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이지만 세계 평화가 소원입니다-208화 (208/352)

제208화

#58 사기꾼과 거짓말쟁이 (3)

다음 판, 게임이 시작되고 패를 확인한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바로 표정을 갈무리하긴 했지만, 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내 반응을 놓쳤을 리 없다.

포커에 진심인 사람들은, 자신의 패를 보는 척하면서도 늘 옆자리를 힐끔거리기 마련이니까.

패가 공개될 때마다 나는 그런 식으로 힌트를 줄줄 흘렸다.

누가 봐도 내게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끔.

내 포커페이스에 몇 번이나 놀아났던 니키는 나를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냐는 듯이.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미소를 지었다.

━저놈들을 속이려면 뭐라든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아니요.’

━말도 없이 저들을 어떻게 속이려고?

‘이곳에서라면 행동으로 충분해요.’

다른 상황이라면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포커 게임이 진행 중인 지금 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서로의 표정, 몸짓, 숨소리를 쉴 새 없이 눈으로 좇고 있었다.

그러니 곧 내 몸짓은 말이나 다름없고, 이 말들이 하나의 밑밥이 되어 쌓이고 쌓이는 거다.

정말로 내게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든, 아니면 내 모든 행동이 허접한 블러핑이라고 생각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게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씨앗을 심어 두는 거다.

나는 무언가 있다는 듯이 계속해서 판돈을 올렸다.

공격적인 내 배팅에 사람들은 당황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그 손에 뭐가 들렸는지 궁금하네.”

말이 없던 50대 중년의 남성도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을 정도다.

“블러핑이라기엔 너무 형편없어서 따라가 주기 싫은데…….”

니키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내 배팅을 받아 주었고, 안경잡이 어거스트 또한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내 레이즈에 따라붙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이 공범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죠?’

━아까 이긴 것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그것도 그렇고, 소심한 체를 하는 주제에 배팅에는 흔들림이 없거든요.’

소심해 보이는 성격 또한 연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뭐, 성격을 속이는 일이야 포커판에 아예 없는 일은 아니지만, 과감한 배팅은 결이 다르다.

무조건 이기겠다는 확신이 없다면, 저런 식의 배팅은 어렵지.

‘제 손에 들린 게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만 아니면, 얼마든지 판을 뒤집을 수 있으니까요.’

━그게 뭐길래?

‘간단하게 말하면 포커 최강의 카드죠. 나올 확률이 말도 안 되게 낮은.’

무늬가 같은 다섯 장의 10, J, Q, K, A로 이루어진 패인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 줄여서 로티플이라고 불리는 패가 뜰 확률은 대략 0.000152퍼센트.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그 패가 지금 뜬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 딜러의 앞에 깔린 패도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에는 맞지 않았고.

그러니 확신을 가지고 내 배팅에 따라올 수 있는 거다.

━다른 사람들도 네 배팅에 휩쓸리고 있는 건 똑같다만.

‘망설임이 있죠, 의심과 고뇌도 있고요. 하지만 저 녀석에게는 그런 머뭇거림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그렇게 몇 번 더 배팅이 진행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공격적인 배팅을 했고, 판돈은 여태까지 진행되었던 것 중에 최고점을 찍어 버렸다.

마침내 모든 배팅이 끝나고, 패를 오픈할 때.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내 재능은 거짓말이다.

밑밥을 깔고, 그 밑밥을 통해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논리에 맞든, 맞지 않든 믿게 하는 능력.

‘부탁드립니다.’

내 신호에 레이는 팔찌를 무력화시켰고, 나는 모두와 눈을 마주치며 쌓아 두었던 밑밥을 터트렸다.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

내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보고 있었던 카드로는 분명 로티플을 완성할 수 없었을 테니까.

“잠깐만, 로티플이라고? 아니, 잠깐만…….”

서둘러 딜러 앞에 놓인 카드를 확인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시 한번 마력을 실어 말했다.

“맞잖아요?”

그쪽이 암시로 사람들을 속인다면, 이쪽은 그 암시를 거짓말로 뭉개 버리면 그만이다.

“마, 말이 안 되는데…….”

어거스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이 손에 든 패와 내 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몇 번을 봐도 마찬가지일 거다.

이미 내 눈앞에는 모두의 자물쇠가 열린 것이 눈에 보였고, 그 말은…….

