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68 복수에 대하여 (2)
한조희는 내가 예상한 그대로의 내용을 썼다. 그 표현 방식이 예상외였을 뿐.
「복수 ㄴ」
그 쪽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이게 최선이냐.”
지능이 떨어진 탓인지, 아니면 스켈레톤의 몸으로 소통이 힘든 까닭인지, 한조희의 메시지는 참으로 간결했다.
분명 하고자 하는 말은 저것보다 훨씬 무거울 것 같은데 저렴한 메시지 때문인지 영 그 감정이 전달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복수의 당사자가 복수를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 물론 동생을 생각하는 한조희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나한테 할 말이 이게 전부야?”
내 생각은 한서현의 말에 끊겼다. 역시, 내 예상대로 한서현은 이 쪽지에 그다지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서현의 말에 한조희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쿡쿡 자신이 쓴 쪽지만 두들겨댔다.
“그냥 ‘복수 ㄴ’하고 끝이냐고, 형은! 나한테 더 할 말 없어?”
“내가 보기에는 말을 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 같은데.”
“그러게요, 뇌 용량이 줄어드셔서 그런가…….”
차송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위험한 드립을 날렸다. 한서현이 듣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형이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나는 내 식대로 복수할 거야.”
한서현의 말에 한조희가 손을 들어 올렸다. 또 나왔군, 저거. 하지만 이번에 한서현은 한조희에게 순순히 정수리를 내주지 않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조희의 정수리 치기를 피한 한서현이 외쳤다.
“형은 그럼 그 꼴이 됐는데도 복수하고 싶단 생각이 안 들어?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는데!”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 뭐가 되겠냐.”
“뭐가 되긴요! 뼈다귀가 됐잖아요!”
“그건, 내 눈에도 보이기는 하는데…….”
아니, 이거 어떻게 말해도 위험한 발언이 돼 버리잖아? 조금만 엇나가도 바로 고인 모독이 돼 버리는데. 아니, 저렇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데 고인은 아닌가? 그래도 생인이라고 하기에는, 고인 쪽에 가까운 건 맞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끄응, 저 두 사람 대화에는 끼어들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형제 싸움은 형제 싸움으로 두자고.
━보스로서 그래도 되는 거냐?
‘보스 이전에, 아니, 애초에 어떻게 저 둘 사이에 끼어드냐고요.’
내가 레이와 말을 나누는 사이 둘 사이의 대화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형이 뭐라고 하든 난 그놈한테 복수해야겠어. 형의 원수를 갚는 게 아니야! 내 개인적인 복수야! 그놈은 나한테서 형을 빼앗아 갔으니까! 그러니까, 그놈은 살 이유가 없어!”
한서현이 이토록 화를 내는 걸 보는 건 또 오랜만이었다. 한서현의 말에 차송진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한서현이 얼마나 한조희를 사랑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나는 툭 한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쯤 해 둬.”
“하지만…….”
“네 마음은 충분히 전해진 것 같으니까.”
한조희는 한서현을 바라보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천천히 우리를 향해 걸어온 한조희는 한서현의 어깨 위에 올라간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꼭 해야겠어?
스켈레톤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한조희는 분명 그렇게 물었겠지.
그에 대한 한서현의 대답은 이러했다.
“꼭 해야겠어.”
한조희를 위한 복수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복수를 해야겠다고. 형을 빼앗긴 한서현의 복수심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전혀 꺼지지 않았다.
“복수는 정신 건강에도 좋다고 했어.”
차송진의 말에 내가 물었다.
“정말?”
“으응, 너무 담아만 둬도 화병만 생기고…….”
“그러니까 복수를 하라고?”
“혼자서 끙끙 앓기보다는 복수를 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나, 싶어서.”
그야, 맞는 말이긴 하다만 도덕 선생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저놈도 이미 글러 먹었다. 여기에 완전히 물들어 버렸어.
아, 안 돼. 벨츠머츠의 유일한 양심이!
차송진을 보며 경악하는 사이, 뒤에서 누군가 등장했다.
