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50화 (250/352)

제250화

#68 복수에 대하여 (1)

겨우 청 과장을 처리하자고 설록진에게 이를 드러내는 건 분명, 얻는 것은 없고 잃을 것만 많은 하책 중 하책이다.

결국 우리가 깔 수 있는 건 청 과장이 저지른 짓뿐이다. 설록진이 허술하게 증거를 남겼을 리도 없을뿐더러, 증거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증거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비리 증거 같은 걸 까발려도 설록진에게 타격은 없을 겁니다.’

━어째서? 그놈은 국회의원이 아니냐. 이미지가 생명일 텐데?

‘전생에서 설록진의 비리를 폭로한 사람이 한둘인 줄 아십니까?’

웬만한 폭로로는 설록진을 흔들 수 없다. 설록진은 이미 언론을 쥐고 있다. 나 또한 남주현이라는 제법 든든한 스피커를 확보하기는 했지만, 이쪽은 음지라는 게 문제다.

겨우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찌라시로 공중파를 장악한 녀석을 어떻게 이겨.

‘게다가 설록진이 그동안 쌓아 놓은 이미지가 있으니까요.’

설록진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의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설록진은 안다고 말할 정도니까. 실제로 대통령을 제외하고서는 제일 인지도가 높을걸.

당장 다음 대선주자보다 인기가 많은 게 설록진인데, 웬만한 스캔들로는 그놈을 보낼 수 있을 리가.

‘그놈의 마스크를 벗기려면 확실한 증거를 내밀어야 해요. 얼굴과 목소리가 찍힌 동영상 같은 거요. 아, 설록진이라면 그것도 조작됐다고 하려나.’

별별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등장한 이때, 확실한 증거 따위는 없다. 설록진이 공신력이 있는 단체를 내세워 그게 조작됐다고 말하면, 국민 모두가 그게 조작됐다고 믿을 테니까.

‘말했잖아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설록진을 양지의 방법으로 끌어내리는 방법 같은 건 모르겠다고.’

설록진을 막을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내 손으로 직접 그 녀석을 죽이는 것.

겨우 청 과장을 잡는 것으로 설록진에게 어떠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뜻이다.

‘하지만 설록진은 알아챌 겁니다. 우리가 왜 청 과장을 노린 건지요. 우리의 목표가 누구인지를.’

━그냥 청 과장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죽였다고 생각, 아, 그렇게 못하겠구나. 그 꼬맹이 녀석 때문에.

‘예. 서현이가 알려야겠다잖아요. 그 새끼가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그 일에 설록진을 엮어 넣는 게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물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람들이 태연하게 삶을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는 어떤 지옥을 살아가야 했는지.

한서현은 진정한 의미의 복수를 바랐다.

‘자기 형이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는 이 세상에 알려야겠다는데.’

지금까지 한조희가 죽은 이유는, 나, 강이신의 보복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건 거짓이었다. 누군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일이라고 해도. 그 녀석에게는 중요하다잖아. 그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그게 진정으로 형이 바라지 않았던 복수를 이어 나가고 있는 한서현의 유일한 소원이라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거절합니까?’

━그래서 그 모든 일에 대한 대가를 감당하겠다?

‘보스가 되어서, 우리 멤버가 진정으로 하고 싶다는 일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내 당당한 외침에 레이가 말했다.

━……그 말 재호한테는 하지 마라.

‘예…….’

김재호는 정말 정도를 모를 것 같으니까……. 응, 아무래도 그렇지……. 막, 인형을 수천 개 사 달라고 하고, 응, 우주에 가고 싶다고 하고, 그럴 테니까.

어쨌거나 결론은 간단하다.

청 과장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받을 거다. 그 과정에서 우리 벨츠머츠가 드러나고 설록진이 우리를 노리기 시작한대도, 그래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내가 설록진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아는 레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수할 수 있겠냐?

‘솔직히 말하면 자신은 없습니다.’

죽음에서 되돌아와서 내가 설록진을 직접적으로 마주한 건 딱 한 번뿐이다. 그것도 가면을 뒤집어쓴 채로 내 정체를 숨긴 상황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가면을 뒤집어쓴 건 마찬가지지만 아주 커다란 것이 달라졌다.

