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화
#64 welcome (2)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간 나는 깜짝 놀랐다. 에드워드가 내가 버리려던 의자에 앉아 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내 시선을 읽은 한서현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식탁 의자가 네 개밖에 없어서요.”
“그야, 그렇지만…….”
에드워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활짝 웃었다.
“저거 무진장 등이 배기고 불편하지 않나?”
“아, 그거 체형 따라 다른가 봐요. 뭐냐, 우리 동양인은 허리가 좀 길어서 불편한 거 같던데, 쟤는 서양인이라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렇다기에 우리 중에 허리가 특출나게 긴 사람은 없던 것 같은데.
하지만 저 의자에 앉아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는 에드워드를 보니 아주 틀린 말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도 좀 그랬다.
“흠, 서양인에게는 좋다고?”
“예, 오히려 중간중간 저릿한 기분이 드는 게 꼭 저주파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던데요.”
“그 저주파라고 한 거 맞아? 저주(curse)라고 한 거 아니야? 번역기는 가끔 그런 식으로 뜻을 영 이상하게 내뱉는다던데…….”
평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의심이 간다. 하지만 한서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좋다고 그랬거든요. 봐요.”
[너무, 너무, 좋다. 이 의자, 수출하면 대박이 날지도?]
“어째 쟤 말투가 이상해진 것 같은데?”
“말했잖아요, 마사지를 받는 것 같다고. 너무 시원해서 그래요, 너무 좋아서.”
에드워드는 나를 보며 따봉을 쉴 새 없이 날렸다. 뭐, 저렇게까지 좋아하는데. 의심하는 것도 좀 그런가.
“하하, 그렇구나! 외국인용이었구나.”
━의자에 내국인, 외국인이 중요할 리가 없지 않나?
‘애들이 그렇다잖아요! 의자에 앉을 육체도 없으면서 뭘 압니까?’
━치사하게, 팩트를 가지고 공격하다니…….
팩트 공격은 자기가 더 많이 했으면서 새삼 억울한 척이라니. 나는 레이의 우는 소리를 무시했다.
“그래, 멀쩡한 의자를 내다 버릴 이유는 없지. 그래, 앞으로 저 의자는 에드워드 걸로 하자.”
[오우, 오우.]
어찌나 좋은지 손을 들어 올리는 에드워드에게 나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 * *
필요한 물건을 사러 에케아에 들르기 전, 나는 일단 한국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정호산이 무사히 살아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만약 정호산이 위험해지는 일이 생겼다면 한서현이 나에게 알리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아무리 정호산을 싫어하더라도, 제가 그 녀석의 죽음을 그냥 넘길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덕분에 정호산이 사지가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었다.
왜냐.
빌어먹을 놈의 각범부에 들어갔으니까.
그러니까 뭐랄까, 어쩔 수 없이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왜요.”
역시 한서현은 눈치가 빠르다니까.
“그냥, 그 녀석은 잘 지내나 해서.”
내 말에 한서현은 ‘그 녀석’이 누군지도 묻지 않고 얼굴을 팍 구겼다.
“더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각범부에 들어갔으니까 말이지. 혹시 뭐, 거기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고. 아, 절대로 만나러 가지는 않을 건데. 뭐냐, 그래도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할 수는 있잖아?”
━그런 걸 사람들은 관심이라고 한다만.
나를 찌릿 바라본 한서현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래도 가만히 눈을 감는 것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려는 모양이다. 정호산의 주변에 뿌려 둔 쥐돌이와 새돌이에게서 정보를 받는 중이겠지. 나는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한서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고개를 갸웃거린 한서현이 나를 보며 말했다.
“흠…….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뭔데?”
나는 한서현에게 정호산의 사정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 * *
“뭔데요.”
