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4화
#68 복수에 대하여 (5)
한지무는 손으로 땅콩을 부스러트렸다. 손안에서 부서지는 땅콩을 본 한지무가 입꼬리를 올렸다.
유선제가 이 꼴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신의 복수심이 뒤틀려 있다는 건, 한지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진짜 그를 이렇게 만든 탑의 빌런에게 복수를 하는 게 맞는다는 것도.
하지만 알 게 뭐냐. 탑의 빌런보다 그 반들반들한 낯을 한 유선제가 더 꼴 보기 싫은 건데.
자신의 인생이 망한 만큼, 그 녀석의 인생이 망하길 바랄 뿐이다.
청 과장이 가져다준 아티팩트는 대단했다.
그 대단한 유선제를 상대로도 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빛날 수 있는 것도 이제 며칠 안 남았어.
한지무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부서진 땅콩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고소했다. 너무나도.
* * *
“이틀 후에 시리우스에서 한 게이트를 공략할 거야. 적들은 그 순간을 노려 유선제를 습격할 거고.”
이번 작전을 설명하는 순간, 테이블에는 에드워드도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레이에게 변명하듯 속삭였다.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풀게 해 줘야 할 것 같긴 해서요.’
우리가 이야기하던 걸 들켰던 그날 나는 에드워드에게 간단히 사정을 설명했다. 설록진이라는 권력자와 그가 저지른, 혹은 저지르고 있는 일, 우리가 해야 하는 복수와 앞으로 구해 내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이번에 우리가 할 일에 대해서.
‘잃을 건 더럽게 많은데, 얻을 건 쥐뿔도 없는 일이야.’
내 말에 에드워드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니까 합법적으로 팰 수 있는 샌드백이 있다는 뜻이지?’
‘내 말을 뭐로 들은 거야! 합법이라니, 어디가? 죄다 불법이거든?’
내 말을 들은 에드워드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외쳤다.
‘그러니까 불법적으로 팰 수 있는 샌드백이 있다는 뜻이지?’
‘…….’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 표정을 본 에드워드가 이렇게 말했었지.
‘나도 끼워 줘. 밥값은 할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라니까.’
‘응, 알아. 그래도 말이야. 문제가 생기면 난 이 나라 떠 버리면 그만이잖아? 여기에 평생 살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괜찮아.’
하긴 영원히 한국에 있을 것도 아니니까, 괜찮나. 제아무리 설록진이 대단해도 굳이 외국으로 튄 놈을 잡으려 들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가면을 씌워 놓으면 웬만해서는 정체가 들킬 것 같지도 않고. 어그로는 모두 벨츠머츠 쪽으로 끌릴 테니까.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나는 에드워드를 이번 작전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내가 에드워드의 참여를 받아들인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건…….
“우리가 위험해질 일은 없을 거야.”
이번 일이 생각보다 간단해 보여서였다.
내 말에 한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그야, 보스가 그런 말을 해도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거든요.”
“아니,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해질 일이 없다니까? 봐, 기껏해야 적은 한지무뿐이고…….”
“그러니까 그 한지무가 누군데요.”
“염동계 능력자인데, 우리 수준이면 가볍게 이길 수 있을걸?”
정말로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다. 탑의 빌런들을 상대로도 지금 전력이면 대충 비기는 게 가능할 것 같은데 겨우 한지무? 하하, 우습지도 않다.
“그쪽이 어떤 수를 준비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서현이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어제, 한지무와 청 과장이 접촉했다. 문제는 그 접촉 위치가 보안이 삼엄한 데다가 아티팩트가 떡칠 돼 있는 한 아머리였다는 거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거지.
“분명 아티팩트를 챙겼을 것 같단 말이에요.”
“그래, 그쪽도 준비해 둔 한 수가 있을 거야. 그런 거 없이 유선제를 상대하겠다고 나설 만큼 바보는 아닐 테니까.”
