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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15화 (215/352)

제215화

#59 잘하거든요, 이런 거 (3)

복도에 있는 문을 여는 족족 잭팟이었다. 좋은 의미의 잭팟이 아니라 나쁜 의미의 잭팟이라 문제지.

처음 우리가 열었던 문 뒤에는 쉬고 있던 갱단원들이 있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그놈들을 제압했고, 그다음 문을 열었다.

그곳에 있었던 건, 거대한 실험실, 아니, 마약 제조 시설이었다.

내가 바깥에서 냄새로 짐작했듯, 놈들은 이곳에서 마약을 생산하고 있었다. 플라스크와 각종 가열기구가 늘어선 방 안은 실험실을 방불케 했다. 이런 기술과 능력이 있으면 더 좋은 일에 힘을 쓰지 말이야.

마약 기술자로 보이는 이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바로 손을 들어 올리고 항복했다. 우리를 보자마자 총을 갈기려고 했던 다른 갱단원들과는 달랐다.

나는 그들을 제압해 묶은 뒤 한곳에 몰아 두었다.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바깥쪽에 있었던 갱단과는 결이 달라 보이는 인간들이었다.

뭐랄까, 훨씬 ‘범생이’ 같아 보이는 타입이랄까.

‘제대로 공부를 한 놈들을 데려다 놨다는 거죠.’

실제로 마약을 만드는 데에는 제법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편이었다. 특히 고품질의 마약일수록 더더욱.

저 범생이들이 생긴 것만큼이나 실력이 좋다면, 여기에 있는 마약의 수준도 상당히 높을 거다.

‘혹시 마약도 분석 가능합니까?’

━응? 아티팩트도 아닌 걸 어떻게 분석하겠냐.

그 말에 나는 검지에 찍었던 마약을 쓱쓱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바지에 문질러 닦아도 되는 거냐, 그거.

‘혀에 문질러 닦을 수는 없잖아요.’

━그야, 그렇지.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설을 살폈으나,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마약에 대해서 아는 게 없으니 더 할 말도 없군.

그때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남자 하나가 나를 향해 물었다.

[뭐, 뭘 원하는 겁니까?]

아, 맞다. 직접 물어보면 되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죄다 기절시켰더니, 저 사람들한테도 입이 있다는 걸 깜빡 잊었지 뭔가.

━세상에.

‘크흠. 애초에 다른 놈들은 저한테 말을 걸 기회도 주지 않았고요.’

하지만 눈앞에 있는 녀석은 다르다. 역시 먹물 꽤나 먹은 양반이다 이건가. 지금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길을 찾겠다고 머리를 굴리는 노력이 가상했다.

━왠지 비꼬는 것 같은데…….

레이의 말을 뒤로 하고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녀석과 눈을 맞댔다.

[여기에서 뭘 하고 있었지?]

[보면 알 거 아닙니까, 마약을 만들고 있었죠.]

남자의 목소리에는 힘이 몽땅 빠져 있었다. 말투가 까칠한 건 원래 성격인가.

[사람을 하나 찾고 있어. 혹시 여기에 여자 하나가 납치돼서 끌려오진 않았나?]

내 말에 남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여자가 왔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요. 게다가 보통은 여기에 쭉 있어서…….]

[각성자를 납치해서 데리고 갈 만한 공간을 알아?]

나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에서 일하는 동안 보고 들은 게 있을 거 아니야. 한번 잘 생각해 봐. 어쩌면 내게 도움이 되는 사실을 말한다면, 그쪽을 살려 줄지도 모르잖아?]

내 말에 남자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핏기가 가신 얼굴로 입술을 달싹인 남자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각, 각성자를 끌고 갈 만한 곳이라면 한군데밖에 없어요.]

[어딘데?]

[이 건물은 아니고…….]

나는 녀석에게 한 곳의 주소를 들을 수 있었다. 한서현은 내가 불러 주는 주소를 받아 적었다.

“어딘지 알겠어?”

“대충은요.”

스마트폰에 주소를 입력한 한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원하는 정보를 줬으니, 제, 제발 목숨만은…….]

놈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 표정에서 자신의 운명을 짐작한 듯 놈이 소리를 빽빽 질러대기 시작했다.

[어째서! 살려 준다고 했잖아, 살려 준다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놈을 기절시켰다.

━어쩔 생각이냐?

마약을 만들고 유통하는 놈들이다. 여기에서 살려 줘 봤자 어딘가에서 또 똑같은 짓을 하겠지.

“서현이랑 재호는 주변 수색을 좀 해 봐.”

“보스는요?”

“여길 처리하고 나갈게.”

내 말에 한서현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보스 혼자만 처리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하려는 짓이 뭔지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철이 들어도 너무 들었다니까. 나는 툭툭 한서현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떠나기 전에 여기에서 수상한 걸 빨리 찾아야 해서 그래.”

내 말에 눈을 가늘게 뜬 한서현이 방문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나쁜 놈들을 나름대로 처리했다. 다른 방에 있는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처리한 나는 복도로 다시 나왔다.

“보스! 여기로 와 봐요!”

한서현이 날 부른 곳에는 엄청난 양의 마약이 쌓여 있었다.

“와…….”

종이에 잘 싸여 보관된 마약의 양은 적어도 몇백 킬로그램, 아니, 몇 톤은 되어 보였다. 이 정도의 양이면, 몇백만 명의 인구를 마약 중독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시중에 이 마약이 풀린다면 말이지.

━세상에, 많이도 만들어 놨구나.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유통되기 직전에 발견한 모양입니다.’

며칠만 늦었어도 이 마약이 그대로 시장에 유통되었겠지.

━이 많은 마약을, 도대체 뭘 하려고.

