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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31화 (231/352)

제231화

#62 뒷수습 (1)

이제 미국을 떠야 할 때다. 미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해 둬야 할 일들이 있었다.

나는 에드워드부터 불렀다.

[이번에 떠나면 언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될지 몰라. 어쩌면 영영 안 올지도 모르고.]

내 말에 에드워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 보라고?]

[그래도 여긴 네가 살던 나라였지만, 우리를 따라 한국으로 가면 모든 게 낯설 거야. 말도 통하지 않을 거고, 음식도 다를 거고. 문화며 모든 게 다를 거라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에드워드는 우리 벨츠머츠 사이에서 겉돌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가면 더욱 그렇겠지. 그나마 이곳에서는 심심하면 TV라도 보면 됐지만, 한국에서는 그조차도 불가능하다.

물론 세계 공통어인 영어를 아는 이상, 사정은 좀 나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편하게 있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내가 챙겨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국에 가면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고…….

[한국에 가면 나는 많이 바쁠 거야. 지금보다도 더, 그러니까 미리 물어보는 거야. 정말로 괜찮겠냐고. 지난 며칠보다도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다른 사건들로 정신이 없어서 내가 챙겨 줄 수가 없는 사이 에드워드는 꽤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을 거다.

내 질문에 볼을 긁적거린 에드워드가 말했다.

[난 지난 며칠 동안 아주 좋았어. 아무런 생각 없이 이렇게 편하게 쉰 것도 오랜만이거든. 그동안은 누구한테 쫓기듯이 내가 머물 다음 용병대를 찾아 헤맸으니까.]

그렇게 말한 에드워드가 나를 보며 말했다.

[게다가 심심할 틈이 없었어. 교과서를 만드는 것도 재밌었거든. 교과서(textbook)치고는 그림이 좀 많긴 한데…….]

에드워드는 자신의 말장난이 마음에 든다는 듯 키득키득 웃었다.

[나 꽤 재능이 있더라고. 한을 놀리는 것도 재밌었고. 놀리려고 한 게 아니라, 그쪽이 일방적으로 열을 낸 거지만. 말은 안 통해도 말이지, 그 녀석 표정에 자기 감정이 다 드러나는 거 알아? 어른처럼 굴어도 어린애라니까.]

……한서현이 교과서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게 몽땅 이 녀석 때문이란 말인가. 하긴, 에드워드가 만든 교과서는 내가 봐도 끝내주긴 했다. 확실히 대단한 재능이긴 했, 아니, 누구더러 꼬맹이래!

[그전에는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지도 잘 몰랐는데 말이야. 이번에 해 보니까 재밌더라고.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도 좋았어. 뭐, 좀 유치하기는 하던데…….]

유치하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김재호랑 아주 둘이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흘려대던데.

[그리고 미스터 차랑은 제법 말이 통하던걸. 좀 말을 좀비같이 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

[뭐? 좀비?]

[그게,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밥. 먹어. 여기 있. 다. 네. 물. 건. 이렇게 말하잖아.]

어디서 우리 애, 아니, 우리 형을 욕해!

[그러는 너는 한국말을 좀비만큼도 못하잖아.]

[오! 욕처럼 들렸어? 미안,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순순히 사과하지 마! 괜히 말꼬리를 잡은 내가 쓰레기처럼 느껴지니까!

어쨌거나 결론을 내리자면 이거다.

‘뭐야, 이 녀석. 제법 좋은 시간을 보냈잖아?’

자기 인생이 망가졌다며 눈물을 줄줄 흘릴 때는 세상 불행해 보였는데, 요 며칠간 어찌나 편하게 잘 보냈는지 얼굴에 윤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야, 내 입장에서는 이 녀석이 잘 지내는 게 좋기는 한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너무 잘 지내지 않아?

‘따지자면 이 녀석에게 우리는 자신의 꿈을 망친 원수 아닙니까?’

━흐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

끄응. 그렇지만 난 여전히 에드워드가 우리 조직에 스며드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전에는 확실한 구제책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네가 원한다면 어떻게든 네 신분을 회복할 방법을 찾을게. 원한다면 미국에서의 네 활동도 지원할 거고…….]

물론 최고의 에이전시라고 불리는 오승우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지원을 해 줄 거다.

우리 벨츠머츠의 기둥을 뽑아서라도.

