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화
#66 나아간다는 것 (1)
나는 야외 훈련 장소로 에드워드를 안내했다. 아직 3월, 야외에서 훈련하기엔 날이 쌀쌀하긴 하지만, 뭐. 훈련하다 보면 땀이 날 테니 괜찮지 않을까.
“서현아, 재호랑 송진이 형 훈련 좀 봐 주고.”
“알겠어요.”
비실비실한 몸을 가졌던 한서현은 이제 없다! 내 아래에서 운동의 중요함을 깨달은 헬창, 아니지, 건전한 운동맨으로 거듭난 한서현은 눈을 빛내며 차송진에게 다가갔다.
“시, 싫어.”
“후, 형. 싫다고 해도 피할 수 없다는 거 알잖아요. 차라리 빨리 해치우자고요.”
“흑흑.”
차송진은 반쯤 울먹거리며 한서현을 따라갔다. 저렇게나 운동을 싫어하다니. 그러니까 몸이 저 모양이지.
“쯧, 쯧. 다 자기 위해서 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우는 얼굴로 끌려가는 차송진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피도 눈물도 없는 한서현에게 맡겨 두었으니 저쪽은 안심이다.
나는 에드워드를 향해 손짓했다.
[이쪽으로 와.]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엉망이 된 땅을 다시 다졌다. 움푹 파였던 땅이 평평해지고, 여기저기 박혀 있던 돌들이 한쪽으로 정리되었다.
마법과도 같은 장면에 에드워드의 눈이 반짝 빛났다.
[혼자서는 마력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거야?]
내 말에 에드워드의 표정이 곧바로 어두워졌다.
[응. 말했잖아. 나한테 날아드는 마력을 흡수한 다음에야 움직일 수 있다고. 솔직히 내 몸에 마력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된다. 각성자의 몸에는 언제나 마력이 있기 마련이었으므로. 나는 에드워드의 근처에 다가갔다.
[잠깐 손을 얹어도 괜찮겠어?]
에드워드는 내 말에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의 어깨에 손을 얹은 나는 정신을 집중한 채로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내 손끝에 뭉친 마력은 그대로 에드워드의 몸으로 타고 들어갔다. 에드워드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 마력은 곧바로 내 통제를 벗어났다.
‘흠, 마력 컨트롤이라면 제법 자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마력을 보는 눈이 나보다 더 뛰어난 레이에게 뒤를 맡겨 둘 수밖에.
‘보입니까?’
━대충은.
잠시 마력의 흐름을 관찰한 레이가 놀랍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 녀석, 코어가 조금 특이한데.
‘코어요?’
━그래, 인간 식으로 하자면 마나 회로의 중심 말이다. 너희가 말하는 잠재력은 그 코어의 크기를 의미하지. 하지만 이 녀석의 경우는, 그래, 코어가 작지만, 효율이 극도로 좋다고 해야 할까. 아니, 다른 말로 하자면 뒤틀려 있다고 해야 하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알기 쉽게 좀 정리해 주시죠.’
내 질문에 레이는 천천히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몇 분이나 이어진 그 말을 한마디로 줄이자면…….
‘제 쪽이 수도꼭지라면 저쪽은 양동이 같다는 거네요.’
━내 말을 어떻게 알아들으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거냐.
그리 다를 것도 없지 않나. 어쨌거나 내 쪽의 코어가 꼭지만 돌리면 줄줄 마력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과 달리 에드워드는 마력을 가둬 두고 증폭하는 성질을 지녔다고 했다.
혼자서 마력을 방출하지 못하는 건, 양동이 바깥으로 물을 밀어낼 만한 방법을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마력을 일으키면 자연적으로 마력을 방출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에드워드는 마력을 보관하려고 한다니까.
에드워드의 마력은 이미 자신의 몸에 잘 고여 있었다. 이미 꽉 차 있는 물컵이랄까. 그래서 바깥쪽에서 누군가 물을 부으면, 그 물이 바깥으로 흘러내리는 거다.
내가 사용하는 팔찌를 개조해서 넘겨줄 수만 있다면, 날아다닐 것 같은데…….
━보통 사람은 마력을 받아들이는 회로가 없다니까.
