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65 죄의 무게 (2)
도채희는 자신에게 온 문자에 눈을 깜빡였다.
“으음.”
N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여자는, 그 일 이후로 도통 도채희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슨 일로 선뜻 연락을 해 왔다.
그리고 그 내용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홍난희 변호사를 만나 봐요.」 라니.
도채희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다짜고짜 변호사를 만나러 가라니? 도대체 왜 그녀를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적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만나서 뭘 하는데.’
대뜸 변호사를 찾아가서 시비를 걸 순 없는데, 말이다.
경찰관인 그녀가 변호사를 만나 할 이야기가 뭐가 있다고.
도채희는 변호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형사 사건을 맡는 변호사들을. 기껏 열심히 노력해서 잡아 놓은 범인들을 놓아주는 꼴을 보자면 그녀의 일이 아닌 데도 열이 받았다.
사정이 어떻든 도채희의 눈에 변호사는 기껏 잡아넣은 악마들을 풀어 주는 타락한 지옥의 문지기로밖엔 안 보였으니까.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지.’
그러니 도채희가 변호사인 홍난희를 기꺼워할 리가 없었다. 도채희는 문자를 노려보았지만, 갑자기 문자가 다른 메시지로 변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하필이면 추적도 불가능한 문자라 질문을 보낼 수도 없다는 점이 도채희의 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혹시 그건가. 이 사람에게 뭔가 구린 점이 있다든가.
마침 텅 빈 1팀 사무실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던 그녀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었다.
도채희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했다.
“뭐…….”
일단 이 변호사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도채희는 데이터베이스에 홍난희를 검색했다.
올해 43세, 한국에서 최고라는 대학을 나와 로스쿨을 졸업한 그녀의 이력은 제법 화려했다. 곧바로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로펌에 들어가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 화려한 이력은 변호사 4년 차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
변호사 5년 차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무실을 차렸고……. 불행히도 그 사무실은 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무실의 주소가 점차 시내에서 시외로, 나중에 가서는 경기도권까지 밀려 나가는 걸 보면서 도채희는 손가락을 딱딱 부딪쳤다.
‘도대체 왜 이 사람을 만나라고 한 걸까.’
이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도채희는 모니터에 뜬 홍난희의 증명사진을 바라보았다. 쌍꺼풀이 없이 길게 양옆으로 큰 눈은 화질이 나쁜 화면으로도 특유의 기백이 느껴질 정도로 형형했다. 척 보기에도 ‘나 쉽지 않은 사람이요’라고 써 붙인 얼굴이랄까.
아무리 봐도 변호사라기보다는, 범죄자를 때려잡는 검사 쪽이 훨씬 잘 어울리는 얼굴인데…….
깐깐해 보이는 그녀의 인상에 도채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음. 전과는…… 뭐야.’
당연히 전과가 없을 줄 알았지만, 은근히 전과가 꽤 됐다. 과격한 레이서인지 과속에, 주차 딱지를 받은 적도 여러 번이었고 심지어 별점이 쌓여 운전면허가 정지됐던 적도 있었다.
그나마 음주 운전이 없는 게 다행이랄까.
하지만 그 밑으로 이어진 전과들은 나빴다.
‘특정 인물에 대한 접근 금지?’
거기에 금지된 집회 참가 등. 뭔가 파면 팔수록 그녀가 상상하던 부패 변호사하고는 거리가 먼 자잘한 경범죄들이 나왔다.
확실히 죄를 많이 짓긴 했지만, 글쎄, 정말로 이 사람이 그런 식의 나쁜 놈일까?
이런 정보로 알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만나러 갈 수밖에.”
도채희는 원래 이렇게까지 충동적인 성향이 아니었다. 음, 아마도. 하지만 그녀의 후견인은 알고 보니 나쁜 놈들의 끄나풀이었고, 그녀가 아꼈던 팀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러니까, 뭐.
‘안 될 게 뭐가 있어?’
도채희는 재빨리 외투를 꺼내 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녀의 이른 퇴근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자기 소유의 자가용에 올라탄 도채희는 홍난희의 사무실로 차를 몰았다.
변호사 홍난희는 자기 명의의 사무실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무실이 아주 조그만 데다가,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골목 사이에 있었다는 거다.
근처 주차장에 겨우 차를 댄 도채희는 그녀의 사무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알려 주는 정보는 안타깝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치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에는 수십 개의 작은 가게들이 어지럽게 뭉쳐 있었으니까.
몇 번이나 잘못된 건물로 들어가고 나서야, 겨우 올바른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건물 4층에, 제대로 된 간판도 없이 박혀 있는 사무실에 도채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여기가 맞을까 싶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여기가 맞았다. 숨을 내쉰 도채희는 낡고 녹슨 철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세요!”
안쪽에서 들리는 걸걸한 목소리에 도채희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끼기긱, 녹이 슨 철문에서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그 끔찍한 소리에 도채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안으로 들어가서 본 사무실의 상태는, 건물의 상태만큼이나 좋지 않았다.
다 떨어진 흰색 페인트에, 낡아서 너덜거리는 가구들. 겨우 다섯 평은 될까 싶게 좁은 사무실에는 의뢰인이 제대로 앉아 쉴 공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도채희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은 등받이도 없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뿐이었다.
그나마 나머지 공간은 전부 서류로 채워져 있어, 제대로 몸을 움직일 만한 공간도 나오지 않았다.
