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18화 (218/352)

제218화

#59 잘하거든요, 이런 거 (6)

그 뒤로 쓰러져 있는 각성자들의 수가 상당했다. 니키에게 맞아 나가떨어진 사람들의 상태는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사람에게 맞았다기보다는 거대한 무언가에 치인 형태를 하고 있었으니까. 부서진 파편을 따라간 곳에서 우리는 방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의자 하나와 거대한 아티팩트, 그리고 그 주변으로 각종 약물이 든 캐비닛이 있는 방이었다.

실험실을 떠올리게 하는 비주얼에 김재호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의자 위에는 복잡해 보이는 거대한 아티팩트가 있었다.

니키는 이 의자에 묶여 있다가 탈출한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알았냐고? 의자에 붙어 있던 구속구가 그대로 뜯겨져 나가 있었거든. 바닥에 떨어진 구속구를 발끝으로 밀어낸 나는 의자를 주변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살폈다.

총 여섯 명의 사람이 이 방 안에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어거스트와 모지아노도 있었다.

‘도대체 여기에서 무슨 짓을 한 거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려면 일단 이들을 깨워야 했다.

다행히 두 사람의 부상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손끝에 전기를 모은 나는 그대로 어거스트의 몸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끄아아!]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른 어거스트가 번쩍 눈을 떴다.

[허억, 허억…….]

[안녕.]

나는 정신을 쉬이 차리지 못하는 어거스트의 뺨을 내리쳤다.

[너, 너는…….]

나를 알아본 어거스트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의아함은 내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니키에 의해 경악으로 바뀌었다.

[여기에서 무슨 짓을 하려던 거야?]

내 질문에 어거스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주변을 둘러본 어거스트의 눈에서 희망이 사라졌다.

[저 여자의 머리에 암시를 심어 놓으려고 했지. 실패했지만.]

[아하.]

자신의 머릿속에 암시를 심으려 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니키는 덤덤해 보였다.

[이 개자식이……!]

아니, 그렇게 보였다.

[어허, 참아요! 참아!]

[저런 말을 듣고 어떻게 참아?]

[지금 여기서 저 남자를 죽여 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잖습니까.]

나는 겨우 니키를 말릴 수 있었다. 어거스트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 여기에서 살아 나가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날 죽일 거잖아? 응?]

[그래, 그리고 그 전에 네 놈이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줄 수도 있지.]

내 말에 어거스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꿀꺽 침을 삼킨 어거스트가 내게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털어놨다.

어거스트는 이곳에서 보스의 명령을 받고 니키에게 암시를 걸려고 했단다. 물론 그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저 아티팩트가 있다면, 허접한 그의 능력으로도 완벽한 암시를 걸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암시를 위해서는 니키를 깨워야만 했다는 거였다.

[정신이 깨어 있지 않으면, 내 암시는 통하지 않으니까.]

정신을 잃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우리도 예상했어, 저 여자가 강할 거라고. 그래서 온몸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약을 썼다고. 그런데도, 그런데도 저 여자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건, 니키가 강해도 너무 강했다는 거였다.

약물에 절은 채로 웬만한 육체 강화계들도 뜯지 못할 구속구를 단번에 박살 내다니. 나는 니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저 사람…….

니키는 어거스트의 말을 들으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어거스트의 말을 모두 들은 나는 천장에 설치된 아티팩트를 바라보았다.

인간의 갈비뼈처럼 생긴 여러 개의 촉수 가운데에 설치된 거대한 눈의 형상을 한 아티팩트는 확실히 범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두 눈에 마력을 실어 아티팩트를 확인했다.

=====

엔켈라두스의 눈 / B급

------

설치형ㆍ보조

전설적인 아티팩트의 복제품

축복받은 장인이 섬세한 솜씨로 원본 아티팩트의 기능을 살려 냈다

연결된 이의 재능을 증폭ㆍ강화한다

복제품인지라 내구도가 약한 것이 흠이다

=====

아니, 전설적인 아티팩트의 복제품이라니.

