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화
#67 어떻게 지내? (1)
[허억…….]
[벌써 지친 거야? 아직 할 게 산더미같이 남았는데.]
에드워드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겨우 3시간밖에 안 했잖아!
━네가 그만큼 험하게 굴린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거냐.
‘그만큼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어서 말이죠.’
에드워드의 단점은 명확하다. 에너지를 흡수할 때마다 그 에너지가 어떤 형태인지 확실하게 인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 그 때문에 반응이 늦다는 것. 그러니 연계 공격에 약했다.
‘누구보다 완벽한 방패가 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도 이 정도밖에 활용을 못 하는 게 아쉽지 않습니까?’
━너만큼 연달아서 여러 가지 속성을 쏟아 낼 수 있는 각성자가 몇이나 될 것 같냐고!
음, 다섯 개를 연달아 던진 건 좀 나빴나.
에드워드가 반응한 건 그중 둘뿐이었다. 첫 공격, 그리고 마지막 공격. 중간 공격에는 아예 반응조차 못 하고 얻어맞았다.
급소를 모두 피한 데다가 출력을 모두 낮춘 공격이라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치명상을 입었을 거다.
‘그래도 자신의 단점은 확실하게 알아 두는 편이 좋으니까요.’
나는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처음 공격을 흡수해서 방어막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직은 그냥 받아치는 것밖엔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 점까지 훈련해야지.]
[한 번에 하나씩만 하면 안 될까?]
[안 될 말이지. 한 번에 반응 속도와 흡수한 에너지의 활용법 훈련을 동시에 할 수 있는데, 이걸 참아?]
얼마나 좋아? 이런 1+1 훈련 흔하지 않다고.
━흔하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아닐까?
레이의 태클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드워드를 이렇게 몰아세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에드워드의 능력을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날아드는 에너지의 종류를 확인해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생각을 거치지 않고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죠.’
내가 에드워드를 이 정도로 몰아세우는 데에는 다 그 이유가 있다. 에드워드는 생각이 너무 많다.
[오, 오늘은 더 못하겠어.]
[조금만 더 하면 될 것도 같은데…….]
[응, 될 거야. 내가 시체가 될 거야.]
[너무 우는소리는 하지 말라고.]
‘그래도 확실히 반응 속도가 빨라지고는 있는데요.’
━살고 싶다면 그래야지. 1, 2초에 한 번씩 공격이 날아드는데 그걸 다 맞았다간 저 녀석은 너덜너덜해졌을 거다.
‘누가 보면 정말 제가 에드워드를 괴롭히는 줄 알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에드워드가 자신의 능력을 잘 쓰게 되는 건데 말이다. 진심으로 저쪽을 응원하고 있다고.
일단 오늘은 쉬게 해 줄까.
[오늘은 푹 쉬어.]
[흑흑.]
내 말에 에드워드는 우는 체를 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으면서, 가증스러운 것!
그다음으로 나는 차송진의 훈련을 봐 주었다. 음, 문자 그대로 이번엔 ‘보기만’ 했다.
“형, 자세 무너지잖아. 허리 펴고, 가슴 열고, 어깨 처지지 않게 버텨.”
“으, 으, 어어.”
음, 잘 가르치고 있군.
━쟤 말이다. 남의 고통을 보면서 웃고 있는데,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한 얼굴로…….
‘뭐, 우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레이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친 나지만 한서현의 서늘한 표정을 보는 순간 나 역시 등골에 땀이 흘렀다.
역시 한서현은 조금 위험하달까. 나는 바닥을 기는 차송진을 애써 외면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죽이진 않겠지, 응. 건강해질 거야. 자고로 고통 없는 근 성장은 없는 법이니까.
집 안으로 들어간 나는 뉴스를 확인했다. 내가 제일 먼저 살펴본 건 거대길드 쪽의 동향이다.
과거 이때쯤 시리우스는 재기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무너졌었지만, 지금의 시리우스는 아니다.