홍난희는 그 좁아 터진 사무실의 가장 중앙,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양옆으로는 쏟아지는 순간 그녀를 압사시킬 정도로 많은 양의 종이 더미가 놓여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시선은 그 종이에 가 있었다. 이 철문을 열고 들어온 방문자가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듯, 시선 하나 던지지 않았다.
“저어…….”
도채희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이냐.
그때 그녀의 뒤에서 또 한 번 문이 열렸다. 끼이익. 도채희는 저도 모르게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
“어?”
“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그때, 책상 앞에 앉아 있던 홍난희가 입을 열었다.
“의자는 하나뿐이니, 상담이 필요하신 거면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야겠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홍난희의 표정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깐깐해 보였다.
“아니요, 저는…….”
도채희는 홍난희에게 사건 의뢰를 하러 온 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려고 했지만, 정호산은 달랐다.
“네, 자리 옮기시죠.”
* * *
정호산이 이곳에 나타난 것도 놀라웠는데, 사건 의뢰를 하러 온 거라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홍난희를 앞장세우고, 도채희는 정호산에게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변호사를 수임해야 할 정도로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
“그러는 도채희 경위님은 여기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요? 저는 그냥…….”
도채희는 말을 돌렸다.
“일단 제가 먼저 물었잖아요. 그러니까 호산 씨가 대답하는 게 먼저죠.”
아, 작게 입을 벌린 정호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도채희의 질문에 대답했다.
“제가 담당하는 애 사건에 변호사가 필요해서요. 국선 변호사를 알아봤는데, 이런 사건엔 승률이 거의 0%라고 해서…….”
“오, 오.”
도채희는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정호산 씨가 담당한 사건이라면, 정호산 씨가 체포한 사람의 변호를, 그러니까 범인의 변호를 대신 알아봐 주고 계셨던 거예요?”
“예.”
그 말에 도채희는 놀라 눈을 굴렸다. 왜 굳이 그런 짓을? 아, 물론 첫 사건인 만큼 더 마음이 쓰여서 그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변호사를 직접 알아봐 줄 정돈가?
“그렇지만, 그래서야 제대로 된 ‘죗값’을 치르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기껏 잡아넣은 범인이 풀려나면 어떡해요?”
도채희의 말에 정호산이 뒷덜미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 그 녀석이 풀려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요. 음, 살인을 저지른 데다가 인질극을 벌였고 현장에서 체포됐거든요.”
“그런데요?”
그러면 더더욱 제대로 된 변호사를 구해 준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도채희의 말에 정호산이 말했다.
“하지만 전 그 녀석이 제대로 된 재판을 받았으면 해서요.”
도대체 왜?
정호산과 도채희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홍난희는 카페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도채희는 재빨리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에 있는 가게들이 모두 그렇듯이 카페는 낡았지만, 적어도 홍난희의 변호사 사무실(그런 것도 사무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다.
“간단한 상담은 공짜로 해 줄 테니, 커피는 그쪽이 사요. 시럽 두 번 더 펌핑한 바닐라라테로. 따뜻하게 한 잔.”
“아, 네!”
정호산은 홍난희의 말에 곧바로 카운터로 향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도채희를 바라본 홍난희가 말했다.
“여기 1인 1주문이에요.”
“앗, 네!”
도채희도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을 하러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서도 여전히 도채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하지만 일단은 정호산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볼 참이었다.
어차피 홍난희에게 사건 의뢰를 하고 싶어서 온 거라면 그녀의 앞에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홍난희는 정호산이 건네는 바닐라라테를 받아들며 그제야 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음, 커피값으로는 대충 15분 정도 내줄 수 있겠네요.”
“15분이요?”
정호산은 깜짝 놀라 외쳤다.
“지금 맡은 사건이 좀 커서. 그거 정리하는 데만도 한세월이거든요. 어, 지금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어요?”
홍난희의 말에 정호산은 허둥지둥했다.
툭, 도채희가 정호산의 옆구리를 쳤다.
“일단 진정 좀 해요.”
“아, 네네.”
숨을 크게 들이쉰 정호산이 말했다.
“국선 변호사로 일하시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으음, 시간이 되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홍난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둘 다 안 될 것 같은데.”
“그, 그 친구 사연을 한 번만 들어봐 주시면 안 될까요.”
“14분 남았어요.”
홍난희는 그렇게 말하며 라테를 홀짝였다. 14분 동안은 당신 말을 들어 준다는 뜻이었다.
침을 꿀꺽 정호산이 입을 열었다.
“그 친구는 16살, 고아입니다. 보육원에서 작년에 보조금을 받고 나왔는데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요. D급 각성자지만, 헌터 아카데미에도 못 들어갔고 일반 학교에서는 그 친구를 거부했고요…….”
“무슨 죄를 지었는데요.”
홍난희의 질문에 유리잔을 움켜쥔 정호산이 말했다.
“강도, 살인…… 크게 걸리는 것만 이 정도고 상해죄, 특수공무집행방해, 폭처법…….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라서 모르겠네요.”
“각성자면 평생 못 나오겠네. 열여섯 살이라고 했죠?”
“네.”
“안타깝게도 각성자는 미성년자 보호법에도 해당이 안 돼요. 각성자는 나이가 몇이든 성인과 똑같은 법으로 처벌받죠.”
쪼옥, 바닐라라테를 먹은 홍난희가 말했다.
“그 친구를 체포했다는 경찰관 씨가 와서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짠한 사연이 있나 본데.”
힐끔,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한 홍난희가 말했다.
“어디 그 남은 시간 동안 말해 봐요, 그 사연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