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66 나아간다는 것 (2)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에드워드가 우는소리를 하기까지는 세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이제 그만…….]
[뭘 하지도 않았는데, 그만하자는 거야. 아직 알아보지 않은 게 엄청나게 많잖아.]
[바위를 던지는 건 안 해도 되잖아! 어차피 바위는 못 부순다고!]
[운동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어떻게든 부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운동 에너지의 활용 방법도 알아보자고 했잖아.]
[그만해! 이 미친놈아!]
결국 에드워드는 나를 피해서 도망쳐 버렸다. 내가 따라잡을 수도 없게 흙을 뿌리며 사라지는 에드워드를 보니 내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무슨.
“겨우 세 시간밖에 안 했는데!”
━그 세 시간이 얼마나 지옥 같았으면 저러겠냐.
쯥, 오늘은 이만하도록 할까. 그래, 첫날이니까 좀 쉬엄쉬엄하지, 뭐.
━쉬엄쉬엄? 조금만 빡세게 했다간 저 친구를 다음 날 서현이의 수집품으로 보겠구나. 첫날에 저렇게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 너도 참 대단하다.
‘피폐하다뇨. 그만큼 제대로 훈련이 안 돼 있는 본인 탓이죠.’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빡세게 에드워드를 굴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도 주먹구구식으로 능력을 써먹는 꼴을 보니 어제 먹은 고기가 얹힌 것처럼 속이 불편해져서 말이다.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공기놀이를 하는 꼴을 본 기분이라고요!’
늘 먹고살기 바빠,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저렇게까지 제 능력을 모르고 있었을 줄이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틀어박혀 있던 놈 아니냐. 게다가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 하나 없는 놈이, 잘도 자기 능력을 훈련시켜 줄 사람을 찾았겠구나.
‘……그건, 그렇겠네요.’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에드워드는 빛나는 원석이었다.
━벨츠머츠로 영입할 생각은 아직도 없는 거냐?
정호산 때도 그러더니. 하여간, 인재만 보면 침 바르려는 건 나보다 심하다니까.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 했던 말은 저 녀석의 진심이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자기의 꿈이 모두 무너졌다는 충격으로, 눈앞에 보이는 선택지에 그냥 달려든 거라니까.
‘저런 타입을 언젠가 한 번 본 적 있거든요.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발악하는 거요. 그런 타입은 한 번 멀리 떨어져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시간이 필요해요.’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녀석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에드워드가 꾸고 있던 꿈이 옳든, 옳지 않든 그 꿈을 무너트린 건 김재호였고, 그 책임은 김재호의 보호자인 나에게 있으니.
‘이 일을 잘 수습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죠. 그리고 그 수습에 우리 조직에 녀석을 영입하는 건 영 맞지가 않고요.’
에드워드 같은 든든한 각성자가 합류해 준다면 고마운 일이긴 해도, 가볍게 영입을 입에 올리기엔 우리 조직이, 좀, 무시무시하잖아.
━어디가 무시무시하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
‘목적 쪽이죠. 그 무시무시한 설록진을 물리치자는 게 저희 쪽 목표니까요.’
설록진은 내가 만났던 인간 중 단연코 최악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다.
언제든지 궁지에 몰리면 세뇌라는 무기를 사용해서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정치인으로서 권력을 꽉 잡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대체 무슨 짓을 해야 그 포커페이스를 흔들 수 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희미한 감정도 그렇고.
설록진과 9년을 지내면서 깨달은 건, 설록진을 무너트릴 방법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극도로 몸을 낮추고 그림자에 숨어 있는 것도 나라는 존재를 설록진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지 않는가.
‘설록진을 죽이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확실해질 때까지 저는 나설 생각이 없거든요.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는 몰라도, 유쾌한 일만 있지는 않을 거고요.’
옳은 일만은 하지 않을 거다. 이미 내 손에는 많은 피가 묻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소리다.
