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화
#69 리더의 자격 (3)
내 말에 유선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 않는 건지, 하지 못하는 건지. 그딴 건 관심 없다. 나는 유선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한지무는 처리했지만, 게이트는 아직 닫혀 있는 채였다. 아직 이 게이트의 클리어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보스 몬스터를 처리해야만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한지무라면 보스 몬스터에도 손을 써 놨을 수도 있겠지만, 한서현과 내가 있다면 무난하게 처리가 가능할 거다.
그래, 일단은 여기서 나가는 거다. 해야 할 일이 많잖아.
한서현에게 다가간 내가 물었다.
“이 게이트, 보스 몬스터는 어디에 있어?”
한서현이 내게 무어라 답하려 입을 열 때였다.
“강이신.”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유선제가 나를 불렀다. 나는 눈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나를 부른 주제에 유선제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혀를 찬 나는 녀석을 향해 말했다.
“할 말 없으면 간다.”
“나한테 실망했어?”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칫거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저 녀석에게서 나와서. 실망했냐고? 유선제의 말에 나는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 질문에 속이 뒤집혔다.
“그게 중요해?”
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겨우 그게 중요한 거냐고. 내 말에 유선제는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말했다.
“실망했구나. 나한테.”
그래, 보면 모르냐, 실망한 거. 내가 여태까지 한 말을 저런 말로 받는 것도 재주다, 재주.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녀석에게 포션 병을 던졌다.
“그걸로 치료나 해.”
반사적으로 병을 받아든 유선제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조금도 모르는 것 같은 얼굴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네가 그들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미안함을 느낀다면, 희생자들의 가족을 직접 찾아가 사과해. 그들의 죽음에 책임을 지라고. 그런다고 그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진 않겠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그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를 알려 줘야 할 테니까. 누군가는 그들의 원망을 받아 내야 하니까.
나는 대답이 없는 유선제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날렸다.
“네 놈이 과연 그걸 견뎌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과하면?”
유선제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사과할 생각은 있고?”
“……행동으로 증명하라는 소린가.”
그 중얼거림을 나는 귓등으로 넘겼다. 이제부터 나는 유선제를 향한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걸음을 옮기자, 한서현은 곧바로 검은 독수리를 불러냈다. 한서현은 정신을 잃은 에드워드를 먼저 싣듯이 얹은 다음, 가볍게 독수리에 올라탔다.
한서현을 따라 검은 독수리에 올라탄 나는 포션 병을 꼭 쥐고 있는 유선제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저 녀석을 두고 갈 생각이냐?
‘그러고 싶은데요.’
포션도 줬겠다, 문제가 될 건 없겠지. 지금으로서는 저 녀석과 한시라도 더 붙어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서현을 향해 눈짓했다. 내 눈짓에 한서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독수리를 하늘로 띄웠다.
보스 몬스터를 향해 움직이는 동안 나는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저기예요.”
한서현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에서 나는 마력을 퍼트려 보스 몬스터의 위치를 찾았다.
보스 몬스터는 땅속에 숨어 있던 웜이었다. 다행히 한지무가 이 녀석에게는 그 어떤 손도 쓰지 못했다. 나는 마력을 때려 부어서 흙을 모두 파헤친 뒤 그놈을 작살 냈다. 얼음 창이 수십 개나 꽂힌 웜을 보며 한서현이 내게 물었다.
“화났어요?”
“그래 보여?”
한서현은 말없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화가 났으니 웜을 저 꼴로 만들었겠지.
레이의 말에 나는 깨달았다.
아, 나 지금 화가 났구나.
나는 유선제에게 꽤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과거 이기적이고 미숙한 모습을 보였던 유선제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리고 그런 일을 겪은 다음에는 달라졌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유선제는 여전히 유선제였다.
━너도 이미 저 녀석의 인성이 글러 먹은 편이라는 건 알고 있지 않았냐.
‘저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과거에는 죽었던 저 녀석을 구해 낸 것만으로도 무언가 좋아질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진실은 이거다. 앞으로 미래에 유선제가 어떤 사람이 될지 나는 모른다.
설록진이 유선제를 제거한 건, 유선제가 그림에 그린 듯한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오로지 시리우스를 무너트리겠다는 목적뿐이었으니까.
‘그냥 저 녀석을 살려 놓기만 하면 일이 잘 굴러갈 줄 알았던 거죠, 저는.’
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인가.
━그래도 저 녀석이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며? 시리우스가 버텨 주어야, 이 나라에도 희망이 있는 거 아니냐.
‘그거야 그렇지만, 앞으로 저 녀석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면요?’
오늘 여기에서 죽은 일곱 명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어린애들이었다고. 그런 녀석들이, 오늘 이곳에서 죽어 버렸다. 왜? 유선제를 처리하려는 설록진의 계략 때문에.
개죽음도 이런 개죽음이 없지.
물론 가장 잘못한 건,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저지른 한지무라는 걸 안다. 그 뒤에서 한지무를 도운 청 과장과 설록진이야말로 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이겠지.
하지만 유선제가 없었다면, 그 녀석을 내가 살리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거다. 내가 바꾼 미래가 연달아 다른 파장을 일으키는 일에는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레이에게 말했다.
‘저런 녀석이 리더가 되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겁니다.’
유선제는 뛰어난 헌터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뛰어난 리더가 될 상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군다면 사상 최악의 리더는 될 수 있겠지.
‘그렇다고 누군가를 리더로 둘 놈도 아니죠.’
━그래도 네가 오늘 한 말에는 꽤 흔들린 것 같아 보였는데.