설록진의 계략에 거대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세레나의 빙궁도 제대로 공략한 데다가 유선제라는 슈퍼 루키가 살아 있고, 백화점의 테러도 무사히 막아 내는 데에 성공했으니…….
상황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문제는 시리우스를 든든하게 받쳐 주던 1군이 모두 쓸려 버렸다는 것. 그것 또한 해결 방법을 찾았다.
‘이번 바벨 아카데미 졸업생을 거의 다 쓸어 갔네요.’
S급 잠재력의 루키는 없지만, 바벨은 바벨이다. 당장 1군에 올릴 수는 없겠지만, 1, 2년만 제대로 육성해도 큰 도움이 될 거다.
━거기 졸업생이 그 정도냐?
‘확실히 다른 아카데미하고는 결이 다르죠. 실제로 게이트 실습을 나가는 곳도 바벨 정도뿐이니까요.’
각성자 혐오가 극에 달한 미래에도 바벨 출신이라는 말에는 동경의 눈길이 따라붙을 정도니까. 나에게는 그다지 좋은 추억이 없는 곳이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아카데미는 어떤 곳이냐? 네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저기도 정상일 것 같진 않은데.
‘흠, 그래도 내년까지는 괜찮을 겁니다. 내년에 들어오는 한 인간이 아카데미를 장악하기 전까지는 제법 괜찮았거든요. 비리가 좀 있고, 학생들끼리의 차별이 심한 편이긴 해도 그냥 평범한 아카데미거든요.’
━어디가 평범하다는 거야, 어디가.
‘재능이 있는 놈들을 모아 놓고 서열 싸움을 시켜 대니, 왕따나 차별 문제가 없을 순 없죠.’
각성자를 위한 인격 함양 시간도 있긴 하다만,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이 도움이 될 리가. 그랬다면 유선제가 그렇게 싸가지 없진 않았겠지.
놀라운 사실은, 유선제도 그중에 최악은 아니었다는 거다. 사실 유선제 정도면 제법 견딜 만한 싸가지였다. 적어도 먼저 건드리지 않는 한 나서서 X랄하지 않을 정도는 됐으니까. 그보다 나쁜 놈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괜찮은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만으로 이미 성공이 보장된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뭐라도 된 것처럼 거들먹거렸으니까. 뭐,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
‘적당한 재능을 타고난 각성자는 두려울 게 별로 없으니까요. 언제나 피해를 입는 건 어중간한 사람들, 그리고 밑에 깔린 이들이니까.’
입안이 썼지만, 당장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래도 바벨에 한 번 가 볼까 싶기는 하네요. 거기에 들어올 놈이 아주 개X끼라서 말이죠.’
매혹이라는 능력을 가진 그 인간은, 한국의 인재를 외국으로 빼돌려 팔아 치웠다.
‘테이카 쿠퍼가 말했던 인신매매 집단 기억나십니까? 재능 있는 각성자들을 팔아 치웠다는 그 단체요. 거기와 연이 닿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팍팍 든단 말이죠.’
올해 가을, 겨울쯤에 발령이 오니 그 전까지는 다른 일을 처리해 두고 바벨에 잠입해야겠다. 청소부든, 뭐든.
‘멸망을 막아 줄 미래의 역군들을 그런 식으로 허망하게 잃을 순 없죠.’
일단 그 계획도 머릿속에 넣어 두자고.
그럼 이제 당장 닥친 일부터 차근차근 해결하자.
나는 남주현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금박사에게서 받아 온 휴대전화는 어제 한서현을 통해 남주현에게 전달했다. 이번에는 부디 쑤어하오주에게 빼앗기지 않고 잘 보관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남주현에게 게임에 현질해도 된다고 허락했다. 그래, 이것도 일종의 활동비라고 치지, 뭐. 그러나 내 말에 남주현은 그다지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픽업 기간은 지나 버렸다고요! 으으으! 하루만 빨리 말해 주지!」
「픽업 기간이 지나면 아예 못 얻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확률이 거지 같아요. 천장도 없다고요!」
「확률이 거지 같든, 뭐든. 당신이 원하는 게 나올 때까지 뽑아. 그 정도는 지원해 줄 테니까.」
그리고 답장이 뚝 끊겼다. 바쁜 일이 있을까 싶어 무시했는데, 지금 확인한 답장이 가관이었다.
