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35화 (235/352)

제235화

#63 각범부 2팀 (3)

카페에 도착한 세 사람은 차례대로 주문을 마쳤다.

“그쪽 커피는 내가 살게요.”

“괜찮은데…….”

“그래도 선배 좋다는 게 뭐야.”

“겨우 2천 원짜리 구내 카페 쏘면서 선배는 무슨.”

황호진은 최준희를 보며 혀를 찼다.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던 김용원과는 달리 두 사람은 친해 보였다. 정호산은 두 사람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1팀에 문제가 많았다는 게 무슨 소립니까?”

정호산의 말에 두 사람의 눈빛이 모두 날카로워졌다. 여전히 실실 웃는 얼굴이긴 했지만, 눈빛은 달라졌다. 서로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은 다시 정호산을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건 최준희였다.

“하나만 먼저 묻고요. 정호산 씨는 왜 각범부에 들어오기로 했어요?”

“왜 가만히 있어도 성공할 길을 버리고 이 지옥으로 걸어 들어왔냐는 말이에요.”

다행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준비해 두었다.

‘면접을 볼 때도 그렇고, 각범부에 들어가게 되면 다들 정호산 씨에게 물을 거예요. 대체 왜 가만히만 있어도 성공할 길을 두고 이 가시밭길로 걸어 들어왔냐고 말이죠. 그러니 그에 대한 답을 확실히 준비하는 게 좋을 거예요.’

도채희의 충고에 정호산은 나름의 대답을 준비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처음부터 각범부로 들어오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제가 이런 결심을 한 건, 제 친구가 범죄자가 됐단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죠.”

그 말에 두 사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까 말했던 그 정호산 씨가 참고인이었다던 사건이 혹시…….”

“불법 게이트 사건이요. 혹시 기억하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아아, 그 사건.”

대대적으로 공개 수배까지 된 일이니, 각범부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심지어 공개 수배를 했음에도 아직 그 범인이 잡히지도 않은 사건이었으니까.

“그 친구를 찾으려고 들어온 거예요?”

“그것도 그렇고, 대체 그 친구가 어떤 사연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됐는지도 궁금해서요.”

어차피 숨겨 봐야 캐면 바로 나올 사건, 정호산은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기로 했다.

“……해서 그 친구에 대한 행방도 찾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싶어서 이 길로 오게 된 거죠.”

“그 친구를 많이 아꼈나 보네.”

황호진의 말에 정호산은 입을 꾹 닫고 고개만 끄덕였다. 테이블 아래 두 손을 모은 정호산은 저도 모르게 강이신이 남기고 간 붉은색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최준희가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적어도 그 친구에 대한 걸 알아내기 전까진 그만두지 않겠네.”

“그만두는 사람이 많습니까?”

의자에 등을 붙인 황호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말도 못 하게.”

대형길드에 지명을 받지 못한 각성자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았다. 눈을 낮춰 중소형 길드에라도 들어가든가, 해외 용병으로 가든가.

정부 소속의 각성자로 일하는 건 그 나머지 선택 중에서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실제로 각범부에 소속된 각성자들은 그리 나쁘지 않은 복지 혜택을 받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업무 강도다.

“길드와는 차원이 다르거든요, 여기 일은.”

“이렇게 한가하게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일 수 있는 건 보름에 한 두어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니까.”

“음,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신입은 참 운이 좋단 말이에요. 이 고급 인재들이 딱 붙어서 궁금한 걸 대답해 줄 수 있잖아. 그래, 궁금한 게 있음 다 물어봐요. 내가 딱,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거라면 다 대답해 준다.”

최준희의 말에 정호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거라면 아까부터 꼭 대답을 듣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1팀에 문제가 많았다고 하셨잖습니까? 어떤 문제였습니까?”

정호산의 말에 최준희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궁금한 게 겨우 그거예요? 뭐, 일은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연차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송천길 팀장님 비위는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그런 걸 물어볼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요.”

