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화
#63 각범부 2팀 (4)
정신을 차리니 이미 최준희의 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안전벨트 단단히 매요.”
“순찰용 차가 따로 있지 않습니까?”
“아, 그 고물? 그거 타고 다니면은 시간에 못 맞춰서요.”
그렇게 말한 최준희는 글러브 박스를 툭 쳐서 그 안에서 휴대용 사이렌을 꺼냈다.
‘휴대용’ ‘사이렌’이라니. 그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정호산이 눈을 깜빡이는 사이, 씩 미소를 지은 최준희가 사이렌을 자동차 지붕에 떡하니 붙였다.
“자, 이제 가 보자고.”
최준희가 액셀을 밟는 순간, 사이렌에서 고막이 찢어져라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순간 고막이 먹먹해질 정도의 소리에 정호산이 입을 뻐끔거리자 최준희가 말했다.
“이래야, 각범부 차라는 걸 딱하고 알거든요!”
거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최준희의 목소리에 정호산은 멍한 정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각범부 소속 차를 타는 게 더 나을 거라든가, 굳이 이 방법이어야만 하냐는 둥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이어진 최준희의 거친 운전에 몸이 차랑 딱 붙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이렌 소리에, 앞에 늘어선 자동차들은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최준희의 앞에는 깔끔하게 비워진 도로가 나타났다.
“다, 다들 협조를 잘하네요.”
“아, 그건 아니고 앞길 막는 차 있으면 내가 그대로 밀어 버릴 거라서.”
“그, 그래도 되는 겁니까?”
최준희가 씩 미소를 지었다.
“예, 출동 중에 파손하는 차량은 책임지지 않아도 돼서요. 이 직업의 얼마 안 되는 좋은 점이랄까?”
하하! 그렇게 웃은 최준희는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부우웅, 떴다. 분명, 지금 차가 떴다. 정호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동안 게이트를 공략해 보며 별별 일을 다 겪은 정호산이었지만, 한낮 시내에서 총알처럼 발사되는 자동차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회전할 때마다, 부서질 것처럼 흔들리는 차체도, 원심력에 이리저리 쏠리는 몸도, 쉴 새 없이 바뀌는 방향도.
최준희가 실실 웃으며 액셀을 밟는 동안 정호산은 차 창문 위에 붙은 손잡이를 굳게 잡은 채 제발 이 차에서 무사히 내릴 수 있기만을 기도했다.
이러다가 원심력에 그대로 차가 찢겨 나가는 건 아닐까. 아니, 그 전에 창문이 깨져서 내 몸이 바깥으로 쓸려 나가는 게 빠르지 않을까. 정호산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폭력에 가까운 운전을 견뎌 냈다.
겨우 현장에 도착했을 때, 정호산은 너덜거리는 상태로 차에서 내려섰다. 문을 잡아 여는 정호산의 손이 덜덜 떨렸다.
주름 하나 가지 않게 잘 다려 입었던 정복 셔츠는 왼쪽, 오른쪽으로 쓸려 가는 사이 단추가 터져 나가 가슴팍이 훤히 드러났다. 열심히 빗어 올렸던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앞머리가 슬쩍 내려와 있었다. 눈앞을 가리는 앞머리를 쓸어 올린 정호산이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10여 분 자동차를 탄 것만으로 이런 꼴이 될 수 있다니.
막상 운전석에 앉아 있었던 최준희의 모습은 멀쩡하다 못해 아까보다 훨씬 혈색이 좋았다.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 버린 듯 상쾌해진 얼굴의 최준희가 호출기를 잡았다.
“다들 어딨어?”
무전기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듯, 호출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나 신입분 데리고 왔는데. 어, 곧 합류해.”
최준희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정호산의 등을 툭 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호산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제야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각범부 소속 팀원들이 도착해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붉은빛 통제라인이 세워지고, 그 안에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 몇이 보였다. 이미 통제된 도로 너머, 차를 급하게 돌리는 시민들도 눈에 들어왔다.
최준희가 한 편의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현장에 순찰 중이던 친구들이 바로 왔는데, 범인을 놓쳤다네. 저 안에 있대요. 인질이랑 같이.”
