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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19화 (219/352)

제219화

#59 잘하거든요, 이런 거 (7)

나를 본 니키가 물었다.

[알아내고 싶었던 건 다 알아냈어?]

[예.]

장인을 데리고 있는 조직의 이름도 알았고, 다이애나가 숨겨 둔 이곳의 비밀 금고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유익한 시간이었지.

니키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소개부터 다시 해 볼까?]

[예?]

갑작스러운 그 말에 당황한 내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니키가 말했다.

[내 이름은 재키 록우드야. 니키라는 건 예상했겠지만 내 진짜 이름이고 아니고, 애칭.]

어떻게 재키의 애칭이 니키일 수가 있냐! 겹치는 거라곤 키밖에 없는데! 정말이지, 외국인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 반갑습니다.]

내 힘 빠지는 인사에 니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게 전부야?]

니키의 이름을 들었을 때 뭔가 굉장한 리액션을 해야 했나.

그러고 보니 뭔가 ‘헉! 당신이 여기에 있다니!’ 하는 식의 연출이 나와야 할 때였던 것 같기도?

하지만 재키 록우드라는 이름을 들었음에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머릿속이 간질거리기는 하는데 뭔가 이거다, 싶은 게 없달까.

확실히 이름을 대면 알 법한 유명 헌터 같기는 한데, 문제는 내가 미국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럴 때는 뻔뻔하게 나가는 게 답이지.

[뭐, 어떤 반응을 원하는 겁니까?]

내 말에 니키가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그러게. 이게 보통의 자기소개겠지. 나도 참, 내가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고 산단 말이지.]

━착각이 아닐 것 같은데.

‘그야, 그래 보이긴 하네요.’

내가 미국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게 맞지 않을까. 와중에 한서현이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하고 있는 걸 보니 또 번역기를 사용해 우리 대화를 어떻게든 해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혹시 그러면 블랙 코멧이라는 이름 들어 본 적 없어?]

블랙 코멧? 검은 혜성이라.

━모르겠냐?

‘예…….’

━너도 미국에 아는 헌터라곤 테이카밖에 없구나.

‘그야, 미국 각성자 쪽은 제 담당이 아니었다니까요!’

영어를 가르쳐 놓은 주제에 미국 쪽은 다른 놈한테 맡겼단 말이다.

출장도 거의 중국으로만 갔고.

큼큼, 어쨌거나 니키의 두 번째 자기소개는 그렇게 끝이 났다. 여기에서 서로 갈 길을 가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니키는 나를 보며 내 이름을 물었다.

[그럼 그쪽 이름은?]

[저번에 가르쳐 주지 않았나요?]

[가명일 게 뻔한 이름을 가르쳐 주긴 했지.]

너무하네. 누군가는 정말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래도 너무 가명의 대명사 같은 이름이긴 하지. 실제로 가명이 맞았고.

적당히 다른 이름을 던져 주면 그만이지만, 쉬이 입이 열리지 않았다. 이름을 가르쳐 주는 데에도 뜸을 들이는 내 모습에 니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르쳐 주기 싫은 거면 괜찮아. 대신 확실하게 이 상황을 설명해 줬으면 좋겠어. 아까는 당황스러워서 그냥 넘어갔지만,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일이 한둘이 아니어서 말이야.]

확실히 납득이 가능한 답이 필요하다 이건가. 그에 대한 답을 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이 상황에서 니키가 가장 듣고 싶어 할 만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저희는 중국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내 말은 자연스러운 거짓말로 이어졌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메이저 저스틴 호텔&카지노가 중국 갱단의 자본에 넘어갔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 카지노에서 불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니까.

특히 슬롯머신에 사람들을 현혹하는 아티팩트가 설치되어 있다는 말에 니키는 혀를 찼다.

[젠장, 어쩐지 여기 사람들이 슬롯머신에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으음, 확실히 그렇죠.]

[그럼 그쪽은 중국에서부터 이 일을 수사하러 온 거고?]

[예, 대충 원하던 진실은 찾았습니다만, 아직 알아내야 할 것들이 더 많네요. 수사에 관련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요.]

어느 정도의 진실을 섞은 내 거짓말에 니키는 홀딱 넘어왔다. 굳이 능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럼 그쪽은 이제 어쩔 생각이야?]

[저는 이곳에서 남은 자료를 정리하고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갈 생각입니다.]

[다른 피해자들이라니?]

[저택에 저와 함께 끌려간 사람들이 있거든요.]

[아, 맞다. 그 사람들이 있었지?]

나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니키에게 슬며시 말을 던졌다.

[니키 씨는 친구들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친구들이 걱정하고 있을 텐데요.]

[그렇겠네.]

니키가 화들짝 놀라 나에게 말했다.

[휴대폰 빌려 줄 수 있어?]

니키에게 나는 순순히 휴대폰을 빌려 주었다. 이걸로 내 연락처 또한 노출되겠지만, 어차피 미국에서 뜰 때 버릴 휴대폰이었으니까. 친구들에게 무어라 연락을 한 니키는 나를 향해 말했다.

[여기서 남은 자료를 조사해야 한댔지? 조사하러 가.]

[예, 니키 씨는…….]

[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일 봐. 나는 여기에 앉아 있을 테니까.]

니키는 의자에 앉듯이 쓰러진 시체를 걷어 내고 의자에 앉았다.

역시 프로 헌터.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태도에 나는 감탄했다.

뭐, 어쨌든. 나는 한서현과 김재호에게 말했다.

“2층으로 가자.”

이곳 2층에는 다이애나가 꼭꼭 숨겨 놓은 비밀 금고가 있었다. 나는 비밀 금고의 문을 열었다.

금고 문을 연 한서현이 감탄했다.