내게 잃을 것이 많아졌다는 것.

하지만…….

‘절대로 잃지 않을 겁니다. 다시는요, 전 다시는 그놈에게 무엇도 잃지 않을 거예요.’

나는 멍청하다. 그리고 둔하고, 재능도 이따위 것뿐이고……. 그래, 나는 많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내 소중한 사람을 앉아서 잃지는 않겠다.

어떻게든 지켜 낼 거다, 너라는 인간에게서.

‘그러니 신중해야죠.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죠.’

생각을 마친 나는 문을 열었다.

“뭐예요, 회의하자고 하고서. 5분이나 늦었거든요?”

한서현의 뾰로통한 말과 차송진의 의아한 시선, 그리고 김재호의 비난 섞인 눈동자가 나에게로 따라붙었다.

“지각.”

이크, 최근 차송진에게서 도덕을 배우고 있는 김재호는 약속에 민감해졌다. 전에도 그랬지만, 요새는 아주 조금만 늦어도 눈을 희게 뜨고 사람을 노려본다니까.

“미안, 생각할 게 좀 있었거든.”

“설마하니 내가 한 말을 거절하려거든…….”

“아니야, 그런 건. 오히려 어떻게 네가 말한 걸 잘 해 볼까 생각했다고.”

내 말에 한서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자리를 잡은 나는 모두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의 악행을 이 세상에 까발리고 싶다고 했지. 그게 진정한 복수라고.”

“목숨만 빼앗는 걸로는 성에 안 차니까요.”

그 말에 차송진은 움찔 몸을 떨었지만, 괜한 말을 하는 대신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현이 자신의 형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 그거. 그래, 네 말대로 하자고. 이 세상에 그놈이 어떤 놈이었는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왜 죽어야만 하는지. 그래, 다 알리자.”

김성득 의원 때처럼 화려하게 저지르는 거다. 김성득 때처럼, 아니, 그보다 더 화려하게.

“그러려면 그 인간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지.”

“이미 알아봤어요. 웬 남자한테 접근했더라고요.”

“남자?”

“한지무. 저번 시리우스 백화점 사태 때 부상을 입었던 헌터예요. 그놈한테 접근해서 같이 시리우스에 대한 복수를 하자고 꼬시고 있던데요.”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한지무, 그 인간은 도대체 이해가 안 가요. 자기를 그렇게 만든 건 탑의 빌런인데 왜 시리우스한테 복수를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니까요.”

“때로는 열등감이 모든 걸 망치기도 하지.”

내 말에도 한서현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툭툭 책상을 두드렸다.

“아카데미를 다녔을 때부터 한지무, 그 녀석은 유선제를 지독하게 견제했지.”

“그 사람을 알아요?”

“바벨 출신이니까. 나와 동시기에 다녔던 학생은 모두 기억해. 한지무는 우리보다 일 년 후배였지만.”

내 말에 한서현은 입을 벌렸다.

“후배까지 전부 기억한다고요?”

나는 볼을 붉혔다.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재능으로 그들과 동등해질 수 없었기에, 다른 방법으로라도 따라잡으려고 했던 것뿐이다. 나 또한 헌터가 되고 싶었으니까. 나는 큼큼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을 정리했다.

“어쨌거나 그쪽이 한지무한테 접근한 건 시리우스를 뒤흔들기 위해서일 거야.”

“아니면 유선제요.”

얼굴을 구긴 한서현이 질색하며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놈만 생각하면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고도 싶지만…….”

“알아요, 보스가 ‘몸 바쳐 구해 낸 놈’이 위험에 빠지게 둘 수 없다는 거.”

한서현은 작게 ‘운도 참 좋아, 그 새끼는.’이라며 욕을 중얼거렸다. 나는 애써 모르는 체하며 입을 열었다.

“그쪽은 어쩔 계획이라는데?”

“아직 진행 중이에요. 그냥 명함만 주고받고 끝났어요.”

“흐음.”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이 일을 어떻게 잘 엮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소식은 계속 알려 줘.”