편의점을 가리킨 최준희가 얼굴을 구겼다. 저 멀리에서 최준희를 발견한 듯, 성큼성큼 한 남자가 최준희에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응, 상황 읊어 봐.”
남자는 빠르게 상황을 브리핑했다.
“범인은 20분 전쯤에 주변 금은방을 털었습니다. 주인이 각성자 전용 아티팩트를 구비해 두고 있었다는 것까지는 체크하지 못한 모양이에요. 주인에게서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한 범인은 당황해서 능력을 썼고…….”
“능력이 뭐라던데.”
“빙결계입니다.”
최준희가 혀를 차는 사이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금은방 주인은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범인이 도주하는 동안 근처에 있던 시민 몇도 동상을 입고 현재 병원으로 옮겨졌고요.”
“그리고 우리 범인은?”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어요. 근처에서 순찰을 돌던 저희 팀원이 곧바로 신고를 받고 이쪽으로 도착했거든요. 저희 팀원을 보자마자 겁에 질려서는 저 편의점에 틀어박힌 모양입니다.”
“편의점에 있는 사람은?”
“경훈이가 봤는데, 아직 살아는 있답니다.”
최준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단 인질이 살아 있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궁지에 몰린 범인이 무슨 짓을 할지는…….
“일단 저쪽으로 가 보자고요.”
편의점 앞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다들 최준희를 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경훈아. 안쪽 상황이 어떠냐.”
최준희 팀장의 말에 투시 능력자인 박경훈의 동공이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인질은 총 세 명입니다. 범인은 카운터 쪽에 있고요, 인질들은 카운터 뒤에 있는 방에 있어요. 범인을 제치지 않고서는 인질들에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들 멀쩡하지?”
“아직은요.”
“후우.”
최준희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가 제일 곤란하단 말이지. 인질극이요.”
정호산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린 최준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은 범인이랑 얘기를 좀 해 봐야겠네요.”
촌스럽게 메가폰을 들어 올릴 필요도 없었다. 최준희가 서성거리고 있는 여자 하나를 불렀다.
“거기, 그, 지원팀 누구더라?”
“3조 지원팀 송민아입니다.”
송민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최준희가 말했다.
“안쪽으로 라인 좀 놔 줘요. 범인이랑 얘기 좀 하게.”
“네!”
여자는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여자의 손짓에 작은 새 한 쌍이 만들어졌다. 새 하나는 여자의 손에, 다른 한쪽은 범인이 있는 편의점 안으로 날아들었다.
“연결됐습니다.”
[……뭐, 뭔데요?]
새의 입을 타고 목소리가 범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껏해야 변성기는 지났을까 싶은 어린 목소리에 정호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최준희는 전혀 흔들림 없이 말을 이었다.
“이미 상황은 알 거야. 주변은 포위되었고 빠져나갈 길은 없어. 인질을 해치면 좋지 못한 상황이 되는 건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이, 이미 난 사람을 죽였어. 사람을 죽인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아!]
“하나든, 넷이든 다를 게 없다? 어쩌지. 형량은 꽤 많이 다를 텐데. 지금에라도 순순히 자수한다면…….”
[아니, 자수 같은 거 안 해! 가, 감옥에 가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을 거야!]
최준희의 얼굴이 구겨졌다.
소리 없이 욕을 내뱉은 그녀가 주변을 향해 손짓했다. 최준희의 손짓에 숨을 죽인 팀원들이 편의점 안으로 조심스레 접근했다.
문제는…….
[돼, 됐어. 다, 다 끝났잖아. 차라리…….]
범인의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불안했다는 거였다.
“아니, 안 돼! 잠깐 기다려 봐!”
최준희가 무어라 입을 열기 전, 안쪽에서부터 마력이 거칠게 요동쳤다.
정호산은 다리에 마력을 모았다. 진입하라는 명령은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세상이 느려졌다.
육체 강화계. 한계까지 자신의 몸을 강화시킨 정호산에게 이 세상은 느리게 보였다. 정호산은 마력을 모은 발로 땅을 박찼다.