최근까지 시리우스에서 유선제와 한솥밥을 먹었던, 먹고 있는 만큼 유선제가 얼마나 강한지는 한지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다.
유선제, 거기에 바벨 아카데미 출신 루키들까지. 확실히 만만찮은 전력이긴 하지. 그놈들을 치려면 웬만한 준비 가지고는 어림도 없지.
하지만 그걸 모두 감안해도 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일단 내 작전을 간단히 설명해 줄게.”
내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차송진에게서 실시간 통역을 받는 에드워드의 눈이 빛났다. 내 작전을 모두 들은 뒤 그 반짝인 눈동자에는 곧 분노가 차올랐지만 말이다.
“그게 전부예요?”
[그게 전부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드워드와 한서현이 동시에 말을 던졌다.
“아니, 아무리 상대가 허접해도 그렇지 우리 작전도 이렇게 허접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그걸 작전이라고 짠 거야? 내가 만나 본 그 어떤 리더도 작전을 이런 식으로 짜지는 않았어!]
2개 국어로 쏟아지는 비난에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나는 황급히 말을 던졌다.
“그게 전부냐니. 들어간다! 기다린다! 습격이 오면 반격한다! 이 얼마나 완벽하고 깔끔한 계획인데.”
━깔끔하긴 하네. 할 말이 완벽하게 없어질 만큼 깔끔해.
레이의 비난에 나는 억울해졌다.
“너무 다 말하면 지루해질까 봐, 간단하게 먼저 큰 틀만 말한 거야.”
한서현과 에드워드는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누가 리더인지. 나는 천천히 작전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지루할 정도로 자세하게. 그리고 내가 작전 설명을 끝냈을 때, 깨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럴까 봐 그런 거라고!”
* * *
소이연은 별 탈 없이 게이트 안에 들어갈 7인에 합류하게 되었다.
7인에 뽑히지 못한 훈련생들은 다른 팀에 속하게 될 거라고 했다. 팀원이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두긴 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소이연은 자신의 얼굴을 따갑게 찌르고 있는 시선들을 무시하며 시선을 돌렸다.
오늘 이후로 자신을 주제로 한 뒷담이 오고 가게 될 거라는 걸 뻔히 알고는 있었지만,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소이연은 주먹을 꽉 쥔 채 앞을 응시했다. 7인에 속하게 된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나누고 있을 때에도 소이연은 그 사이에 끼지 못하고 겉돌았다.
앞으로 같이 팀으로 활동할 걸 감안해서라도 자신이 먼저 저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먼저 입이 열리지 않았다.
다행히 그중 하나가 소이연에게 다가왔다.
“역시 너도 뽑혔구나.”
“으응.”
“내가 그랬잖아, 넌 뽑힐 수밖에 없다고.”
얼핏 들으면 소이연의 실력을 인정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말 안에는 가시가 가득했다. 소이연은 주눅이 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앞으로 한 팀이 되었으니 잘 부탁해.”
“응, 나도.”
“내일 게이트 공략이라는 건 알고 있지?”
“응.”
“서로 발목을 잡진 말자고. 마지막이니까 말이야.”
“응.”
소이연은 고장 난 카세트를 집어삼킨 오디오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런 소이연에게 흥미가 떨어진 듯 남자는 다시 자리를 떴다. 그제야 소이연은 제대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상했다. 바벨에서도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왜 유난히 지금이 그렇게 힘들게 느껴진 것일까.
소이연은 고개를 털어 압박감을 덜어 내려고 했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두근거림에 괴로워하던 하루가 지나고, 소이연과 신입들은 마침내 게이트 앞에 섰다.
오늘 이 게이트를 성공적으로 공략한다면, 유선제와 한 팀을 이뤄 앞으로도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게 되겠지.
여태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유선제가 드디어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팀이 될지도 모르는 헌터들이 눈앞에 있음에도 유선제의 얼굴에는 그 어떤 열의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들이 보인 형편없는 모습 때문이겠지. 괜히 주눅이 든 소이연은 옆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달리 다른 이들은 모두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유선제를 응시하고 있었다.
