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화
#63 각범부 2팀 (2)
“여기는 체력 단련실이고요, 여기는 시뮬레이션실입니다. 각종 상황을 설정해서 미리 훈련할 수 있는 건데, 아, 정호산 씨라면 익숙하시겠네요. 헌터 아카데미를 나오셨을 테니까……. 헌터 아카데미에도 있는 바로 그겁니다!”
최근 새로 지은 각범부의 시설은 바벨 아카데미를 졸업한 정호산의 눈에도 제법 괜찮아 보일 정도로 최신식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막상 시설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 사람이 없는 겁니까?”
“으음, 아무래도 이런 시설은 시간이 남을 때 이용하게 되는데, 지금은 사건을 해결할 팀원들도 부족해서요.”
좋은 시설을 지어 놔 봤자, 시설을 이용할 만큼 한가한 사람이 없으니 무용지물이었다.
“3팀과 4팀도 그렇게 된 다음에는 다들 난리가 나서…….”
기존에도 각범부는 강도 높은 근무 환경으로 유명했다. 범죄자에 수에 비해 각범부에서 일하는 이의 수는 턱없이 적었으니까.
빌런 탈출 사건으로 가뜩이나 적은 각범부 사람들의 수가 반 토막이 났으니, 한가롭게 체력단련이나 할 시간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휴일도 반납하고 여기에서 숙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 숙직실을 보여드릴게요.”
생활감이 전혀 없었던 다른 시설과 달리 숙직실에는 확실히 사람 냄새가 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 냄새가 너무 나서 문제였다.
대여섯 개의 침대가 붙어 있는 방은 아침인데도 어두컴컴했다. 짙은 암막 커튼까지 쳐져 있는 숙직실 안은 척 보기에도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를 쓱쓱 발로 민 김용원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여기가 이렇게 더럽지는 않은데, 어젯밤에 그 긴급 출동이 있었거든요…….”
“뭐야.”
김용원의 목소리에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남자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삐죽 솟은 붉은빛 머리카락을 확인한 김용원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재빨리 외쳤다.
“죄, 죄송합니다! 편히 쉬세요.”
황급히 말을 내뱉은 김용원은 정호산의 손을 이끌고 바깥으로 나왔다.
“저분은 누굽니까?”
“효창립 경위예요. 까칠하신 분이라 조심해야 해요.”
워낙 어두운 데다가 효창립이 고개를 들자마자 황급히 나온 터라 제대로 얼굴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확실히 목소리가 까칠하긴 했다.
김용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럴 만도 하죠, 저분은 3팀 소속이었거든요.”
“3팀이라면, 빌런 탈출 사건으로 팀원 대부분이 순직했다던…….”
“예, 효창립 경위님은 마침 쉬는 날이라 그 화를 피하셨다나 봐요.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동고동락하던 팀원을 모두 잃었으니까요. 그 일 이후로 퇴근도 마다하고, 여기에서 사시는 모양이에요.”
“아아.”
정호산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이곳 사람들이랑은 섞일 생각을 안 하시더라고요. 저처럼 외톨이랄까. 하하.”
김용원의 말에 정호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톨이? 그 시선에 대한 답을 하듯, 김용원이 입을 열었다.
“아, 원래 1팀과 2팀은 사이가 별로 안 좋은 편이었거든요.”
“같은 각범부인데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요?”
“음, 예. 아무래도 1팀과 2팀은 맡은 역할이 다른 만큼, 어, 그러니까 사이가 그만큼 좋지 않았다고 할까요. 1팀은 주로 음, 그러니까 언론의 관심을 받는 사건을 맡았고 2팀은 현장 출동 위주였으니까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에 대한 범인을 추적하고 수사를 하는 건 1팀.
그리고 단순 신고에 대한 출동을 담당하는 게 2팀이었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각범부의 얼굴이라고 하면은 저희 1팀이었으니까요. 2팀의 입장에서는 궂은일은 자기들이 하고 스포트라이트는 저희만 받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이제는 같은 팀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김용원과 2팀의 사이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김용원을 바라보는 2팀 조장들의 표정은 싸늘했었지.
