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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21화 (221/352)

제221화

#60 잘 못 하거든요, 이런 건 (2)

핫도그를 먹으면서 녀석은 계속해서 내 눈치를 봤다.

[네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눈치를 봐?]

피해자면서 내 눈치를 보는 것도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대체 네가 뭘 잘못했다고, 뭐가 두려워서 이렇게 겁에 질린 건데.

내 말에 녀석이 말했다.

[그리 잘한 것도 없긴 하잖아요. 이렇게 얻어맞기나 하고…….]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얼굴에는 꼬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자가 가득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아저씨한테 말하면, 뭐가 달라져요?]

녀석의 말이 삐쭉하게 심장을 찔렀다. 나도 어릴 때 저런 생각을 수없이 해 봐서, 그래서 녀석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속에 끌어안고 있으면 말이야, 병이 걸리거든. 때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품고 있으면 제가 뭐라도 된 것처럼 무거워진단 말이야.]

이건 정호산이 내게 해 준 말이다. 툭하면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는 나를 살살 달래며, 무엇이든 털어놓는 쪽이 낫다고 말해 주었지.

━그러는 네 녀석은 아직도 툭하면 입을 닫는 것 같은데.

‘사람 성격이 어디 그리 바로 바뀝니까?’

━참 나.

그래도 한 번쯤은, 아주 작은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내 말에 가만히 땅을 바라보고 있던 녀석이 슬쩍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요? 어제 카지노에 불이 났다는 거. 아니, 진짜로는 불이 안 났다나. 어쨌거나 그때는 정말 불이 난 줄 알았어요. 사람들이 죄다 뛰어나왔거든요.]

그 말에 내 머릿속이 굳어 버렸다.

어제, 카지노, 화재 경보. 내가 저지른 일이다.

녀석의 말이 이어졌다.

[빠져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아빠를 찾았죠.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아빠가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뭐. 그 아빠를 찾으러 들어가기라도 했다는 거야?]

녀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바보 같은 놈이.

[카지노에 너 같은 꼬맹이는 못 들어간다면서.]

[다들 정신이 없어선지 신경도 안 쓰더라고요. 그래서 안으로 들어갔죠.]

녀석은 담담히 말했지만, 정말 불이 났다면 큰일이 날 뻔한 일이었다. 녀석이 내 눈치를 본 것도 그 이유였을까. 녀석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는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에 들어가니까 아빠가 있더라고요. 사람들이랑 같이, 그래서 갔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대화는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불이 났으니까 가자고 했는데도,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자신을 어떻게든 살리려는 아이에게 손을 올렸단다, 그 쓰레기가.

[여기에 있으면 죽는다고, 그렇게 빌고 빌었는데…….]

녀석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다리 사이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나는 가만히 그 말을 들어 주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로 이 아이를 위로해야 할지.

감히 내가 그래도 되는 건지.

슬롯머신에 아티팩트가 설치되었다는 걸 알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이 녀석의 아버지였다.

그래, 어쩌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아티팩트에 의해 도박에 빠지게 된 거라면, 어떻게든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일이 잘 풀린다면, 대충 어떻게든 해피 엔딩으로 이 아이의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는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었다.

아티팩트로 인해서든, 아니든. 그 인간은 선을 넘었다.

심지어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하러 온 아이에게 손을 올린 순간, 나는 그 인간을 포기했다.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 아이의 아버지란 인간이, 용서받을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서. 조금의 여지도 없는 쓰레기라서.

━또 뭘 하려고.

뭘 하긴.

[저번에 너한테는 선택지가 없다고 했지.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주저앉아서 네 아빠를 기다리는 거라고.]

내 말에 녀석은 가만히 눈물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았다. 멍으로 울긋불긋 물든 얼굴을 보며 내가 말했다.

[너한테 선택지를 줄게. 여기에서 계속 그 아버지라고 부르기 아까운 개자식을 기다릴지, 아니면 이 이상한 아저씨가 내민 손을 잡아 볼지.]

나는 녀석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선택해, 네 마음대로.]

* * *

녀석은 내 손을 잡았다.

