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49화 (249/352)

제249화

#67 어떻게 지내? (2)

한지무는 홀로 퇴원을 준비했다.

그의 퇴원을 축하하러 오겠다는 사람은 많았으나, 한지무는 그들의 방문을 거절했다. 정말로 그의 퇴원을 축하하러 오는 것인지, 이제 퇴물이 된 그를 놀리러 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으니까.

부상은 전부 회복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온몸을 뒤덮은 끔찍한 화상 자국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

검은색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한지무는 황급히 병원을 빠져나왔다.

한지무는 자신의 부실한 지갑을 보며 욕을 중얼거렸다.

당장 식사할 돈도 택시를 잡아탈 돈도 마땅치 않다.

입원 비용과 치료 비용은 모두 시리우스 측에서 부담했지만, 치료를 받는 동안 수익이 없었던 게 문제였다.

할부금, 그놈의 할부금. 시리우스 소속 헌터였던 한지무에게는 제1금융권의 대출이 턱턱 나왔다. 시리우스의 헌터가 되었다는 기쁨,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허영심. 한지무는 자신의 부모님에게 값비싼 아파트를 선물했고 그 대출금을 갚아야만 했다.

이런 사고가 터지지만 않았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테지만, 사고는 터져 버렸고 당장 다음 달의 대출금을 갚을 여력이 되지 않았다.

이미 제1금융권의 대출이란 대출은 모두 받은 상태. 제2금융권, 나아가 사금융까지 손을 대야 할 판이었다.

시리우스 상의 계약도 문제였다. 부상으로 인한 시즌 아웃이었기에 위약금을 물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분기당 최소 2번의 게이트 공략을 해야 했던 것을 채우지 못해 기본금도 받지 못하게 생겼으니까.

다행히 시리우스는 한지무의 복귀를 환영한다는 기색을 밝혔지만, 이 꼴로 시리우스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위장이 뒤틀렸다.

그동안 자신의 얼굴을 되돌리기 위해 별별 방법을 다 알아봤다.

하지만 가면으로 얼굴을 전부 덮는 것을 빼고는, 방법이 없었다.

가면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그 안에는 끔찍한 괴물이 있다는 것을 이미 이 세상 모두가 아는데. 오히려 다들 자신을 욕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멀쩡한 척을 하는 것이 우습다면서 말이다.

거기에 유선제, 그놈을 마주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하고 한솥밥을 먹어야 한다고? 그것도 그 녀석의 밑에서, 그 녀석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애를 쓰면서?

하지만 그에게 방법이 있나.

매달 갚아야 할 대출금을 생각하면 시리우스에 무조건 돌아가야만 했다.

한지무는 욕을 내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의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나가는 시리우스의 헌터였던 사람 꼴이 참 우습게 됐네, 안 그래?”

다 낡아빠진 남색 양복 위에 촌스러운 무늬의 점퍼를 걸쳐 입은 중년의 남자가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지무는 천천히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 보아도 이 남자의 얼굴은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을 향해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듯이.

“기자입니까?”

한지무의 경계심 섞인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하하, 아니.”

“그럼 뭡니까?”

“그쪽의 복수를 도와주러 온 요정 할머니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그 말에 한지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살폈다. 복수라. 유선제를 향한 복수심을, 한지무는 그 누구에게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함부로 이 세상에 꺼내 놓았다가는 자신만 역풍을 맞을 게 뻔하니까.

그러니까 이 남자가 말하는 복수의 대상이라는 건 하나뿐이다.

“난 복수 같은 거 안 해. 관심 없습니다.”

“내 말을 들으면 생각이 바뀔걸.”

그렇게 말한 남자가 씩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당신을 이 꼴로 만든 건 탑의 빌런들이지만, 당신이 복수하고 싶은 건 다른 쪽이잖아.”

“……당신 뭐야.”

“말했잖아, 당신의 복수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라고. 나도 시리우스에는 따로 볼일이 있거든. 그러니까 그쪽이랑 같이 일 좀 하나 해 보려고.”

남자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한지무에게 건넸다.