「뭐야, 청혼하는 거예요?」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왜 남의 호의를 원수로 갚으려 든담? 내 질색하는 반응에 남주현은 웃는 이모지를 잔뜩 보냈다.
「아, 맞다. 그쪽에서 부탁한 자료는 D한테 전해 줬어요.」
참고로 D는 도채희의 약자다. 별걸 다 줄인다 싶었지만, 실명을 언급하는 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려니 했다.
나를 자꾸 파워레X저 짝퉁으로 만들려는 사람보다는 이쪽의 취향이 훨씬 건전하기도 했고.
「아, 그리고 D쪽에서 특별 리퀘스트가 있었는데요…….」
리퀘스트? 그냥 부탁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거냐고.
「뭔데, 그게.」
내 질문에 남주현이 말했다.
「흥신소를 하는 청 과장을 찾아 달래요.」
그 이름에 나는 휴대전화를 쥔 채로 굳었다.
청 과장.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으니까.
* * *
“그러니까 이쪽에 진짜 진실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우여곡절 끝에 김두식과 최인혁은 캄보디아에 도착했다. 시엠립 위쪽, 앙코르와트 근처에 산다는 그 점쟁이는, 의뢰인의 얼굴을 직접 봐야만 답을 준다는 기막힌 고집을 부렸고 결국 최인혁은 자신의 일정을 모두 소화한 뒤 이곳까지 직접 날아왔다.
이곳까지 오는 데에 쓴 비행깃값과 통역가를 겸할 현지 가이드 비용. 이미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상황이지만, 최인혁은 그 망할 놈의 강이신에게서 빚을 받아 내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최인혁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확인한 김두식은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럽게 덥구만.”
3월, 아직은 겨울인 한국과 달리 캄보디아의 날씨는 무더웠다. 그나마 습하지 않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했지만, 그 망할 놈의 점쟁이가 산다는 지역에는 나무고, 건물이고 죄다 밀려 있었다.
“왜 이런 곳에 있는 거래?”
“여기가 신의 기운이 가장 가까이 닿는다잖아요.”
“개소리.”
최인혁은 얼굴을 구겼다. 어쨌거나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곳에 있는 건, 자그마한 움집이었다. 그래, 움집. 아무리 봐도 잘나가는 점쟁이가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주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사람들은 뒤늦게 도착한 두 사람에게 줄을 서라는 듯 눈치를 주었고 최인혁과 김두식은 어쩔 수 없이 줄을 설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진짜, 제대로 된 대답을 주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최인혁의 기백에 김두식은 침만 꼴딱꼴딱 삼켰다. 역시 이쪽 도련님의 포스도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해가 지기 직전, 최인혁, 김두식, 그리고 통역가 세 사람은 드디어 그 용하다던 점쟁이, 아니, 진실 사무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곳에 앉아 있는 건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기다란 곱슬머리를 늘어트린 그녀는, 세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이 하나가 아니네요.]
통역가가 전해 준 말에 최인혁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하루에 한 가지뿐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인데.”
[확실하게 진실을 알려 줄 수는 있지만, 예, 아니요. 그렇게밖에 대답을 못 해 줘요.]
“그냥 간단하게 바로 대답해 줄 순 없는 거야? 그 자식이 어디에 있는지?”
[범위를 좁히는 건 가능해요. 하지만 주소를 내뱉을 순 없어요. 내 대답은 언제나 ‘예’ 혹은 ‘아니요’이니까요.]
생각지도 못했던 제약에 최인혁은 으득 이를 갈았다.
“좋아, 해 보자고. 일단 첫 번째 질문.”
숨을 삼킨 최인혁이 말했다.
“그 자식, 살아 있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YES’였고, 그 다음 질문은…….
[신은 하루에 한 가지 질문에만 답하십니다. 내일 다시 오시죠.]
“젠장!”
최인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