아니, 생각해 보니까 기둥까지는 좀. 그냥, 어, 벽돌 하나 정도는…….

━갑자기 확 소소해졌는데.

‘그래도 세상을 구하는 게 먼저 아닙니까.’

음, 그렇지. 기둥을 뽑아 주기에는, 어, 좀 그렇지. 그랬다가 우리 집이 무너지면 어떡하냐.

그래도 내 최선을 다해 에드워드를 지원해 줄 생각이다.

사건이 터진 직후에는 상황도 시간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다르다. 거기에서는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도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막말로 테이카를 공격한 것보다 더한 공을 쌓아서 금의환향하는 방법도 있고, 어떻게든 방법이야 찾으면 그만이죠.’

내 말에 에드워드는 그리 기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글쎄, 굳이 그래야 할까 싶긴 해.]

[뭐?]

에드워드가 말했다.

[솔직히 그 목표를 위해서 달려가는 삶이, 어, 행복이랑은 좀 거리가 있었거든. 불가능하다고는 말하기 싫지만, 엄청 빡세긴 하잖아. 세계 최고에 오르는 거 말이야.]

확실히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조금도 쉴 시간이 없긴 했다.

이 세계에는 수많은 괴물이 있고, 테이카 쿠퍼는 그 괴물 중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오른 놈이니까. 괴물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에드워드도 괴물처럼 살아야만 했다.

에드워드가 테이카 쿠퍼를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은 오로지 자신을 내버린 오승우를 향한 복수심이었다.

혹은, 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그 하나만을 위해 에드워드는 주변 사람들을 소모품처럼 쓰고 버렸다. 그래서 에드워드에게 붙은 별명이 ‘철새.’ 그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하고 그때그때 이득만을 좇아 달리는 그를 사람들은 경멸의 의미를 담아 그렇게 불렀다.

[너희를 보니까, 그냥 행복해 보이더라. 별거 아닌 거에도 웃고, 별거 아닌 거에도 슬퍼하고. 나는 그럴 수가 없었어. 지난 칠 년간,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웃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냥 늘 화가 나 있었지…….]

그렇게 말하는 에드워드의 얼굴은 내가 여태까지 본 것 중에 제일 진지했다.

며칠간 에드워드는 가만히 그동안의 삶을 곱씹었다고 했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생각도 많아졌다던가. 하지만 그 시간이 제법 좋았단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냥, 목표를 세웠으니 따라야 한다는 강박뿐. 그 강박이 꺾이니까, 내가 그걸 왜 하고 싶었는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번 일을 계기로 에드워드는 자신의 목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목표를 이루면 에드워드는 자신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우리를 보며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그렇다고 너희한테 고맙다는 말은 절대로 안 할 거지만, 글쎄, 이게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글쎄, 그래야 할까?]

여전히 테이카 쿠퍼가 밉고, 오승우의 콧대를 확 꺾어 주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한 에드워드가 말을 이었다.

[행복하진 않았거든, 그때.]

[행복이라.]

[지금도 행복하냐고 말한다면, 뭐, 그렇진 않아. 하지만 적어도 그때보다는 행복에 가깝겠지.]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일부러 그러지 않은 건 알겠어. 처음에는 나한테 제대로 사과도 안 하는 모습에 열이 확 받았는데, 그 친구 좀 모자라잖아?]

[…….]

이 말만큼은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우리 재호가 아직 못 배워서 그렇단다. 배워야 할 게 많아서.

그래도 그런 짓을 저지른 건 엄청난 잘못이긴 했지.

[그리고 나름대로 나중에 사과도 받았고.]

[사과했다고, 김재호가?]

[응.]

내가 모르는 사이 김재호가 사과까지 했다는 모양이다. 대체 언제?

[말로는 안 했지. 애초에 걘 영어를 한마디도 모르잖아. 그래도 행동으로 보여 줬어. 나한테 자기가 먹을 걸 슬쩍 내밀더라고. 옆에서 한이 입을 쩍 벌리고 경악하던걸.]

뭐? 우리 재호가 자기가 먹을 걸 양보했다고? 놀라운 일이었다.

나한테도 먹을 걸 양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너희를 따라가서 조금 더 고민하고 싶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지.]

