 역시 리더가 해야죠.”

이럴 수가! 나에게 폭탄이 넘어왔다.

리더, 리더라고 이런 걸 책임져야만 하는 거냐! 하지만, 이런 것도 처리해야 리더로서의 자격이 있는 거겠지. 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재호야. 왜 에디가 임신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임신했으니까?”

“애초에 임신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토하고, 배가 부르고, 아기가 나오는 거.”

김재호의 말에 나는 절망했다. 너무나도 일차원적인 대답이잖냐, 그거! 하긴 여태까지 김재호가 본 콘텐츠를 생각해 보면 임신에 대해 저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겠지마는…….

나는 차송진에게 교육이 어느 정도 진행됐냐고 슬쩍 물었다. 내 눈을 피한 차송진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직 성교육 파트는 멀어서…….”

“으음.”

하긴, 이제 막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손을 올리고 걸어야 한다는 걸 배우고 있는 애에게 성교육은 무슨 성교육이냐.

곤란해하는 나를 본 한서현이 비장한 얼굴로 김재호에게 다가갔다.

“형, 남자는 임신을 못 해.”

“내가 봤던 거에서는 했는데.”

그 말에 한서현의 얼굴에서 이성이라는 게 사라졌다. 나는 버럭 외쳤다.

“대체 뭘 본 거야!”

“모, 모르겠는데요. 이, 이건 다 송진이 형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패드에 내가 비밀번호 걸어 놓으라고 했잖아요!”

차송진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걸었어!”

“1234는 비밀번호라고 안 하거든요?”

“왜?”

“애초에 ‘비밀’ 번호잖아요! 형의 비밀번호는 비밀이 아니라고요!”

그렇게 싸우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정말이지 답이 없었다.

와중에 에드워드는 뭣도 모르고 자신에게 잘해 주는 김재호에게 감복했다.

“여기 조심히 앉아라. 아기 떨어진다.”

자신의 의자를 대신 빼 주는 김재호를 본 에드워드가 감동했다는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도 다쳤다고 나를 배려해 주는 거야? 킴! 너 정말 좋은 아이구나!]

“아이고, 그게 아닌데, 아이고…….”

차송진이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말을 김재호는 듣지 못했다.

[우에엑!]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에드워드를 보며 김재호가 말했다.

“임신이라는 건 힘든 거구나.”

그 모습을 본 한서현이 혀를 쯧쯧 찼다.

“일단 에디가 저 상태일 때는 무슨 말도 안 통할 것 같다고요.”

그렇게 우리의 복수는 조금 더 늦어지게 되었다.

* * *

안경을 위로 들어 올린 진연화가 눈앞의 유선제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선제 씨가 원하는 대로오오 처리를 하긴 했는데에에. 정말 원하던 게 이게 맞아요오?”

“네.”

그 깔끔한 대답에 진연화는 눈을 빛냈다. 진연화가 알던 유선제는 자신만 알던 독선적인 인간이었다. 이런 ‘배려’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거다.

“팀원을 직접 뽑고 싶다는 말도 진심?”

“예. 제가 직접 사람들을 만나서 하나하나 체크해 볼 생각이에요. 저와 호흡을 맞추게 될 사람들이니까요.”

너무 상식적이라, 너무 유선제답지 않았다.

“그 게이트에서 뭔가 깨달은 거라도 있었나 봐요오오?”

진연화의 말에 유선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요.”

“누굴?”

그 말에 유선제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유선제는 전부 털어놓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전한 것도 반쯤은 거짓으로 지어낸 말이었다.

게이트에 미리 숨어 있던 사람이 자신을 습격했다. 어떻게든 그놈을 물리칠 수는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책임을 통감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선제 자신으로서도 최선을 다하겠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진연화는 유선제의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누구예요오? 선제 씨를 구한 사람?”

분명히 누군가 유선제를 구했다.

하지만 진연화의 질문에도 유선제는 그 답을 속 시원하게 알려 주지 않았다. 그 침묵에 몸이 달은 진연화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왜요? 내가 그 사람을 해칠까 봐?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알잖아요오. 오히려 내 쪽에서는 고마울 뿐인걸. 두 번이나 우리 선제 씨를 구해 줬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진연화의 얼굴이 서늘했다. 두 번이나 유선제를 구했다는 건, 다시 말하면 두 번이나 유선제가 위험에 빠졌다는 말이었으니.

진심으로 진연화는 유선제를 구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 사람만 괜찮다면 직접 그 사람을 불러 도대체 어떻게 유선제를 구할 수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다.

“죄송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유선제는 그가 누군지 굳게 입을 닫아걸었다. 마치 그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진연화는 어쩔 수 없이 유선제에게 구원자에 대해 묻는 것을 포기했다.

“그나저나 그놈이 그 안으로 숨어들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진 게 없습니까?”

그 질문에 진연화는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예, 미안하게 됐어요오. 아무리 뒤져도 나오질 않네.”

언론에는 이 모든 일을 한지무의 단독 소행이라고 말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유선제도 진연화도 알고 있었다.

한지무 혼자만의 힘으로는 시리우스의 감시를 뚫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는 게 불가능했을 테니까.

누군가, 어떤 수를 써서 그놈을 안으로 들여보내 준 거다.

하지만 어떻게?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을 전부 조사했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자신들은 결백하다고 했다. 실제로 뒷돈을 받아먹었다든가, 다른 이와 손을 잡고 시리우스를 배신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긴, 애초에 한 명의 배신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모두가 시리우스를 배신하기로 한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

“정말 미안해요오.”

진연화로서는 유선제에게 진심으로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세레나의 빙궁 사건으로 시리우스는 크게 한 번 흔들렸다. 유선제도 그때 한 번 죽을 뻔했고. 그때에는 내부에 스파이가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게이트를 지키고 섰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한 가지는 확실해졌네요. 누군가 이 시리우스를 노리고 있다는 거요오오.”

진연화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게 누구인지 알아내야겠어요.”

그 말에 유선제 또한 말했다.

“예, 세 번은 정말로 당하고 싶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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