「보람 흥신소

청 과장」

간단한 인적 사항이 적힌 그 명함에 한지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 * *

청 과장이라. 도대체 도채희가 그 이름은 어디에서 안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전생에서 두 사람이 마주했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네가 알지 못했을 뿐, 어디선가 두 사람이 마주했을지도 모르지.

‘아니요, 그랬을 리는 없습니다. 도채희가 진실을 깨닫고 설록진에 대한 의심을 키우기도 전 청 과장은 정리가 되었거든요.’

그러니 이건 이번 생에서 생긴 변화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대체 어디에서 도채희가 청 과장에 대한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제법 심각한 사항이었다.

━왜 그렇게 난리인 거냐?

‘그야, 청 과장은 설록진과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요.’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지금 당장은 홍난희와 김현기의 사건을 담당하느라 바빠 청 과장을 찾아 나설 시간이 없다지만, 이 사건이 끝나면 도채희는 곧바로 그쪽을 캐러 떠날 거다.

남주현에게 미리 사전 조사를 부탁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

그래서는 곤란하다. 내가 조금 전에 말한 대로 청 과장은 설록진과 직접 이어진 얼마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 말은, 청 과장과 어떻게서든 접촉하는 순간 설록진의 관심을 끌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다는 거다. 만약 도채희가 청 과장의 뒤를 캐다가 설록진에게 그 사실을 들키기라도 하면…….

‘그 순간 도채희는 제거될 겁니다.’

설록진은 자신의 재미를 위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는 성격이었지만, 청 과장과 얽힌 일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을 테니까. 도채희든, 누구든. 자신을 공격할 만한 약점을 쥐었다 생각하는 순간 바로 제거할 거다.

도채희만 제거하면 몰라, 아마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싹 다시 훑겠지. 도채희가 도대체 어떻게 청 과장에 대해서 알게 됐는지 궁금할 테니까.

그 과정에서 정호산이 설록진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후우, 진정하자.

이미 도채희와 정호산이 같은 배를 탔다는 걸 깨달은 순간 언제든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여기에서 패닉해 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일이 좋게 풀릴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설록진의 부하였다면 그만큼 설록진의 약점도 많이 알고 있을 테니까…….

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청 과장은 설록진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할 겁니다. 애초에 설록진이 청 과장을 가까이 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청 과장을 믿어서? 청 과장이 그만큼 유능해서?’

━……자신이 완벽하게 컨트롤이 가능했기 때문에?

‘예. 어떻게든 그 입을 막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부린 거겠죠. 최소한 세뇌는 해 뒀을 겁니다. 자신에 대해서 입도 벙긋하지 못하게 말이죠.’

그러니 이건 잃은 것은 많은데, 얻을 것은 없는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의 도박이다. 절대로 도채희가 청 과장을 쫓게 둬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막냐는 거다.

남주현을 통해 청 과장의 뒤를 쫓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 아니, 도채희 성격에 그 경고를 받아들이기는커녕 도대체 왜 나를 막는 거냐며 되레 화를 내겠지. 전형적인 청개구리 타입이니, 이 방법은 절대로 안 통할 거다.

그러면? 계속 도채희에게 다른 문제를 던져 줘? 하지만 영원히 도채희를 막을 수는 없다. 도채희는 포기를 모르는 성격이니, 틈이 나는 대로 청 과장을 다시 쫓으려 들겠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저희 쪽에서 먼저 어그로를 끌어야죠.’

━으응?

‘도채희가 청 과장을 찾기도 전에 청 과장을 공격하는 겁니다. 도채희를 완벽하게 막으면서, 설록진이 도채희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게 하려면 그 방법뿐입니다.’

━그래도 되는 거냐?

‘어쩔 수 없잖습니까.’

아직 설록진을 상대할 준비가 다 되지 않았지만, 도채희와 정호산을 저들의 앞에 던져 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저도 청 과장이 뭘 쥐고 있을지 궁금하긴 하거든요.’

생각보다 이르지만, 설록진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한 번쯤은 해야 하는 일이다.

