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화
#69 리더의 자격 (2)
나는 곧바로 유선제의 상태부터 살폈다.
언제나 고고했던 유선제지만, 지금의 상태는 확실히 좋지 않았다. 피가 바닥에 뚝뚝 흐를 정도로 크게 다쳤으니까. 팔, 다리에 창이 몇 번이나 스친 것 같았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상처는 없어 보였지만, 가슴이 들썩거릴 정도로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는 걸로 봐서 지칠 대로 지친 것 같았다.
내가 유선제를 살피는 사이, 내게로 창이 또 한 번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 창이 유선제를 상대할 히든카드였을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안 통하지.
내게로 향하던 창은 아까처럼 공중에서 멈춰 버렸다. 한지무의 목덜미에 힘줄이 돋았다.
마력을 쏟아 창을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창은 부들부들 떨다 다시 바닥에 내려앉았다.
전력이라면 모르되, 많이 지친 상태인 지금으로서는 에드워드의 간섭을 피할 수 없을 거다. 한지무의 얼굴이 구겨지는 걸 보며 나는 허공을 향해 눈짓했다. 내 신호에 공중을 떠돌던 검은 독수리가 내 옆으로 내려앉았다.
검은 독수리에서 뛰어내린 에드워드가 한지무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내가 있는데 이런 잔재주는 안 통하지! 아무리 애를 써도 넌 아무것도 못 할 거다. 왜냐, 이 대단한 내가 다 막아 버릴 거거든.]
잔뜩 신이 났구만.
‘영어로 저렇게 말해 봤자 상대방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을 텐데 말이죠.’
오히려 자신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만 어필하는 꼴 아니냐고.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으니 에드워드는 되도록 말을 아끼자고 한 것 같은데, 그것도 깜빡 잊고 저렇게 신이 나서 외치다니.
━네가 그동안 하도 굴려서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있어서 저런 거 아니냐. 즐기게 둬라, 또 언제 저렇게 신이 나겠냐.
하긴 돌아가면 또 지옥의 트레이닝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오늘은 즐기게 둘까.
어차피 여기에서 한지무는 살아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한서현은 에드워드의 뒤를 따라 내렸다. 한서현이 내림과 동시에 검은 독수리는 모래로 흩어져 사라졌다.
우리의 등장에 한지무는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노려보았다.
“이, 이게 무슨…….”
한지무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의 능력이 어째서 통하지 않는 건지도 궁금하겠지. 하지만 제일 큰 건 분노와 절망이었다.
아무런 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유선제를 덮칠 때는 좋았겠지. 점점 지쳐 가는 유선제를 궁지로 몰아가며 우월감이라도 느꼈나?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너흰 뭐야.”
“적어도 네 편은 아닌 사람.”
나는 한지무의 앞으로 다가갔다.
한지무가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왔는지는 대충 감이 온다.
“겨우 저 녀석에게 복수하겠다고 네 인생을 포기한 거야?”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이쪽이다. 유선제가 영 비호감이긴 해도, 자기 인생까지 내걸고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라니. 저럴 정성으로 자기 인생을 사는 편이 훨씬 좋지 않나.
“어차피 내 인생은 이미 끝났어.”
“왜? 얼굴이 그렇게 돼서?”
“닥쳐, 넌,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직 누릴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겨우 저런 감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다니.
뭐가 됐든, 저 녀석의 선택이다.
이해도, 동정도, 연민도 필요 없는 오로지 자신만의 선택. 그 선택으로 오늘 여기에서 무려 일곱 명이라는 사람이 죽었고, 한지무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는 한지무를 향해 얼음 창을 날렸다.
얼음 창은 공중에 멈췄다. 저쪽도 염동력 능력자라 그거다.
“이런 건 나한테 통하지…….”
하지만 얼음 창은 미끼였다. 한지무는 자신의 다리를 잡아챈 흙더미에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절망이 어린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한지무에게 다가갔다.
━살려 둘 생각은 없는 거냐.
‘이놈은 일곱 명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해요. 게다가…….’
