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24화 (224/352)

제224화

#60 잘 못 하거든요, 이런 건 (5)

차송진의 말대로 내가 벨츠머츠라는 조직을 만들었을 때부터, 이 조직은 리더인 나의 기준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나조차도 그 기준이라는 놈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거겠지.

오늘이 오기 전까지 나는 뚜렷한 기준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훔치고 싶으면 훔쳤고, 죽이고 싶으면 죽였다.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저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대로 움직인 거다.

━그리고 그 생각이라는 건 네 전 주인의 것을 그대로 빼닮았고, 말이지.

‘그야 그렇지만 그 인간 탓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설록진의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결국 아무런 고민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대로 행동한 건 저니까요.’

지금 내 곁에도 없는 인간에게 모든 걸 떠넘길 생각은 없다. 마음이야 조금 편해질지 모르겠지만, 그래 봤자 결국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중요한 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거다.

‘그러려면 확실하게 내가 잘못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죠.’

잘못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나는 그동안 내가 했던 모든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새삼, 나쁜 놈들을 죽였다고 죄책감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내게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흐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게 안타까운 건 놈들의 목숨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걱정하는 건 오로지 이런 내 곁에 있으며 나쁜 영향을 받았을 한서현과 김재호뿐이다.

“혹시 이미 늦어 버렸으면 어떡하지?”

“이미 늦어 버렸다니?”

“나 때문에 재호랑 서현이한테 이미 나쁜 물이 든 거라면…….”

내 걱정에 차송진은 두 눈을 깜빡거렸다.

“그런 걸 걱정하고 있었다고?”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어. 에드워드 사건도 따지고 보자면, 다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

“너 때문에?”

“재호는 순수하잖아.”

“그, 그 녀석이 순수하다고?”

“그래. 재호는 생각의 깊이가 아직 얕잖아.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말이야.”

김재호는 좋게 말해 순수했고, 나쁘게 말해 무지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김재호는, 아직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는 것이 없기에, 어떠한 판단을 내릴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니 행동이 평범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거다.

에드워드 사건에서 김재호가 테이카 쿠퍼를 공격한 것만 봐도 그렇다.

평범한 사람은 거기에서 대체 왜 그놈을 공격했냐고 따져 물을 거다.

이상하잖아! 거기에서 왜 갑자기 사람을 공격하느냐고!

하지만 김재호가 나와의 외출을 떠올린 거라면 답은 간단해진다.

내가 에드워드 사건 때 김재호를 호되게 혼내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재호는 내게 배운 대로 행동했을 뿐이니까.

그러니 내가 김재호를 혼낸대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기껏해야 생각해 낼 수 있는 건 ‘아, 내가 보스의 명령이 없는데도 공격을 해서 화를 낸 거구나!’일 테니까.

실제로 그때 내가 김재호에게 혼을 낸 이유도 그것과 비슷하지 않았나.

사람을 함부로 공격해선 안 된다든가, 그건 나쁜 짓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동안 한 일이 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할 일들이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겠지.

‘예.’

이러니 내가 내 행동에 구역질이 날 수밖에 없지.

나는 차송진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재호는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내가 데리고 와서, 내 멋대로 이용한 것뿐이야.”

그래, 이용이라는 말이 알맞다.

멋대로 주워 와 놓고는 네 밥값을 해야 한다고, 내 복수에 김재호를 끌어들인 셈이었으니까.

물론 김재호는 과거 설록진에 의해 비참한 삶을 살았고, 그 삶보다 지금의 삶이 낫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김재호를 이용하고 있는 게 변명이 되냔 말이지.

처음, 내가 김재호를 사 온 이유도 그저 내 복수를 위해 이용할 만한 적당한 각성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는 전혀 김재호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김재호의 복수를 돕기는 했지. 하지만 김재호의 복수는 이미 끝났다.

‘봄날 교육원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을 직접 죽였고, 그 일에 연관되어 있던 김성득 의원도 처리했죠.’

더는 김재호의 복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김재호를 부려 먹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하는 짓은 그냥, 김재호를 이용만 하는 짓이지.

━너는 그 녀석을 놔주려고 했잖느냐.

‘말이 놔주는 거지, 그냥 버리는 거나 다름없었잖습니까. 결국 배가 고프다고 돌아온 거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녀석을 독립시키다니. 그건 독립이 아니다. 유기지!

━툭하면 다른 사람들은 유기하는 주제에……. 아니, 애초에 너는 그 두 녀석도 언젠가 떠나보낼 생각을 늘 하고 있었지.

‘쫓아낼 생각까지는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를 떠나고 싶다면 앞으로의 인생을 축복하며 안녕을 고할 생각은 있달까.

물론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 두 사람을 쫓아내면서까지 연을 끊을 생각은 전혀 없다.

한서현과는 같은 원수를 공유한 사이기도 하고, 김재호는 아직 제대로 된 준비가 안 되기도 했고.

다만, 어쩔 수 없이 죄책감이 쌓인다는 거다. 수십 명의 사람을 죽여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양심이 걔네 둘만 생각하면 콕콕 찔린다고.

내 말을 들은 차송진은 무얼 생각하는 건지 가만히 눈을 굴렸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한 번도 묻지 않았는데, 재호는 어디에서 데리고 온 거야?”

“……돈 주고 암시장에서 사 왔어.”

내 말에 차송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 왔다고?”

“그래. 재호는 실험실에서 신체 개조를 당한 실험체였어. 필요가 없어진 다음에는 시장에 나왔고. 성질이 더럽다고 툭하면 반품당해서 돌아오는 신세였지.”