난 에드워드가 우리를 따라오는 게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에드워드 본인을 위해서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 말을 듣고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사건 직후에 했던 ‘최고의 헌터가 될 수 없다면, 최고의 빌런이라도 될래!’라는 말은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그래, 이런 거라면.

[앞으로 잘 부탁해.]

에드워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와의 대화가 끝난 뒤 나는 한서현을 찾았다. 미국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봐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었거든.

존을 찾아 달라는 내 말에 한서현은 입을 삐쭉 내밀고는 투덜거렸다.

“정말 그 아저씨 좋아하네.”

“팬이었다니까.”

“취향 한번 이상하네요. 그리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존은 말이다! 얼굴보다는 그 성격이 진국이라고! 얼굴은, 그저! 그렇지만! 그래도 그리 잘생기지 않았을 뿐 눈코입도 제대로 붙어 있고! 키도 큰 편이라고! 도대체 그 얼굴로 마피아의 정부를 어떻게 했나 싶지만! 그래도 어? 못생긴 편은 아니잖나!

━실드를 치는 거냐, 그냥 실드로 패는 거냐?

‘흠, 흠.’

어쨌거나 나는 한서현의 도움을 받아 존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존은 호텔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가 자리 잡고 있는 테이블 반대쪽에 가서 앉았다.

[오, 안녕하세요.]

갑자기 앞에 나타난 내 모습에도 존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안 그렇게 보여도 은근히 담이 큰 사람이었다.

[뭘 하는 중입니까?]

[그게, 여기를 뜰 비행기 표를 사고 있었어요. 아, 말씀하신 대로 어제 카지노에서 돈은 다 바꿔 뒀습니다. 이렇게 큰돈이 생긴 건 처음이라, 좀 얼떨떨하지만……. 그래도 약속할게요.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존은 이 노트북도 그 돈으로 샀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 꼬맹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 이사벨이요?]

뭐야, 나한테는 며칠 동안 이름을 알려 주지 않더니. 벌써 통성명을 했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서운했다. 절대로 삐친 것은 아니고, 응, 절대로 아닌데…….

━삐쳤구나.

‘아니요, 잘 된 거죠. 그만큼 존이 그 녀석의 호감을 샀다는 거니까. 아니, 이상하네. 저 그렇게 비호감입니까? 예? 이상하다, 맨얼굴도 아니었는데…….’

내 원래 얼굴이라면야, 그리 호감을 주기 힘들다는 걸 인정하겠지만. 내가 뒤집어쓰고 있던 얼굴은 꽤 평범한 축이었다. 그럼 내가 그냥 별로였다는 뜻? 이상하다, 나 말하는 건 제법 자신 있는 편인데.

━삐쳤는데…….

‘안 삐쳤다니까요! 그냥 미래를 위해서 예? 문제점을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저는 안 됐고, 존은 됐는지!’

━삐쳤군.

젠장, 그래 좀 삐쳤다! 그러면 안 되냐? 나도 꽤 그 녀석에게 잘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그나저나 이사벨이라.

[예쁜 이름이네요.]

그 꼬맹이에게 엄청나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일단은 이 호텔에 방을 잡아 줬습니다. 쉬는 게 우선인 것 같아서요.]

확실히. 그 녀석에게는 지금 휴식이 필요했다. 존은 내게 계획을 설명했다.

[여길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가 볼 생각입니다.]

카지노가 있는 이 라스베이거스는, 아이를 키우기에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같이 상의해 보려고요. 일단은 그 아이가 하고 싶다는 일을 다 해 주고 싶지만, 아직은 본인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하나는 확실했어요.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한 거예요. 많이 보고, 배우고 싶대요.]

그렇게 말하는 존의 얼굴에는 아이를 향한 대견함이 가득했다.

[잘됐네요.]

두 사람은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걱정 없이 이곳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존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미국을 떠날 겁니다.]

[예?]

[오늘이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는 마지막이에요.]

내 말에 존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그, 그렇습니까? 그래도 며칠은 더 계실 줄 알았는데.]

허둥지둥 나를 보며 말을 이었던 존이 황급히 덧붙였다.

[그나저나 가신다면 그 녀석하고도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게…….]

[아니요, 괜찮아요.]

괜히 얼굴을 맞대 봤자 뭐하나. 나는 존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꼭 행복해요. 행복해야 해요,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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