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30화 (230/352)

제230화

#61 버림받은 사냥개 (6)

나는 그렇게 그 녀석을 떠맡게 되었다.

하지만 전처럼 내 집에 그 녀석을 두지는 않았다. 설록진은 그 녀석을 위한 개집을 따로 지어 주었다. 우리 집에서 차로 사십 분은 타고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우리 집이 부서지지 않아도 된다는 건 좋았지만, 이놈을 산 중턱에 있는 열악한 개집에 둔다는 게 마음이 영 편치는 않았다.

“돈도 많으면서, 돈 좀 쓰지.”

나는 깜빡거리는 전구를 보며 인상을 썼다. 산 중턱에 지어진 이 개집은, 좋게 말해 줘도 창고 수준이었다.

콘크리트 벽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벽에,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하며. 겨우 깨끗하게 씻겨 놨는데 여기에서 머물면서 놈은 다시 꼬질꼬질해졌다.

설록진은 이 숙소로 내게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너무 잘해 주지 말라고.’

어쩌면 내가 이 녀석을 다시 험하게 다뤄, 이 녀석이 나에게 실망하는 걸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을 줘서 버릇을 망쳐 놓았으니, 네가 책임지고 버릇을 고쳐 놓으라니.

그래서 이 녀석이 나를 증오하게 되면 ‘잘했다’고 나를 칭찬할 계획일지도. 설록진의 생각이 너무 뻔히 읽혀서 기분이 나빴다.

마음 같아서는 설록진의 생각은 무시하고, 내 식대로 굴고 싶었다.

하지만 내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건 내가 아니라 이 녀석이 될 거다. 그걸 아니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설록진이 바라는 대로 녀석에게 최대한 퉁명스럽게 대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왠지 그 녀석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해져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가끔 그곳에 들러 녀석을 돌봐 주었다. 말이 돌봐 준다는 거지, 그냥 밥이나 먹이고 씻겨 주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도 예전처럼 좋은 환경도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창고에는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나는 덕분에 몰래 아티팩트를 갖고 와 물을 데웠다.

“여름도 아니고 겨울에 찬물로 씻길 순 없잖아, 젠장.”

절절 끓는 온수가 나오는 내 집을 두고 이게 다 무슨 고생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놈을 향해 한탄하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왜 조련사를 죽였냐. 이제 더 잘해 주기도 뭣하다고. 너한테 잘해 주면 잘해 줄수록 네 취급만 더 안 좋아진단 말이야.”

내가 이런 말을 하든 말든 놈은 나만 보면 손을 쭉 앞으로 뻗었다. 닥치고 내가 주머니에 숨겨 온 간식이나 내놓으라는 듯이.

나는 혀를 차며 주머니에 챙겨 온 커피 사탕을 놈에게 건넸다.

“아껴 먹어. 해외 출장 잡혀서 한 보름은 못 오니까. 중국에 가야 하거든.”

가서 무시무시한 여자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고. 나는 녀석의 곁에 주저앉아 한참이나 투덜거렸다.

“엄청 무서운 여자야, 어? 적사회라고 알아? 지금 중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조직인데, 아니, 왜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은 죄다 그렇게 무서운 인간들 뿐이지?”

그렇게 한참 쑤어하오주에 대한 얘기를 꺼내놓은 내가 녀석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보고 있으면 좀 짠해.”

처음에는 말이 없는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침묵이 오히려 좋았다. 언제나 묵묵하게 내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꽤 괜찮은 기분이었다.

녀석에게 임무를 내려 주는 것도 내 일이 되었다.

나는 설록진에게 임무를 전달받으면, 현장으로 녀석을 데리고 갔다.

나는 호루라기를 쓰지 않았다. 호루라기를 쓰지 않아도 녀석은 내 부탁이면 뭐든 했으므로. 설록진이 감시하고 있을 때가 아닌 이상에야, 호루라기를 쓸 필요도 없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내게 걸어오는 놈에게 나는 칭찬과 함께 녀석이 좋아하는 커피 사탕을 쥐여 주었다. 그리고 숙소로 가서 녀석을 빡빡 씻겼다. 녀석은 나와 함께하는 목욕 시간을 싫어했지만, 전처럼 반항하진 않았다.

왜냐? 목욕이 끝난 다음에는 꼭 끝내주는 간식 타임이 있었으니까.

그 후 이 년 동안, 나와 녀석은 꽤 잘 지냈다.

처음에는 귀찮기만 했던 녀석을 돌보는 일도 익숙해지고 나니 꽤나 괜찮아졌다.

