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화
#59 잘하거든요, 이런 거 (2)
우리는 카지노의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로 침투했다.
카지노에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들의 눈을 피해 비상계단으로 가는 것까지는 쉬웠지만, 문제는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비상계단으로 가는 거였다.
‘원래대로라면 계단이 이어져 있어야 하지만, 여긴 계단이 이어져 있지 않네요.’
원래 있었던 계단은 막고, 다른 쪽에 다른 계단을 두어 지하 2층으로 이어지게끔 했다.
그 계단으로 가려면 지하 1층의 중심부를 가로질러야 했고 말이다.
지하 1층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지하 2층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만능 서현에몽, 아니, 한서현의 감시 시스템이 있다면 말이 다르지.
“아무리 내가 저길 훤히 볼 수 있다고 해도, 아무한테도 안 들킬 수 있는 루트를 짜는 건 말이 다르거든요? 저기에 몇 명이나 돌아다니는지 알아요?”
한숨을 쉰 한서현이 내게 말했다.
“그냥 다 때려잡고 들어가면 안 돼요?”
내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지하 1층을 돌파한다는 작전을 짠 것은 적을 치는 데에 은밀한 습격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괜한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카지노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고 정말 자신이 일반적인 카지노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아니면 대충 이 안에서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생계 때문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
실제로 이 카지노는 지역 경제를 담당하는 대들보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이곳 출신 주민이니까.
크게 봐서 이 지역의 경제를 살리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이 카지노에서라도 일하지 않으면 당장 백수가 될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다.
“어떻게 안 되겠냐?”
“정말이지…….”
내 말에 한서현이 눈을 흘기며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되도록 선량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자는 거잖아요.”
한서현은 내 말을 단번에 요약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는 폭력적인 상황을 즐기는 사람처럼 말해 놓고는.”
“그거야…….”
“송진이 형을 겁주려고 그런 거죠?”
왜 갑자기 ‘확실히 나쁜 놈에게 나쁜 짓을 하는 건 기분이 좋긴 하죠’ 같은 말을 하나 했더니. 그냥 차송진을 놀릴 생각은 아니었다는 건가.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내 말에 한서현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래도 덕분에 편했잖아요, 안 그래요?”
그 말에는 아니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한서현이 거들어 준 덕분에 분위기가 좀 밝게 풀리기도 했고…….
내 얼굴을 살피던 한서현이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말했다.
“어쨌든 알았어요. 최선을 다해 볼게요.”
“해 보고 안 되면 말해.”
“됐어요! 꼭 해 볼 테니까, 조용히 하고 있어 봐요.”
그렇게 말을 던진 한서현은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김재호와 나는 한서현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입을 닫고 있었다.
감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한서현이 끙끙대길 십여 분.
“됐어요.”
한서현의 말에 내가 한서현을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정확히 내가 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해요, 알겠죠?”
“어!”
우리 둘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본 김재호는 슬쩍 내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이런.’
저런 사기적인 기술이 없는 우리는 일일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피해 갈 수밖에 없었다.
비상문을 연 한서현은 내게 눈짓했다. 나는 한서현을 따라 쭉 걸었다. 지하 1층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마자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서현이 안내하는 대로 걸었다. 때로는 성큼성큼, 때로는 슬금슬금. 멈춰야 할 때 한서현은 내 앞에서 손을 들어 올렸고, 나는 얼음 빔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그때마다 걸음을 멈춰 섰다.
때때로 직원이 우리를 발견했을 뻔한 적도 있지만, 그 또한 한서현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산된 움직임이었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움직임에 나는 경쾌한 기분을 느꼈다.
꼭 잠입 영화에 나오는 특수 요원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거 꽤 스릴 있는데.”
이제 거의 다 왔다 싶어 내가 긴장을 놓은 그때. 한서현이 내 손목을 잡아 나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흡!”
조금 전까지 닫혀 있었던 문이 갑자기 열리며 그곳에서 웨이터가 나타났다.
[이거 누가 위로 올려 보냈어?]
[무슨 일인데?]
[수건에 얼룩이 남았잖아!]
[이런.]
갑자기 등장한 남자에게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테이블 뒤에 숨은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던 남자가 사라진 뒤, 한서현은 나의 손목을 잡고 빠르게 걸었다.
“헉, 헉.”
마침내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을 때 나는 한서현과 함께 기쁨의 환호성을, 소리 없이 내질렀다.
━꼭 가스 불에 구워지는 오징어 같구나.
레이의 가차 없는 평가도 우리의 기쁨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잘했다, 서현아!”
“제가 생각해도 좀 끝내준 것 같아요.”
그냥 다 때려잡고 왔다면 이런 스릴은 느낄 수 없었겠지.
지하 2층까지 우리는 그 누구와 마주치지 않고 내려오는 데에 성공했으니, 이제 남은 건 지하 2층을 쓸어내는 것뿐이다.
힘든 구간이 끝나자 슬쩍 다시 모습을 드러낸 김재호가 계단에 주저앉은 나와 한서현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렇게 들어오기 힘든 걸 보니, 무언가 뒤가 구린 짓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멀쩡한 비상계단을 막고 따로 계단을 뒀을 리가.
계단에 주저앉은 나는 한서현에게 눈짓으로 바깥의 상황을 물었다.
“문을 열자마자 나오는 복도에 두 명이 있어요. CCTV는 복도에 총 세 군데 설치되어 있고요.”
