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58 사기꾼과 거짓말쟁이 (4)
‘나 왜 이거 잘하냐?’
에디는 자신의 앞에 놓인 공책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이 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만듦새가 그럴싸했다.
처음에 수업에 필요한 교과서를 직접 만들라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는데, 만들다 보니 재미가 붙어 버렸다. 결과물이 생각보다 좋게 나오니 더 신나기도 했고.
말로는 뭐든지 잘하는 남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긴 했지만, 이날이 올 때까지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 걱정했지만,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에디가 만든 교과서는 그만큼 끝내줬으니까.
공책을 펴자마자 나오는 첫 장에 그려진 알파벳은, 에디가 특히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이었다.
커다랗게 쓴 알파벳 옆에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에 맞는 그림을 그려 뒀는데, 검은색 볼펜 하나만을 사용했음에도 특유의 둥글둥글한 글씨체와 그림체 덕분에 상당히 멋졌다.
그 뒤로 이어진 다음 페이지도 이전 페이지와 마찬가지로 끝내줬다.
에디는 색연필과 색지, 스티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오직 검은색 볼펜 하나만을 사용해 빈 공간을 채웠는데, 그 점이 오히려 고풍스러운 멋을 냈다.
마치 고전 영화에나 나올 법한 동화책을 보는 것 같달까.
‘내가 그렸지만, 이거 꽤나, 흠, 좀 멋진데, 이거.’
완성된 페이지 수가 늘어갈수록 에디의 콧대도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챕터를 끝나고 자신이 만든 교과서를 다시 한번 살펴볼 때였다.
에디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들어 그림자의 주인공을 확인한 에디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뭐, 뭔데!]
살벌한 표정의 김재호가 자신이 그린 교과서를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자신은 따라오지 못할 멋진 실력이 질투 나서 내 책을 찢어 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김재호에게 한번 호되게 당했기 때문일까. 머릿속에는 그런 부정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김재호가 에디가 만든 교과서를 향해 쓱 손을 뻗었다.
[그,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하라고!]
에디의 간절한 말은, 당연하지만 김재호에게 닿지 않았다. 김재호의 손에 들어간 교과서를 보며 에디가 급하게 자신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번역기를 켜려고 했을 때였다.
“이거 멋지다!”
김재호는 눈을 반짝이며 에디에게 말했다. 누가 들어도 호의가 가득한 말에 에디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지금 그거……, 칭찬이냐?]
“엉, 엄청 멋져!”
번역기도 필요 없었다. 반짝반짝, 별처럼 빛나는 김재호의 눈빛은 누가 봐도 ‘너 대단하다!’고 외치고 있었으니까. 에디는 뿌듯함에 손가락으로 코끝을 훑었다.
[내가 못 하는 게 좀 없는 편이라서. 하하! 무식하기 짝이 없는 네가 보기에도 멋진가 보지? 엉? 끝내주나 보지?]
그 둘이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을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둘을 지켜보고 있는 서늘한 눈동자가 있었다.
와그작, 손안에 쥐고 있던 색종이를 구긴 한서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것도 잘 그렸다! 이것도!”
김재호의 칭찬이 이어질수록 한서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야, 아까 한서현이 만든 교과서를 본 김재호의 감상은 ‘이거, 못 그렸다!’였으니까.
그 말을 들은 한서현의 얼굴이 구겨지자, ‘아니다, 잘, 잘 그렸다! 강아지, 잘 그렸어!’라고 수습하듯 말을 내뱉었지만, 한서현이 그린 건 강아지가 아니라 사자였기에 김재호의 말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서현에게는 상처만을 남긴 김재호가 저 녀석의 교과서에는 칭찬만 남긴다?
‘저놈이 만든 교과서가 얼마나 잘났길래!’
한서현은 물을 뜨러 가는 척, 김재호와 에디가 있는 거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재호의 뒤에 숨어 슬쩍 에디의 교과서를 힐끔거린 한서현은 짙은 패배감을 느껴야만 했다.
슬쩍 보기에도 자기가 만든 교과서보다 훨씬 잘났으니까!
물을 떠서 방 안으로 들어온 한서현은 스티커와 색종이를 덕지덕지 붙여 누더기가 된 자신의 교과서를 보며 성을 냈다.
“젠장!”