짧게 침을 삼킨 정호산이 김용원을 향해 물었다.
“1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원래 1팀의 팀장은 도채희였다. 하지만 그녀가 팀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1팀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말을 전해 들은 일이 없었다.
“지금은 그냥 이름만 남은 부서가 돼 버렸어요. 기존에 수사하던 것을 정리해서 2팀에 넘기라는 게 제가 마지막으로 받은 명령이었고요. 아마 지금 1팀에 남은 멤버들도 같은 명령을 받았을 겁니다. 남은 일이 정리되면 2팀으로 오게 되겠죠.”
“모두 2팀으로 들어온단 말입니까?”
“예, 사실상 기존 각범부의 팀들은 이미 2팀으로 모두 통합된 거나 다름없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팀장 중에서 남은 사람이 2팀의 송천길 팀장뿐이니까요.”
도채희는 ‘팀장님’이었지만, 송천길은 ‘팀장’이었다. 김용원의 말에서 미묘한 적대감을 읽은 정호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송천길 팀장님은 어떤 사람입니까?”
“으음, 글쎄요. 저도 2팀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잘은 모르겠지만…….”
눈을 굴린 김용원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게 말해서는 사건 해결에 열정적이고, 나쁘게 말하면은 사건 해결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상황이 이러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마는…….”
실적에 미친 사람이란 말인가.
하지만 김용원의 평가만으로는 무언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1팀과 3팀, 4팀이 차례대로 무너진 가운데에 2팀을 맡은 사람으로서 어쩌면 최선의 길을 찾은 걸지도 모르니까.
“그나저나 팀장이 물러났다고 바로 팀을 해체하다니 그래도 되는 겁니까?”
사회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정호산에게도 지금 이 상황은 그리 납득이 되지 않았다.
팀장이 쫓겨난다고 팀이 사라진다고? 그 밑에 있었던 사람들이 수사하던 건 다 어떻게 하고? 바로 팀을 없애도 되는 것일까.
“그러니까요! 도채희 경위님이 뭐 그리 큰 잘못을 하셨다고 이렇게 팀을 없애서 경위님이 돌아올 곳까지 없애냐고요! 팀장이던 사람을, 그냥 일반 팀원으로 끌어내리는 것도 모자라서…….”
‘음.’
김용원의 격한 반응에 정호산은 눈을 깜빡였다. 정호산이 말한 건 도채희와는 관계없이 팀을 없애는 판단이 이상하다는 거였지만, 일단은 김용원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기로 했다.
“도채희 경위님을 이런 식으로 쫓아내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김용원이 도채희를 엄청나게 존경한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다.
갑자기 폭발했던 것이 뒤늦게 부끄러워진 건지 볼을 붉힌 김용원이 정호산을 향해 말했다.
“이제 점심시간이네요. 식당으로 안내해드릴게요.”
붉은개 길드와 비교해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각범부 내의 구내식당은 수준이 높았다. 길드와는 달리 다들 죽겠다는 얼굴로 죽상이 되어 식사하고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었다.
“먹고 싶은 만큼 맘껏 떠서 드시면 돼요. 다 공짜거든요. 외근이 많아서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날이 얼마 없다는 게 흠이긴 한데…….”
그렇게 김용원이 말을 이을 때였다.
“어, 신입분! 여기에서 같이 먹죠?”
저 멀리 있는 테이블에서 누군가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 목소리에 김용원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아까 2팀에서 만났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꽁지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는 정호산을 향해 계속해서 손짓했다. 도저히 모르는 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그 손짓에, 김용원은 마지못해 정호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 일단은 저쪽으로 가죠.”
식판을 채운 김용원과 정호산은 2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정호산은 자신을 부른 꽁지머리 여자의 앞에 앉았다.
“이제야 얼굴을 좀 보고 인사를 하겠네.”