놈은 과묵했지만, 그만큼 좋은 청자였다. 때때로 나는 그 녀석에게 하소연하듯이 말을 이었고, 녀석은 묵묵하게 내 말을 다 들어 주었다. 대답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녀석이 손을 들어 나를 위로하듯 내 등을 툭툭 두들겼을 때는 나는 감동에 한참 눈물을 훌쩍여야 했다.

그러다가 문제가 터졌다.

여태까지는 단 한 번도 사고를 친 적이 없는 녀석이, 현장에 증거를 남겼다. 있는 줄도 몰랐던 CCTV에는 녀석의 모습이 그대로 찍혀 버렸고 그 영상이 인터넷에 퍼졌다.

언론을 제 마음대로 다루는 설록진이었지만, 인터넷에 풀려 버린 영상은 제아무리 설록진이라고 하더라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쓸데없이 화질이 좋은 데다가, 범행의 순간이 명확하게 찍혀 있는 CCTV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였다.

사람들은 이 사건의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어차피 그 녀석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신아, 곧 있으면 선거야.”

설록진의 말에 나는 굳어 버렸다.

“이렇게 뻔히 얼굴을 찍힌 범죄자도 잡지 못하는 정부를, 여당을 어떻게 신뢰하겠어, 응?”

설록진은 차차기 대선을 노리고 있었다. 이번 대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올리고, 그 사람의 뒤를 이어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는 게 설록진의 목표였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하필이면 이런 사건이 터지다니.

“그, 그래도 걜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다른 놈을 그 녀석인 척하고 대신…….”

“왜?”

내 말을 끊은 설록진이 물었다.

“내가 왜 그놈을 위해서 그 고생을 해야 하는데?”

그 말에 나는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렸다. 어떻게 하면 설록진을 설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녀석을 구할 수 있을까. 그렇게 머리를 굴린 내게 떠오른 건, 설록진이 내게 했던 말이었다.

“개는 실수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면서요.”

실제로 그 논리로 설록진은 나를, 자신의 개를 몇 번이고 용서해 주지 않았는가.

나는 설록진에게 빌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도 용서해 줘요.”

내 말에 설록진은 싸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글쎄, 이신아. 저 개는 내 개가 아닌걸?”

“예?”

“예전에 말해 두지 않았나? 저 개의 주인은 청 과장이라고. 나는 청 과장에게 저 개를 빌린 것뿐이고. 그러니까 저 개를 예뻐해 주는 건 청 과장의 몫이라는 거야, 너나 내 몫이 아니라.”

그 말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개를 예뻐하는 건 우리 몫이 아니라고? 우리 개가 아니니, 예뻐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까 왜 개를 예뻐했어, 이신아. 네 개도 아닌데. 책임질 수도 없는데, 왜 정을 줬어.”

“전…….”

“넌 개야. 개는 주인한테 예쁨받으려고 배를 까뒤집기만 하면 돼. 감히 다른 개를 동정하거나, 정을 주거나 하면 안 된다고.”

그 말에 나는 깨달았다. 설록진이 나에게 그놈을 맡긴 이유를. 지난 2년 동안 무슨 생각으로, 나와 녀석을 방치했는지도.

“난…….”

정을 주지 말라는 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설록진은 그동안 계속 내게 경고했다.

개 주제에, 다른 개를 예뻐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선을 넘었고 그 결과가 이거였다.

이번 일은 계기에 불과했다. 설록진은 언제든, 내게서 그놈을 빼앗아 갈 생각이었던 거다.

왜냐? 그래야 내가 다른 이에게 정을 주지 말라는 경고를 뼈에 새길 테니까.

감히, 다시는 다른 것에 정을 줄 생각을 하지 못할 테니까.

사실 설록진이 나를 지독하게 고립시키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왜 제대로 된 대꾸도 하지 못하는 개에게 말을 붙였을까. 왜 그 녀석에게 늘 내 이야기를 하며 하소연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을 다 죽였어?”

설록진이 내 곁에 그 누구도 남겨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했잖아, 개는 주인의 사랑만 받으면 된다고.”

* * *

‘네 손으로 보낼래? 아니면 내가 보낼까?’

설록진의 말에 나는 내가 녀석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적어도 마지막은 얼굴을 보며 하고 싶었다.

설록진은 내게 말했다.