설록진의 손이 닿았다. 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청 과장을 치겠다고 결심한 이때, 이 녀석을 살려 둬 우리의 능력이 유출되기라도 한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손끝이 달달 떨릴 정도다.
아무나 죽이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저 녀석은 여기서 죽어야만 했다.
불행히, 그렇게 생각한 게 나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게 붙잡힌 한지무의 몸이 서서히 부풀었다.
이거다, 설록진이 숨겨 놓은 게. 억지로 마력을 모두 폭발시키려고 하는 거지.
“빌어먹을.”
나는 온몸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실드를 최대한으로 두르고 또 두르면, 어떻게든 될지도.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녀석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는 거다.
나는 한지무의 몸에 가까이 다가갔다.
━미친! 네 놈의 몸으로라도 막을 생각이냐?
‘죽지만 않으면, 저는 회복이 가능하니까요.’
수류탄이 위험한 건 그 폭발력보다도, 그 후에 튀는 파편 때문이라지 않는가. 그러니까 내가 몸으로라도 이 녀석의 앞을 막아서면 적어도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은 안전할 수 있을……. 내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에드워드가 나를 밀쳤다.
“무슨 짓…….”
너무 놀라서 영어가 나오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연습시킨 게 이런 상황 때문, 아니었어?]
에드워드는 한지무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흡수했다. 무슨 힘인지도 모르면서, 당장에라도 터져나갈 것 같은 에너지를 꾸역꾸역 흡수해 냈다. 에드워드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저 녀석의 마나 회로가!
‘예, 보입니다, 저도.’
피부의 안쪽에서 흐르는 마나의 경로가 그대로 비쳐 보일 정도로 에드워드가 몸에 받아들이고 있는 마나의 양은 상당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더라면 저대로 몸이 터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지만 에드워드는 버텼다. 이게 전부 다 주변의 마나를 받아들이는 데 특화된 몸을 가진 덕분이었다.
한지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력에도 끝이 보였다. 그리고 그 끝이 오자, 한지무의 몸은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파악하고 터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놈의 살점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실드를 쳐 에드워드와 나의 앞을 막았다. 한서현 또한 모래로 자신에게 날아드는 피를 차단했다.
아무런 보호도 없이 그 앞에 노출된 건 멀리 떨어져 있던 유선제뿐이었다.
[우, 이거 좀 끔찍한데.]
그렇게 말한 에드워드는 나를 보며 히히 웃음을 흘렸다.
[내가 해냈지?]
“하아…….”
이걸로 일단 한지무는 끝이 났나. 긴장이 풀렸다. 나를 향해 걸어오던 에드워드의 몸이 비틀거렸다. 나는 얼른 달려가 에드워드의 몸을 부축했다. 이제 와서 보니 에드워드의 입가에 가느다란 핏줄기가 보였다.
[나, 좀 어지…….]
그대로 기절했다. 나는 놀라 에드워드를 살폈다. 상처는 없었지만, 몸 안이 아주 엉망이었다. 에드워드의 마나는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었다.
‘어, 어떡합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저 녀석의 마나 회로는 조금 독특하다고 했잖냐.
레이가 나를 진정시켰다.
‘이 힘을 어떻게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죠. 사용하지 않는 힘은 점차 사라질 거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방전되는 배터리처럼, 에드워드의 몸에 흡수된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방출될 거라고 했다.
마나를 방출하는 만큼, 마나 중독 현상을 발생시킬 수 있어 일반인 주변에서는 마치 독을 뿜어내는 것처럼 유독할 테지만, 각성자인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고생했어.]
나는 에드워드의 귓가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고개를 들어 한서현에게로 시선을 옮긴 내가 말했다.
“이 녀석 좀 부탁해.”
한서현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스켈레톤이 나타나 에드워드의 몸을 짐짝 나르듯이 받아 갔다.
그래, 이제 급한 일은 모두 끝났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천천히 유선제에게로 걸어갔다. 나는 부상을 입고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녀석의 멱살을 그대로 잡아끌었다.
“으윽!”
“대체 넌 뭐가 문제야.”
눌러놓았던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유선제는 내 행동에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렸다. 이렇게 넋을 빼놓은 얼굴이라니. 그 유선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바보 같은 얼굴이지만,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이 녀석은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건지.