‘마약으로 국을 끓여 먹겠습니까, 밥을 해 먹겠습니까?’

━정말 이렇게나 많은 양을…….

사람들이 투약하느냐고? 그렇다. 정말로 이 많은 마약이 전부 소비된다. 그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지 않는가.

‘게이트 이후에 인구는 줄었지만, 마약의 소비 자체는 더 늘었다는 말을 봤습니다. 게이트 이후에 인생이 망해 버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언제나 말했듯이, 인구가 밀집된 한국은 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게이트 사태에 수많은 국토와 국민을 잃어버렸다. 아직까지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국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국이지만…….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죠.’

괜히 내가 국민의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말한 게 아니다. 미국에서조차 자국민의 빈곤을 해결하지 못했으니까.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는 늘 가난한 자들이, 아픈 자들이, 갈 곳 없는 자들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한 시대라더라구요, 지금이.’

능력 있는 각성자는 게이트 공략 한 번에 수십억을 벌어들이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세상이다.

자신의 안전을 돈을 주고 사는 이 세상에서, 가난한 이는 가장 위험한 곳에 살았고 자신의 생명조차 제대로 지켜 내지 못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땅에 사는 이들은, 그 현실을 잊기 위해서라도 마약에 매달렸다.

‘그러니 예, 이 정도로 많은 양이 유통될 만도 하죠.’

━저기 말이다.

‘왜요.’

━……마약 사업 말이다, 계속해야겠냐?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예전의 네 녀석에게는 선택지가 없었겠지. 그래, 그때에는 돈을 제대로 벌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게이트를 공략해서 수익을 낼 수도 있고, 도박, 그래. 네 녀석이 잘하는 도박을 해도 돈을 잘만 벌잖냐!

어지간히 내가 마약 사업에 손을 얹고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말투다. 하긴, 눈앞에서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충격이 될 만도 하지.

‘일단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약을 둘러보고 있는 내게 한서현이 물었다.

“이건 어쩌죠?”

“다 없애야지.”

국가에서 마약을 압수하는 경우, 대부분 소각을 통해 마약을 처리한다. 가수분해법이나, 희석법 등등으로 마약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그건 너무 번거롭지.

“바깥으로 옮겨서 처리하는 게 좋겠지만…….”

지하 1층으로 가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되도록 여기에서 처리해야지.

“여기에서 불을 지르겠다고요?”

내 계획을 들은 한서현이 기겁했다.

“어떻게 주변으로 불이 번지지 않게 잘 컨트롤하면 가능할 것 같은데…….”

“이 좁은 데에다가 불을, 불을 지른다니.”

“유사시에는 네가 모래로 덮어서 불을 꺼 주면 될 거 아니냐.”

“……나갈 때 해요. 혹시 불이 번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

마약은 나가는 길에 처리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나가기 전, 우리는 복도에 있는 모든 방을 살피기로 했다.

“여기 뭐가 있다.”

김재호가 불러 향한 곳에는 카지노에서 봤던 슬롯머신이 늘어서 있었다. 여기에 있는 슬롯머신들은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낡고 고장 난 슬롯머신을 한군데에 모아 놓는 이유가 뭘까.

“그냥 고장이 나서 여기에 둔 게 아닐까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 생각해 봐. 우리가 지하 1층에서 2층까지 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심지어 여기는 엘리베이터도 오지 않잖아.”

“아, 그러네요.”

단순히 고장이 난 기계를 보관하기 위해서 그 번거로운 과정을 모두 거친다?

“이 슬롯머신에 뭔가가 있다는 게 더 타당한 설명이겠지.”

“겉으로 봐서는 그냥 평범한 슬롯머신인데요.”

“겉이 아니라 속이 특별할 수도 있지.”

그리고 아티팩트라면 분석이 가능한 만능 레이가 내겐 있지 않은가. 마약을 분석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이건 전문 분야니까…….

━확실히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은 분해를 해 봐라. 내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는 게 있어서 내부를 살펴볼 수가 없는 것 같으니.

그 말에 나는 슬롯머신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깡!

“부, 분해한다더니…….”

“이게 빠르잖아.”

마력을 실은 주먹을 휘둘러 슬롯머신을 박살 낸 나는 슬롯머신의 겉 부분을 떼어 내기 시작했다. 안쪽은 여러 개의 부품과 전자회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다지 특별한 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려고 할 때였다.

슬롯머신의 내부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에 나는 곧바로 슬롯머신의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안쪽에서 내가 꺼낸 것은 내 손바닥의 반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아티팩트였다.

아티팩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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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 저하 회로 / B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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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형ㆍ보조

사용자에게 혼란 상태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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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창의 설명은 간결했지만, 그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템의 이름부터, 내용까지.

‘슬롯머신에 아티팩트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나는 옆에 있는 슬롯머신도 부숴 안쪽에서 마나 회로를 꺼냈다. 내 행동을 빤히 보던 김재호와 한서현도 나를 따라 주변에 있던 슬롯머신을 부쉈고 그 안에서 모두 같은 아티팩트를 꺼냈다.

“이게 뭔데요?”

“슬롯머신에 아티팩트가 설치되어 있었어.”

나는 김재호와 한서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냥 사람들이 슬롯머신에 중독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티팩트로 더더욱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 거죠.’

가뜩이나 중독성이 강한 도박에, 이런 짓까지 하다니…….

“카지노에 설치된 게임 기계에 이런 게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나는 아티팩트를 모두 챙겼다.

“일단 나가자.”

이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살펴보았고, 그로 인해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아무래도 이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는 놈들, 살 가치가 없는 것 같죠?’

━커흠, 뭐…….

레이조차 이렇게 말할 정도니, 답은 확실하게 나왔다.

‘빨리 이 카지노의 주인을 만나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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