그래도 그동안 그 녀석을 잘 관리해 주었으니, 마지막으로 둘이 보낼 시간을 주겠다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용서를 받고 싶다면, 내 손으로 직접 이 녀석을 죽음으로 밀어 넣으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자동차에 녀석을 태워 평상시처럼 녀석을 임무 장소까지 데리고 갔다.

그 녀석과 함께 차에서 내렸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냐? 이번 임무는 자살 임무다. 저 안에 들어가서 이 녀석이 사람을 죽인 다음에는, 각범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이놈을 때려잡을 거다.

나는 손을 벌벌 떨었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야.”

나는 놈을 불렀다.

“도망가라. 너, 너 도망가.”

도저히 이 녀석에게 그런 짓을 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말에도 김재호는 여전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 말 안 들려? 저기 가면 너 죽는다고!”

나는 녀석의 손을 잡았다.

이 녀석을 빼돌리면, 그 대가는 엄청날 거다. 또 내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래도 이 녀석이 죽는 건 못 보겠다.

“도망쳐.”

내 말에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아.”

“너…….”

나는 녀석의 말에 깜짝 놀라 놈을 바라보았다.

“마, 말할 수 있었어?”

여태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아서 몰랐다.

“왜 말 할 수 있었으면서도 그동안 말 안 했어!”

“너 말 많아. 충분.”

김재호의 말에 나는 상황도 잊고 헛웃음을 지었다.

“하!”

어이가 없었다.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말을 안 했다고? 내가 말이 많으니까, 듣는 것으로 충분해서?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도망쳐, 저기 가면 죽어. 진짜 농담 아니야. 너 정도면 어디 가서든 잘 살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 도망쳐서…….”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죽는다고!”

내 말에 그 녀석이 말했다.

“죽어도,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죽어도…….”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친구.”

친구.

그 말에 내 심장이 아프게 아려 왔다. 아니, 난 ‘친구’ 같은 거 없어. 친구 같은 건, 하나로 충분했고, 하나로도 과분했어. 그러니까 다시는 친구 같은 거 만들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 친구를 다시 잃고 싶지도 않고.

“아니야, 친구. 그러니까 가.”

녀석은 내 말을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친구.”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내 등을 도닥였다. 마치 예전처럼. 나는 그 녀석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 이름 김재호야.”

“……빨리도 알려 준다.”

내 말에 녀석이 속삭였다.

“까먹지 마.”

그리고 놈은 내가 말릴 새도 없이 그림자로 녹아들어 그곳으로 향했다. 나는 뒤늦게 그곳으로 뛰어들어 갔지만, 녀석을 잡을 순 없었다.

* * *

녀석이, 아니, 김재호가 그렇게 죽고 나서 나는 녀석이 머물던 곳으로 갔다.

그곳에 남은 재호의 흔적을 깨끗하게 치우기 위해서였다.

매트리스 아래에 꼬깃꼬깃 소중하게 접혀 있는 초록색, 노란색 사탕 껍질을 보고 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겠다고.

* * *

━……내가 들었던 버전에는 그 녀석이 울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걔도 울었을 겁니다. 눈가가 반짝였거든요.’

━아닌데, 운 건 너뿐인 것만 같은데.

어쨌거나 중요한 건 누가 질질 짰느냐가 아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그렇게나 다시는 누군가한테 정을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을 준 걸 넘어서서 이 녀석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까지 갖게 되었으니.

설록진은 책임질 수도 없는 주제에 정을 주지 말라는 말을 했었지.

그래, 맞는 소리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지려고 책임.

“재호야.”

나는 김재호를 불렀다.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김재호가 툭 말을 던진다.

“나 보스 좋아해.”

대뜸 들려온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 보스 도와줄 거야.”

“뭐?”

“보스가 싫어하는 나쁜 놈 잡아 줄게.”

내 질문을 예상한 것처럼, 재호는 내게 말했다.

“친구잖아, 우리.”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할 뿐.

눈이 뜨거워졌지만, 눈물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허벅지를 쥐어뜯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녀석의 앞에서 꼴사나운 얼굴로 질질 눈물이나 짤 것 같아서.

“나 이제 가도 돼?”

“어, 어, 응.”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뜨는 김재호를 눈으로 좇으며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야.”

나는 김재호가 나가기 전에 황급히 덧붙였다.

“내가 더 형이니까, 친구 아니야.”

“으!”

질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바깥으로 나가는 김재호를 보며 나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곧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순식간에 눈앞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우냐?

‘아니거든요.’

나는 손등으로 눈을 꾹 눌렀다.

“젠장…….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녀석을 행복하게 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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