“내가 문제라고?”
미간을 찌푸린 유선제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래, 네가 문제야.”
“어째서…….”
“겨우 저딴 녀석한테 이 지경이 됐으니까.”
내 말에 유선제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그래, 겨우, 겨우 이런 녀석이다. 겨우 저딴 창 하나를 준비해 온 놈한테, 그 유선제가 이렇게까지 밀린 게 잘못이라고.
“세레나의 빙궁 때하고는 달라. 그때에는 확실히 네 능력 밖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잖아.”
나는 유선제의 멱살을 틀어쥔 손에 힘을 줬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너에게는 팀원이 있었어. 그 팀원을 이용했다면, 저 녀석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할 수 있었을 거라고.”
내 말에 유선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기라도 한 건가?
유선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저기에 있던 사람들의 능력을 알아? 네 팀원이 되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능력은 아냐고.”
나는 그 어떤 대답도 내뱉지 못하는 유선제를 바라보며 쓰게 물든 말을 내뱉었다.
“소이연은 A급 잠재력의 방어 능력자였어. 기원호 트레이너는 눈이 좋았지. 둘이서 버텨 주는 동안, 충분히 공략법을 찾을 수 있었을 거야. 전위로 있던 김수인도, 이태진도 여기에서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어. 적어도 네가 그 몬스터를 상대할 만한 시간은 충분히 벌어 줬겠지.”
적어도 그랬다면, 겨우 땅개를 변형시킨 언데드에 소이연 한 명을 뺀 모두가 죽어 나가지는 않았겠지.
“한지무, 저 녀석에게 네가 이 상태로 몰릴 일도 없었을 거야. 왜냐? 저 녀석은 철저히 너만을 노리고 들어왔으니까. 제아무리 염동력 능력자라고 하더라도, 팀원이 있었다면 넌 저 녀석을 가볍게 이길 수 있었어. 하지만 넌 네 팀원을 그냥 버려 버렸지.”
지금 이 순간, 내가 그들에 대해 말을 꺼내기 전까지 유선제의 머릿속에는 그들에 대한 생각이 아예 들어 있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넌 저들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었지? 같이 힘을 합쳐서 이 난관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도 안 했을 거야. 왜냐, 넌 대단한 유선제니까.”
나는 유선제의 멱살을 놓았다. 유선제의 몸이 뒤로 털썩 넘어졌다. 유선제는 넋을 놓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유선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예전부터 그랬어.”
내가 열심히 짜 간 작전을 무시했을 때도 똑같았다. 유선제는 내게 그 어떤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내가 짠 작전도 필요가 없다며 무시했지. 단 한 페이지조차 읽어 주지 않았다.
왜?
필요가 없으니까. 내가 없어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으니까. 자신의 재능만 있다면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넌 내가 필요 없었다고 말했지. 그래, 그때는 그 말이 맞았지. 자만이 아니라 자신이었어, 그땐.”
하지만 지금은? 내 질문에 유선제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지금은 자만이지. 너, 자만했다고. 알아?”
그리고 그 자만의 대가로 유선제는 이 C급 게이트에서 죽을 뻔한 거다. 유선제 본인은 ‘죽을 뻔했다’는 걸로 이 일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네 자만에 대한 대가는 다른 사람들이 치렀지.”
나는 유선제를 바라보며 한탄했다.
“바벨의 수치라던 나하고는 다르잖아, 넌. 넌 더 잘 해내야 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희망이잖아, 너는.”
다들 너에게 얼마나 많은 희망을 걸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 모든 기대를 이런 식으로 실망시킬 수가 있는 거야.
나는 유선제에게 말했다.
“오늘, 여기에서 사람들이 죽은 건 모두 네 탓이야.”
“난…….”
일차적으로는 한지무라는 놈이 제일 잘못했지만, 그래도 유선제에게는 충분히 그들의 죽음을 막을 만한 힘이 있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바로, 이 팀을 맡아 리더가 되어야 했던 유선제다.
“그날 널 구하지 않았더라면,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오늘 여기에서 죽지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