물론 여러 가지 조건을 붙이기는 했다. 으슥한 곳으로 가면 소리를 지를 거라든가, 완전히 당신을 믿는 건 아니라든가.

그런 말을 하는 아이의 눈이 축축하게 젖어 있지만 않았더라도 제법 위협적으로 들릴 말투였다.

하지만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렇게 말해서야, 그냥 마음이 짠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곧바로 호텔로 향하는 나에게 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왜 여기로 가는데요?]

[만나야 할 사람이 있거든.]

곧장 호텔의 프런트로 향한 나는 직원에게 물었다.

[존 스미스 씨가 묵고 있는 객실이 어딥니까?]

[아, 죄송하지만 다른 고객님의 정보는 말씀드릴 수 없…….]

[제 친구여서 그럽니다. 아까 미리 프런트에 말해 둔다고 했는데요.]

내 거짓말에 직원은 바로 넘어왔다. 존의 객실 번호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옆에 있던 아이가 물었다.

[존이 누군데요?]

[음, 내 친구?]

[거, 거기로는 안 가요!]

아이는 곧바로 내 손을 놓았다.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을 잡는 대신 그 아이를 그대로 놓아주었다.

내가 이렇게 순순히 자신을 놔줄 줄 몰랐다는 얼굴로 녀석이 물었다.

[뭐, 뭐예요. 나 데리고 가려는 거 아니었어요?]

[어디로, 호텔 방으로? 아니, 그건 안 되지. 불안하지 않겠어? 모르는 사람이 있는 호텔 방으로 들어간다는 거.]

[그, 그게 아니면 왜 그 사람 호텔 방 객실 번호를 물어본 건데요.]

[그야, 그 인간을 여기로 데리고 와야 하니까.]

우리 사이의 신뢰는 조금만 손대면 부서질 것처럼 연약했다. 아무리 정에 굶주린 아이라도 겨우 며칠 동안 핫도그를 사 준 아저씨를 그리 깊이 믿을 리가.

호텔에, 낯선 사람이 있는 방 안으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간다고?

당장 성범죄자로 오해받아도, 그래,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반성해야 할 조건들이다.

그러니 나는 아이를 데리고 호텔 방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사람을 데리고 올 동안 너는 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

[도망갈지도 몰라요.]

[그래도 돼, 내가 믿음직스럽지 않으면. 하지만 여기에는 사람이 많잖아. 저기 CCTV도 보이지?]

나는 녀석이 안심할 수 있도록 여기저기에 설치된 CCTV를 보여 주었다.

[그래도…….]

[내가 존을 데리고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생각해 봐. 도망가야 할지, 아니면 조금은 더 믿어 볼지.]

나는 녀석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레이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저 녀석은 생각도 많고 겁도 많잖아요. 그러니 그걸 해소할 시간을 줘야죠. 무턱대고 끌고 가면 그만큼 더 나를 신뢰하지 못하게 될걸요.’

━아니, 존 스미스는 무슨 생각으로 끌어들이는 거냐고 물어본 거였는데.

‘아, 그거요.’

말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존의 객실로 향하며 내가 말했다.

‘존의 자선 사업 첫 번째 대상으로 저 녀석이 딱 적당할 것 같아서요.’

━저 꼬맹이가?

‘예,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까지 마음에 들어요.’

당분간은 존의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저 녀석을 붙여 놓으면 왠지 안심이 되거든요.’

━보통은 반대 아니냐?

‘존은 좀, 사람이 호구스러운 데가 있으니까요.’

똑똑, 나는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 뒤에 존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누구…… 어라?]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아이를 하나 찾았는데 혹시 관심 있을까 해서 말이죠.]

내 말에 존의 눈동자가 커졌다.

* * *

다행히 내가 존과 이야기를 끝내고 로비로 내려갔을 때, 녀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팔짱을 낀 채로 발을 구르고 있는 게 퍽 정신 산만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에 남아 나를 기다려 주었다.

존은 아이의 얼굴을 살핀 뒤에 자신이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게 대충 사정을 들었을 때부터, 어떻게든 아이를 돕고 싶다고 말했던 존이지만, 실제로 아이를 보고 나니 더욱 아이를 향한 마음이 강해진 모양이었다.