어떻게든 저 녀석보다 더 멋진 걸 만들어 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녀석에게는 지고 싶지 않았다.
“재료비는 내가 배는 더 쓴 것 같은데. 어째서!”
한서현이 그렇게 방 안에서 짙은 패배감을 느끼며 고뇌할 때, 차송진은 다른 의미로 자신의 방 안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에디가 만든 교과서가 끝내주든 말든, 한서현이 거기에 패배감을 느끼든 말든. 차송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 그보다 훨씬 더 큰 고뇌가 차송진의 앞에 놓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 하는데!”
강이신이 맡긴 과목 자체가 문제였다.
도덕이라니!
인터넷에 도덕을 검색하면,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 또는 바람직한 행동 기준’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애초에 빌런 집단에서 바람직한 행동 기준을 지키면서 산다는 게 말이 되냐고!’
이 안에 있다 보면 자꾸 잊게 되는 사실이지만, 벨츠머츠는 빌런 조직이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들의 모임이라는 거다.
벨츠머츠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던 범죄들을 차송진은 똑똑히 기억했다.
침대 위에서 무심코 팝콘을 먹었던 일로 한서현에게 털리고 있는 강이신을 보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강이신은 끔찍한 범죄자였다.
‘여태까지 못 해도 수십 명은 죽인 살인마지…….’
강이신의 말대로 억울한 누명을 쓴 적도 있지만, 실제로 벨츠머츠가 저지른 범죄도 많았다.
예를 들어 김 의원 피살사건이라든가.
언론에 퍼진 사진은 모두 모자이크가 된 상태였지만, 발견 당시 시체가 얼마나 끔찍한 꼴이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몇 시간이고 고문하고 또 고문했다지. 살해 현장이었던 사무실에는 며칠이 지나도 피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현장을 살펴보았던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는 현장에서 혼절한 일도 있었고…….
어쨌거나 강이신은 그런 사람이었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변명도 딱히 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말이 전부였지.
강이신의 밑에 있는 한서현과 김재호도 그리 도덕적인 사람은 못 되었다. 한서현은 죽은 사람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네크로맨서였고, 김재호는 강이신의 명령이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살인 병기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니까.
‘이런 애들한테 굳이 도덕을 가르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게 차송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용하기에 더 좋지 않나?
진짜 강이신이 못된 놈이라면, 이런 짓을 할 이유도 없을 텐데.
그게 문제였다. 강이신이 애매하게 좋은 놈이라는 거.
“당신은 좋은 사람이잖아. 뭐가 옳고 그른지, 뭘 해서는 안 되는지 그런 걸 말해 주기에 당신보다 적당한 사람은 없어. 아주 기본적인 거여도 좋으니까,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걸 말해 주면 돼.”
“하지만 그게, 그쪽들은 악당이고…….”
“그래, 우리가 그동안 사람을 좀 죽였지. 알아, 나쁜 짓이라는 거. 그래도 그게 나쁜 짓인 걸 알고는 해야 하잖아.”
그 말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에는 그 말발에 넘어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막상 가르쳐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도대체 뭔 내용을 쓰라고!’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쁜 일입니다, 아! 그렇지만 나쁜 놈은 괜찮아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건 나쁜 겁니다, 하지만 나쁜 놈들의 것은 괜찮아요!
이렇게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나쁜 짓을 나쁘다고 할 생각은 있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강이신은 따지자면 확신범이었다.
쾌락이나, 금전적 이득 따위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라기보다는 자신만의 어떠한 신념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쪽이니까.
하지만 확신범 또한 나쁘다. 그래, 나쁘지.
‘그렇다고 그 양반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너희 보스는 엄청나게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순 없잖아……. 아니, 그걸 원하는 거냐? 그, 그랬다가 살, 살해당하는 거 아니야?’
차송진은 작은 방 안에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고민도 끝났다.
“모르겠다.”
일단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 보자.
벨츠머츠가 저지른 짓은 범죄다.
나쁜 짓이다.
세상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
강이신은 나쁜 것은 나쁘다는 걸 알려 주라고 했고, 차송진은 일단 그렇게 해 볼 참이었다.
‘미리 교과서를 검사받지 뭐…….’
교과서를 검사받은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강이신의 허락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괜찮지 않을까.
그래, 책임은 그 녀석이 지게 하자.