전부 다 오늘 무언가 보여 주겠다는 듯이, 반짝이는 얼굴들을 하고서. 소이연과는 달리 모두가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오늘 공략할 게이트는 C급입니다. C급이라도 다들 방심하면 곤란합니다. 안에는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들에게 말을 건넨 건 눈앞의 유선제가 아니라, 인솔자 겸 가이드, 그리고 평가자로 따라온 기원호 트레이너였다.
유선제는 모두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게이트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고고한 태도에 몇 명의 목에 핏대가 올라섰다. 아무리 첫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고는 하나, 앞으로 같은 팀원으로 활동할 수도 있는 멤버를 이런 식으로 무시하다니.
“특히 이번에는 팀으로서의 합을 볼 예정이니, 개별 행동은 특히 주의해 주시고 리더의 명령에 따라 주시죠. 모두 안전한 공략이 될 수 있도록 주의해 봅시다.”
팀으로서의 합을 본다는 말에 유선제는 해당되지 않는 것인지, 유선제는 기원호 트레이너의 말도 무시한 채로 먼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그 모습에는 여태까지 사람 좋은 모습만 보였던 기원호로서도 지칠 수밖에 없는지 짧은 한숨이 따라붙었다.
“그럼 저희도 들어가 보도록 하죠.”
“예!”
신입 모두가 기원호 트레이너를 따라 천천히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게이트 안의 날씨는 다행히 청명했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소이연의 얼굴이 폈다.
적어도 기후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다 싶어 다행이었다.
“다들 긴장 풀고, 일단 유선제 헌터가 나서는 일은 웬만하면 없을 겁니다. C급이라…….”
“너무 시시해서요?”
누군가의 말에 기원호 트레이너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것도 그렇고, 여러분들의 능력을 보러 온 자리니까요.”
“저희들의 능력을 보고 싶었다면, 훈련에 참관하러 오시는 게 더 좋았을 텐데요.”
누군가의 뼈있는 말에 기원호 트레이너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시선이 저 멀찍이 떨어진 유선제에게로 향했다가 떨어졌다.
“워낙 바쁜 분이니까요. 자, 그럼 일단 앞으로 가 볼까요?”
보통은 보조계 헌터를 데리고 와 주변을 정찰하고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보통이었지만, 7인에 뽑힌 헌터 중 보조계는 오로지 소이연 한 명뿐이었다.
C급이니만큼 별일이 없겠지만, 괜한 걱정이 되었다. 팀원들과는 거리를 벌리고 홀로 움직이는 유선제도 영 불안 요소였고.
‘진정해, 소이연. 별일 없을 거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중얼거린 소이연은 침을 꼴깍 삼켰다.
“앞에 몬스터, 둘입니다.”
유선제가 멈춰선 건 그때쯤이었다. 몬스터를 발견한 유선제는 팀원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걸 어떻게 처리할지 보겠다’는 듯이.
가장 먼저 앞에 나선 건, 창을 들고 선 남자 김수인이었다.
“제가 전위를 맡죠.”
“너 혼자 나서겠다고?”
김수인의 말에 허벅지에서 단검을 꺼낸 남자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입을 삐죽였다.
“기껏해야 땅개잖아? 저걸 나눠 먹을 순 없지.”
김수인은 대답도 듣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분명 팀원 간의 합을 보자고 하긴 했지만…….
‘겨우 땅개잖아.’
소이연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땅개의 몸이 갈라져 날카로운 이가 드러나기 전까진.
그리고 그 쩍 벌린 입이 김수인의 몸을 그대로 삼켜 버리기 전까진.
“어…….”
순식간에 김수인의 몸은 반 토막이 나 버렸고 피가 튀었다.
“이, 이게 무슨…….”
소이연은 두 눈을 깜빡였다. 김수인의 반 토막 난 몸뚱어리가 툭, 땅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