[다들 뭘 그렇게 쑥덕거리고 있는 거야?]
에드워드의 등장에 우리는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아, 우리에 김재호는 제외다. 김재호는 에드워드를 보고도 여전히 뚱한 표정이었으니까.
“할 거 있다고 하지 않았어?”
최근 에드워드와 가까워졌다고는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 모의를 하는 모습을 들킬 정도는 아니었다.
“애니메이션 보던 거 다 봤나 보죠.”
[그러니까 뭘 그리 쑥덕거리고 있는 거냐니까. 저 해골바가지는 다 뭐고.]
[해골바가지라니! 저게 서현이 형이거든?]
차송진이 깜짝 놀라 외쳤다. 그 말에 에드워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형을 저 꼴로 데리고 다니는 거야?]
[끄응, 나도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만큼 형을 사랑해서야.]
뭐야, 제법 잘 말하고 있잖아. 나는 차송진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그래서 여기에서 뭘 하고 있었냐니까.]
에드워드의 입이 댓 발 나왔다. 자기만 왕따 당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영 불만스러워 보이는 얼굴이다.
하지만 저렇게 바라본다고 해서 우리 일에 끼워 줄 수는 없지.
[별일…….]
별일 아니니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내가 그렇게 말을 꺼내려고 했을 때였다.
[복수, 하려고.]
옆에서 나온 대답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주먹까지 꽉 쥔 한서현이 에드워드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형, 살인, 개새X, 복수.]
개새X 쪽의 발음만 너무 좋은 거 아니냐, 서현아. 이래서 애들 앞에서는 말조심해야 한다더니.
그나저나 바로 까발린 거냐고. 이래서야, 진상을 숨긴다는 내 계획은 또 수포로 돌아갔다.
[복수? 복수를 하겠다고? 그걸 왜 이렇게 몰래 숨어서 얘기하는 건데.]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말했다.
[너는 우리 복수에 낄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지.]
[으음.]
에드워드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원어민 교사로 여기에 있는 거다. 그것도 임시고.
━누가 원어민 교사한테 그런 1:1 훈련을 매일 시켜 주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지.
‘수업료입니다, 수업료.’
하지만 이건 다르다.
[이건 우리 일이야. 그러니까 너는 빠져 있어.]
[대체 무슨 일인지 정돈 듣고 싶은데.]
에드워드가 슬쩍 한서현 쪽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형에 대한 복수라니. 쟤 형이 왜 저 꼴이 됐는지, 아주 궁금해졌거든.]
[그건…….]
[그리고 말이야. 실전 훈련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말한 에드워드는 나를 향해 윙크했다.
“으…….”
나는 그 윙크에 몸서리쳤다.
“미국놈들이란…….”
정말이지 못 견디겠다니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실전 훈련이라, 다른 때라면 좋다고 수락했겠지만…….
[이 일에 잘못 엮이면 이곳에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될 수도 있어서 그래.]
내 말에 에드워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말해 봐, 대체 무슨 일인지.]
어깨를 으쓱인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말해 준다고 그리 나쁜 일은 없겠지.
* * *
시리우스 길드에 스카우트된 바벨 아카데미의 졸업생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리우스 건물에 발을 디뎠다.
그토록 꿈만 꾸던 곳에 자신이 들어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출근 첫날, 신입들은 모두 훈련실로 안내되었다.
“교사가 오기 전까지 다들 이곳에서 대기하실게요.”
그들을 데리고 온 인솔자는 곧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곳을 가득 채운 인원은 총 열다섯.
모두 바벨 출신으로, 바벨에서 꽤 높은 순위를 유지하며 졸업한 바벨의 엘리트 중 엘리트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갓 성인이 된 애송이들.
처음에는 각을 유지한 채로 잘도 서 있었지만, 교사가 나타나는 게 늦어지는 동안 바짝 들었던 군기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훈련받으면 언젠가 유선제 선배님이랑 같이 게이트 공략도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그러면 좋겠네.”
누군가의 말에 소이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선제.