그럼에도 내가 늘 가볍게 행동하고, 즐겁게 지내는 건…….
‘목적이 무겁다고 그 과정까지 힘겹고 고단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그런 거 싫다, 나는.
나는 애초에 약해 빠진 인간이라서 그런 가시밭길을 걸어갈 자신도 없었다. 피를 삼키고, 뼈를 부수는 심정으로 복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거.
그런 건 하드보일드 영화 주인공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나는 그저, 아주 비겁하게도 그 길까지 편하고 즐겁게 가고 싶다.
‘사실 복수라는 거, 괜히 죄도 없는 다른 사람을 진창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혼자서 하는 게 맞을 거 같지만요. 저는 그 정도로 강하지 못하니까요.’
나는 내 한계를 알고 있다.
나는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못 된다.
내 능력도 그 정도로 대단하지 못하고, 성격도 그렇다. 나는 외로움을 아주 많이 타는 데다가, 집안일도 못 하고, 요리도 잘 못 하고…….
━집안일은 전혀 복수랑 상관없잖냐!
큭, 나는 레이의 말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그러니까 이런 거. 나는 무거운 분위기가 정말로 싫다.
‘전에 제가 말한 말 기억합니까? 세상을 구하는 건 혼자 할 수 없다는 거요.’
내겐 복수도 비슷했다.
내 안에 있는 설록진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설록진을 홀로 맞설 생각만 하면 심장이 저릿해졌다. 이미 내 심장에 찍힌 낙인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내 영혼에 그 녀석이 새겨 넣은 흉터는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무서운 거냐, 그 녀석이?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야 무서운 거죠.’
나는 레이에게 속삭였다.
‘전생에서 나는 설록진이 죽도록 싫었어도 두렵진 않았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됐어요. 왜냐. 더는 빼앗길 게 없어졌으니까.’
설록진이 빼앗아 갈 게 내 목숨뿐이었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내 목숨은, 더는 내게 소중한 게 아니었으니까. 사실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가치가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랬더니 내 심장에 낙인을 찍어서 멋대로 죽지도 못하게 만들었지만, 뭐, 그래도 설록진이 두렵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엄청나게 두려워요.’
아이러니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 여러 사람을 끌어들였는데, 막상 그것 때문에 내 약점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
그래, 지금의 나는 약점이 너무 많았다. 잃을 게 너무 많았다.
정호산, 한서현, 김재호, 차송진. 그리고 도채희, 남주현, 홍난희, 금박사. 내 손이 닿고, 나를 도운 모든 이들.
내가 구하고, 나와 연관된 모든 사람이 설록진의 손에 어떻게 된다는 사실만 떠올리면 심장이 엄청나게 조여들었다.
‘그러니 당장은 설록진을 어떻게 할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두려우니까요. 잃을 게 많아졌는데, 이걸 그놈에게서 확실하게 지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도저히 안 드니까요.’
이런 상황에 영입이라는 게 쉬울 수가 없다.
내가 차송진을 어떤 마음으로 품었는데.
어떤 마음으로, 그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저란 사람이요, 참 약해 빠졌지 않습니까? 이 복수에 모두를 끌어들여 놓고는 이제 와서 그들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게.’
아, 이래서 누구든 정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역시 나는 그 많은 교훈으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잃고도, 여전히 나는 바보처럼 정이 많았다.
‘안마 의자를 살까 봐요.’
━그게 지금 나올 소리냐?
‘생각해 보니까, 이제 못 살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래. 이제 누가 말릴 사람도 없는데 왜 그동안 안 샀는지 모르겠다. 사람 수대로 하나씩 사는 거다. 거실이든 어디든, 아무 데나 두고 마음껏 즐기는 거야.
내게 안마 의자를 못 사게 했던 설록진은 이제 없으니까.
━정말 네 녀석은…….
‘말했잖아요. 무거운 분위기는 싫다고요.’