그렇게 말을 던진 꽁지머리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최준희요, 2팀 1조 조장을 맡고 있고요. 올해 28살. 내가 알기로 정호산 씨가 나보다 몇 살은 어리던데…….”
“촌스럽게 나이로 찍어 누르게?”
최준희의 말에 퉁을 놓은 건,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였다. 까만색 피어싱을 귀에 다닥다닥 달아 놓고, 열 손가락에는 빠짐없이 반지를 채운 남자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 봤자 4성급인 준희 씨랑은 차원이 다르잖아, 이분은.”
“어이없네? 그러는 너는 나랑 뭐가 퍽 다를 줄 알고?”
최준희의 말을 무시한 황호진은 정호산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나는 황호진입니다. 2조 조장을 맡고 있죠.”
아까부터 정호산을 자신의 팀에 넣겠다고 아웅다웅했던 두 사람은 정호산을 앞에 둔 지금도 티격태격했다. 정호산은 그 인사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예,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해야죠. 대단하신 6성급 헌터이신데.”
그렇게 중얼거린 최준희는 슬쩍 정호산의 옆에 앉아 있는 김용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호산을 바라보던 시선과는 달리 김용원을 향한 그녀의 시선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오후부터는 우리가 신입분 교육을 좀 도와드릴까 하는데?”
“예? 하지만 신입 교육은 제 일이라고…….”
최준희의 말에 김용원이 반항하듯 입을 열었지만, 최준희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보다는 더 급한 일이 있지 않아요? 오준호 사건, 보고서가 아직 안 들어왔던데.”
“그건 내일까지…….”
“내일? 그러다가 범인 다 도망가겠네. 여기서는 그렇게 설렁설렁 일하면 안 된다니까요?”
최준희의 말에 김용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늘까지 줘요. 그래야, 그 빌어먹을 놈을 우리가 잡으러 나갈 거 아니야.”
그 말에 김용원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그래도 팀장님께서 저한테 맡긴 일인데…….”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지. 지금 신입분 교육이 더 중요할까요, 아니면 실제 피해자가 있는 그 사건 보고서가 더 중요할까요?”
김용원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정호산의 시선에 최준희가 가볍게 말을 던졌다.
“그 보고서가 진짜 급해서 그래요. 여기 있는 김용원 씨가 그 녀석 행동반경을 좁혀 줘야 우리가 출동을 할 수 있거든.”
“……그렇습니까?”
단순히 그 이유만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김용원을 몰아세우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정호산은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았다.
결국 김용원은 최준희가 원하는 대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 오후부터는 이분들하고 다니시면 될 겁니다.”
식사가 끝난 뒤 황급히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김용원을 바라보며 정호산은 씁쓸함에 속으로 혀를 찼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불쌍하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뭐, 그쪽이 보기에는 우리가 매정해 보일 수밖에 없겠지마는.”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정호산은 고개를 돌렸다. 삐딱하게 서 있는 최준희가 눈에 들어왔다.
“저야, 사정을 모르니 뭐라 말을 얹기 그렇지만, 꼭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싶긴 하네요.”
정호산의 말에 황호진이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냐, 혹시 김용원 씨랑은 전부터 아는 사이?”
“음, 제가 도채희 경위님이 조사하던 사건의 참고인이었던 적이 있어서요. 저분을 만난 건 아니지만, 저를 기억하고 계시더군요.”
“저 사람이 뭐라고 말했든, 다 잊는 게 좋을 거예요.”
최준희의 말에 정호산은 눈을 끔뻑거렸다.
“저 사람 1팀 출신에 도채희 빠돌이거든.”
“예?”
정호산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연기했다. 미리 도채희와 입을 맞춰 둔 대로 이곳에서는 적당히 기존 팀에 묻어갈 생각이었으니까.
“1팀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아아, 문제가 너무 많아서 어떤 것부터 말해야 할지도 모를 팀이었죠.”
툭, 정호산을 등을 친 최준희가 말했다.
“일단 식후 땡으로 아아메 콜?”
“……예.”
정호산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