내가 아니었더라면 더 나쁜 주인에게 팔렸을 거라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내 변명을 위해 그 말까지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쭉 김재호와 내가 보냈던 시간을 말했다.

그렇게 김재호를 거둔 다음엔, 적당히 능력을 개화시키고 이용하기만 했다고.

차송진은 내 투덜거림을 가만히 들어 주었다. 알 수 없는 눈으로.

“알겠어?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그냥, 어린애들 둘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못돼먹은 사람이야.”

나는 바짝 말라붙은 입술을 혀로 축였다. 입을 열 때마다 바짝바짝 입이 말랐다.

“말했던 것처럼 두 사람을 끌어들인 것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아. 앞으로도 두 사람을 계속 이용하겠지. 그러니까 벨츠머츠에 들어오고 싶다는 생각이 바뀌었으면 말해.”

내 말에 차송진은 가만히 물었다.

“왜, 왜 그 두 사람을 끌어들인 건데? 중요한 게 빠졌잖아.”

그 이유가 중요한가? 나는 그런 눈빛으로 차송진을 바라보았지만, 차송진의 눈빛은 단호했다. 꼭 그 이유를 들어야겠다는 표정이었다.

“그야, 혼자서는 도저히 내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설록진 의원을 해치우는 거 말이지?”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라 차송진을 바라보았다.

뭐야, 어떻게 아는 건데!

“이, 이상하게 내가 어딜 지나다닐 때마다 그런 얘기들이 들리는 거라고! 절대 내 취미는 엿듣기 같은 게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말고.”

황급히 눈을 굴린 차송진이 재빨리 덧붙였다.

“그리고 너희는 말할 때 주변을 너무 살피지 않는다고.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듣는다는 말도 몰라?”

“……둘이 서로 바뀌었는데.”

“어, 어쨌든!”

잔뜩 얼굴이 붉어진 차송진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설록진 의원이 나라를 갉아먹고 있다며. 너희가 저질렀다고 알려진 일, 전부 설록진 의원이 저지른 거였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엿들은 건지…….

“내,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벨츠머츠가 되고 싶다고 말한 건 줄 알아? 나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너희한테 합류하고 싶다고 말한 거라고.”

“내 말을 다 듣고서도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고?”

“그래! 하나도 안 변했어. 그리고 말이야, 재호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재호랑 나중에 얘기를 제대로 해 봐. 그냥 알아듣지 못할 거라든가,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할 거라든가 하는 식으로 미리 넘겨짚지 말고.”

“하지만…….”

김재호라면 그냥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해 줄 것 같아서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한테, 네 의견을 구한다고 말해 봤자…….

아직 말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차송진이 단호하게 내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넘겨짚지 말라니까.”

“……알겠어.”

“너도 아직 어리잖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다 어디에 있어. 그러니까 앞으로! 앞으로 잘하면 되지, 응, 그렇지.”

마치 스스로에게 말하는 모양새로 중얼거린 차송진이 나를 향해 갑자기 엄지를 치켜들었다.

“뭐 하는 거야.”

“아니, 그래도 어딘가 장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하는 게, 응. 보통은 그런 생각 안 하니까. 그냥,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부려 먹기 마련이거든. 하하, 그렇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안 해? 나한테 걔네 인생이 걸렸는데.”

모든 일이 끝난 뒤, 나는 한서현과 김재호가 정상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다.

차송진에게 도덕을 가르치라는 말을 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에드워드 사건을 겪고 나니, 더는 이 상태로 김재호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나는 그 무엇도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삶을 살았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설록진에게 종속되어 그놈에게 예쁨받는 애완견으로 산 나와, 형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고 착한 동생으로 살았던 한서현,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실험실의 쥐 신세였던 김재호. 마지막으로 상황에 떠밀려 여기까지 오게 된 차송진까지.

우리 모두는 스스로 무언가를 제대로 선택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차송진은 내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선택의 기준이 네가 되었으니, 네가 그걸 책임지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각오는 했지만, 솔직히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겁이 났다.

소중해졌으니까, 잘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차송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생각이 조금 정리되었다.

“……오늘은 고마워. 그래도 그쪽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쪽?”

내 말에 차송진이 못마땅한 듯 눈을 흘겼다.

“고맙다면서, 그쪽이 뭐야. 그쪽이.”

그 말에 나는 결심했다.

그래, 이런 조언까지 아끼지 않고 말해 주는 사람이다. 까짓거 한 번쯤 형이라고 불러 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짜식, 기분이다.

“고마워, 송진이 형.”

하지만 막상 내 말을 들은 차송진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딱딱하기 짝이 없었다.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 얼굴은 뭐지.

“그, 그래…….”

차송진은 잘못 조립된 로봇처럼 뚝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그 표정은.”

“아, 아니. 너한테 정말로 형이라고 불리니까 기분이 이상해서.”

“뭐가 그렇게 이상한데?”

“어, 어디가 딱 꼬집어서 이상하다고 말은 못 하겠는데…….”

왠지 저렇게 뚝딱거리는 걸 보니 속이 꼬이는 기분이다.

“왜 그래, 송진이 형? 어? 형을 형이라고 부르는 게 뭐가 이상한데.”

“아, 아니! 이제 그렇게 그만 불러. 왠,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니까?”

“그러니까 어디가 이상하냐고, 송진이 형!”

나는 나를 피해 도망가는 차송진을 집요하게 불러 댔다.

━너도 참 너다. 그렇게 불러 달라고 할 때는 싫다고 하더니.

‘그야! 내가 부르기 싫은 거랑, 나한테 불리기 싫은 건 다른 거거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