간혹 기존의 아티팩트를 복제할 수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거의 도시 전설급의 이야기였다. 왜냐? 이미 만들어진 아티팩트의 마나 회로를 정확히 읽어 내고 그걸 열화된 재료로 어떻게든 따라잡았다는 뜻이니까.

일단 첫 번째 조건부터가 말이 안 된다. 고등급의 아티팩트일수록, 그 안에 새겨진 마나 회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읽어 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박상철이 사용했던 마검의 마나 회로조차 읽어 내지 못하고 결국 폐기 처리했던 것이 그 예다.

나는 고성능 아티팩트 그 자체, 레이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실패했던 일을 이 아티팩트를 만든 놈은 해냈다는 거다.

그리고 이 아티팩트를 만든 건…….

━이걸 만든 것도 그 녀석이다. 네가 찾고 있는 녀석.

‘꼭 찾아서 데리고 와야겠죠?’

흥분을 겨우 억누른 나는 주머니에서 아티팩트를 꺼내 어거스트에게 보여 주었다.

[이걸 만든 사람을 알고 있나?]

[몰라. 하지만 우리 보스라면 알고 있겠지.]

[보스라면, 다이애나?]

[여기에 있으니 직접 물어보지 그래?]

다이애나가 누구냐고 어거스트에게 물을 필요도 없었다.

여기에 있는 여자는 한 명뿐이니까.

‘중년일 줄 알았는데…….’

존 스미스를 정부로 두었다기에 나이가 꽤 있을 줄 알았는데, 다이애나라는 여자는 기껏해야 이십 대 후반처럼 보였다. 각성자라면 이상할 정도의 동안도 설명이 되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각성자 같지도 않았다. 문제는…….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다이애나의 배에는 거대한 금속 조각이 꽂혀 있었다. 상처에서부터 흐른 피가 축축하게 바닥을 다 적셨을 정도다. 나는 손가락을 다이애나의 코끝에 댔다.

희미하지만 숨결이 느껴졌다. 문제는…….

‘포션을 써도 이 여자를 살릴 순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상태로 뒀다간 그대로 목숨을 잃을 거다.

이러나저러나, 죽을 거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서현아, 포션 줘.”

“그 사람은 각성자가 아니잖아요.”

“응.”

포션은 이 사람에게 독처럼 작용하겠지. 그래도 이 여자에게는 꼭 들어야 할 대답이 있었다.

“재호랑 서현이는 잠깐 이 인간 데리고 나가 있어.”

나는 어거스트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뭘 할 생각인데요?”

“간단한 심문?”

그리고 고문? 다이애나가 순순히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준다면 모르되, 입을 굳게 다문다면 거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내 질문에 한서현은 할 말이 많단 표정을 지었지만, 이번에도 난 한서현을 외면했다.

━업보 스탯을 이런 식으로 계속 쌓다가는 나중에 정말로 빠앙 하고 터져 버릴 것 같다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잖습니까.’

━끄응, 네가 선택한 일이다. 난 경고했어.

레이의 경고를 들은 뒤에도 내 선택은 똑같았다.

[여기에 있는 인간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 주시죠.]

[그쪽은?]

[전 여기 보스라는 사람이랑 얘기를 좀 나눠야겠습니다.]

내 말에 니키는 어깨로 추정되는 덩어리를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뭘 캐내려고요?]

[이따가 다 말씀드릴 테니, 지금은 제 친구들과 함께 밖에 나가 주실 수 있을까요?]

내 간절한 부탁에 니키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거스트와 다른 이를 짊어 맨 세 사람이 지하를 빠져나가는 걸 확인한 나는 다이애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 사람을 빼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이어질 일은 아주 지저분할 예정이었으니까.

나는 다이애나의 배를 관통한 금속 조각을 빼내고 포션을 뿌렸다. 내장이 찢기고 불타는 엄청난 고통에 다이애나가 눈을 까뒤집으며 정신을 차렸다.

[끄아아악!]

고통에 다이애나가 나의 팔을 쥐어뜯었다. 순식간에 팔뚝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빌어먹을…….]

다이애나는 피를 뱉어 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안녕.]

[넌 누구야.]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닐 텐데.]

주변을 둘러본 다이애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자신의 상처가 위독하다는 걸 깨달은 그녀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당신의 카지노 슬롯머신에서 이런 게 나왔던데.]