정호산의 말에 최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못 말해 줄 것도 없죠. 어차피 이제는 다 망한 팀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톡톡 테이블을 두드린 최준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1팀을 딱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딱 이거였죠. 도채희 원맨팀.”

“도채희…… 원맨팀이요?”

“예, 박철완 부장이 진짜 지독하게 밀어줬거든요. 두 사람이 예전부터 아는 사이라는 건 알지만, 진짜 노골적일 정도였다니까요. 애초부터 20대 중반에 각범부 1팀 팀장이 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2팀의 팀장인 송천길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이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승진이긴 했다. 게다가 김용원도 말하지 않았는가. 각범부의 얼굴은 1팀이었다고.

경력이 십수 년인 사람을 제치고 겨우 20대 중반의 초짜가 1팀의 팀장이 된 상황은 확실히 정상적이지 않았다.

“1팀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멋진 사건들을 쓸어 가는 동안 2팀은 뭘 한 줄 알아요? 그냥 좀도둑 잡고 있었어요. 좀도둑, 살인마, 사기꾼.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잡아도 언론에서 기사 한 줄 나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도채희 경위가 가지고 간 사건은? 그냥 맨날 뉴스에 나오는 거야.”

확실히 그랬다. 강이신이 엮였던 사건만 해도 도채희 경위가 담당이었고, 그 뒤에 있었던 봄날 보육원 사건도, 그 뒤로 이어진 벨츠머츠 사건도 모두 1팀의 몫이었으니.

“실력이라도 있으면 말을 안 해. 그런 주제에 맨날 실패하잖아요. 사건 종결률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하하, 30%가 될까 말까라고.”

최준희는 이를 갈았다.

“그래, 연줄로 팀장이 됐든, 뭐든 상관 안 한다 이거예요. 하지만 그쪽 때문에 우리 팀까지 무능하다는 욕을 같이 먹는 건 참을 수가 없다고요.”

언론에서 각범부는 늘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두들겨 맞았다. 도채희가 맡은 사건들이 죄다 터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도채희라는 개인에 있지는 않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채희라는 사람의 무능으로 비치기 딱 좋았다.

“우리가 도채희 경위를 뭐라고 부른 줄 알아요?”

최준희는 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공주님.”

“그건…….”

“우리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요?”

정호산은 최준희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정호산은 도채희라는 사람을 안다. 그녀가 얼마나 고뇌하고 괴로워하는지도.

하지만 이들의 말 또한 일리가 있었다. 도채희가 박철완 부장이 깔아 놓은 레드카펫을 걸으며, 다른 이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성공 가도를 밟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물론 가장 잘못한 사람을 꼽으라면 박철완 부장이겠죠. 어린 여자애 하나 데려다가 얼굴마담으로 세워 놓고 예뻐라만 했으니까. 그래도 말이야. 내 눈에는 도채희 경위도 똑같은 사람으로밖에는 안 보이거든요.”

“……으음.”

정호산은 입을 닫았다. 확실히 박철완 부장의 아래에 있던 도채희는 독선적이기 짝이 없었으니까. 상황이, 환경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겠지.

“솔직히 박철완 부장이 언론에 도채희 경위를 밀어 넣었던 것도 이해가 가긴 해요. 좀 예쁘장한 편이잖아요. 확실히 그림이 되긴 했죠.”

“으음.”

정호산은 그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도채희의 뒤에서 그녀의 얼굴 평가나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 떨떠름한 반응에 최준희가 투덜거렸다.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네.”

“맞지, 나쁜 사람.”

황호진의 말에 최준희가 얼굴을 붉히며 투덜거렸다.

“나만 이런 얘기한 거 아니잖아. 너도 그랬고, 어?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이 말했는데.”

“어디 가서 떳떳하게 할 얘기는 아니잖아. 특히 오늘 첫 출근한 신입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니라고.”