바벨 출신의 헌터는 많았지만, 그들이 가장 동경하는 헌터를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소이연은 유선제를 첫 번째로 두었다.
인간답지 않은 완벽한 외모에, 그만큼이나 완벽한 실력. 유선제를 기억하는 바벨의 교사들은 언제나 유선제에 대해 말을 흘렸고, 바벨 아카데미의 졸업생들은 자연스레 유선제를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동경이 아니라 질시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감히 그 질시를 겉으로 꺼내 놓지는 못했다.
“잘나긴 잘났지.”
20대 초반의 나이에 7성급에 이른 실력 자체가 그가 얼마나 뛰어난 각성자이자 헌터인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최연소 8성급도 노려볼 수 있다고 그러잖아.”
“테이카 쿠퍼가 빠르지 않을까?”
“그, 그러니까 국내에서!”
얼굴이 벌게진 녀석이 말했다.
“그런 괴물은 당연히 논외로 둬야지.”
“유선제도 괴물 아니야? 7성을 바로 땄는데.”
“그래도…….”
그렇게 아이들이 속닥거리는 사이, 누군가 삐딱한 말을 던졌다.
“인성은 아주 개 같다던데?”
그 말에 주변이 싸늘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그 정도는 흠도 아니지.”
“나라도 그런 실력을 가졌으면 성격이 나빠졌겠다.”
“솔직히 그보다 못한데 꼴불견인 인간들이 얼마나 많았냐?”
“그건, 또 그래.”
수군수군. 훈련생들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떠들었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에 훈련생들은 재빨리 다시 자세를 잡고 제대로 섰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람을 본 순간, 훈련생들은 모두 놀라 입을 벌렸다.
“헉.”
그도 그럴 게 여태까지 그들이 떠들어 댔던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싸늘한 표정에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차가운 눈동자.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
유선제는 천천히 훈련생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삐딱하게 선 그의 옆에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의 훈련을 돕기 위해 온 기원호 트레이너라고 합니다. 여기는 우리 시리우스의 유선제 헌터고요.”
잠시 숨을 삼킨 기원호 트레이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훈련은 특별히 유선제 헌터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훈련생들의 눈이 빛났다. 유선제가 여기에 온 건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 거다. 유선제쯤 되는 헌터가 아무런 이유 없이 신입들을 보러 왔을 리 없을 테니까.
하지만 기원호 트레이너는 훈련생들의 간절한 눈빛을 무시한 채로 지루하게 오늘의 훈련 내용만을 읊고 있었다.
각자 재능을 선보이고, 시뮬레이터 실에서 몬스터를 처리하는, 여태까지 수십, 수백 번은 해 왔던 그 훈련 말이다.
훈련생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정말 이게 전부냐고. 이런 지루한 훈련을 보기 위해 유선제가 여기에 온 게 맞냐고. 모두가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누구 하나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선제에 대해 아무렇게나 말을 늘어놓았던 이도 마찬가지였다.
기원호 트레이너가 말했다.
“제일 앞에 선 사람부터 나와서 재능을 보여 주세요.”
* * *
유선제는 지루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했다.
‘그중에서 괜찮은 친구가 있는지 봐 줘요오.’
‘괜찮다는 기준이 뭐죠?’
‘같이 팀을 꾸려도 될 것 같다느은 생각이 드는 정도오?’
진연화의 말에 유선제는 눈을 찌푸렸다. 진연화가 말하는 팀이, 기존에 유선제와 페어를 이루었던 이들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였다. 그동안 유선제는 자신을 빛나게 해 줄 이들과 함께 다녔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유선제를 보조하는 데에 그쳤다. 모든 걸 유선제 혼자서 처리했지.
하지만 진연화는 알고 있었다.
‘기존의 방법이 통하는 건 A급까지예요. 유선제 씨가 얼마나 대단하드은, 혼자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니까요오.’
진연화의 말이 맞다는 걸 유선제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튀는 불꽃을 바라보며 유선제는 생각했다.
아, 정말이지 수준이 떨어지는 놈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