* * *

나는 에드워드를 제외한 모두를 불러, 내 작전을 이야기했다.

“청 과장이라는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데?”

차송진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설록진의 밑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 하수인. 딱 그 정도야.”

“정확히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요?”

한서현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청 과장을 그리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냥 설록진의 밑에 이런저런 지저분한 일을 해 주는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전생에서도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다는 거냐?

‘설록진의 밑에 있던 모두를 아는 건 아니거든요. 백도산 같은 거물이야 몇 알지만, 청 과장은, 음,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진짜 졸개 같은 사람이니까요.’

애초에 설록진은 청 과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청 과장에 대해서 말이 나올 때마다 눈빛이 싸늘해졌던 걸 보면 확실하다. 은근한 경멸에, 무시까지.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곁에 둔 이유는, 청 과장이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데에 나름대로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대체품이 생기자마자 바로 정리해 버렸거든요.’

그래서 나는 청 과장에 대해 자세한 걸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설록진의 밑에서 일한 만큼, 못된 짓을 많이 저질렀을 거야.”

우리 벨츠머츠의 목표가 되기에는 차고 넘치는 놈일 거라는 거. 나는 한서현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네 형의 일과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 아니, 아마도 확실히 관련이 있을 거야. 설록진이 다른 놈에게 그 일을 시킨 게 아니라면…….”

“……저희 형을 해친 놈일 수도 있단 말이에요?”

“응. 적어도 그 일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확신해. 그런 짓을 저지를 만한 인간이 많지는 않으니까.”

그 말에 한서현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한조희를 해친 범인이 그놈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태까지 한서현에게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은 거냐?

‘말했잖아요. 청 과장을 건드리는 순간, 설록진이 움직일 거라고.’

다행히 한서현의 눈에는 배신감이 보이지 않았다. 레이처럼 내게 따져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럴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서현은 조용히 기다렸다. 내가 설명을 하기를.

“내가 여태까지 그놈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첫 번째로, 그놈과 설록진은 아주 가까이에 있어. 그놈을 건드리는 순간, 설록진은 이상을 눈치챌 거야. 자신을 노리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나는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일은 은밀히 진행해야 해. 우리의 정체가 결코 드러나지 않게.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야.”

“은밀하게 진행하기 싫으면요?”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한서현은 내 시선에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놈이 정말 우리 형의 죽음에 대해 관련이 있는 거라면, 난, 나는 숨고 싶지 않아요. 복수했다고. 우리 형이 왜 죽었는지, 그놈이 무슨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모두 알리고 싶다고요.”

한서현의 눈가가 붉었다.

“나도 알아요, 숨어야 한다는 거 아는데. 그래도 누군가는 알아야 하잖아요. 그놈이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왜 그 녀석이 죽어야 하는지, 누군가는 이미, 이미 잊었을 죽음이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크니까, 그러니까…….”

한서현의 말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청 과장을 조용히 처리한다는 건, 그가 저질렀던 모든 악행을 조용히 묻자는 뜻과 같았다.

하지만 한서현의 말대로 그의 악행을 그냥 묻기엔 청 과장이 저지른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러려면 우리를 드러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테니까.”

벨츠머츠. 그 이름이라도 얹지 않으면 청 과장의 악행은 손쉽게 묻힐 거다. 그 누구도 한 흥신소 사장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벨츠머츠는 다르다. 모두가 우리의 컴백에 관심을 갖겠지.

“벨츠머츠의 이름이 드러나면, 위험해지는 건 너야. 서현아.”

벨츠머츠에 나, ‘강이신’이 있다는 걸 설록진은 모른다. 벨츠머츠에서 드러난 이름은 한서현의 것뿐이다. 게다가 청 과장의 죽음이 복수라는 게 드러나면, 모두가 한서현에게 집중하겠지.

“그래도 상관없어요. 아니, 꼭 내 이름을 내걸고 그 녀석을 처단하고 싶어요.”

한서현이 이를 갈며 말했다.

“설록진, 그 개자식이 제 이름을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거든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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