“그렇긴 해.”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보며 쓴 미소를 지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입 홀짝인 최준희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도채희 경위가 팀장직에서 물러났다는, 아니, 쫓겨났다는 얘기 듣고 깜짝 놀랐잖아요. 평생 두 사람은 같이 갈 줄 알았는데. 아무리 도채희 경위가 사고를 쳤다곤 해도 이렇게 쫓아낼 정돈가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던 두 사람은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는 정호산의 눈치를 봤다. 신이 나서 말을 늘어놓던 건 언제고, 이제 와서 정호산의 반응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첫 만남에 누구 뒷말하는 거 되게 별로란 건 아는데, 그래도 음, 내가 좀 쌓인 게 많아서! 그리고 어쩌면 도채희 경위가 여기로 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거든요.”

“여기로요?”

“뭐, 더 갈 팀도 없잖아요? 1팀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는 그쪽에 있을 것 같다만, 그다음에는 도채희 경위도 소속을 옮겨야죠. 각범부 아래 팀이라고 해 봤자 남은 건 여기뿐이니까.”

그토록 싫어하던 사람과 한솥밥을 먹게 된다는 사실이 영 마뜩잖은지 최준희는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황호진도 불편한 기색인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보다는 그쪽이 훨씬 불편할 것 같긴 한데.”

“그렇게 욕해 놓고 또 얼굴 볼 생각하니까 아득하다, 그거지?”

“아니라는 말은 못 하겠네.”

그렇게 말한 최준희가 작게 중얼거렸다.

“근데 또 생각해 보면, 그쪽이랑 친하게 지낼 이유도 없잖아? 어차피 김용원 씨가 잘 챙길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 사람이라면 도채희 경위님! 이 누추한 곳까지는 어쩐 일로! 앞으로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하면서 잘 챙길 것 같다고.”

두 사람은 또 한 번 정호산을 내버려 두고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정호산은 가만히 테이블 끝만 바라보았다.

도채희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박철완 부장의 뒤에 있을 진짜 악당을 찾는 것부터, 각범부 내부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는 것까지. 도채희라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상황이 아닌가.

물론 도채희는 자신이 다 겪어야 할 일이라고 말했지만…….

‘끄응.’

정호산은 일단은 이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도채희 또한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그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그 전에 자신이 나서는 건 옳지 않았다.

정호산이 생각에 빠진 사이, 최준희의 말이 이어졌다.

“어쨌거나 그 일 이후로 1팀 일도 우리한테 넘어왔어요. 송천길 팀장님이 바쁜 건 그 때문이고……. 벨츠머츠 사건까지 우리가 맡게 됐거든요.”

벨츠머츠, 그 말에 정호산이 눈을 깜빡였다.

“벨츠머츠 사건을 2팀이 맡게 됐다고요?”

“1팀이 맡던 사건이 전부 우리한테 넘어왔으니까요. 덕분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드디어 우리도 제법 그럴싸한 사건을 맡게 됐잖아.”

“아직까지는 뭐, 맨날 똑같은 일만 하는 것 같지만 말이야.”

“오늘처럼 한가하기만 하면 이 일도 꽤 할 만할 텐데.”

“그, 그 말을 해서는 안 돼!”

“아차!”

황호진이 입을 가리는 동시에 최준희의 허리춤에 걸린 호출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황호진을 향해 눈을 흘긴 최준희가 호출기를 확인했다.

“나이스!”

“나이스는 무슨! 왜 입방정을 떤 건 넌데, 내가 가야 하냔 말이야.”

최준희의 말대로 황호진의 호출기는 잠잠했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에 출동하는 건 최준희뿐인 모양이었다.

“잘 다녀와.”

황호진은 최준희를 향해 손만 흔들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최준희가 정호산을 향해 말했다.

“같이 가죠?”

“예?”

하지만 첫날인데? 아직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했는데? 황호진은 정호산의 등을 떠밀며 미소를 지었다.

“1조만 호출인 걸 보니, 별로 어려운 사건도 아닌 것 같은데 한 번 가 봐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직접 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잖아요?”

정호산은 입을 딱 벌렸다.

그렇게 정호산은 예정에도 없는 출동에 끌려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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