내 말에 한서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쩌려고요.”

“그놈들 악행에 시리우스라는 이름을 얹으면, 우리 쪽에도 이득이 될 것 같아서.”

“또 그놈을 구해 주겠다고요?”

“지금 그쪽을 덮쳐도 결과적으로는 유선제를 구해 주는 셈이잖아. 생색을 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

내 말에 한서현은 얼굴을 구겼다. 가만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차송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선제를 구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송진이 형은 몰랐나? 그때 세레나의 빙궁에서 공략을 도운 거, 우리였어.”

“고, 공략을 도왔었다고?”

“예, 저희 아니었으면 유선제는 거기에서 죽었어요. 그때 탑의 빌런이 거길 싹 쓸었잖아요.”

“서현아.”

“아차.”

한서현을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 좋지 못한 추억을 떠올린 차송진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나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설록진의 목표는 시리우스를 무너뜨리는 거야. 그러니 유선제를 노리는 거고. 장차 시리우스의 간판이 될 헌터를 무너트려서 흔들려는 거지.”

“그때 사람들이 다 죽었던 것도, 그럼, 모두…….”

“설록진이 탑을 조종한 거지.”

아, 그렇게 이어지는 건가? 생각해 보니, 차송진도 설록진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다. 음……. 본인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미안하다, 조금 더 일찍 말해 줘야 했는데.”

“아니야.”

“오히려 잘 된 거 아니에요? 형도 복수해야 할 대상을 찾은 거잖아요.”

한서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무리 힘들어도요, 그 자식을 생각하면 힘을 낼 수 있을 거예요. 내 인생을 망친 그놈도 발 뻗고 잘 사는데! 그 꼴을 더 두고 볼 수는 없지. 그런 생각을 하면 플랭크를 몇 세트든 할 수 있다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냐?”

한서현의 근육이 어째서 그렇게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비밀이 밝혀졌다. 애석하게도 차송진의 표정을 보니 차송진에게는 영 먹히지 않을 것 같은 팁이다만.

나는 한서현과 대충 계획을 나눴다. 그렇게 대충 이야기가 정리되는 무렵, 내가 한서현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한조희…… 씨는 이 일에 별말 없었냐?”

“형이요?”

“뭐, 어떻게 해 주길 바란다든가.”

복수에 대해서는 당사자한테 묻는 게 제일 빠른 거 아닌가. 내 말에 차송진이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왜?”

“아니, 그러니까, 그 복수에 당사자를 부른다는 그 사고방식이 참신해서?”

“이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잖아?”

“그, 그야 그렇겠지만…….”

“스켈레톤이라고 무서워할 필요 없어. 서현이 형이니까. 음, 친하게 지내는 게 좋지. 그래서 말인데 직접 불러서 물어보자.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야.”

“형이라면 나를 말릴 것 같긴 한데…….”

한서현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손을 휘저어 한조희(스켈레톤)를 불렀다.

차송진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그건 스켈레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신이 말한 대로 복수의 당사자가 현장에 와 있다는 불편함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니까 네 형은, 어, 말을 할 수가…….”

“당연히 말은 할 수 없죠. 성대도 없고 혀도 없잖아요? 뼈밖에 안 남았는데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는구나, 서현아. 그래도 네 형인데. 속에서부터 튀어나오려는 말을 나는 가까스로 막았다.

“뭐, 꼭 말이 아니더라도 소통할 방법은 많겠네요.”

“응?”

“성대와 혀는 없지만, 손가락은 있잖아요. 뒀다 뭐에 써요.”

한서현은 휴대폰을 한조희에게 건넸다.

“메모장 켜서, 거기에 형이 하고 싶은 말 쓰면 돼.”

스켈레톤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지만, 화면은 넘어가지 않았다. 당연하다.

요새 나오는 휴대폰은 모두 정전식이니까.

“……정전식이다, 그거.”

내 말에 김재호가 물었다.

“그게 뭐야?”

“전류가 흐르지 않는 뼈다귀로는 인식이 안 된다는 거지.”

한서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나는 펜과 종이를 가지고 왔다.

“때로는 구식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단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며 스켈레톤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두개골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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