천천히 안으로 진입하고 있는 팀원들을 지나, 순식간에 정호산의 몸은 편의점 벽에 닿았다. 벽을 그대로 뚫고 안쪽으로 날아간 정호산은 마력을 폭발시키고 있는 범인을 확인했다.
파랗게 물든 범인의 동공을 확인하는 사이, 딸깍, 시간이 흘렀다. 범인은 자신이 끌어올린 마력을 황급히 이 불청객에게 쏟아 냈다.
“큭!”
온몸에 차가운 마력이 와 닿았다. 공중에 뭉쳐진 마력은 곧바로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정호산에게 날아들었다. 정호산은 두 팔로 얼굴을 감싸 보호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가시는 단단한 정호산의 팔뚝을 뚫지는 못하고 허공에서 부서졌다. 부서져 흩날리는 얼음 조각을 본 범인의 얼굴이 흐려졌다.
정호산의 몸에 받힌 범인은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헉, 허억.”
정호산은 범인을 살폈다. 목소리에서 느껴졌듯이, 범인은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어린 얼굴이었다. 수염 하나 나지 않은 보송한 턱을 보며 정호산은 얼굴을 구겼다.
“이런 애가…….”
어째서, 그런 짓을?
헌터 아카데미에 들어가 능력을 갈고닦아야 할 시기에 살인마가 되다니.
“괘, 괜찮습니까?”
뒤늦게 안으로 각범부의 팀원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호산은 자신에게 뻗어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시선에 고개를 돌린 정호산이 그제야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화가 난 얼굴의 최준희가 정호산을 노려보고 있었다.
“참나! 말도 없이 안으로 그렇게 진입하면 어떡합니까?”
“죄송합니다. 상황이 급해 보여서…….”
“후.”
짧게 숨을 내뱉은 최준희가 고개를 붕붕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우리 신입분 아니었다면 일이 커졌을 뻔했는데, 뭐. 일단 인질부터 내보내죠?”
최준희의 손짓에 그제야 바짝 굳어 있던 각범부 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흐흑, 감사합니다.”
“사, 살았다!”
범인에게 갇혀 있었던 편의점 직원과 손님이 바깥으로 나가며 눈물을 터트렸다. 정호산은 그 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을 보니, 자신에게 당해 기절한 아이가 저지른 일이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이 아이, 아니, 그러니까 범인은…….”
최준희가 허리춤에 매고 있던 아티팩트로 범인의 손과 발을 구속하며 말했다.
“일단은 각범부 구치소로 옮겨야죠. 임시 구치소요. 진짜 구치소는 저번에 파괴되었거든요. 그래도 이런 놈들을 구속하기에는 충분하지만요.”
“구치소로 옮겨진 다음에는…….”
“재판을 통해 형량이 결정된 다음에 합당한 죗값을 치를 겁니다. 알다시피 각성자 범죄에 대한 대가는 늘 가혹하죠.”
아마 이 어린애가 다시 세상에 나올 일은 없을 거다. 최준희도 정호산도 이 아이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이 어린 애가…….”
“이 정도면 그리 어린 것도 아닌데, 뭐. 믿어요, 이 일 하다 보면 진짜 별별 놈들을 다 본다니까.”
최준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얘 좀 실어라.”
최준희의 말에 각범부 팀원 둘이 달려와 범인을 데리고 갔다. 범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정호산을 바라본 최준희가 말했다.
“우리에게 그런 동정심이나 이해심은 필요 없어요. 나쁜 짓을 저지른 놈을 잡는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니까.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요.”
“예.”
“각성자는 몇 살이든, 위험해요. 저 녀석이 열여섯이 아니라, 열 살이었더라도 똑같은 짓을 저지를 수 있다고요. 그러니까 그 알량한 죄책감일랑 던져 버려요. 각범부에서는 제일 쓸모없는 게 그런 거니까.”
각성자는 겉보기에는 전혀 그 위험성을 가늠할 수 없다.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어린애가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짓이겨 죽일 수도 있었고,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노인이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머리를 터트려 죽일 수도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니 최준희는 단호할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 때문에 오늘 죄 없는 사람이 죽었어요. 그걸 잊지 말자고요.”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