[일단 서로 인사부터 해 볼까요. 여기는 앞으로 너를 도와줄 존 씨. 물론 네가 허락한다면 말이지만. 그리고 존 씨, 이쪽은…….]

나는 서로를 서로에게 소개했다. 아직 꼬맹이의 이름을 모르는 관계로 꼬맹이는 도움이 필요한 녀석이라는 성의 없는 표현이 이름 대신 붙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앞으로 너를 도울 사람이라며 존을 떠미는 내 행동에 아이의 눈초리가 단번에 매서워졌다.

[진심이에요? 저런 노땅한테 나를 팔아먹겠다고?]

[엄밀히 말해 팔아먹는 건 아니지. 내가 뭘 받아야 널 팔아넘기는 게 되잖아. 나는 오히려 저쪽에 돈을 주고 너를 부탁하는 입장이라고.]

[하.]

내 말에 꼬맹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고 존은 시뻘게진 얼굴로 몸을 뒤틀었다.

[그런, 그런 건 절대 아닌데…….]

존은 큼큼 헛기침을 내뱉고 말했다.

[물론 여기에서 너를 처음 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해.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말이야. 네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는, 어, 무엇이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단다.]

그렇게 말하는 존의 목소리에는 퍽 호소력이 있었다. 아이의 눈초리가 조금은 유해졌을 정도로.

하지만 저런 말로는 부족하다.

[문제는 이거겠죠. 저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도울 것인가.]

내 질문에 존은 더듬더듬 말을 더듬었다.

[그야, 이제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전에는 다 맡겨 놓는다고 하지 않았냐.

‘예, 그때는 시간이 많을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일단은 충격 요법으로 깨달음을 속성 주입할 수밖에.

[당신에게 있는 건 돈뿐입니다. 그것도 그냥 적당히 많은 돈이에요. 삶을 편하게 살기에는 적당하지만, 권력을 휘두르기에는 턱없이 적은 돈이죠. 그 돈으로 저 녀석을 어떻게 도와줄 겁니까? 그냥 돈을 주고 끝낸다는 건 좋은 대답이 아니라는 거 알죠?]

[어, 그야…….]

제대로 된 대답이 당장 나올 리는 없다. 나 또한 대답을 듣길 기대한 질문이 아니다. 꼬맹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내가 말했다.

[너도 생각해 봐.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을 이용해서 네가 행복해질지. 뭐가 있어야, 네가 앞으로도 혼자서 잘 살 수 있을지 말이야.]

그냥 도움을 받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어린애라고 해서 봐주는 그런 세상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홀로 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좋으나, 싫으나 존의 도움이 필요했다.

[여기에 있는 존 씨의 목표는 자신이 가진 돈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거죠. 그리고 여기에 있는 꼬맹이의 목표는 행복한 삶을 사는 거고.]

내 말에 존과 꼬맹이 녀석은 서로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았다. 곧 어색한 듯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긴 했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인식했다는 게 중요했다.

[그런 바보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이 다 있네요.]

지금 이 상황이 민망하다는 듯 혀를 찬 꼬맹이의 말에 존은 멋쩍은 듯 뒷덜미를 벅벅 긁었다.

[어쨌거나 지금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둘 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면 서로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나는 두 사람을 앉혀 놓고 속삭였다.

[무턱대고 저 사람 돈을 빼먹기만 하면 넌 홀로 살아가는 방법도 배우지 못하고 나쁜 버릇만 들게 되겠지.]

내 말에 꼬맹이의 어깨가 떨렸다.

[그런 생각 안 했거든요…….]

[그러는 그쪽도, 신중하게 움직여야겠죠. 어딘가에 돈이 많은 호구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다 털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존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자신이 책임질 것이 생기면 강해지는 사람이 있다. 존 또한 그랬다.

난 아이에게 말했다.

[언제든 존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진다면, 좋아. 너는 존을 떠나도 돼. 다른 것도 마찬가지야.]

내 얼굴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 아이에게 나는 마지막 충고를 남겼다.

[잊지 마. 너에겐 언제나 선택지가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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