“와우. 여기가 진짜 노다지였네요.”

그곳에서 우리는 엄청난 양의 현금과 귀금속, 그리고 여러 가지 서류를 입수할 수 있었다.

아무런 정보도 찾을 수 없었던 저택과 달리, 이곳에는 손을 대는 곳마다 귀중한 서류들이 튀어나왔다.

다이애나는 자신이 해성회에 놀아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고, 안타깝게도 그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았다.

일의 결정권은 그녀가 아니라 중국의 해성회에 있었으니까. 물론 다이애나 또한 그냥 놀아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이애나는 해성회 몰래 뒤로 계속 돈을 빼돌리며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다이애나는 성공적으로 독립했을 거다. 적사회에게 몰린 해성회는 힘을 잃었을 테고 해외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없게 되었을 테니까.

나는 그 서류들을 대충 챙겼다. 어차피 이번 일을 나 혼자 수습하기에는 늦었다. 마약의 처리를 부탁하면서 같이 넘겨주면 되겠지.

금고 안에 있는 귀금속과 현금은, 한서현을 통해서 챙기기로 했다.

“저 이것 좀…….”

“……예.”

영 쌀쌀맞은 태도로 한서현은 내가 건네는 귀금속을 모래 안에 집어넣었다. 이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도 김재호는 해맑았다.

“우리 부자다!”

김재호의 말에 나는 위기감을 느꼈다.

‘요새 재호가 자꾸 돈돈거리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팔아먹어야 한다며, 사인을 받아 가지 않았냐?

언제부터 우리 재호가 이런 자본주의의 노예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한 거지?

━내 생각에는 네가 카지노에 온 게 망조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카지노는 죄가 없습니다!’

━죄가 없기는!

정말 나 때문인가? 나는 김재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김재호의 눈은 여전히 맑기만 할 뿐이었다. 더러운 자본주의의 때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아직 고칠 기회는 충분히 있단 뜻이었다.

충분히 비밀 금고를 턴 우리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옆에서 느껴지는 한서현의 원망 섞인 시선을 무시하며 나는 니키에게로 갔다.

[이제 저희는 저택으로 갈 겁니다.]

[오, 나도 같이 가.]

[같이요?]

[그래! 설마 나 혼자 여기에 떨궈 놓고 갈 생각은 아니지?]

“저 사람도 데리고 가요?”

니키의 말에 한서현이 나를 향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에 떨궈 놓고 가는 건…….”

“아까 휴대폰 빌려 줬잖아요. 친구들더러 오라고 하면 되지.”

“친구가 무슨 콜택시냐, 여기로 오라고 하게.”

“보스는 나 콜택시로 쓰는 것 같은데…….”

삐쳤구만, 삐쳤어. 아주 단단히 삐쳤네. 하지만 다행히 말만 그렇게 한 건지, 한서현은 순순히 니키를 모래 새 위에 태워 주었다.

[우와! 이거 끝내주는데?]

니키의 칭찬에도 표정이 펴지지 않는 걸로 보아, 이번에는 정말로 삐친 모양이었지만. 뭐…….

다이애나의 저택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존부터 찾았다. 창고의 바깥에서 종종걸음을 치고 있던 존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밝은 얼굴로 달려왔다.

[오셨네요!]

[예, 잘 있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아, 다들 깨어났어요! 안 그래도 다들 화를 너무 내서…….]

쾅, 쾅쾅!

창고의 문이 들썩거렸다.

[뭡니까, 저건.]

[저, 저를 때리려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가둬 놓으면 어떡합니까?]

[하하하.]

존은 배시시 웃으면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얘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아닙니다. 존은, 존은 좋은 사람이라고요!’

워낙 험한 삶을 겪어서 조금 삐뚤어졌을 뿐이다.

나는 창고의 문을 곧바로 열었다. 내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은 경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그쪽은!]

[당신도 한패!]

어쩐지 익숙한 전개였다.

[오해하지 마세요. 구하러 온 거니까.]

[맞아, 나도 구하러 왔더라고.]

니키는 뒤에서 손을 흔들었다. 정신을 차린 피해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있는 니키 씨한테 들으세요.]

[나한테?]

[예,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여기에는 이동 수단도 있으니 저 사람들을 안전한 데까지 데려다주는 것도 부탁드릴게요. 제가 구해 드렸잖습니까.]

완전히 지쳐 버렸다. 더는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니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해? 내가 알아서 나온 것 같긴 한데…….]

[아잇, 어쨌든 여기까지 데리고 와 줬잖습니까! 부탁드립니다!]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냐.

‘지쳤다고요! 쉬고 싶다고요!’

내 피곤한 표정을 본 니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지금부터는 내가 책임진다! 피해자분들은 다 여기로 오세요.]

상황에 맞지 않는 경쾌한 목소리로 니키는 피해자들을 다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제 이 넓은 저택에 남은 사람은 한서현과 김재호, 그리고 존뿐이었다.

[존 스미스 씨는…….]

존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찌르르 때늦은 죄책감이 올라왔다.

[일단 저랑 잠깐 말 좀 나누시죠.]

갈 곳이 정해져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존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게다가 저들과는 달리 다이애나에게 속해 있던 사람이기도 하고.

니키와 사람들이 떠나고 존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다이애나는 정말 죽었습니까?]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존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후련하다고 말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존은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무리 자신을 멋대로 휘두른 사람이라고는 해도 살을 붙이고 산 세월이 있는 만큼 정이 안 들 수 없었겠지.

[들으면 정말 우습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다이애나마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왠지 쓸쓸해서요. 이상하죠, 그 사람은 진짜 나쁜 사람이었는데. 나한테도, 다른 이들에게도 끔찍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존의 마음을, 나는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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