확실히 아무나 오갈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인 지하 1층과는 달랐다. 계단을 열자마자 경비원이 우리를 마주할 거란 말인가.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감시카메라부터 막아 둬.”
내 말에 한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현의 모래가 문틈으로 들어갔다. 이걸로 CCTV 걱정은 끝이다. 실시간으로 CCTV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이상을 눈치챌 수 있겠지만, 이상을 눈치채기 전 우리가 그쪽을 제압하는 게 빠를 거다.
“내가 문을 열고 시선을 끄는 사이, 두 놈을 다 한 번에 처리하는 거야.”
“죽여?”
김재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죽이진 말고 일단은 기절.”
여기에서 일하는 걸 보니 뒤가 구린 놈들임은 틀림없지만, 일단 상황을 판단하기 전에 섣부른 인명 살상은 피할 생각이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재호는 그대로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미리 말했던 대로 나는 비상계단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나를 보고 총구를 들이미는 놈들을 보며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놈들이 나를 향해 총을 갈기는 것보다, 그림자에서 김재호가 튀어나오는 게 빨랐다. 김재호에게 시선이 쏠린 순간, 나 또한 전속력으로 거리를 좁혀 눈앞에 보이는 놈의 배에 니 킥을 꽂아 넣었다.
[크윽!]
놈은 괴로워하면서도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귀찮게 됐군. 놈의 뒤로 돌아선 나는 팔뚝에 놈의 목을 끼운 뒤 그대로 경동맥을 눌러 기절시켰다.
━이야, 그런 실전을 겪고 나더니 아주 실력이 일취월장했구나.
확실히 김재호에 비하면 이쪽은 너무 쉽지.
나와 김재호는 기절한 사람을 끌어 대충 계단과 연결된 방에 던져 놓았다. 당분간은 깨지 않을 거다.
그사이 짧은 정찰을 마친 한서현이 우리 둘을 이끌었다.
“이쪽인 것 같아요.”
계단에서 이어진 복도는 또 다른 복도들로 이어졌다. 지하 2층은 마치 미로처럼 보였는데, 본래는 넓었던 공간에 가벽을 세워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눠 놓은 것 같았다.
좁은 복도에는 짐이 잔뜩 쌓여 있어, 시야가 그리 좋지 않았다. 환기도 잘되지 않는 듯 위층보다 훨씬 갑갑했다.
아니, 단순히 환기가 안 되는 정도가 아니다.
공기 중에 희미하게 섞여 있는 특이한 냄새를 맡은 나는 그 즉시 얼굴을 찌푸리며 걸음을 멈췄다.
‘이건…….’
“왜 그래요?”
옆에 서 있던 한서현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딘가에서 구린내가 나서 말이야.”
내 말에 재호가 황급히 외쳤다.
“나 아니야!”
“……너 아닌 거 알아. 저쪽 복도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그래. 그러니까 마스크, 절대로 벗지 마.”
나는 두 사람에게 단단히 경고해 두었다.
마스크에는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도 있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오자마자 두 사람을 돌려보낼 뻔했다.
━대체 무슨 냄새를 맡은 거기에 이렇게 화들짝 놀라는 거냐?
‘이건 마약을 제조할 때 나는 냄새입니다.’
합성마약을 만들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복도에 진동했다. 마력을 올려 감각을 올리니 정신이 어지러워질 정도였다. 닫힌 문을 뚫고 이런 냄새가 날 정도라니. 이곳에서 마약이 제조된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주변에서 마약을 하는 사람을 보진 못했으니, 이곳에서 유통되는 건 아닐 겁니다. 판매처가 따로 있겠죠.’
합성마약은 원료가 값싸고 원료를 따로 들여와 쉽게 제조할 수 있는 편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 어디에서든 제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대놓고 만들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내 굳은 얼굴에 레이가 슬쩍 말을 던졌다.
━너도 마약 산업에 뛰어든 주제에 엄청나게 싫어하는구나.
과거 나는 중국의 은월회에게 은혜를 입혀 두었고, 흑표파와 은월회 사이의 마약 거래에 지분을 얻어 두었다. 직접적으로 마약을 만들거나 유통하지는 않아도, 마약 산업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마약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테이카 쿠퍼의 말대로 마약은 사람들의 인생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있는 위험한 거였고…….
특히 각성자용 마약을 오용한 일반인들의 피해는 말도 못 하게 컸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약 사업에 손을 얹은 거?
‘돈이 필요했으니까요.’
━그 일이 아니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냐.
레이의 그 말에 나는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다.
변명 거리는 많았다. 그때에는 그 방법밖엔 보이지 않았다든가, 어차피 이 세계에서 마약을 뿌리 뽑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누군가는 그 판에서 돈을 벌 텐데 나도 끼어들어서 돈을 같이 버는 게 뭐가 나쁘냐든가.
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나는 그냥 돈에 양심을 팔아넘긴 인간이고, 그게 맞는다는 거.
“구린내라니. 정확히 말해 줘요, 대체 무슨 일인데요?”
하지만 나에게 그렇게 묻는 한서현을 보자 숨이 턱하고 막히는 걸 보니, 내게도 아직 팔아넘기지 않은 양심이 아주 조금은 남은 모양이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정리한 채로 한서현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마약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마약이요?”
“그래.”
“그렇담 큰일이잖아요?”
한서현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 사이에도 선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