‘하지만 에드워드의 경우에는 바깥쪽의 힘을 자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응용하면 될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러려면 아티팩트를 제대로 만질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 내가 만든 팔찌는 솔직히 말해 좋은 아티팩트라고는 못 하니까. 처음 팔찌를 만들었을 때 내 팔 양쪽이 잘 익은 스테이크가 되었던 걸 생각해 보면, 남한테 줄 만한 물건은 절대 못 되지.
[저기 언제까지 내 어깨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건데?]
[아.]
에드워드를 세워 두고 생각이 너무 길어졌다. 나는 재빨리 손을 뗐다. 흠, 좋아. 이 녀석의 속도 확인해 봤겠다 이제는 전투 능력을 테스트해 볼 때다.
에드워드와 거리를 벌린 내가 물었다.
[어떤 에너지든 흡수할 수 있어?]
[대부분은. 아, 독 같은 건 곤란해. 에너지를 흡수하기도 전에 내가 독에 당하는 게 먼저라서.]
[흐음. 한번 받아 볼래?]
처음 시작은 번개였다. 공중을 찢고 날아간 번개는 에드워드의 앞에서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에드워드의 황금빛 눈동자 가운데에 붉은색 불꽃이 타올랐다.
내 앞에 있는 땅에 번개가 내리꽂혔다. 에드워드가 돌려보낸 번개다.
[반응 속도가 나쁘지 않네.]
내 말에 에드워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응 속도가 나빴으면, 여기까지 살아남지도 못했겠지.]
확실히 바닥을 굴러가며 살아남은 만큼, 에드워드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번개를 보냈더니, 번개로 돌아왔네요. 흠, 하지만 확실히 반사는 아니에요, 그렇죠?’
━그래. 속도가 빨라서 그렇게 착각할 법도 하지만, 저건 반사가 아니었어. 네 마력은 확실히 저 녀석의 몸을 거쳐 다시 나온 거다.
외부에서 쏟아지는 에너지를 몸 외부에서 받아치는 반사의 재능과는 달리 내가 쏘아 낸 번개의 마력은 확실히 에드워드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래서 흡수라는 말을 한 거다. 흡수와 방출이라.
나는 공중에 얼음 창을 짜냈다. 번개가 1획이라면, 이건 2획 정도 되려나.
[어, 어…….]
마력이 뭉쳐져 만들어진 번개와 달리 얼음 창은 실체가 있었다. 부드럽게 몸속으로 흡수한 번개의 마력과 달리 얼음이라는 실체를 갖춘 얼음 창은 그런 식으로는 흡수할 수 없었다.
이런 걸 어떻게 받아칠 수 있는지 궁금한데…….
[던져도 돼?]
[끄응, 알겠어.]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얼음 창을 에드워드 쪽으로 던졌다. 에드워드의 앞에서 얼음 창은 힘을 잃고 추락해 바닥에 내리꽂혔다. 하지만 얼음 창에 있던 ‘마력’은 그대로였다.
에드워드가 흡수한 쪽은 얼음 창을 내려칠 때 발생한 운동 에너지였다.
에드워드의 몸이 순간적으로 가속했다.
‘흐음.’
이제 한 가지만 더 테스트하면 대충 감이 잡힐 것 같았다. 나는 허리춤에 매 두었던 단검을 꺼내 에드워드에게 던졌다.
[이건 뭐에 쓰라고?]
[얼음 창을 깰 수 있겠어?]
나는 에드워드에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말해 주었다.
얼음 창에 담겨 있던 운동 에너지를 흡수한 뒤, 느려진 얼음 창을 부수고 그 안에 있는 마력을 흡수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얼음 창을 부수는 데에서 끝날지.
[얼음 창에 담긴 마력을 흡수해 보란 말이야?]
[그래.]
[그런 건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그냥 운동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으로도 여태까지는 충분했거든.]
[그러니까 이번에 한번 해 보자고. 어떻게 될지, 너도 궁금하지 않아?]
나는 얼음 창을 만들어 낸 뒤 에드워드에게 눈짓했다. 에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내 얼음 창이 에드워드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앞에서 느려진 얼음 창을 그대로 부쉈다. 그리고…….
[어.]
얼음 창에 담겨 있던 마력을 에드워드는 분명히 흡수했다. 공중에 있던 마력이 사라지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에드워드는 그 마력을 그대로 앞쪽으로 내보냈다.