나는 다이애나에게 주머니에서 꺼낸 아티팩트를 보여 줬다.

[이건 어디서 넘어온 물건이야.]

[크, 큭, 지금 이 상황에 그게 궁금하다고? 씨이, 씨잇X.]

다이애나는 걸쭉하게 욕을 쏟아 냈다. 어깨를 으쓱거린 나는 곧바로 다이애나의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끄아아악!]

[죽기 전까지 고통에 시달리고 싶은 건 아니잖아, 안 그래?]

다이애나는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나는 끈적하게 떨어지는 붉은색 액체를 손등으로 훑으며 미소를 지었다.

[원한다면, 당신이 조금도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 줄 수도 있어.]

나는 다이애나의 배 쪽으로 다시 손가락으로 올렸다.

[다시 한번 묻지. 이 아티팩트는 어디에서 얻은 거야?]

다이애나는 나를 바라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떤 수를 써서든 내게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다이애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중국의 조직에게서 받은 거야.]

[그 조직의 이름은?]

[우리는 그 인간들을 바다의 별이라고 불렀지.]

다이애나는 그들의 이름을 ‘해성회’라고 말했다. 이곳에 자금을 댄 것도, 기술을 지원해 준 것도 모두 그들이라고. 나는 다이애나가 내뱉는 정보들을 하나하나 머리에 새겼다.

[나는 그 사람들의 말만 들었을 뿐이야.]

다이애나는 피를 내뱉으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게 당신이 저지른 일의 변명은 되지 않지.]

[난, 그놈들을 강제로 도박판에 앉히지 않았어! 어차피 내가 아니었더라도 지옥으로 떨어졌을 인간들, 큭…….]

다이애나는 피를 내뱉었다. 포션으로 잠시 숨을 붙여 놓았을 뿐, 다이애나의 목숨은 이제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필요한 정보를 모두 얻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이애나는 내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나는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다이애나가 처절히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죽길 바랐다. 아주 외롭고 쓸쓸히.

그때 다이애나가 입을 열었다.

[내 저택? 거긴 아무것도 없어, 여기에 내 모든 게 있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왜냐, 다이애나의 저택에 있는 한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이애나가 저택을 걱정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미 본인의 목숨이 죽어 가는 상황에 뭐가 그리 걱정되겠나.

[이렇게 말해도 믿지 않을 테지만……. 정말로 거긴 아무것도 없…….]

피를 토한 다이애나가 몸을 축 늘어트렸다. 다이애나의 숨은 그걸로 끝이었다.

갱단을 이끌며, 화려한 호텔과 카지노를 운영하던 사람의 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한 결말이었다.

다이애나를 바라보던 나는 걸음을 옮겼다.

‘중국에 한 번 들르긴 해야겠네요.’

━지금 할 말이 그것뿐이냐?

‘그럼 뭐라고 합니까? 새삼 저 여자의 죽음을 슬퍼해요?’

그래도 존 스미스를 조금은 아꼈을지 모르겠다고 말해? 저 여자만 아니었더라면 존은 내가 있었던 나락까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동생의 빚으로 존을 협박한 것도 그래서 그를 자신이 있는 어둠으로 끌어내린 것도 모두 저 여자가 저지른 짓이었다.

‘그러니까 절대로 저 여자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전.’

그리고 중국에 가 봐야 한다는 것도 진심이다. 장인을 구하러 가기도 해야 하고, 중국에서 이곳까지 손을 뻗친 게 어쩐지 심상치 않았다.

‘적사회를 없앤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하긴, 본래대로라면 이때쯤 중국 본토에 있는 갱단들은 전부 적사회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거다.

‘여유가 생긴 만큼, 바깥쪽으로 사업을 확장한 걸까요?’

겨우 살려 놨더니, 이런 깜찍한 짓을 벌여 놨단 말이지.

어쨌거나 조만간 여유가 생기면 중국으로 가 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깥으로 나온 나를 맞은 건 영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삐딱하게 서 있는 한서현과 김재호.

그리고 다시 내가 알던 모습으로 돌아온 니키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