‘하, 그래 봤자 자존심이 상한 정도겠죠. 저런 녀석이 바뀌어 봤자 얼마나 바뀌겠습니까?’
게다가 유선제가 겨우 나 같은 녀석에게 한소리 들어먹었다고 바뀐다고?
‘제가 뭐라고요.’
바벨에서도 유선제는 내 말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바벨의 수치라며 나를 괴롭히던 다른 녀석들보다는 나았지만, 유선제라는 사람에게 나는 길에 지나다니는 벌레만도 못할 거다.
‘그 벌레가 자길 구해 줬으니 놀랍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가 전부일걸요.’
━그런 거치고는 네 말에 꽤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
‘벌레가 말도 하네? 그런 거 아닐까요? 게다가 쪽팔리긴 했을 테니까요, 그 대단한 자신이 바벨의 수치로 불리던 저에게 또 구해진 거 아닙니까.’
━그런가?
레이의 말에 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실망했냐고 물어본 것도 그런 의미일 겁니다. 네까짓 게 실망을 해? 감히 내게?’
레이는 내 말에 무어라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한서현의 말이 빨랐다.
“게이트가 열렸어요.”
겨우 C급에 불과했기에, 하늘 위에 떠오른 시간은 짧았다. 3시간이라.
그래도 상황을 수습해 이곳을 나갈 시간은 충분했다.
검은 독수리를 타고 나는 차송진과 김재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에서 내린 나는 눈앞의 풍경에 깜짝 놀랐다.
“이게 다 뭐야?”
내 질문에 차송진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희생자들을 그대로 둘 수가 없더라고.”
이리저리 널려져 있던 시체가 하나씩 수습이 되어 있었다. 물론 손실된 부분도 많고, 제대로 형체도 갖춰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아 제대로 된 수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까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던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몬스터의 사체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심약한 주제에, 조각이 난 시체를 직접 수습하다니.
“여기에 있는 사람들, 이왕이면 제대로 유해를 수습했으면 해서…….”
나는 고생했다는 뜻으로 차송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럼 게이트 유지 장치도 펼쳐 둬야겠네.”
이곳에 있는 시체를 제대로 수습하려면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할 테니까.
“저희의 흔적이 남지 않을까요?”
한서현의 걱정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유선제 그놈이 우리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를 바라야지.”
내가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걸 알고 있으니, 최소한의 의리로 입을 닫아 주길 바랄 수밖에.
“그 사람을 믿어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믿을 수밖에 없잖아, 지금은.”
도로 가서 나에 대해 떠들고 다니면 죽이겠다고 협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니, 제대로 협박해 둘까?”
━그 녀석을 협박하겠다고?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나에게 복수를 한다고 내 정보를 여기저기 퍼트리고 다닌다고 말할지…….’
나는 한서현에게 재빨리 말했다.
“서현아! 그놈한테 제대로 말해 둬라. 우리에 대해서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어엉? 그럴 생각은 싹 접으라고.”
한서현은 내 말에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유선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강이신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강이신이 제게 건넨 포션을 빤히 바라보던 유선제는 천천히 포션을 마셨다. 상처 부위가 화끈 달아오르며 서서히 치료되기 시작했다.
몸에 입은 상처는 사라졌지만, 가슴은 아직도 욱신거렸다.
실망했다, 그렇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강이신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강이신의 마음을 알아내기에는 충분했다.
“나한테 실망했다……고.”
강이신이 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 주는지, 왜 자신의 위험에 이토록 안절부절못하는지 그동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깨달았다. 강이신은 유선제의 행동에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실망한 거였지.
그리고 실망이라는 감정은 기대에서 나온다.
기대라.
대체 강이신이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유선제는 강이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바벨의 수치라던 나하고는 다르잖아, 넌. 넌 더 잘해 내야 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희망이잖아, 너는.”
강이신은 분명 유선제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왜? 어째서 그런 기대를? 유선제는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내가 녀석의 우상이었다면?’
아카데미에 다닐 때부터 강이신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있었다면 말이 된다. 바벨의 수치라고 불렸던 강이신과 달리, 유선제는 바벨의 희망이라고 불리던 사람이다.
자신과 정반대의 상황에 있었던 유선제를 우러러보면서, 유선제의 성공을 그 누구보다 바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유선제가 세계 최고의 헌터가 되길 응원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 실망한 거겠지.’
멋진 리더의 모습을 보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유선제 또한 이번에 통감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강이신 또한 그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거겠지.
너 때문에 이곳에 있는 사람이 죽었다. 누구보다 강한, 누구보다 멋진 네가 이끌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족들에게 사과하라는 것도 이해가 가.’
이미 늦어 버렸지만, 이미지라도 챙기라는 거겠지.
바벨의 수치인 자신은 해내지 못했지만, 바벨의 희망인 너는 달라야 한다고. 그러니 조금 더 생각해서 움직이라고, 더 멋진 모습을 보여 주라고.
속상했겠지. 자신의 우상이 이 꼴이 된 걸 봤으니. 그래서 강이신이 실망한 거다.
여태까지 유선제는 자신에게 기대를 건다는 사람들의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이신의 기대는 달랐다. 다른 놈들과는 달리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정도로 자신을 아끼고 있음을 알기 때문인지.
‘그저 말뿐인 동경이 아니야, 강이신은 진심으로 내가 살아남기를, 그래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놈이야.’
생각을 정리한 유선제는 몸을 일으켰다.
“좋아.”
앞으로는 다시는 네가 실망하지 않도록 하겠다.
네 빛나는 우상이 되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