땅이 얼어붙는 걸 확인한 나는 에드워드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 팔찌에서 마나석을 꺼낸 나는 에드워드의 손바닥에 그 마나석을 올려 두었다.
[이건 뭐야?]
[혹시 그 마나석에 담긴 마나를 흡수할 수 있겠어?]
[그런 게 될 리가 없잖아. 마나석에 있는 마나는 사람이 이용할 수 없다, 상식이잖아?]
[안 된다면, 부숴서 흡수해 봐.]
내 말에 에드워드는 눈을 찌푸렸다. 에드워드의 말처럼 마나석에 담긴 마나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흡수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각성자임에도 스스로 마력을 방출할 수 없는 특수한 각성자였다. 그러니 일반적인 상식이 이 녀석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아까 봤던 것. 얼음 창을 부수고 흘러나온 마력을 녀석이 흡수했던 걸 보면…….
[그런 게 될 리가 없대도.]
[한번 해 봐. 부숴도 상관없으니까.]
내 말에 에드워드는 찜찜한 표정으로 마나석을 부쉈다.
그리고…….
[뭐야.]
에드워드의 주변에서 분명히 마력이 움직였다. 마력이 머문 건 순간에 불과했지만, 확실히 마력이 움직였다. 아주 미미했지만, 확실했다.
[내 얼음 창을 부숴서 그 안에 있던 마력을 흡수한 것하고 똑같아. 단지 주체가 마나석이 됐을 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쪽이 더 이상하지 않아?]
나는 주변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효율은 별로네. 확실히 부서질 때는 미량의 마나밖에 흘러나오지 않으니까. 흠, 그래도 확실히. 흡수할 수는 있었어.]
내 쪽이 마나 회로로 마나석을 녹여 내는 쪽이면, 에드워드는 부숴서 나오는 미량의 마나를 흡수하는 쪽이니 효율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화력 문제는 마나석을 제대로 분해해, 마력을 뽑아내는 장치를 만들어 내면 해결될 것 같았다.
어쨌거나 결론은 하나.
[혼자서도 마력을 움직일 수 있단 뜻이야. 마나석을 매번 소모하긴 해야겠지만.]
[오.]
내 말에 에드워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에드워드의 등을 툭 두들겼다.
[놀란 건 알겠지만 그렇게 넋 놓고 있지 마. 테스트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니까. 흡수할 수 있는 속성이 뭐가 있는지, 네 한계는 얼마나 되는지, 흡수한 마력을 그대로 돌려보내는 거 말고 다른 쪽으로 응용은 가능한지. 알아보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니까.]
[오.]
내 말에도 에드워드는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제 손에서 반짝이는 마나석 가루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음, 훈련 중에 감상에 빠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저 녀석에게는 저게 엄청난 콤플렉스였을 테니 이해한다.
[나는 평생, 어, 그러니까 나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도 각성자야.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게 당연하잖아. 그냥 다른 사람들이랑 코어가 달랐을 뿐이지.]
[코어가 달랐을 뿐이라고…….]
[그래.]
[마나석만 있으면 나도,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고.]
그 말에 나는 에드워드를 툭 쳤다. 멍하게 풀려 있는 금빛 눈동자를 마주 보며 내가 말했다.
[넌 이미 엄청나게 대단한 각성자였어. 안 그래? 누군가의 힘을 흡수할 수 있다는 건,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너는 완벽한 방패가 될 수 있다는 뜻이야. 그리고 그것만으로 끝이냐? 너는 그 직후에 상대방에게 그걸 되돌려 줄 수도 있잖아. 공방이 완벽한 각성자라는 뜻이지.]
그리고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 보통은 공격이든, 방어든 한쪽에 능력치가 쏠리기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렇지 않다.
완벽한 방패이자, 완벽한 창이 될 수 있는 능력자라는 뜻이다.
[마나석을 부숴서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네게 선택지 하나를 더해 준 것뿐이야. 갑자기 무능했던 네가 유능해진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넌 원래부터 개-쩌는 각성자였어.]
내 말에 에드워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개-쩌는 각성자였다고? 하하! 범생이 말투로 그런 말 하니까 웃기다.]
[참나.]
내 말에 에드워드는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반짝이는 가루를 꽉 쥔 에드워드가 말했다.
[좋아, 지금부터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