정호산은 구치소 너머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이름 김현기. 나이 16세. 잠재력 D급의 빙결 재능을 지닌 아이. 헌터 아카데미에 등록하지 않은 상태로, 현재 무직. 겨우 열여섯짜리 어린애한테 ‘무직’이라는 말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보고서에 적힌 그 녀석의 직업은 그랬다.
일반 학교에라도 다니려고 했지만, 받아 주는 학교가 없어서 학생도 되지 못한, 그래서 밑바닥에 밑바닥까지 떨어질 때까지 그 누구의 손도 잡아 보지 못한 어린애.
잘 먹지도 못해 제대로 자라지 못한 녀석의 키는 이제 겨우 백육십 중반대였고, 덕분에 나이보다 더 어려 보였다.
아무리 봐도 이 조그만 녀석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의 죄는 확실했다.
현장에서 잡혀 버린 덕분에 발뺌할 수도 없었다.
녀석은 금은방을 털었고, 그 과정에 한 사람을 살해했으며 다섯 명에게 경상을 입혔고, 사유재산을 점유ㆍ파괴했다.
녀석의 죄는 그토록 확실하고 명확했다.
불확실한 건 이 녀석의 뒤에 숨겨진 이야기다.
“어제 잠은 잘 잤어?”
정호산의 질문에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날 잡아 놓고, 놀리러 온 것도 아니고.”
“보호자를 찾았는데, 널 위해서 여기 와 줄 사람이 없더라.”
정호산의 말에 김현기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데 와 줄 부모 같은 게 있었으면, 그런 일을 했을 리 없잖아요.”
“왜 그랬는데.”
정호산의 말에 김현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정호산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이렇게 입을 닫아도 달라질 건 하나도 없어.”
“입을 열어도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 겠죠. 안 그래요? 어차피 각성자 전용 감방에 날 처넣을 거면서. 그리고 평생 나오지도 못할 거고, 나느, 나느은 내 인생은 이미 다 끝났잖아요!”
김현기는 정호산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같잖은 동정심 집어치우고 여기에서 꺼져요! 얼굴만 보고 있어도 역겨우니까! 녀석의 말에 정호산은 무어라 더 말을 붙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결국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구치소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얼굴에 정호산의 발이 멈췄다.
“신입 티는 다 내네. 여기까지 오고.”
최준희의 말에 정호산은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신입들은 다들 여기 한 번씩은 오거든요. 자기가 잡아넣은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꼭 얼굴을 보고 한 번쯤은 이렇게 묻는 거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랬죠?”
꼭 정호산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처럼 정확한 추측에 정호산은 두 눈만 끔뻑였다.
“저를 혹시 보고 계셨던 건 아니죠?”
“하하, 아니에요. 그냥, 나도 그랬으니까.”
최준희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우리 몫은 끝났다는 소리예요.”
“범인을 잡았으니 말입니까?”
“예, 이다음은 이제 판사님과 검사님, 변호사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지. 우리는 나쁜 짓을 저지른 놈을 잡는다, 거기까지예요.”
“하지만…….”
“증거가 부족한 것도 아니야, 증인도 확실해. 이런 일에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데요?”
현장에서 잡힌 덕분에 더할 것도 없었다. 증거는 현장에 모두 있었고, 그 수집한 증거를 넘기는 것으로 끝이라고.
“있잖아요, 신입 씨.”
팔짱을 낀 채로 삐딱하게 선 최준희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범인을 이해하려고 들면 안 돼요.”
“……안 된다고요?”
“예. 우리에게 그건 허락되지 않은 일이니까. 그래,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었구나. 이럴 만해서 이랬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돼 봤자, 우리 손해라니까.”
“우리 손해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그렇다고 놔줄 거 아니잖아요. 이해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도 우리는 그 사람들 잡아야 하잖아요.”
최준희는 툭툭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머리로 그 사람들을 이해하든 말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들 잡아 처넣는 것밖에 없는데. 그런 주제에 그 사람들을 이해하니, 뭐니 말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요.”