‘음, 음. 그게 보스의 덕목이지. 다 너희 보스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고 말하면 나한테 뭐라고 할 일도 없을 거야. ……없, 없겠지?’
강이신의 말이라면 대충이라도 듣는 애들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한창 교과서를 만드는 데에 정신을 쏟고 있을 때였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아직 밥을 먹을 때도 안 됐는데? 의아함을 느낀 차송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당장 가 봐야 한다니까.”
“보스가 여기에 있으랬잖아.”
한서현과 김재호가 서로 대립하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분위기가 심각해 보였다.
“무슨 일인데?”
차송진의 말에 한서현은 얼굴을 구겼다.
“보스 상태가 안 좋아졌어요.”
“상태가 안 좋아졌다니?”
“정신을 잃은 것 같아요. 순간적이지만, 생체 에너지도 크게 줄었고…….”
그렇게 말한 한서현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 상태에서 계속 이동하고 있는 중이라고요. 정신을 잃었는데 이동 중이라니, 이거 누가 우리 보스를 납치라도 해 가는 거 아니에요?”
“자, 잠깐 그걸 너는 어떻게 아는 건데? 아, 추적을 붙여 둔 건가?”
아무리 보스가 걱정돼도 그렇게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그래도 되는 건가? 강이신의 프라이버시를 걱정하는 모습에 한서현은 짜증부터 냈다.
“지금 그게 중요해요? 우리 보스가 정신을 잃은 채 납치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성을 낸 한서현은 공중에서 스태프를 쑤욱 꺼냈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그 안에서 스태프가 나오는 모습은 참 언제 봐도 신기했다.
아, 얼을 탈 때가 아니다.
차송진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일단, 보스는 우리더러 이 안에만 있으라고 했잖아.”
강이신은 일을 보러 가기 전, 그들에게 이 안에서 머물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강이신의 명령이라면 척척 잘 지키는 김재호가 한서현을 막아선 거겠지.
“정말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떡해요.”
한서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래도 보스인데, 무슨 일이 생겼으려고…….”
무심코 그렇게 말했던 차송진의 머릿속에 피 칠갑이 된 채 기절해 있던 강이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보스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겨우 스물둘밖에 안 된 어린애였지.
게다가 강이신이 간 곳은 카지노! 혹시 그 안에서 또 다른 범죄 조직을 만나 당한 거라면?
“찾, 찾으러 가야겠는데?”
손바닥 뒤집듯이 순식간에 바뀐 차송진의 말에 김재호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그렇지만 보스가 여기에 있으랬잖아.”
여전히 김재호는 강이신이 했던 명령에 매여 있었다. 한서현은 그런 김재호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형은 보스를 믿어?”
“응, 믿지.”
김재호는 한서현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이 나와 의아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래, 나도 보스를 믿어. 무슨 일이 없다면 보스는 늘 우리에게 한 약속을 지킬 거야. 하지만 말이야, 보스한테 무슨 일이 생겨서 여기에 올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떡해? 형도 얼마 전에 보스를 잃어버릴 뻔했잖아.”
그 말에 김재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지금 보스한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단 소리야.”
“그래도 여기에 있으랬는데…….”
“그리고 만약 우리가 보스를 구해 주면, 보스가 얼마나 기뻐하겠어? 마구 칭찬해 줄걸? 형이 보는 만화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던데, 그, 악당한테 잡혀간 인질을 주인공이 구해 주니까 막 다들 좋아했잖아.”
“오.”
그 말에 김재호의 표정이 변했다.
“만약 보스가 위험한 게 아니면?”
“아니면 몰래 돌아오면 되지. 몰래 돌아오면 보스도 아무것도 모를 거야. 우리는 계속 여기에 있었던 거라고 말하면 혼나지 않아도 돼.”
이렇게 대놓고 거짓말을 하자는 걸 말리지 않아도 될까? 그래도 명색이 도덕 교사라서 그럴까, 차송진은 그렇게 곧 이보다 완벽한 작전은 없다는 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동의하지 않으면 자신이 차송진‘이었던’ 것이 될까 봐 두려운 건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다들 무슨 얘기 중인데?]
에디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것도 데리고 가야겠죠?”
한서현의 말에 차송진은 한숨을 쉬었다.
이 긴 이야기를 요약할 생각에 골이 아팠으니까.
차송진은 간단히 이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로 했다.
[보스가 잡혀갔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