웃음을 터트린 내가 걸음을 옮겼다. 어디, 차송진의 훈련이 끝났는지 봐야겠다.
* * *
나는 한서현과 단둘이 에케아로 향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에케아에서는 안마 의자를 팔지 않았다. 입이 댓 발 나온 내게 한서현은 주변에 안마 의자 전문점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애초에 검색도 안 하고 무슨 자신감으로 여기에 온 건데요?”
“에케아니까, 가구는 다 있을 줄 알았지.”
“보스가 원하는 안마 의자 같은 건, 전문점에서나 판다니까요?”
그리고 그 전문점에서는, 정말로 내가 꿈에만 그리던 안마 의자가 잔뜩 있었다.
“오오오!”
흥분해서 안마 의자를 즐기는 나와 달리, 한서현은 침착하게 직원에게 설명을 들었다.
“음, 이 모델은 무중력 모드라고 해서 이렇게 뒤로 넘어가는데요. 그만큼 설치 장소가 조금 더 넓어야 하는데…….”
직원의 설명이 마치 자장가처럼 들렸다. 반쯤 잠들어 있던 나를 깨운 건,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한서현이었다.
“그러니까 뭘 살 건데요?”
“음? 제일 좋은 걸로 다섯 개.”
“예? 다섯 개나 살 거예요?”
“일단 우리 집에 있는 사람이 다섯 명이니까? 괜찮아, 나 돈 많아.”
“세상에.”
“무슨 안마 의자를 사람 수대로 사요. 이게 무슨 식탁 의자 같은 것도 아닌데.”
“내가 원할 때마다 안마 의자에 눕고 싶단 말이야.”
한서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마 의자를 다섯 개 샀다.
“흐흐흐.”
배송부터 설치까지. 셀프로 해치웠다.
안마 의자만을 위한 방도 새로 만들었다. 한서현은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막상 안마 의자에 누운 다음에는 조용히 눈을 감고 마사지를 즐겼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불러왔다.
“왜, 왜…….”
다 죽어 가는 차송진은 안마 의자를 보며 눈을 빛냈다.
“이, 이건!”
“그래, 고생 많이 했다. 앞으로 훈련한 다음에는 여기에서 몸 풀어. 앉기 전에 깨끗하게 샤워하는 거 잊지 말고. 땀투성이로 사용하면 죽여 버린다.”
“히이익!”
내 섬뜩한 협박에 차송진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각자 내가 이름표 달아 뒀으니까 자기 거만 써!”
에드워드에게도 나는 같은 설명을 영어 버전으로 해 주었다.
[그러니까 이 의자에 앉으면 의자가 나를 막 만져 준다는 거지?]
[음, 마사지해 준다니까.]
[그래. 흠. 느낌이 이상할 것 같은데.]
에드워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흥, 안마 의자의 멋짐도 모르는 인간 같으니라고.
김재호 또한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의자에 앉았다. 좋아, 다들 안마 의자를 잘 즐기고 있구만. 그럼 이제 나도 한 번 앉아서 안마를 즐겨 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았을 때였다.
쿠왕.
쾅.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에 나는 황급하게 눈을 떴다.
“뭐야, 무슨 소리야!”
눈을 뜨고 보니 씩씩거리며 안마 의자를 부수고 있는 김재호가 눈에 들어왔다.
“재, 재호야! 무슨 짓이야!”
“의자가 날 때렸어! 그래서 나도 의자를 때려 줬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김재호를 보며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건방진 의자! 내 엉덩이를 때려!”
김재호는 의자가 가루가 되도록 부쉈고,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빠져나가는 김재호를 본 한서현이 내게 말했다.
“재호 형은 그냥 마사지 건너뛰도록 하죠?”
“……그래.”
안마 의자는 무슨.
“생각하는 의자에 30분 앉혀.”
저주받은 의자에나 앉아라!
━너도 저주받은 의자라고 인정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