최준희도 이 일을 하면서 별별 사연들을 다 봤다. 저번에 한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저 애도 딱한 사연이 있겠지. 척 봐도 부모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 보이는 애가 뭣 때문에 금은방을 털었겠어. 기껏해야 생활고겠죠. 그런데? 그렇다고 놔줘요? 딱한 사연이 있다고?”
최준희가 말했다.
“그건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잖아요, 신입 씨. 딱하다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놔준다는 선택지 같은 건, 우리한테 없다고.”
놓아준 적, 있었다. 정호산에게는. 비록 그 대상이 하나뿐인 친구였지만, 그런 ‘잘못된’ 선택을 정호산은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선택을 나중에 가서는 후회했다.
“그렇다고 해도 말입니다. 전 들어야겠습니다. 왜 그런 짓을 하게 됐는지.”
“왜? 당신만 상처받고 끝날 건데.”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최소한의 책임을 지고 싶어요.”
“책임지라고? 무슨 책임…….”
“어쨌거나 그 애를 잡아넣은 건 저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선택을 하게 됐다는 걸 옹호해 줄 수는 없어도, 그래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까지는 들어주고 싶어서요.”
정호산의 말에 최준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세상에. 그런 걸 책임지는 경찰이 어디에 있어?”
“하하.”
정호산의 미소를 본 최준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마 없는 귀중한 쉬는 시간을 쪼개 자신이 잡아넣은 범죄자나 신경 쓰겠다는 멍청이에, 최준희가 해 줄 말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래 봤자 상처를 받는 건 당신이 될 거래도 그러네.”
* * *
그 모든 이야기를 전달받은 나는 왠지 뜨거워진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이거 참으로…….”
정호산답다고나 할까.
하긴, 정호산이 저곳에 간 것은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했지. 지금 이 웃기지도 않은 촌극도 그 때문일 거다.
정호산은 이제 범죄자에 나를 겹쳐 볼 테니까.
‘바보 같은 놈.’
너무나도 정직하고 곧은 놈이라, 한 번 자기가 결심한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려고 할 놈이다.
나를 이해하겠다고 진창에 빠졌으니, 진심으로 이 진창을 이해하려고 들겠지.
심연을 바라본 사람은 심연 속 괴물이 된다는 말이 있지.
나는 그 심연에 빠져 결국 같은 괴물이 되어 버렸다지만, 너는, 너는 어떨까.
이 더러운 세상에 온 걸 환영한다는 말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말이지…….
‘어쩌면 세상에는 정호산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걸지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 저 밑바닥 사람들을 이해해 주려고 하지 않았으니까요.’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설록진은 그 밑바닥으로 사람들을 밀어 넣을 뿐이었고, 나는 방조했다.
밑바닥에서 어떻게든 올라오려는 사람들을 다시 밀어 떨어트리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주로 ‘주제를 알라’는 말을 썼지.
그리고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며 때가 묻었다며 매를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도채희가 그러했다.
나중에는 그 심연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거라는 걸 깨닫고 위를 올려다봤지만, 그때에는 모든 게 늦었었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그 지옥에서 그 지옥에 빠진 이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
이해심을 가진 이들은, 그리고 그들을 지옥에서 끌어 올릴 능력을 갖춘 이들은 지옥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길이 더럽게 어려울 거라는 거다.
‘정말 정호산은 빌어먹을 친구 놈입니다.’
━신경 끄겠다고 하지 않았냐?
‘저 때문에 이 진창으로 떨어진 놈을 어떻게 외면합니까?’
내 최우선 목표가 벨츠머츠 활동이 된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때문에 그 녀석이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꼴을 방치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남주현 기자에게 연락을 해 봐야겠는데요.’
━그쪽에 뭘 맡겨 놨는지 잊은 건 아니지?
‘음…….’
잊을 순 없지.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는걸요.’
━그 기자도 동의할지는 모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