‘제 거짓말을 모두가 믿고 있다는 뜻이죠.’

아티팩트의 힘을 빌려야 하는 허접한 암시와는 다르다고.

━암시가 걸려 있었을 텐데…….

‘암시라는 건 무의식에 스며드는 거잖아요. 하지만 거짓말은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속이죠.’

거짓말로는 세뇌를 깰 수 없지만, 암시 정도라면 간단하지.

아티팩트의 힘까지 빌려야 할 힘이라면, 내 거짓말보다는 영향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내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그 예상이 틀렸다면?

‘뭐,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여기에서 쫓겨났겠죠.’

어쨌거나 도박이 성공해서 다행이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엄청난 패가 떠서 다들 놀란 건 알겠는데, 언제까지 놀라고만 있을 겁니까?”

내 말에 딜러인 모지아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판을 정리하고 승자를 말해 주는 건 그의 몫이었으니까.

계획이 무너진 상황에서, 저 남자는 어떻게 나올까.

금세 표정을 정리하고 미소를 지은 모지아노가 나를 향해 말했다.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패가 뜨다니. 이거 운이 엄청나게 좋으신 것 같은데요.”

모지아노는 급하게 그렇게 말을 던지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니키는 내 패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게, 나도 로티플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자신만만할 만하네. 축하해.”

“그러게, 기분 정말 째지겠는데.”

“너무 뻔한 블러핑이라고 생각했는데, 저 정도 패라면 표정 관리가 안 될 만도 했네.”

연달아 날아드는 말을 대충 받은 나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패를 섞고 있는 모지아노를 바라보았다.

이번 한 번이, 그저 우연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하겠지. 계획이 어째서 틀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일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네 생각은 틀렸다.

다음 판, 내 패를 확인한 니키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또, 또, 로티플이라고?”

“그러게요?”

“말도 안 돼!”

모두가 나를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나 또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자 대충 넘어갔다.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해도, 내가 이 판을 조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조작이라는 건, 이 포커판에서는 웬만한 용기 없이는 꺼낼 수 없는 단어니까.

“정말 말이 안 될 정도로 운이 좋네.”

니키는 그렇게 말하며 와하하 웃었다.

하지만 그다음 판에도 나는 로티플을 완성했고……. 내 패를 확인한 50대 남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연달아 로티플이 세 번이나 나온다고?”

“저도 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마찬가집니다.”

“됐어, 사기야. 사기가 분명하다고!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저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집니다!”

━와, 진짜 뻔뻔한 얼굴로 잘도 말하는구나.

‘거짓말’을 이용하면 이들의 의심을 가라앉히는 것도 문제가 없지만, 나는 일부러 갈등을 조장했다.

“저한테 자꾸 이런 패가 들어오는 걸 어떡합니까. 저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라고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니키도 옆에서 내 말을 거들었다.

“많이 본 사이는 아니지만, 확실히 이런 식으로 사기를 칠 만한 사람이 아니긴 해. 게다가 생각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면 로티플 세 번을 내놓을 리가 없잖아요.”

“그럼, 로티플이 연달아 세 번 뜬 게 그냥 ‘운이 좋아서’라는 거야?”

남자의 말에 테이블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확실히 뜰 확률이 0.0001퍼센트대인 패가 연달아 세 번 뜬 건, 글쎄. 조작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긴 했다.

“딜러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중년 여성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딜러인 모지아노에게로 향했다. 모지아노는 당황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맞아, 그쪽이 말해 봐. 이 카지노에서는 그 어떤 조작도 없다며!”

“맞, 맞습니다. 저희 카지노에서는 게임 중 그 어떤 재능도, 아티팩트도 끼어들지 않게 감시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쪽도 저쪽이랑 짜고 치는 거 아니야?”

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말해도 지금으로서는 소용없겠군요.”

“로티플을 연달아 세 번이나 만들었으니까.”

“일단, 저는 이번 판을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하, 사람 돈을 따고 내빼시겠다?”

“조금 전 딴 돈은 다 돌려 드리도록 하죠.”

내 말에 중년의 남자가 대뜸 외쳤다.

“누가 돈 때문에 그런 줄 아나? 게임을 도저히 믿을 수 없게 된 게 문제지.”

딜러인 모지아노에게 시선이 쏠렸다. 모지아노는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하신다면 여기에서 판을 접고…….”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판을 접으면 안 되죠. 정말로 문제가 있다면, 게임을 더 해 보면 알 거 아닙니까.”

“오호라, 이 테이블에 뭔가 문제가 있다?”

“그렇죠.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니까요.”

내 말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정말 무슨 장치라도 되어 있는지 알아보려면, 한 판을 더 해 보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요?”

“그래, 한번 해 보자고!”

사람들의 판단력은 이미 이 주변에 깔린 아티팩트와 암시, 그리고 나의 재능으로 인해 모두 날아간 다음이었다.

서로 간의 불신, 그리고 분노.

“딜러, 빨리 카드 내놔.”

내가 빠진 채로 사람들은 다음 게임을 시작했다. 모지아노는 떨리는 손으로 사람들에게 패를 나눠 주었다.

“패를 굳이 하나씩 까 볼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전부 까 보도록 하죠.”

내 주도하에, 모두가 패를 깠다. 그리고 모두가 패를 확인하기 전, 내가 입을 열었다.

“또 로티플이네요?”

“뭐라고?”

“그쪽 패를 봐요.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잖아요.”

내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50대 남성에게로 향했다.

“어? 아니, 아니었던 것…….”

조금 전까지 자신의 패를 보고 있던 50대 남자가 당황해서 외쳤다. 하지만 잠시 나와 눈을 맞댄 남자는 곧 홀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네! 로티플이야. 내, 내가 로티플을 만들다니…….”

“정말 이 테이블에 무슨 장치라도 돼 있는 거 아니야?”

니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그 장치가 오류를 일으켜서 로티플이 계속 뜨는 거고?”

“연달아 로티플이 네 번 뜨는 것보다 그편이 말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이 뭔가를 했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잖아요!”

누군가의 손짓이 나를 향했다. 내가 무어라 입을 열기 전 니키가 소리쳤다.

“아예 판에서 빠진 사람이 무슨 수로? 게다가 그런 능력이 있다면 굳이 이런 짓을 벌일 이유도 없잖아요! 그냥 입을 닫고 적당히 좋은 패를 만들면 그만인데.”

“하긴, 그건 확실히 그렇네.”

결국 모두의 결론은 하나로 모였다.

이 빌어먹을 카지노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는 쪽으로.

“이거 순 사기꾼들 아니야!”

니키가 제일 먼저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모지아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게 분명…….”

“착오라고? 무슨 착오?”

“됐어, 여기에서는 더 게임 못해. 나가자고요.”

니키의 말에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깐만요!”

여기에서 사람들을 이대로 내보내면,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이미 벼랑 끝에 선 채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카지노에는 사형선고나 다름없겠지.

‘이제 어떻게 나올 거냐.’

모지아노가 사람들의 앞을 막아섰다.

“여러분 모두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렇게 모든 게 끝날까, 생각하던 때였다. 방 전체에서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리고…….

“멈춰!”

그 외침에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몸을 멈췄다. 그 말을 외친 건, 안경을 쓰고 있던 안경잡이 어거스트였다.

안경을 벗은 어거스트는 천천히 멈춰 선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나는 슬쩍 눈을 굴려 어거스트의 얼굴을 살폈다.

안경을 벗은 그의 동공은 희미한 주황빛을 띠고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눈두덩이를 쓸어내린 어거스트가 욕을 중얼거렸다.

“씨X,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재능을 가진 건 딜러 쪽이라면서!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요.’

눈에 착용하는 렌즈가 아니라, 안경 렌즈 쪽이었나.

능력을 사용해 사람들을 멈춰 세운 어거스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야?”

모지의 질문에 어거스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내 능력이 통하는 건 길어야 몇 분뿐이야. 지, 지금도…….”

말을 하다 말고 어거스트는 황급히 손등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뚝, 뚝. 그의 코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이 소문이 바깥으로 흘러 들어가는 건 안 돼. 안 된다고.”

그렇게 중얼거린 모지아노가 테이블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 버튼에 신경이 쏠렸을 때였다.

퍽.

누군가 내 뒤통수를 갈겼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앞이 흐려졌다. 쓰러지기 직전, 나는 가까스로 뒤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기분 나쁘게 눈이 마주치더라고.”

깨진 와인 병을 손에 든 어거스트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젠장.

X 됐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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